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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63화 (863/1,000)
  • 863화 3차 대격변 (6)

    하늘이 온통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

    어마어마한 폭풍에는 벌레의 날갯짓 소리가 실려 우레처럼 울리고 있었다.

    이윽고.

    …번쩍!

    하늘을 잠식해 가는 먹구름들 사이로 빛살처럼 날아온 붉은 벼락 한 줄기가 태양룡 바이어스의 가슴팍을 때렸다.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는 태양룡.

    그 뒤에서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가 불의 채찍을 들어 먹구름을 향해 후려갈긴다.

    그러나.

    터-엉!

    루시퍼의 공격은 먹구름 사이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검은 벽에 의해 가로막혔다.

    이윽고, 먹구름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옴에 따라 붉은 벼락과 검은 벽의 정체가 밝혀진다.

    <군단벌 ‘크라브로(crabro)’> -등급: S / 특성: 맹독, 벌레, 군락, 혈족전생, 일침, 천원돌파, 연쇄살인, 연속살인, 대분화, 로얄코트

    -서식지: 대군락지대 지하대분묘 나락골, 고기 삶는 밀림

    -크기: 10m

    -잊혀진지 오래 된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고대의 충왕종(蟲王種).

    여섯 자루의 장창으로 뚫지 못할 것이 없었으며 단일 개체로서의 무력은 위험등급 S급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장군개미 ‘포르미카(formica)’> -등급: S / 특성: 맹독, 벌레, 군락, 혈족전생, 앙버팀, 옹고집, 백전노장, 만근추, 대지진, 로얄코트

    -서식지: 대군락지대 지하대분묘 나락골, 육중한 밀림

    -크기: 10m

    -잊혀진 지 오래된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고대의 충왕종(蟲王種).

    여섯 개의 방패로 막지 못할 것이 없었으며 단일 개체로서의 무력은 위험등급 S급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군단벌 크라브로와 장군개미 포르미카.

    2차 대격변 때의 주연급 조연배우로 수없이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악몽을 안겨 주었던 초엘리트 몬스터.

    크라브로는 여섯 개나 되는 붉은 창에서 시뻘건 벼락을 쏘아내며 태양룡을 견제했다.

    포르미카는 여섯 개나 되는 검은 방패를 들어 전방위에서 몰아치는 루시퍼의 채찍을 모조리 가드해 낸다.

    “……세상에.”

    “내가 이 광경을 한 번 더 보게 될 줄이야.”

    튜더와 비앙카는 하늘을 온통 검게 물들이고 있는 먹구름층을 바라보며 입을 딱 벌렸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지금 같은 풍경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에 분명했다.

    크라브로와 포르미카가 창과 방패로 지켜낸 먹구름들은 무사히 이곳 하늘까지 번져 왔다.

    윙윙윙윙윙윙윙윙-

    하늘이 바다로 변했다.

    마치 검은 창해(滄海)를 보는 것처럼 넘실거리는 해일.

    그것들은 수없이 많은 D급 몬스터 ‘살육 벌’과 ‘살육 개미’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벌은 개미를 안고 하늘을 난다.

    2차 대격변 당시 불과 반나절 만에 전 대륙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태고의 지배종들이 또다시 플레이어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전 대륙에 멸망을 드리우기 위해 준동하던 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멸망에 저항하는 아군의 입장으로서 말이다!

    [오-오오오오!]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와 태양룡군주 바이어스는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어마어마한 충격파, 무시무시한 피어.

    이 두 고정 S+급 몬스터가 뿜어내는 피어에 벌과 개미의 대홍수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벌과 개미 군단의 너머로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 두 개의 거대한 그림자는 루시퍼와 바이어스가 뿜어내는 위압감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짙어지기만 하고 있었다.

    [저게 악마와 용이라는 것인가? 생각보다 별 것 아니로군.]

    [……까마득한 말학(末學)이로다.]

    홍해의 기적.

    벌레의 바다가 양방향으로 갈라졌고 그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의 두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육 벌 여왕 ‘소돔(סדום)’>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3m

    -머나먼 대과거, 빛도 어둠도, 용도 거인도, 천사도 악마도 없던 시절. 태초의 지배종을 통솔하던 위대한 전쟁대군주가 있었다.

    여섯 자루의 창을 뻗어 붉은 바다(紅海)를 갈랐던 기적은 이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신화책 속 깊은 곳에 묻혀 버렸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고통이 실로 중하니 이제 내가 올라가서 그 모든 취급과 행함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

    -소돔- <元世記 10:19>

    <살육 개미 여왕 ‘고모라(ועמורה)’>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3m

    -머나먼 대과거, 빛도 어둠도, 용도 거인도, 천사도 악마도 없던 시절. 태초의 지배종을 통솔하던 위대한 전쟁대군주가 있었다.

    여섯 자루의 방패를 뻗어 검은 산(黑山)을 세웠던 기적은 이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신화책 속 깊은 곳에 묻혀 버렸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고통이 실로 중하니 이제 내가 올라가서 그 모든 취급과 행함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

    -고모라 <元世記 13:10>

    2차 대격변의 전쟁군주, 이 세상 모든 벌레들의 어머니.

    아름답고 가녀린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 외면에 속는 플레이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안다.

    그녀들이 이 세상을 멸망으로 몰고 갈 정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글거리는 벌레 떼의 중심, 소돔과 고모라는 모든 작은 것들의 존경과 사랑, 두려움을 한 몸에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2차 대격변 때와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두 여왕의 태도.

    그녀들은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달리 사이좋게 한 곳에 모여 있었고 시선 역시도 한 곳을 향하고 있다.

    존경과 애정이 듬뿍 묻어나고 있는 태도.

    천하의 그 누가 여기에 있는 두 벌레 여왕을 복종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호애앵!]

    쥬딜로페.

    이 꿈 많은 여왕이 소돔과 고모라가 서로 포개어 잡은 손바닥 위에서 나를 향해 와인 잔을 들어 올리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2차 대격변 이후 쥬딜로페는 여러모로 각성한 모습을 보였다.

    대포에 들어가서 쏘아졌던 경험치가 쌓여서인지 레벨이 단숨에 높아졌고 그 여파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벌과 개미들도 모자라 소돔과 고모라까지 테이밍 해 버렸다.

    애초에 벌레들을 잠식해 부하로 만드는 것이 와두두의 포자인지라 전혀 예측 밖의 결과값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졌던 것이 사실.

    “……그러니까. 한때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이 대군이 이제는 우리 편이라 이거야!”

    이것이 내가 3차 대격변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피날레였다.

    윙윙윙윙윙윙윙윙윙-

    소돔과 고모라가 조종하는 벌과 개미들이 이쪽을 향해 날아온다.

    [호애앵 뿌!]

    이윽고, 쥬딜로페는 한 손에 빨간 이쑤시개, 다른 한 손에는 검은 따조 하나를 든 채 용맹하게 진격한다.

    포르르-

    오즈가 그런 쥬딜로페를 등에 태우고 돌진했다.

    그리고 그 뒤로 소돔과 고모라, 크라브로와 포르미르, 그리고 어마어마한 숫자의 벌레 군단이 행군한다.

    더군다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벌레들의 진격을 바라보던 플레이어들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근데 어째…… 벌레들이 예전보다 빠르지 않아?”

    “원래 이동속도가 되게 느린 녀석들인데.”

    “훨씬 더 민첩해진 것 같은데?”

    “어! 가까이서 보니까 다들 뭔가를 장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본디 칼날 벌과 칼날 개미들은 꽤나 강력한 마비독을 품고 있어서 원래의 위험등급보다 높은 판정을 받아야 하는 몬스터.

    하지만 이 녀석들이 결국 위험등급 D로 판정된 이유는 바로 엄청나게 굼뜨고 느린 이동/공격속도 때문이었다.

    워낙에 느려서 접근하는 것도, 공격하는 것도 느리니 독에 당할 일이 없다.

    우르르 몰려들어도 훌쩍 자리를 떠 버리면 그만이다.

    2차 대격변 당시에 벌과 개미들이 끝끝내 북대륙의 방주를 함락시키지 못했던 것도 그것들의 느린 진군속도가 주된 요인이 되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벌과 개미들의 이동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체감하건데 한 50% 정도는 빠른 속도로 이동해 오고 있는 벌레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나는 그저 씩 웃을 뿐이다.

    “아이템 효과들은 잘 보고 계신가?”

    나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이 타이밍에 소돔과 고모라가 3차 대격변의 까메오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느린 진격속도 탓에 유저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쓸려나가게 되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소돔과 고모라의 트레일러 영상이 원래 예정된 것보다 훨씬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유저가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것을 빠르게 앞당기는 것 정도는 가능하니까.

    이제 단순히 까메오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게 될 친구들까지 최대의 변수가 되었다.

    같이 쥬딜로페를 모시는 처지가 된 소돔과 고모라는 그런 나의 인사에 고개를 살짝 끄덕여 목례를 해 보인다.

    '저 모션은 나도 새롭네. 하긴. 그때까지만 해도 쥬딜로페가 다시 살아나게 될 줄은 몰랐었으니까.'

    지금 벌과 개미들의 몸에는 목걸이나 투구, 신발, 망토, 반지, 귀걸이, 허리띠, 갑옷 등의 아이템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민첩 아이템.

    내가 게임을 시작한 이래 그동안 계속해서 모으고 또 모아왔던 잡템들.

    민첩 스탯이 부족한 벌과 개미들을 위한 대규모 선물 방출이다!

    그동안 수없이 모으고 모아 준비한 물량에 윤솔이 고물상에서 대규모로 떼어온 물량까지 합세하자 벌과 개미들은 대부분 골고루 아이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빨라진 벌과 개미들은 전력이 크게 상승했고 이내 3차 대격변의 주역으로 당당히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재웅 왔다감^^

    -ㅂㅅ몹

    -저는쓰레기입니다

    -이선근♡홍형표

    -나를 때려주세요

    -ㅋㅋㅋ

    -SEX

    -(똥 그림)

    -애인급구 010-99XX...

    .

    .

    몸에 낙서가 된 개미 한 마리가 민첩 스탯을 상승시켜 주는 ‘바람결 목걸이’를 목에 걸고 눈앞을 붕- 날아간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한 가지 아이템을 더 꺼내들었다.

    -<거미여왕의 부름호각> / 양손무기 / S

    이 세상 모든 거미들의 최종결정권자.

    그녀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거미는 없는 모양이다.

    -공격력 +500

    -특성 ‘군락’ 사용 가능

    -특성 ‘소집’ 사용 가능

    -특성 ‘소집해제’ 사용 가능

    그것은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커다란 호루라기였다.

    말라죽은 거미의 외골격을 깎아 만든 듯한 외형의 이 기묘한 호각은 분명 S급 아이템.

    먼 옛날 부유섬의 보스몬스터 ‘여덟다리 대왕 큘레키움’을 쓰러트리고 얻은 히든 피스이며 레비아탄이 지배하던 하해(下海)까지 내려가고서야 겨우 되찾을 수 있었던 신물.

    그리고 나는 예전에 브라키오가 지배하던 그린헬 공략 당시 이 아이템을 써서 쏠쏠한 효과를 거두었던 바 있다.

    나는 이것을 한 번 더 사용했다.

    “숲의 모든 거미들에게 고한다. 현 시간부로 모두 이곳으로 집합.”

    식사 전 스피커로 인원점검을 하는 당직사령 같은 멘트.

    그리고 내 명령은 곧 수없이 많은 거미들의 소집으로 인해 현실에 구현된다.

    촤촤촤촤촤촥!

    하얗고 끈적끈적한 거미줄들이 몬스터 연합의 머리 위로 뿌려진다.

    적군의 이동속도가 크게 줄었고 반대로 이동속도가 크게 상승한 벌과 개미들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더군다나 벌과 개미, 거미들은 태어난 이래 아무것도 죽인 적이 없는 개체들이었기 때문에 루시퍼와 바이어스의 ‘오만과 편견’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푸스스스스- 이거 골 때리는구만.”

    조디악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쓱쓱 하더니 이내 기이한 빛이 어려 있는 눈동자로 나를 돌아본다.

    나는 놈의 시선을 외면해 버렸지만 그 뒤로도 조디악의 시선은 한참 동안 더 나에게 머물러 있었다.

    이윽고.

    조디악이 이끄는 언데드 군단 역시 몬스터 웨이브를 썰어 나간다.

    내가 키워낸 고인물 망자 연합도, 마교와 덜렁교 연합도, 그리고 월드클래스급의 랭커들도, 그리고 모든 플레이어 연합군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결국.

    [오-오오오오오!]

    천하의 루시퍼도, 바이어스도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온 시야를 가득 채우는 마법과 화살, 칼과 창, 방패들.

    쏟아지는 딜은 딜 미터기를 뚫어 버렸고 결국 천문학적으로 높던 두 고정 S+급 몬스터의 HP 바마저 바닥을 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

    모두가 발을 구르며 환호한다.

    이 터져 나오는 격정! 역사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에 대한 전율!

    모두가 루시퍼와 바이어스의 몰락을 지켜보며 경외감 어린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허물어져 가던 태양룡의 거체가 갑자기 다시 우뚝 선다.

    이윽고.

    번쩍!

    놈의 전신에서 태양과도 같은 기운이 폭사되었다.

    용들이 죽기 직전 발악하는 기술로 흔히 선보여지는 드래곤 다이브!

    그것의 전조가 태양룡군주 바이어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거의 자폭에 가까운 이 기술을 막아 낼 수 있는 용자는 여기에 없다.

    “모두 도망……!?”

    내가 막 플레이어들을 향해 대피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쿵!

    태양룡 바이어스의 앞, 그리고 내 앞을 동시에 가로막는 거대한 등이 있었다.

    용암처럼 시뻘건 적빛, 거대한 전신에서 타오르는 열기.

    [물러나라 잡것들아.]

    고정 S+급 몬스터.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변수.

    ‘용암룡 모르그마르’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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