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61화 (861/1,000)

861화 3차 대격변 (4)

“결국 이렇게 되는군.”

나는 눈앞에 있는 두 마리의 고정 S+급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루시퍼>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3m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오만과 편견을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어찌하여 하늘에서 떨어트렸느냐? 빛나는 별, 여명의 아들인 나를!”

-루시퍼- <구약, 이사야서(ספר ישעיהו書) 23:66>

<바이어스>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108m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태양과 달을 지배하는 위대한 황금 용.

“비록 태양이 사라져도 한 줄기 빛이 있으리라.”

-바이어스- <구약, 명왕기(明王記) 하권,

명왕 108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마와 용 중에 가장 강한 존재들.

심지어 그 둘이 힘을 합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의 용마동맹은 일전에 레비아탄과 무투룡의 것보다도 훨씬 더 최악이었다.

힘을 숨겨가면서 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나는 나의 모든 힘을 전부 끄집어내기로 했다.

드디어 밝혀진 나의 정체에 플레이어 연합군 측은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하다.

“……뭐야 저게?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마동왕 가면 속 얼굴이…… 고인물이라고?”

“고인물이랑 마동왕이 동일인물이었어?”

“서, 설마. 마동왕이 고인물에게 아이템들을 빌려준 것 아냐?”

갖가지 의혹과 추측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게 한가하게 돌아가고 있지는 않았다.

나의 정체에 대해 쑥덕거리고 수군거릴 틈도 없이.

콰-콰콰콰콰콰쾅!

루시퍼와 바이어스의 공격이 떨어져 내린다.

불의 뱀과 황금빛 포격이 난무하는 전장.

심지어 폭발의 사이사이로 지금껏 내가 상대해 왔던 몬스터들이 구현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나는 눈앞으로 드러나는 환영, 아니 실체를 얻어 이제는 진짜나 다름없게 된 몬스터들의 라인업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 ‘분노’의 악마성좌 사탄.

거대한 몸을 가진 대악마들이 초점 없는 눈을 들어 내 앞을 막아선다.

‘창해룡’ 버뮤다,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심록용’ 브라키오, ‘잿빛룡’ 로도피스.

역시나 거대한 용군주들이 무감정한 눈동자로 나를 비춘다.

자그마치 일곱이나 되는 고정 S+급 몬스터가 추가로 생성되었다.

[흐응- 내가 저 엔트리 안에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인간.]

어깨 위에서 오즈가 생색을 내고 있지만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루시퍼와 바이어스의 정신지배를 받는 환영들이 일제히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레비아탄의 극저온 수류 폭발, 벨제붑의 극독 웅덩이, 사탄의 불와류가 한꺼번에 휘몰아쳤다.

창해룡의 세 개의 뿔이 쇄도했고 무투룡의 푹격권, 심록용의 비늘 수류탄과 잿빛룡의 화산쇄설류가 전방을 온통 초토화시켰다.

콰콰콰콰콰쾅!

플레이어 측의 방어선이 속절없이 뒤로 밀려난다.

“으악! 고인물 저 자식! 평소에 뭘 잡고 다녔길래 저런 것들이 리젠돼!?”

“파티에 한 명 추가된 건데 레이드 난이도 상승 무엇!?”

“아오 씨! 이럴거면 왜 왔어!”

“차라리 그냥 돌아가 이 민폐 자식아!”

방금 전까지 모두의 구세주였던 나는 졸지에 완벽한 트롤러가 되었다.

그때.

“어진. 우리가 있는 게 오히려 민폐 같다.”

“괜히 파티사냥 난이도만 확 높아진 게 아닌가 모르겠네.”

드레이크와 윤솔이 폭풍의 한가운데에서 나를 낚아채 뒤로 빠진다.

나는 뒤에 있는 플레이어 연합군 측을 향해 외쳤다.

“자,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어! 우리 모두 우정의 힘을 믿자!”

군중들 사이에서 ‘지랄마!’라는 외침이 언뜻 들려온 것도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아무튼, 다른 유저들에게도 희망을 줬으니 이제 다시 진지하게 전쟁에 임할 차례.

드레이크가 연신 화살을 날려 보내고 윤솔이 하프로 신성불가침 결계를 쳐 몬스터들의 진군을 막는다.

하지만 전력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플레이어 연합군의 방어선을 무너트리며 시시각각 진격해 오고 있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튜더가 내 옆으로 다가와 외쳤다.

“마동…… 고인물 씨!”

“그냥 썩은물이라고 불러.”

“네! Rotten water! 이대로 가면 승산이 없습니다! 전황이 너무 불리합니다!”

뒤에 ‘당신 때문에 더더욱!’이라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끝에 그냥 삼켜 버리는 튜더였다.

한편, 나는 아까부터 계속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와 태양룡 바이어스의 특성 상 내가 전장에 개입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것쯤은 진즉에 간파하고 있었다.

다 역전을 위한 묘수들이 있기에 이렇게 자신 있게 나왔다는 말씀.

“그럼 이제 첫 번째 패를 깔 차례로군.”

나는 루시퍼와 바이어스가 협곡 사이의 성벽을 무너트리고 좁은 입구를 향해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몬스터 웨이브가 좁은 협곡을 통과하며 병목현상을 일으킨다.

앞으로 쉽게 진격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몹들.

그리고 루시퍼와 바이어스의 이동속도가 약간 줄어들었을 그때쯤.

삐익-

나는 준비해둔 소라고둥 나팔을 불었다.

“우리 편들 출동!”

내가 힘차게 외치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나와 늘 같이 파티사냥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윤솔과 드레이크, 그리고 같은 구단 식구인 유세희와 마태강은 이미 이 자리에 있다.

그렇다면 내가 부르는 ‘우리 편’이란 누구를 지칭하는가?

……그에 대한 대중들의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이윽고, 절벽 위에서 일련의 움직임이 일어 나의 신호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덜렁덜렁덜렁덜렁-

나의 손짓을 따라 일사분란하게 달려오는 플레이어들.

수없이 많은 이들이 허공을 밟고 날아와 나의 머리 위를 휙휙 스쳐 지나간다.

알몸! 알몸의 고인물 망자들!

그들은 하나같이 몸에 최소한의 방어구만 걸친 채 허리띠 아래 흉악한 무기들을 덜렁거린다.

투구도, 갑옷도, 방패도 거의 있는 듯 없는 듯 입었지만 손에 꼬나쥔 무기 하나만큼은 하나같이 공격력이 무시무시한 것들.

퍼퍼퍼퍼퍼퍼펑!

그들은 전장에 난입해 드는 즉시 무시무시한 페이스로 몬스터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튜더와 비앙카, 페이사, 트로츠키 등 월드클래스의 랭커들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저들은 누구지?”

“……세계랭킹 상위권에서 못 보던 사람들인데?”

“엄청난 실력들이잖아. 저런 사람들이 왜 랭킹 순위권에 없었던 것이지?”

“말도 안 돼! 어디서 저런 놈들이 튀어나온 거야!?”

공식 세계랭킹 1, 2, 3, 4위의 천상계 랭커들도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플레이를 보여 주는 재야의 고수들.

그들은 모두 일사분란하게 나의 오더에 따라 움직인다.

“다들 알지? 솔루션대로 가자고!”

내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이 외쳤다.

“라져!”

동시에.

“‘zx지존권법사xz’식 NW방향 몸 비틀기!”

“‘T없이맑은I’식 바닥 기기!”

“‘핥짝핥짝귀여워’식 팔꿈치에 혀닿기 3연격!”

“‘옵하저뉴비에여’식 허벅지로 나무타기!”

“‘김태경123’식 뒷꿈치 페이크 스탭!”

“‘현직프로여고생’식 해병특공무술13단!”

“‘채식주의자’식 업진살 살살녹이기!”

“‘꼬마붕붕자동차이니셜D’식 도랑타기!”

“‘아기상어123’식 뚜루룻뚜루 지느러미킥!”

“‘머머리외삼촌’식 머리 위의 고속도로! 하늘구경!”

“‘비긴어게인’식 무한 콤보!”

“‘코리안타이슨’식 귀깨물기!”

“‘애라겅듀™’식 혀로 눈 찌르기!”

“‘고기먹고싶다^ㅠ^’식 무회전 급소 차기!”

“‘삼도수군통제사’식 누드비치 학익진!”

“‘레고밟았어’식 찰싹찰싹 연참만은!”

.

.

한때 내가 그린헬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선보였던 현란한 신위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그들’로부터 배운 컨트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가르쳐 준 컨트롤이었다.

그렇다.

지금 나와 비슷한 복장으로 날뛰고 있는 이 수많은 이들은 내가 고/마 리그를 통해 불러 모은 회귀 전의 동료들.

한때 나와 랜선으로 깊은 우정을 나눴던 과거의 형님, 누님, 친구, 동생.

나의 옛 동료들인 것이다!

“……이것이 시공을 초월한 파티 플레이다.”

회귀 전의 구(舊) 멤버들, 하나같이 나와 정신적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던 고인물 망자들.

나는 고/마 리그를 통해 이들을 모두 모았고 드디어 결성된 이 올스타를 그동안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이들 하나하나의 성격과 신체적 특징, 개인사, 몸에 맞는 장비와 컨트롤 방법 등은 이미 모조리 꿰고 있는 상태.

더군다나 3차 대격변은 내가 알던 시점보다 족히 8년은 이른 것이었기에 미래의 공략법이나 성장법을 아끼지 않고 가르쳐 줄 수 있었다.

자그마치 8년을 앞서간 훈련법 덕분에 나의 옛 동료들은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그 효과를 지금 이 순간 남김없이 폭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가자! 친구들! 우리의 우정과 결속과 사랑과 희망과 용기와 음심과 뭐 나머지 이런저런 것들까지 전부 보여 줘 버리자!”

“오우! 라져!”

내가 100명이 넘는 망자 군단을 이끌고 돌격하자 또다시 전황이 기울어진다.

눈앞의 몬스터들을 펑펑 날려버리며 전선을 뚫은 우리는 곧장 고정 S+급 몬스터들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어진이가 다른 동료들을 많이 만드는 건 좋은데…… 어째 조금 질투나는데요?”

“동갑이다 솔.”

“동감이겠죠!”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그런 내 옆으로 바짝 따라붙는다.

각종 버프와 디버프, 그리고 든든한 원딜 엄호마저 갖추어지자 나와 고인물 군단의 돌파에도 더욱더 가속도가 붙었다.

“우리도 갑니다! 덜렁!”

“마동왕 님을 지켜라! 우! 윳! 빛! 깔! 마동왕!”

그동안 오랜 반목을 거듭해 왔던 덜렁교와 마교 역시도 손을 잡았다.

붉은 장포를 걸친 여인네들과 살색 타이즈를 입은 중년 남정네 군단이 사이좋게 서로 뒤섞여 몬스터 웨이브에 맞선다.

……하지만.

[오-오오오오오오!]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와 태양룡 바이어스는 너무나도 강했다.

일곱 마리의 고정 S+급 몬스터들이 괴뢰처럼 움직여 루시퍼와 바이어스를 보호하는 육벽이 된다.

나도, 그리고 고인물 군단도 그 벽을 뚫는 것은 끝끝내 무리였다.

“썩은물 씨! 이젠 어떻게 하면 좋죠!?”

자그마치 아홉 개의 마법을 동시 캐스팅하던 아키사다 아야카가 내게 물어왔다.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잠시 고민했다.

“……숨겨둔 패가 있기는 있는데.”

지금 깔까? 아니면 조금 더 묵혔다가?

나는 다시끔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전장을 한번 쭉 톺아보았다.

천천히 기울어지고 있는 전쟁터, 좁은 병목을 통과해 온 몬스터 군단은 또다시 플레이어 연합군의 방어선을 두드린다.

내가 두 번째 패를 까야 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푸스스스스스- 여~ 고생들 하는군!”

갑자기 여고생을 찾으며 등장하는 또라이가 여기 하나.

조디악! 놈이 협곡 위에서 창백한 얼굴을 드러낸다.

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

실로 어마어마한 수의 고대화석 해골병 군단을 뒤에 이끌고.

와아아아아아아-

조디악의 얼굴을 본 일부 플레이어들은 환호로, 일부는 경멸로, 일부는 침묵으로 반응한다.

불세출의 혁명가, 레지스탕스.

혹은 음모론을 퍼트려 폭동을 일으킨 망상분자, 반사회적 사이코.

조디악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선들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광대 같이 과장된 걸음걸이로 걸어와 절벽 끝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바위 위에 위태롭게 섰다.

“나를 봐, 친구들.”

수없이 많은 해골들 위로, 조디악은 짙은 다크서클을 드리운다.

“경멸의 눈으로 보면 광대. 애정의 눈으로 보면 신. 똑바로 본다면…….”

이윽고, 그는 이 혼돈의 도가니를 향해 펄쩍 뛰어내렸다.

“너 자신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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