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68화 (868/1,000)
  • 868화 4차 대격변 (5)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신의 기계적 출현’, ‘혹은 기계장치의 신’.

    게임 캡슐 속 세상에서 이 스킬은 그야말로 신의 권능에 버금가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 이 세상의 처음과 끝을 보고 왔다.

    지난 30년간의 경험치와 내가 새로 쌓은 경험치는 거의 40년 상당의 것이다.

    나는 지난 15년간의 기억과 함께 원래 받았어야 할 나머지 절반을 돌려받았다.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상태창이었다.

    회귀 이전과 이후의 기억에 따라 플레이 타임이 쭉 상승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에 따라 다른 특성들도 영향을 받는다.

    <이어진>

    LV: 100

    HP: 1,000/1,000

    호칭: 푸른 용군주 버뮤다의 위상(특전: 잠수) / 레흐락과 게슈탈트의 친구(기다림)

    레벨업. 그리고 만렙.

    ‘잠수’ 특성은 접속해 있지 않는 동안에도 플레이 타임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스킬.

    ‘기다림’ 특성은 플레이 타임에 비례하여 소정의 추가 경험치를 얻는 스킬이다.

    나는 불사조의 인가에 따라 지난 40년 동안의 플레이를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 두 특성의 연계효과도 함께 적용받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최후의 레벨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동시에.

    <이어진>

    LV: 100

    HP: 1,000/1,000

    호칭: 분노의 악마성좌 사탄의 위상(특전: 선악과)

    나는 사탄을 잡고 얻은 선악과 특성을 오무아무아에게 걸었다.

    일생일대의 숙적에게 딱 한 번만 쓸 수 있는 스킬.

    이로서 오무아무아를 상대하는 동안 나의 전투력은 10배로 폭증한다.

    그 다음으로 발동한 특성은 바로 ‘회색분자’.

    <이어진>

    LV: 100

    HP: 1,000/1,000

    호칭: 회색 용군주 로도피스의 위상(특전: 회색분자)

    재가 빨래에서 때를 분리하듯, 잿빛용 로드피스를 잡고 얻은 이 스킬은 융합한 몬스터에게 10배의 추가 데미지를 준다.

    이로서 나의 전투력은 거의 100배에 가깝게 폭증한다.

    더군다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어진>

    LV: 100

    HP: 1,000/1,000

    호칭: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나는 HP를 떨어트려 나의 스탯을 계속해서 폭주시켰다.

    이로서 나의 전투력은 기존의 1천배.

    여기에 백전노장, 싸움광 등등의 스탯 보너스가 더해졌다.

    비로소, 오무아무아의 실체가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멸망의 어머니 ‘오무아무아’> -등급: S++ / 특성: 융합, 정반합, 용, 악마, 고생물, 어둠, 빛, 불, 물, 풀, 바위, 바람……

    -서식지: 어머니의 마을 유토러스

    -크기: 230m

    -이 세상의 마침표.

    끝을 알리기 위해 먼 곳에서 온 여행자.

    두려움이 걷히자 본질이 보인다.

    두렵게만 보이던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잡아야 할 몬스터에 지나지 않을 뿐.

    “등급이 투쁠이냐? 무슨 한우도 아니고.”

    규격 외의 존재가 규격 내로 들어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사냥뿐!

    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오무아무아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오무아무아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계속해서 팔을 휘젓는다.

    태양은 전보다 훨씬 거대해져 있었고 어느덧 대륙에서 제일 높은 ‘가혹한 설산’의 봉우리를 부수기 시작했다.

    우지지지지직!

    대륙이 부서져 간다.

    모든 이들이 지레 놀라 자세를 낮추며 허둥거리고 있었다.

    “으아아! 이러다 태양에 깔려 죽겠어!”

    “그 전에 타죽겠다! 더워! 아니 뜨겁잖아 이제!”

    “으아아! 산들이 무너진다!”

    “북대륙의 빙하들이 녹아서 해수면이 높아졌어!”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거대한 혼돈이 드리우고 있는 지금.

    …팟!

    나는 오무아무아를 향해 돌진한다.

    드레이크가 그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진! 그대로 가면 자폭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그 말이 맞다.

    나는 지금 내 한 몸을 불사를 각오로 오무아무아를 향해 가는 것이니까.

    “모두들, 뒤를 부탁해.”

    그것이 나의 마지막 유언(遺言).

    차차차차차착!

    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을 다 동원했다.

    모든 장비들을 장착해 스탯을 높였고 스킬들도 풀가동한 상태.

    이제 오무아무아와 태양을 막아 낼 차례, 이 세상을 구원할 때이다.

    “간다아아앗!”

    필살기를 준비할 때에는 예고해 주는 것이 주인공의 미덕.

    나는 온 힘을 다해 오무아무아를 향해 뛰어올랐다.

    …번쩍!

    그리고.

    섬광과 폭발이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쾅!

    내가 쏟아낸 공격과 반사 데미지에 피격당한 오무아무아가 괴성을 지르며 꿈틀거린다.

    떨어지던 태양이 멈췄다.

    쩌저저저적!

    오무아무아와 태양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오무아무아의 가슴팍에 금이 가는 동시에 태양의 표면에 시커면 균열이 뿌리처럼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림없다.]

    오무아무아는 죽지 않았다.

    놈은 쓰러질 듯 휘청이던 몸을 곧추세웠고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비록 태양은 기세가 죽어 그 자리에 멈춰서기는 했지만 오무아무아가 있는 한 다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편.

    “……아아.”

    이 종말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은 입을 모아 한탄했다.

    그들은 본 것이다.

    고인물. 그리고 마동왕.

    금세기 최고의 플레이어가 태양에 부딪쳐 소멸하는 것을.

    “……거짓말이지?”

    “말도 안 돼. 저 사람이 죽을 리 없어!”

    마교인도, 덜렁교인도, 아니 모두가 경악과 불신, 침중함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모두가 분명히 보았다,

    한계를 넘어선 충격에 부서지고 이내 태양폭풍에 휩싸여 실시간으로 불타 사라지는 영웅의 최후를.

    자폭. 구국의 결단.

    그것은 실로 애통하고 또 가슴 먹먹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멸망하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윌슨의 말대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잠시 주춤했던 멸망은 다시 묵묵히 지속된다.

    [보아라.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 말은 모두에게 현실이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해 준다.

    필멸(必滅). 그 누구도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어진이 죽는 건 처음 본다. 이건 말도 안 돼…….”

    드레이크가 태양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상태창을 다시 살피지 않아도, 파티창을 열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방금의 폭발과 함께 자신의 목덜미가 섬짓했으니까.

    “이건 말도 안…….”

    입에서 나오는 말과 다르게 떨리는 손과 발.

    ‘고인물’의 직감이 죽음을 알려온 것이다.

    어떤 특성이 있든,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든.

    저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그저 ‘꼼수’에 불과하다고.

    누구의 말처럼,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다.

    “아니, 어, 사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SW 방, 방향의 지형지물을 이…….”

    “드레이크 씨!”

    윤솔이 드레이크의 두 어깨를 흔들었지만 그의 두 눈엔 초점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죽은 건가? 어진?”

    마침내 흘러나온 드레이크의 말에 윤솔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 번도 죽지 않았던 영웅의 죽음.

    하지만 첫 번째 죽음이든 만 번째 죽음이든 분명 죽은 것은 죽은 것이다.

    나의 죽음 앞에 플레이어 연합군의 사기가 크게 꺾였다.

    “아아, 고인물도 결국은 사람이었구나.”

    “저런 영웅도 못 막은 게 멸망인데…… 우리가 가능할 리가 없잖아.”

    “마동왕 님이 못 한 걸 우리가 어떻게 하냐고!”

    “세상에 저런 게이머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어떻게든 해 봤을 텐데…….”

    “끝이야…… 다들 녹화나 켜. 이 시국에 저장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전장에는 경악과 불신, 애도와 절망이 혼탁하게 뒤섞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선 이는 바로 윤솔이었다.

    “어진이의 유지를 헛되이 해서는 안 돼요!”

    그러나 모두들 잠시 그녀를 주목하다 이내 체념할 뿐이었다.

    명실상부 세계최강의 플레이어였던 존재의 죽음.

    그리고 그 강함은 누구보다 강하다든가 하는 상대적인 면의 의미가 아니다.

    어떠한 천재도, 어떠한 거대 세력도 범접할 수 없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강함.

    대체 불가능한 절대적인 강함 그 자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은다고 해도 고인물이나 마동왕이 될 수는 없는 거잖아. 게임이 그렇게 단순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 그렇게 읊조리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야지 무슨…….”

    “끝났어. 더 추해지지 말자.”

    “그래, 어차피 안 될 거였어, 이건….”

    레벨1의 플레이어가 100명이 모인다 한들, 레벨 100의 플레이어에 비할까!

    과거 2차 대격변 당시에는 벌과 개미들에 의해 그런 일이 발생하긴 했지만 여기 모인 모두는 인간이다.

    과거 이 세계를 숫자로 지배했던 지배종이 아니라 단지 이 세상에 놀러왔을 뿐인 이방인.

    힘을 아무리 합쳐 봤자 고인물이나 마동왕 한 명의 힘에 미치지 못함을 모두가 다 잘 안다.

    “……뭐?”

    단 한 명 빼고.

    그것은 바로 나찰 같은 표정을 짓고 모두를 째려보는 윤솔이었다.

    “뭐 이 새끼들아?”

    한 순간 싸늘하게 바뀐 그녀의 기세에 모두들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분명 걸그룹까지 하고 있는 여성스러운 이미지의 플레이어가 아니던가!

    물론 가끔 그녀의 괴력에서 나오는 플레이는 험악 그 자체였지만 게임 밖의 그녀는 분명 청초하고 발랄하기로 유명한 연예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어떤가!?

    “윤솔…… 맞아?”

    “저저저저! 대체 무슨……!”

    “히익! 천상여자인 줄 알았는데!”

    “설마 저게 본모습?”

    윤솔은 그런 시선들을 정면으로 당당히 받아내었다.

    “천상여자? 그럼 니들은 천상남자냐? 못 이길 싸움이라고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그게 니들이 말하는 상남자식 플레이냐!?”

    그녀는 온몸의 마나를 쥐어짜 거대한 신성장벽을 만들었다.

    파아아앗!

    S급으로 업그레이드 된 치천사의 하프가 오무아무아가 서 있는 곳을 포함하여 전 광역에 반구형 돔을 생성했다.

    쿠구구구구구……

    태양은 또다시 윤솔의 방어막에 낙하 속도를 늦춘다.

    이제는 전 대륙의 좀 높다 하는 산맥들의 봉우리가 죄다 태양의 겉표면에 닿아 녹고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윤솔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이 겁쟁이 새끼들아…! 주절거릴 거면 빨리 꺼져!”

    그러자.

    “……누, 누가 도망간대?”

    “허 참! 무슨 말을 섭섭하게 하네!”

    “이 누나 참 보기 드문 매력이 있네?”

    북어처럼 말라붙었던 모든 플레이어들의 눈동자에 순간적이나마 생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래! 해 보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노잼사가 웬 말이냐!”

    “어이, 윤 씨! 그만 째려보고 방어막이나 위로 밀어 올려!”

    “크큭, ‘평범한 인간’들이라면 무리겠지. 하지만 우리가 누구냐! 으랏차차! ‘의지의 한국인’들이란 말씀! 으랴으랴으랴으랴!”

    “어기영차! 어기영차!”

    “어기영차! 어기영차!”

    “어기영차! 어기영차!”

    이곳저곳에서 다시 일어난 플레이어들이 손을 보탠다.

    “그래! 우리도 해 보자고!”

    “고인물 씨에게 기대기만 할 수는 없어!”

    “마동왕 님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자!”

    “다같이!”

    “우! 윳! 빛! 깔! 우! 윳! 빛! 깔!”

    “덜! 렁! 덜! 렁! 덜! 렁! 덜! 렁!”

    “이 새끼들아! 남의 응원구호 뒤에 끼지 마! 이상해지잖아!”

    “너네들이야말로 남의 응원구호 앞을 망치지 마!”

    “뭐 어때! 둘이 같은 사람들인데! 따지지 말고 쥐어짜기나 해!”

    “아, 물론 힘 말이야!”

    포기하지 않는 윤솔의 의기를 따라 마침내 모든 플레이어들이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모든 힘을 한데 모아 태양을 향해 쏘아 보냈다.

    쿠-구구구구……

    태양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그 파편들이 유성우가 되어 쏟아져 내린다.

    그 거대한 혼돈의 중심에서 오무아무아가 계속해서 두 손을 휘젓고 있었다.

    마치 춤을 추는 듯.

    “크윽! 전혀 소용이 없어!?”

    “야, 원래 만화에서는 이러면 막 모두의 힘 같은 걸로 두루뭉술하게 이기지 않냐?”

    “……요즘 안 그런 작품도 많더라!”

    “태양이 너무 커!”

    “차라리 오무아무아를 직접 노리자!”

    “미친놈아! 저 자식 HP를 좀 봐! 저게 깎여나갈 체력으로 보여!?”

    “차라리 태양을 부수는 게 빨라!”

    “내가 방전되는 건 더 빠르고!”

    플레이어들의 힘은 서서히 바닥나 간다.

    공격이 잠시 느슨해지자 곧바로 태양이 다시 몰락을 시작했고 모든 것의 결말은 파멸로 귀결될 것임에 자명해 보였다.

    …….

    ……내가 다시 살아나지만 않았어도 말이지.

    “믿음이 부족하군, 친구들.”

    나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뭐,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엉뚱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내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아까 태양을 향해 점프하기 전의 위치가 아니라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필드.

    ……! ……! ……! ……!

    나를 본 드레이크와 윤솔, 그리고 다른 모든 플레이어들은 두 눈을 찢어질 듯 휘둥그렇게 뜬다.

    심지어 오무아무아에 탑승해 있는 윌슨마저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외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방금 데이터의 소멸을 느꼈다. 한데 어째서……?]

    윌슨 역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뉘앙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나의 부활을 예측하고 있는 존재가 하나 있었으니.

    [쿠쿡! 역시 나밖에 없지 주인?]

    그 이름 오즈 되시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