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73화 (873/1,000)
  • 873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2)

    갓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서버가 닫힌 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여러 나라들의 검, 경찰력은 지지부진한 절차들을 수없이 거치고 거친 뒤에야 뎀 유니버스 본사를 압수 수색했다.

    그 결과 ‘클로즈 베타’라는 이름의 불법 인체실험이 행해졌던 정황을 포착, 관계되어 있던 몇몇 고위 임원들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정작 뎀 유니버스의 총수였던 윌리엄 링트 윌슨은 구속되지 않았다.

    그가 법망에 걸려들지 않았던 이유가 그에게 죄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행방불명(行方不明).

    수사인력들이 뎀 유니버스 본사 최심층부에 있는 돔 형태의 건축물을 압수 수색했을 때, 그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윌리엄 링트 윌슨은 도주 혐의로 전 세계 곳곳에 수배령이 내려졌지만 아무도 그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자리를 비웠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일각에서는 ‘그럼 그동안 서버 운영은 누가 한 것이냐?’, ‘몇몇 국가의 검, 경찰이 윌슨의 행방을 숨겨주고 있다’ 등의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음모론의 대상이 된 수사인력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들이 뎀 유니버스에서 윌슨이 기거하는 곳으로 통하던 돔 내부를 수사했을 때 이미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다만 돔 속 깊은 곳에는 용도불명의 커다란 통 하나가 있었고 그 속에는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뇌 하나만이 뒹굴어 다니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했다.

    텅 빈 통. 바닥을 드러낸 용액. 바짝 말라비틀어진 회백질의 덩어리.

    그리고 그 뇌에 휘감겨 있던 전선들과 반대쪽 끝에 연결된 모니터에는 단 한 문구만이 떠 있었다나.

    ‘합(合)을 만났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는 결국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뭐 아무튼.

    윌슨은 그렇게 모두에게서 잊혀지는가 싶었다.

    뎀 유니버스의 주가는 폭락했지만 해고되었던 몇몇 뜻있는 개발자들이 복귀하여 데우스 엑스 마키나 2를 만든다는 사실을 발표해 서서히 정상화되고 있었다.

    새로운 운영진들은 말했다.

    [전 세계의 모든 데이터들은 명예의 전당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웅들은 새로운 세계로 복귀했을 때 전에 키웠던 캐릭터들에 비례하여 스탯 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영웅들의 업적은 빛바래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생겨날 세계 곳곳 마을의 비석, 던전의 벽화, 떠돌이 음유시인들의 노래가사 속에서 영원토록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2를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

    여기 데우스 엑스 마키나 2의 신섭을 만들기 위한 기획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의하고 있다.

    늙은 개발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전 서버의 핵심 시스템 구조였던 정반합 시스템은 그대로 가져가는 게 맞겠죠?”

    그러자 젊은 개발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아주 흥미로웠어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시뮬레이션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이 안에서 그대로 재현해 냈죠.”

    어린 개발자도 공평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불사조의 의심이 인상적이었지요. 어쩌면 우리가 만든 가상현실 속 세계도 빠른 발전을 거듭하다 보면 그 안에서 새로운 가상현실이 생길지도 몰라요. 그 안의 또 다른 가상현실, 그 안의 또 다른 가상현실, 그 안의 또 다른 가상현실…….”

    여자 개발자가 감탄했다.

    “그건 마치 끝없는 마트료시카 인형 같군요!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남자 개발자가 오싹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어쩌면 미래를 볼 수도 있겠죠. 우리의 현실보다 더욱더 진보된.”

    뚱뚱한 개발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과학기술 자문 최고 과학자인 제임스 게이츠 교수를 필두로 MIT의 교수진들, 엘론 머스크와 닉 보스트롬, 디그레이스 타이슨과 브레인, 대니얼 화이트슨, 조나단 참 같은 쟁쟁한 과학자들도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그들도 이 가상현실 우주론에는 대단한 흥미를 보이더군요.”

    마른 개발자는 팔짱을 끼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다.

    “……시뮬레이션 속의 NPC들 또한 언젠가 과학발전을 이뤄 시뮬레이션 속의 시뮬레이션을 만들 것이고 이게 반복된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어떤 이(正)들이 만든 시뮬레이션 속의 존재들일까 봐 무섭네요.”

    흑인 개발자가 씩 웃었다.

    “사실 이 분위기에서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전 총수였던 윌슨 씨가 이런 이론의 열렬한 신봉자였죠.”

    갑자기 분위기가 차가워지자 백인 개발자가 말했다.

    “뭐, 사실은 사실이죠. 양자 얽힘 현상이나 관찰자 효과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느 고차원적인 존재가 어떠한 목적으로 만든 수많은 시뮬레이션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황인 개발자도 동조했다.

    “우주는 bit로 이루어진 컴퓨터와 다르지 않죠. 아주 정교하며 또 섬세한 수학적 공식에 따라 코딩된. 사실 이건 플라톤 시절부터 다루어져 왔던 아주 오래된 명제예요.”

    1.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문명은 그 안에 작은 가상세계를 구축한다.

    2. 그러한 작은 가상세계는 수없이 많다.

    3. 그 가상세계 속 존재들은 자기들이 ‘현실’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를 가상현실에서 탈출시켜 줄 코드도 있겠군요. ‘Do a Barrel Roll’같은. 하하하-”

    “정말, 우리는 타고난 반(反)들이에요~”

    “어이쿠, 참. 게임 개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요즘 비슷한 가상현실 게임들이 너무 많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구요.”

    수많은 기획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탕탕탕!

    테이블을 두드리는 손이 있었다.

    남세나. 새롭게 게임 관리부서의 책임자가 된 그녀.

    “지금 잡담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 데우스 엑스 마키나 2의 세계는 이미 완성된 상태다.

    맵 디자인도 끝났고 실제 구현 역시도 마쳐 놓았다.

    이 과정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1의 세계가 지구평면설을 기초로 하고 있기에 그렇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acs, 1885∼1971) 『서사시의 시대』 中-

    현실의 지구는 둥글다.

    하지만 오래 전, 세상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세상의 끝으로 가면 커다란 절벽이 있고 바닥이 없는 낭떠러지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1의 세계관은 바로 그런 구시대(舊時代)의 세계관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낭만(浪漫)과 로망(roman). 먼 옛날의 이론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

    데우스 엑스 마키나 2를 기획하고 있는 이들은 1에서 잘 짜 놓은 이 판을 그저 뒤집었을 뿐이다.

    ‘Do a barrel roll’

    뒤집힌 대륙은 또 하나의 광활한 세계를 드러낸다.

    이곳 역시도 바다가 있었고 숲과 사막, 계곡과 산맥들이 존재한다.

    뎀 1의 세계와 뎀 2의 세계는 서로 그렇게 양면적으로 평행하게 놓여 있는 것이었다.

    이곳으로 데이터를 그대로 전송해 오기만 하면 되니 뎀 2의 서버를 여는 것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메인스트림의 부재.

    새로 만들어진 뎀 2의 세계에는 태양이 없었다.

    완전한 암흑에 뒤덮여 있는 세상.

    이곳의 새로운 태양이 되어야 하는 존재는 바로 불사조이다.

    “윌슨 총수 본인이 앙신이 되어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계획은 스토리적으로 꽤나 훌륭했죠.”

    “이제 사람들은 지저(地底)를 통해 대륙의 반대편 면으로 넘어가 새로운 삶을 사는 겁니다.”

    “하지만 불사조가 그쪽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군요.”

    그렇다.

    뎀 1의 서버가 닫히기 전, 불사조는 뎀 2의 세계로 아주 먼 항해를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로 떠난 존재가 언제쯤 답신을 주는가를.

    이어진.

    새로운 세계의 태양이 되기 위해 떠난 불사조와 함께 간 존재.

    그가 언제쯤 뎀 2의 신대륙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래서 언제쯤 답신을 보내올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모든 개발자들은 입을 모아 현재 어진의 위치를 추론했다.

    “그는 지금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을 지나고 있을 거예요.”

    “블랙홀의 반지름 부근을 지나고 있는 걸까?”

    “그는 어쩌면 벌써 우리를 향해 메시지를 보냈는지도 몰라요. 다만 빛도 시간도 양자도 그 모든 개념들이 바스러지는 세상 속인지라 그 메시지가 아직까지 우리에게 닿고 있지 않을 뿐이지.”

    “뇌 과학의 영역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으니까요.”

    오무아무아(Oumuamua). ‘멀리서 온 메신저’, 혹은 ‘처음 도달한 정찰대’.

    이어진이 보낸 메시지가 그들에게 도달하는 데에는 1천 년이 걸릴 수도 있고 또 어쩌면 1초가 걸릴 수도 있다.

    앞으로 십 수 세기가 지나도록 그의 답장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당장 몇 초 뒤에 답장이 올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오무아무아의 여정이다.

    “……일단 영웅의 답변이 오기를 기다립시다.”

    남세나의 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회의실에 앉아 있던 수백 명의 개발자들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묵념을 했다.

    창문 바깥에는 어린아이들이 뛰노는 광장이 보인다.

    수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이곳 광장의 이름은 ‘영웅의 광장’.

    그리고 그 중앙에는 아직도 어마어마한 수의 관광객들이 와서 헌화를 하는 기념비가 존재한다.

    온갖 꽃들과 지폐, 동전, 편지, 포스트잇, 선물들로 인해 작은 동산처럼 보이는 기념비.

    그 기념비의 위에는 커다란 생명유지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이어진.

    그가 캡슐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       *       *

    뉴스가 나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한 영웅 이어진 씨는 현실에서는 식물인간 상태이며 그의 의식은 현생인류로서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을 유영 중에 있습니다. 그의 여정은 단 1초 만에 끝날 수도 있으며 1분, 1시간, 1일, 1개월, 1년, 10년, 10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아마 그는 이미 우리의 상식이 닿지 않는 신의 세계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르는……]

    삑 소리와 함께 화면이 꺼졌다.

    “바보 같아.”

    모자 아래로 중얼거리는 여자.

    그러자 그 옆에 있는 키 큰 남자가 당황한다.

    “누님. 여기서 그런 소리하면 돌 맞어.”

    “바보 같으니까 바보 같다고 하지. 븅신새끼.”

    여자는 모자를 꾹 눌러쓰며 중얼거린다.

    경건한 모습으로 헌화를 하던 몇몇 정장 차림새의 사람들이 표정을 찌푸리더니 그 옆을 스쳐 지나간다.

    영웅의 광장.

    그리고 그 중앙에 박제된 영웅.

    여자의 눈시울은 어느 새인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정상에서 기다린다고 해 놓고…… 이게 정상이야? 누가 봐도 비정상이잖아.”

    “누님. 그 정상이 그 정상이 아니잖아. 공부 좀…….”

    남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여자가 주먹으로 그의 배를 후려갈겼기 때문이다.

    배를 움켜잡고 바들바들 떠는 남자.

    여자는 다시금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들어 영웅이 들어 있는 캡슐을 바라본다.

    미동 하나 없이 잠들어 있는 영웅.

    여자는 다 뭉그러진 발음으로 울먹거린다.

    “너 들려주려고 신곡도 만들었는데. 이번 힘민체 신곡도 엄청 좋은데…… 노래를 만들었는데 왜 듣지를 못하니!”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 도중 빗방울이 잠깐 떨어졌고 이내 눈이 내려 쌓이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시간이 늦어 주변에 지나다니던 수많은 참배객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도 계속 그 자리에.

    그렇게 몇 시간이나 서 있었을까.

    여자의 입술이 무겁게 떨어졌다.

    “……또 올게.”

    얼마나 자주 왔던 것일까? 그녀는 자기가 늘 꽃을 놓는 자리에 또 다른 꽃을 놓았다. 이미 수북하게 쌓여 버린 꽃다발이다.

    바로 그때.

    돌아서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잘 만큼 자지 않았어?]

    그녀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이자 지금은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어 있는 노래.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들고는 정해진 시간에 울리도록 설정되어 있는 알림을 확인했다.

    이제 갈 시간. 여자는 알림 소리를 끄려다가 문득 손가락을 멈췄다.

    [소중한 지금을 누워서 보낼 거야?]

    어째 지금은 이 노래를 조금 더 듣고 싶었다.

    영웅의 광장. 흘러나오는 옛 노래.

    [일어나 뛰자!]

    여자가 흘러가 버린 과거의 향취에 취해 잠시 눈을 감고 있을 때.

    “……어?”

    그녀의 등 뒤에서 얼빠진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가 기념비 위를 쳐다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내, 그는 떨리는 손을 들어 음악에 취해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팔을 툭툭 친다.

    하지만 여자는 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듯 무시했다.

    [With the collapse of the Interstellar, all that changed! Log Out Out Out Out Out Out!]

    그러나. 평소대로라면 그냥 넘어갔을 남자는 계속해서 여자의 팔을 툭툭, 아니 이제는 아예 퍽퍽 치기 시작한다.

    추억 회상을 방해받은 여자가 무슨 일이냐는 듯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그러자 남자는 덜덜 떨리는 검지를 들어 기념탑 위의 캡슐을 가리켰다.

    [내 손을 잡아!]

    그리고 멍하니 입을 열었다.

    “……누님. 이 형님, 웃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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