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65화 (865/1,000)
  • 865화 4차 대격변 (2)

    최후의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예전 용자의 무덤 107층 공략 당시에 떴었던 디버깅 메시지와 비슷한 알림, 이내 긴급 패치가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 4차 대격변이 시작되었습니다 >

    판을 치는 버그, 리부트 되는 서버.

    그것을 막아 낸 플레이어 연합군들에게 닥쳐온 진정한 ‘최후’의 서막이었다.

    “……아.”

    모든 이들이 내려놓았던 무기를 다시 곧추세운다.

    그리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쳤다.

    “아까 ‘해치웠나’ 라고 중얼거린 새끼 잡아와!”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검붉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메인스트림의 관리자가 직접 개입한다고?”

    <메인스트림의 관리자가 아카식 레코드에 직접 개입합니다>

    <경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제 1원칙이 위배되고 있습니다!)

    <위배된 1원칙은 ‘원 포 올(One For All), 올 포 원(All For One)’ 입니다!>

    이 세 알림음은 분명 윌리엄 링트 윌슨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문득, 머릿속에 오래 전 불사조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안타깝…… 나의 ……으로…… 딥러닝으로…… 예상한…… 데이터 예측치…… 미래값…… 한계…… 절반…… ……의 부정한 개입…… 이제부터 시작될…… 서버…… 곧 차차 알게 될…… ……의 부정한 개입이 불러…… 재앙……대격변……4차……]

    그때의 말은 이것을 가리킴이었을까.

    이윽고.

    검붉은 하늘에 생긴 먹구름들의 회오리 중앙에 무언가 희뿌연 빛이 어리는가 싶더니 사람의 얼굴 형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태아와도 같은 형상.

    나는 그 신생아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았다.

    “윌슨!”

    내 외침을 들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윌리엄 링크 윌슨.

    세상에 게임회사의 총수가 직접 최종 보스몬스터로 등장하는 게임이 어디에 있단 말이던가!

    ……뭐, 물론 따지고 보면 아예 없지는 않다.

    고전 명작 중 하나인 ‘니어:X토마타’라는 게임을 보면 비슷한 느낌의 콘텐츠가 있는데 ‘수몰 도시 콜로세움’이라는 투기장 맵에 들어가서 레지스탕스에게 몇 차례 확인을 거친다면 제작사인 스퀘어X닉스의 사장과 플X티넘게임즈의 사장이 나와 플레이어 캐릭터와 PVP대전을 벌인다.

    하지만 지금 이것과 그것은 천지 차이.

    아무리 그래도 게임회사의 총수가 메인 스토리의 최종보스로 등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것도 메인 스토리의 최종장을 억지로 늘려가면서까지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모든 플레이어들의 경악과 혼란, 의문 속.

    이윽고, 거대한 태아의 모습을 한 윌슨이 입을 열었다.

    [인과율을 어지럽히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 목소리는 마치 귀가 아니라 심장을 통해 들려오는 듯 가슴 속을 웅웅 울리고 있었다.

    나는 홀로 대답했다.

    “이 게임은 단순히 신, 관리자에 의해서만 굴러가는 게임이 아닙니다. 이런 식의 개입은 부당해요.”

    그러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내 말을 거들었다.

    “맞다! 우리는 오만의 악마성좌랑 태양룡군주를 잡았어! 끝을 봤다고!”

    “3차 대격변을 클리어했는데 보상도 없고, 게다가 바로 4차 대격변이 일어나는 게 말이 되냐!?”

    “스토리에 아무런 떡밥도 없었잖아! 갑자기 그냥 막 추가한다고 해서 다 콘텐츠가 되는 줄 알아!?”

    “솔직히 말해! 우리가 끝까지 클리어할 줄 몰랐지!? 그래서 보상도 안 만들어 놓은 거고!”

    “이딴 식으로 졸렬하게 개발하고 운영할 거면 때려쳐라!”

    수없이 많은 플레이어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하지만 이 모든 원성의 대상이 된 윌슨은 하늘에 잉태된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할 뿐.

    [……너희들은 자격이 없다.]

    자격? 무슨 자격을 뜻하는 것일까?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만 찌푸리고 있을 때.

    …번쩍!

    윌슨의 두 눈이 벌어졌다.

    태아가 감았던 눈을 떴다.

    [올(All)이 될 자격 말이다.]

    윌슨. 그는 원(One). 모두를 위한 하나(One for All).

    그러자 억눌렸던 원성이 완전히 폭발한다.

    “그러면 우리는 뭐냐!? 하나를 위한 모두(All for One)냐!?

    “우리는 널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아냐!”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

    “뭐가 원 포 올, 올 포 원이냐! 오그라든다!”

    “오만하게 굴지 마라 이 음침한 애새끼 놈아!”

    뎀의 제 1강령은 원 포 올(One For All)임과 동시에 올 포 원(All For One).

    그 말에 담겨 있는 뜻을 이제야 이해한 대중들은 윌슨을 향해 어마어마한 비난을 퍼부었다.

    직접 화살이나 마법을 쏘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초거대기업의 총수에게 직접 항의하는 게이머들.

    나는 이 수많은 풀뿌리들이 서로 단단하게 연대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나 역시 이 수많은 풀뿌리들 중의 하나임도.

    그렇다.

    이 게임은 단순히 절대적인 존재 하나에 의해 굴러가는 게임이 아니다.

    비록 게임의 이름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기계장치에 의한 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을 실질적으로 향유하는 이들은 신이 아니라 수많은 플레이어들이다.

    “처리 1반의 행방에 대해 설명해!”

    “반인륜적인 대규모 인체실험에 대한 것도 해명해라!”

    “누미노제라는 건 대체 뭐냐!”

    “총수 직에서 물러나고 주가 폭락이나 책임져라! 쓰레기! 독재자!”

    “윌슨을 구속해라! 구속해라!”

    점점 격해지는 시위, 하늘에 떠 있는 윌슨을 향해 포격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하나의 존재, 윌슨은 그런 모두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그의 무감정한 눈빛 속에서 미증유의 불길함을 느꼈다.

    ‘뭐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지?’

    현실에서의 빅뉴스, 주가 폭락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에 접속해 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플레이어들.

    노인, 젊은이, 어린아이, 여자, 남자, 미남, 미녀, 추남, 추녀, 뚱보, 홀쭉이, 흑인, 백인, 황인, 귀족, 노예, 부자, 거지, 영웅, 악당, 오크, 리자드맨, 사람…….

    멜팅 팟(Melting Pot).

    모든 차별과 구별이 없어진 플레이어들은 완전히 하나의 뜻으로 윌슨을 성토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마어마하게 불어나고 있는 동시 접속자들은 전부 다 이곳 어머니의 마을 유토러스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윌슨은 하늘에 떠 있는 태아의 형상으로 이 모든 것들을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토러스로 모여든 모든 이들은 곧 느낄 수 있었다.

    윌슨이 무언가 대책을 취할 것임을.

    그리고 그 대책이라는 것은 시위대에게 결코 호의적인 것이 아님을.

    츠츠츠츠츠츠……

    하늘이 더욱 더 불길한 적빛을 띈다.

    어두운 구름들이 모여 소용돌이를 그렸고 이내 그 중앙에 있던 거대한 태아가 태동을 시작한다.

    바로 그때.

    “어진. 저기!”

    눈썰미 좋은 드레이크가 재빨리 내 어깨를 쳤다.

    모두가 하늘을 쳐다볼 때 땅을 쳐다보고 있던 드레이크가 이변을 발견해 낸 것이다.

    나는 시선을 돌리자마자 기겁했다.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 그리고 태양룡군주 바이어스.

    분명 생명력이 다했을 그것들이 어느 새인가부터 땅 위에 굳게 서 있었다.

    하늘이 완전히 붉게 물들고 시커먼 먹구름들이 하강기류를 만들어내며 거대한 와류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내, 윌슨은 지상에 있는 악마성좌와 용군주의 몸을 향해 거대한 손을 뻗었다.

    “……세상에.”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입이 딱 벌어진다.

    간혹 용기 있는 자가 있어 화살이나 마법을 쏘아 보냈지만 닿기도 전에 바스라진다.

    눈앞에서 고정 S+급 몬스터 두 마리가 하나로 융합하고 있었다.

    키이이이잉-

    검붉은 하늘, 누런 유황구름을 가르며 날아가는 별똥별이 하나 보인다.

    불길한 적빛으로 타오르는 혜성.

    모두들 그것을 그냥 자연현상의 하나로 여기는 듯했지만…… 이 광경을 전에 본 적이 있는 나는 저 별똥별의 진짜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벨페골의 악몽에서 봤던 그대로잖아!?’

    그것은 바로 HP바. 몬스터의 체력을 알리는 길고 거대한 게이지.

    동대륙 끝에서 서대륙 끝까지, 마치 태양이 뜨는 곳에서 시작해 태양이 저무는 곳까지 닿아 이어져 있는 듯한 그 길고 긴 궤적.

    이 모든 것이 한 몬스터의 힘과 생명력을 뜻하는 상태창이다.

    그리고 이제 그 말도 안 되게 긴 궤적의 아래로 몬스터가 등장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거대한 의문의 괴물체. 멸망 직전의 세상에 홀로 우뚝 솟은 존재.

    검붉은 빛에 휘감겨 있는 타원형의 길쭉한 그 모습은 마치 현세의 것이 아닌 듯하다.

    둥그런 몸통 중앙부, 시뻘건 눈빛을 뿜어내는 커다란 외눈이 기괴하고 또 기이하게 보였다.

    <멸망의 어머니 ‘오무아무아’> -등급: ? / 특성: ?

    -서식지: ?

    -크기: ?

    -?

    혼돈의 한복판.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절대타자(絶對他者).

    마침내 ‘누미노제(Numinose)’ 그 자체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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