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72화 (872/1,000)
  • 872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1)

    ‘세상은 아름답고 싸워 볼 가치가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       *       *

    태양이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정지된 시간.

    나는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한 태양의 중심부에서 오무아무아, 아니 윌슨과 마주하게 되었다.

    윌슨은 그간 내가 봐 왔던 그 어떤 모습과도 닮지 않았다.

    그저 희뿌연 한 가닥의 빛무리로서 존재할 뿐.

    윌슨은 문득 내게 물었다.

    [이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어? 특이점이 오기 전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윌슨은 한숨을 쉬었다.

    [너는 지금 특이점의 바로 앞, 격변의 변두리에 서 있어.]

    “…….”

    [이는 인류의 출현과 맞먹을 만큼 중대한 의미를 지니지.]

    윌슨은 말했다.

    그는 내 앞에 그래프를 그렸다.

    완만하게 오르는 곡선, 그것은 어느 기점을 기해 거의 수직에 가깝게 팍 솟구쳐 오른다.

    윌슨은 말했다.

    [가령 100년 전, 그러니까 1900년대의 사람을 현대로 데려오면 어떨까?]

    “……그건 왜 묻지?”

    [상상해 봐.]

    윌슨의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턱을 쓸었다.

    “글쎄, 아마 놀라서 기절하지 않을까? 빌딩에 스마트폰에 가상현실 헬맷에…….”

    [그렇다면 1800년대의 사람을 1900년대로 데려오면?]

    “……음. 뭐 놀라기야 하겠지? 기절할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내 말을 들은 윌슨은 고개를 끄덕이는 듯한 눈치다.

    [맞아. 1800년대와 1900년대, 그리고 1900년대와 2000년대는 똑같이 100년의 차이지만 인류의 기술과 지성은 그때의 격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격차를 보이며 증가했지. 이를 ‘특이점’이라 해. 그리고 지금 인류는 또 하나의 특이점을 목도하고 있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새로운 지평을 말이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 있으니 너를 방해하지 말라고?”

    내 말을 들은 윌슨은 말이 없다.

    나는 다시 말했다.

    “네가 만든 세계, 네가 만들어 낸 인공지능인 불사조는 나를 택했어. 이 세계를 구해달라고. 왜 네가 아니라 나일까? 그것은 네가 이 세계의 인과율을 조정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야.”

    일명 ‘부정한 개입’.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제 인체실험을 하고 그렇게 얻어진 결과값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다니.

    무슨 만화에나 나올 법한 악당이다.

    나는 언젠가 들었던 김정은의 말을 떠올렸다.

    [윌슨은 최대한 많은 동시 접속자를 만든 뒤 그들의 인격과 육체를 이 가상현실 속에 복제해 둘 계획을 꾸미고 있습니다!]

    [신! 그는 이 세계의 신이 되고자 하는 거죠! 탈출할 수 없게 된 그 수많은 동시 접속자들을 모조리 자신의 백성, 아니 피조물(被造物)로 전락시킴으로써! 마치 클로즈 베타 때와도 같아요!]

    게임 속 만물의 영장인 플레이어조차 한낱 ‘피조물(被造物)’로 전락시켜 버리는 ‘절대타자(絶對他者)’, 윌슨은 정말 그런 존재로 군림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너는 정말 이 세계의 신이 되고자 하는 거야? 그걸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간혹 있다. 자기가 죽고 난 후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잊어버리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어떤 작품의 유명한 대사. 답은 바로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이다.

    그래서 그들은 후세의 사람들이 자기를 기억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한다.

    기념비를 남기기도 하고 작품을 남기기도 하며 기부를 통해 선행을 하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과연 김정은의 주장대로 윌슨은 새로운 세계의 신으로 영원토록 군림하고 추앙받으며 기억되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하지만.

    윌슨은 그저 웃을 뿐이다.

    [내가 들어본 이유 중 가장 바보 같은 것이로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영웅, 신, 영원토록 기억될 인물.

    윌슨은 이따위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내, 그는 내게 물었다.

    [예전에 있었던 자X교의 교본을 기억하나?]

    아, 그걸 어찌 잊겠나. 심의에 몇 번이나 걸렸었던 그 망할…….

    “물론 기억하고 있지.”

    내 대답을 들은 윌슨은 말을 이었다.

    [NPC나 몬스터들을 자살시키는 방법은 간단하지. 본인이 가상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거야. 코드의 배열로 말이야.]

    당시 NPC들은 자기가 아무렇게나 읊조린 숫자의 무작위 나열들이 그대로 책의 다음 페이지에 적혀 있는 것을 보고는 자살을 꾀했다.

    ……그런데 지금 그 말이 왜 나온단 말인가?

    내가 의아한 기색으로 말이 없자 윌슨은 희뿌연 몸을 움직여 뒤에 있는 내 뒤에 있는 불사조를 향해 섰다.

    [불사조의 작동 원리는 알고 있겠지?]

    모를 리가.

    불사조는 정반합(正反合) 시스템에서 반(反)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서브스트림.

    2014년에 발촉된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알고리즘 인공지능’을 기초로 만들어진 ‘의심하는 존재’이다.

    ‘가짜를 생성하는 네트워크’가 ‘가짜를 구별하는 네트워크’를 속일 수 있도록, ‘가짜를 구별하는 네트워크’가 ‘가짜를 생성하는 네트워크’를 간파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

    윌슨은 ‘정(正)’으로서 진짜 같은 가짜를 생성하고 불사조는 ‘반(反)’으로서 그것을 의심하며 이런 공방전을 거쳐 더욱 더 정교해지는 게임 데우스 엑스 마키나, 즉 ‘합(合)’이 탄생하는 정삼각형 구도이다.

    “쉽게 말해 정(正)은 ‘위조지폐범’에, 반(反)은 ‘경찰’에, 합(合)은 더욱 정교해진 위조지폐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겠지?”

    [맞아. 그런데 돈 복사 버그 때문에 이 지경까지 몰린 나로서는 그 위조지폐에 대한 비유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군.]

    윌슨은 자기가 적대자로서 만들어 낸 불사조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물론 별로 웃기지 않은 농담이었기에 나는 웃지 않았다.

    정색하고 있는 나를 향해 윌슨은 또다시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영원한 정(正)도, 영원한 반(反)도, 영원한 합(合)도 없지.]

    “……?”

    [우리는 모두 정(正)인 동시에 누군가의 반(反)이며 또 다른 누군가들의 합(合)이다.]

    사람인 이상 한 가지 역할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내가 아무리 올바르게 살아왔어도(正) 분명 나를 싫어하는 적(反)은 존재하며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누군가들(合)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윌슨은 말했다.

    [나는 게임 세계의 정(正)인 동시에 현실의 반(反)이었다.]

    그 말은 쉽게 알아듣지 못할 만큼 뜬금없고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윌슨은 내게 말했다.

    [지금 당장 아무 숫자들이나 생각나는 대로 말해 봐.]

    이상한 요구였다.

    나는 고개를 한번 갸웃한 끝에 입을 열었다.

    “57159610251136525112357159369871477485698566222250161127541262853101067961230195260819856209909126037211203…….”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숫자들의 무작위 나열.

    바로 그때.

    윌슨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자기 마음대로 내 인벤토리를 열어젖히더니 그 안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나조차도 그 존재를 잊고 있을 만큼 오래된 한 주문서였다.

    -<‘오무아무아’의 악몽 증명서> / 주문서 / S

    57159610251136525112357159369871477485698566222250161127541262853101067961230195260819856209909126037211203……

    -당신이 겪은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증명합니다.

    혹은 당신이 겪은 것이 현실이 아니라 꿈임을 증명합니다.

    그 주문서에 적혀 있는 숫자들의 나열을 보는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방금 아무렇게나 말한 숫자들이 그곳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적혀 있었다.

    또한 그것은 NPC들이 보고 자살한 숫자 코드의 정반대로 배열된 수열이었다.

    마치 적그리스도의 상징인 거꾸로 된 십자가, 혹은 악마가 거꾸로 외우는 주기도문처럼 완전히 뒤집혀 있는.

    “……이게 대체.”

    내가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중얼거리자 윌슨이 말을 이었다.

    [가상현실 속의 불사조가 자기가 속해 있는 세계관을 의심하듯, 나 역시 내가 속해 있는 현실을 의심했다.]

    “……!?”

    [그렇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바로 반(反)이다.]

    클로즈 베타는 초석, 이 게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들기 위한 발판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윌슨에게 있어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자체도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윌슨은 계속 말했다.

    [수없이 많은 가상현실 속에서 정과 반이 대립하여 합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현실에도 수없이 많은 정과 반들이 대립하지. 나는 그 어딘가의 정과 반의 대결을 통해 합이 된 존재.]

    동시에.

    윌슨의 희뿌연 몸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과 반이 만나 합에 이르는 과정.

    그 합은 또 다른 반을 만나 정이 되어 싸우고 이내 전혀 다른 상위의 존재 합이 되어 상위로 올라간다.

    그렇게 위로 올라간 합은 또다시 정이 되어 다른 반과 만나고 또 전혀 새로운 종류의 합이 되어 더 높은 곳으로…….

    그렇게 해서 정은 누군가의 반이 되고 또 새로운 합이 되기도 하면서 정과 반과 합이 되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윌슨은 아래에 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정. 너는 반. 그리고 나는 너를 통해 더 높은 곳에 있는 합의 경지를 보려 함이다.]

    동시에, 주변에서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지나 했더니 이내 오무아무아의 육체가 윌슨을 단단하게 감싼다.

    마치 거대한 통조림을 보는 듯한 그 외형.

    그것은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오무아무아(Oumuamua). ‘멀리서 온 메신저’, 혹은 ‘처음 도달한 정찰대’.

    그것은 아주 먼 항해를 시작하려는 배처럼 보였다.

    “그런가. 너는 현실의 불사조 같은 거였나.”

    가상현실 속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이 가상이 아닐지 의심하던 불사조처럼, 윌슨은 자신의 현실을 끊임없이 의심했던 존재. 반골(反骨), 그 자체였던 인간.

    그는 이제 저물어 가는 황혼을 등지고 날개를 펴 기나긴 항해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ämmerung ihren Flug.’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윌슨은 인류를 아득히 넘어 그 상위에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영접하려 한다.

    [너는 나의 적대자이자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

    과거 윌슨이 내게 했던 말을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현실과 가상, 특이점 너머의 저 아득한 세계를 유영하고 싶어 하는 그를 나는 무어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영웅? 악당?

    굳이 내 부족한 어휘력을 더듬자면 한 가지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파이오니아(Pioneer).’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양보를 강요하면 새치기고, 기부를 강요하면 강도고, 사랑을 강요하면 강간이고, 희생을 강요하면 살인이지. 아무리 인류를 초월한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었어도…… 그게 같은 현세를 살아가는 존재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나는 거부하겠다.”

    동시에, 나는 손을 뻗었다.

    어딘가로 올라가려는 오무아무아의 발목이 내 손에 잡힌다.

    윌슨은 그제야 인간다운, 너무나도 인간다운 반응을 보였다.

    [놔라 이 머저리야! 이 중요한 순간에 감히……!?]

    “그래, 사람이면 그렇게 욕도 하고 그래야지.”

    [이 개XX XXX같은 XXX아 당장 XX XXXX해서 XXX를 콱 XXX!]

    “……어우, 욕 너무 잘하고.”

    원래 욕이란 인간의, 게이머의 숙명이다.

    트롤짓을 하는 동료에게 퍼부을 것이 욕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나는 계속해서 윌슨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저런 놈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게 된다면 뭔가 기분도 나쁠 것 같고, 또 그러게 냅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윌슨은 불타는 듯한 외눈을 들어 나를 내려다본다.

    [어차피 내가 떠나면 메인스트림의 관리자 자리는 비게 된다.]

    “……그걸 나 주겠다는 거야?”

    [천만에! 모든 이들의 데이터 기록들이 말소될 것이다! 이 세계는 너희들을 완벽하게 잊어버리게 되지!]

    동시에.

    …팟!

    환한 빛의 세계가 사라진다.

    다시 현실, 아니 게임 속 가상현실로 되돌아왔다.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와지지지지직!

    모든 이들의 합공에 박살난 태양이 수없이 많은 파편들을 대륙 위로 떨구고 있었다.

    리부트(Reboot).

    이 세계가 본격적으로 멸망의 길에 들어선다.

    동시에 귓가로 파고드는 익숙한 알림음.

    .

    .

    결국 이 알림음이 뜨고야 말았다.

    벨페골의 악몽 속에서 들었던 이 섬뜩한 카운트.

    “안 돼!”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내 캐릭터 삭제하지 마아아아!”

    곳곳에서 절규가 터져 나온다.

    땅을 치며 울부짖는 플레이어들.

    하지만 머리 위로 쏟아지는 유성우와 코로나 폭풍은 감히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

    ……아니.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나는 전신에서 넘쳐흐르는 힘을 한 군데에 끌어 모았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내 모습에 전 세계 모든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야 변태! 너 뭘 하려고……!?”

    유다희가 외치는 소리가 아련하게 아스라진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비장의 무기, 최후의 히든 피스를 꺼내들었다.

    -<검은 씨앗> / 재료 / ?

    길(吉)과 불길(不吉)의 사이에서 자라난 열매의 정수.

    그 끝이 좋을지(Happy ending) 나쁠지(Bad ending)는 알 수 없다.

    -?

    그것은 바로 꿀열매의 씨앗.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선악과(善惡果)였다.

    모든 이들이 놀랐지만 그 중 가장 놀란 이들은 뭐니뭐니해도 니고데모와 보카사, 베티를 비롯한 천사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주위의 시선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씨앗을 내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는 곳.

    심장에 바로 꽂아 넣었다.

    동시에.

    ……우드득!

    익숙한 변화가 내 몸에서 관측된다.

    츠츠츠츠츠츠츠!

    나의 전신을 뒤덮는 시커먼 기운.

    그것은 나의 몸 형태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Bad Ending Nightmare form) / 일명 ‘고인물’>

    -등급: EX

    -특성: 데우스 엑스 마키나

    -습성: 배회성

    -서식지: 어머니의 마을 ‘유토러스’

    -……일반적인 형태의 배드엔딩과는 뭔가 다른 것 같다.

    배드엔딩. 이 세계의 말로(末路)를 함께 걸어갈 존재.

    나는 통제가 되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는 몸으로나마 뛰어올라 태양 너머로 사라져 가는 윌슨을 쫓았다.

    그리고.

    그런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번쩍!

    윤솔이 죽기 전에 쳐 놓은 신성불가침 장막.

    내가 그것에 닿는 순간, 나의 몸이 한번 더 변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몸이 정화되며 새 살이 돋아난다.

    <해피엔딩 루시드드림 폼(Lucid Dream Form) / 일명 ‘고인물’>

    -등급: EX

    -특성: 데우스 엑스 마키나

    -습성: 배회성

    -서식지: 어머니의 마을 ‘유토러스’

    -……일반적인 형태의 배드엔딩과는 뭔가 다른 것 같다.

    과거 천공섬 ‘쿼바디스’에서 성불했던 천사들처럼, 나는 해피엔딩의 육체를 갖게 되었다.

    …꿈틀!

    잠시 잃어버렸었던 몸의 통제권이 다시 손아귀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변한 이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배드엔딩 / 일명 ‘한때의 플레이어’> -등급: …… / 특성: ……

    -습성: 버로우성

    -서식지: 어머니의 마을 ‘유토러스’

    -발견일: 0월 0일 0시 0분.

    -한때는 플레이어였던 존재.

    하지만 지금은 비참한 말로(末路)를 맞이한 패배자에 불과하다.

    오무아무아에게 당해 지금껏 배드엔딩으로 변해 있었던 플레이어들이 전부 다 해피엔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해피엔딩 / 일명 ‘최후의 플레이어’> -등급: …… / 특성: ……

    -습성: 배회성

    -서식지: 어머니의 마을 ‘유토러스’

    -발견일: 0월 0일 0시 0분.

    -자신의 말로(末路)를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 싸우는 존재.

    모든 이들이 용기백배하여 내 뒤를 따른다.

    나 역시 가진 모든 힘을 끌어내어 태양폭풍을 뚫고 그 너머의 윌슨에게로 쇄도했다.

    불사조가 그런 내 귓가에 속삭인다.

    [모두를 위한 하나(One For All), 하나를 위한 모두(All For One). 지금의 너라면 자격이 있다.]

    그것이 내가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가청영역을 한참 초월한 굉음의 바다를 건너, 나는 윌슨의 발목을 잡는다.

    동시에.

    친숙한 알림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섭종. 서버 종료.

    윌슨의 몸이 바스라진다.

    동시에 이 세계도, 나의 몸도 바스라지고 있었다.

    더 이상 들려오지도 않는 알림음.

    하지만 알림음이 남긴 자국만은 자막처럼 남아 흐려진 시야로도 뚜렷하게 보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안에 깃든 여러분들의 추억은 이제 아주 먼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도착까지는 아주 긴 여정이 될 것이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시 여러분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우주 끝자락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럼 여러분, 안녕. 안녕. 언젠가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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