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2화 3차 대격변 (5)
“이런 똥망겜 따위 망해 버려라!”
조디악은 어마어마한 수의 화석 병사들을 이끌고 진군했다.
고대화석 해골병들은 그새 더욱 더 하얗고 단단하게 변했다.
<고대화석 해골병> -등급: A / 특성: 어둠, 암석, 언데드, 하수인, 백전노장
-서식지: 죽음길 나락, 만마전 외성, 썩고 불타는 땅
-크기: 2m
-땅 속에서 오래 묵어 화석으로 변한 해골 병사.
지력에 의해 숙성되어 더욱 더 단단해졌지만 석유로 변해 흐물흐물해진 일부 신체부위에서는 지옥의 불길이 타오른다.
땅 속에 오래 파묻혀 있으면 있을수록 지력에 의해 숙성되어 스탯이 상승하는 것이 바로 이 화석 해골병들.
나는 화석병들을 보는 순간 그것들이 어디에 파묻혀 있었던 것인지를 바로 눈치 챘다.
-<잿빛용 로도피스의 화산쇄설류 샌드박스> / 재료 / S+
샤를페로 대분화구가 사화산이 되기 전, 한창 격렬하게 폭발하던 활화산 시절의 폭렬(爆裂)이 담겨있는 상자.
-특정 공간, 일정 시간 동안 잿빛용 로도피스의 권능을 일부 재현해 냅니다
※본 아이템은 1회용입니다
조디악은 과거 윌리엄 레그런드의 풍뎅이 바위에서 해골병으로 만들었던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시체를 잿빛용의 잔불과 잿더미 속에 파묻어 놓았고 끝끝내 지금의 형태까지 진화시켜 낸 것이다.
심지어.
“푸스스스스! 친구들! 안심하고 싸워! 죽으면 내가 다시 해골병으로 만들어 일으켜 주마!”
실제로, 조디악이 전장에 등장하자마자 죽었던 플레이어들과 몬스터들이 좀비나 해골병이 되어 다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으악! 야! 너 아까 죽지 않았었냐!? 근데 뭐야 그 꼴은?”
“모…… 올…… 라…… 다시…… 살아 났…… 어…….”
“마, 말하는 게 좀 느려지긴 했어도 신전 안 가고 되살아난 게 어디냐.”
“스탯…… 이…… 10%…… 로 떨어졌…… 지만…… 다시…… 싸울 수…… 있다구…….”
비교적 멀쩡한 시체를 남기고 죽었던 플레이어들은 다시 한번 이 역사적인 전장에 참가하여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스탯은 90% 정도가 감소했지만 다시 싸울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최후의 퀘스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유의미한 일이었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과거 조디악이 랭커 사냥을 벌였을 당시가 떠오른다.
죽은 아군이 적으로 되살아나던 그날의 기억.
적으로 만났을 때는 저 능력이 끔찍이도 무서웠지만 같은 편이 된 지금은……
‘그래도 무서워!’
싫은 것은 여전히 싫은 것이다.
진짜 꺼림칙한 능력이라 얽히고 싶지 않았다.
뭐 아무튼.
조디악이 이끄는 해골병들이 플레이어 연합군의 방어선을 넘어서 앞으로 진격한다.
♩♪♬♭
방철우, 방철해 형제가 번갈아 부는 피리소리는 몬스터들의 진격 방향을 틀어 언데드 군단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몬스터들을 유인하는 피리.
예전에도 유저들을 상대로 써먹었던 테러용 아이템이다.
뼈의 벽, 골망(骨網).
몬스터 웨이브가 망자들의 육벽에 가로막혔다.
“지금이다! 쳐라!”
튜더의 진두지휘에 로얄블러드를 비롯한 대형 길드들이 움직인다.
숭숭 뚫려 있는 해골병들의 공백 사이로 플레이어들은 원딜과 디버프를 꽂아 넣었다.
콰콰콰콰콰쾅!
요란한 폭음이 몬스터 군단을 밀어낸다.
수많은 랭커들을 필두로 플레이어 연합군은 점차 전진하고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심지어.
“소모품 필요하면 써라!”
김정은과 방철우, 방철해. 그들은 복사 돈으로 샀던 수많은 포션과 주문서들을 펑펑 불출하기 시작했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보급.
대형 길드들이 소모품들을 보급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김정은이 이미 전투에 필요한 몇몇 소모품들을 엄청나게 매점매석해뒀던 바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걸 위해 사재기해뒀다 이말이야!”
대격변 전까지 유저들의 불필요한 소모품 낭비를 (강제로) 막아 왔던 그녀는 지금 그동안 쌓아 왔던 모든 물자들을 죄다 뿌려 버렸다.
곳곳에 소모품 박스들이 보급되어 떨어지자 유저들은 그것을 주워 먹어 가며 싸운다.
거기에.
[오-오오오오!]
잿빛용 로도피스가 뼈만 남은 거체를 일으켰다.
조디악에 의해 언데드로 변해버린 존재. 이 언데드 드래곤은 잿더미 속에서 오랫동안 숙성되어 생전의 힘을 상당히 되찾은 상태였다.
콰콰콰쾅!
되살아난 잿빛용과 죽은 잿빛용이 맞붙는다.
그 위로.
쩌억-!
편잭 노인이 칼을 들어 주위에 날아다니는 화산재 와이번들의 목을 베어내고 있었다.
“백섭에 대비해서 데이터 금고에 강생이를 넣어두길 잘했구먼.”
서버 롤백에서도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게끔 설정된 소형 금고에 편잭 노인은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보관했던 바 있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스스스스- 친구. 본의 아니게 스토킹 좀 했어. 이해해 달라고.”
조디악은 나를 쳐다보며 윙크를 날린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자.
…번쩍!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조디악이 검은 마도서를 들어 주문을 외우자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쿵! …쿵! …쿵! …쿵!
전장을 휘젓고 다니는 해골병들과 같이 뼈만 남아 있는 무언가들이 땅가죽을 찢고 올라온다.
거대한 덩치, 뼈 위로 바싹 말라붙은 가죽들.
그것들은 바로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 창해룡 버뮤다, 심록용 브라키오였다!
내가 잡은 고정 S+급 몬스터들이 이 전장에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데스나이트 킹 아서, 아몬 백작, 쟈쿰, 벨제붑(S) 등의 엘리트 몬스터들 역시도 뼈와 가죽만 남은 채 퀭한 눈으로 서 있었다.
조디악은 나를 바라보며 창백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동안 쭉 너를 따라다녔지. 그리고 시체가 남아 있다 싶으면 주워서 재활용했어. 어때? 괜찮지?”
소름끼치기는 하지만 지금의 전장에는 큰 도움이 될 테니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요태까지 날 미행한고야?”
“물논. 논 자유의 모옴미 아냐. 유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계속.”
조디악은 말을 마친 뒤 바로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선다.
와아아아-
군중들 일부가 조디악을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디악의 개입에는 플레이어 연합군을 지원하려는 의도보다는 플레이어 연합군을 이용해 윌슨의 계획을 어그러트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지만 뭐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윈윈 전략을 취할 수밖에.
“……그래. 잡은 몬스터들의 시체를 남겨두고 오길 잘했네. 좋게 생각해야지.”
나는 저 멀리 전장 중앙에서 싸우고 있는 언데드 군단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드드득!
뼈만 남은 레비아탄이 거대한 몸으로 태양룡 바이어스를 휘감아 조인다.
콰콰콰콰쾅!
여러 마리의 벨제붑들이 루시퍼를 향해 사납게 덤벼들고 있었다.
언데드 상태가 된 창해룡과 심록용은 물과 식물이라는 점에서 좋은 케미를 이룬다.
창해룡은 썩은 물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심록용은 썩은 식물들을 조종해 실체를 얻은 환영들과 맞붙어 싸운다.
죽은 잿빛용과 살아도 산 게 아닌 잿빛용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사납게 날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의 언데드들은 플레이어 연합군을 도와 몬스터 웨이브를 쓸어버리고 있다.
생전에 비해 한두 랭크 떨어지는 것이 언데드의 특징이지만 생전에 워낙에 강했던 몬스터들이다보니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다.
언데드들은 그동안 딱히 뭔가를 죽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루시퍼와 바이어스의 오만과 편견 특성에도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자! 우리도 계속 가자고!”
고인물 군단 역시도 힘을 내서 몬스터 웨이브를 뚫고 간다.
덜렁교와 마교 연합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은과 방씨 형제, 편잭 노인 역시도 착실하게 몬스터들의 수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튜더, 비앙카, 페이사, 트로츠키를 필두로 한 랭커 연합도 다시 힘을 내어 분전한다.
또다시 전장은 동수(同數)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타이밍이 내가 두 번째 패를 꺼내 들 순간이었다.
나는 조디악을 향해 말했다.
“얀마, 인해전술은 너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
내 일침을 들은 조디악이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그런 조디악을 향해 씩 웃어주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쥬딜로페!”
반응은 금방 왔다.
어머니의 마을 유토러스.
그곳의 외곽 ‘창고지대’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관측된다.
하늘 높이, 높이 솟아오르는 검은 기둥 하나가 있었다.
멀리서 보고 있노라면 굵고 거대한 첨탑(尖塔)과도 같은 형상.
그것은 기묘하게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보이며 엄청난 규모로 쭉쭉 자라난다.
그리고 이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오른 검은 기둥은 하늘에 닿은 그 지점부터 시작해 주변의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 이쪽을 향해 번지듯 다가오고 있었다.
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
엄청나게 ‘민첩’한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