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58화 (858/1,000)
  • 858화 3차 대격변 (1)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제는 현실만큼이나 익숙한 또 다른 현실.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보인 것은 군데군데 깨져 있는 종족 킬 수치였다.

    ■족 □

    (Ge●◎r◆□to■n K○l■)

    인    ■          *∬≒%$^궭

    리■드맨   ʘ§■%걁℃!

    □    크          £듉$%Å#¥

    그리고 박살 나 있는 상태창 아래에는 포연이 피어오르는 성벽이 보인다.

    저 멀리 중앙대륙의 경계선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것은 몬스터들의 대규모 이동을 알리는 봉화였다.

    침공.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규모의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갑자기?”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 곳에는 새로운 업데이트 내용을 알리는 상태창이 보인다.

    < 3차 대격변이 곧 시작됩니다 >

    -띠링!

    <최후의 메인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최후의 메인 퀘스트 ‘3차대격변’>

    <용과 악마가 손을 잡고 이 세상을 태초의 무(無)로 되돌리려 합니다>

    <퀘스트 발생 조건: ‘?’>

    <퀘스트 수행 제한: ‘없음’>

    <퀘스트 완료 조건: ‘???’ 처치>

    <※본 퀘스트는 전 서버, 전 종족의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말 그대로다. 용과 악마가 손을 잡았다.

    이 때문에 전 대륙의 몬스터들이 미쳐 날뛰며 ‘플레이어’라는 종족을 멸종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단다.

    그동안 메인 퀘스트 곳곳에 자잘자잘하게 뿌려져 왔던 용과 악마, 그리고 거대한 멸망의 떡밥들.

    이 흐름을 떠올린 나는 자연스럽게 오래 전의 한 고전게임을 연상할 수 있었다.

    ‘파이널X타지 14.’

    출시 전부터 팬들의 엄청난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지만 결국 부족한 콘텐츠와 각종 버그, 비효율적인 그래픽 자원 투자, 불친절하고 엉성한 유저 인터페이스, 퀘스트나 레벨링의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 후진적인 전투 시스템, 스토리 완성도 부진으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던 비운의 게임.

    이 게임을 어떻게든 살려 보려 했던 요시다 나오키 PD는 회사의 모든 비상인력을 풀가동해 50일 동안이나 대책 회의를 했지만 이 게임을 되살리는 데에는 실패하고 만다.

    고객들의 계속되는 불만족과 항의, 욕설, 그리고 계속해서 발견되는 1만 개 이상의 버그들에 대책팀은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대책팀이 내린 조치는 게임 전체를 리부트(Reboot)하는 것이었다.

    ‘MMORPG는 한번 운영을 개시하면 그리 간단히 운영을 중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들의 캐릭터 데이터나 게임 안의 재산은 단순히 0과 1로 결성된 데이터가 아니라 추억과 시간과 동료와의 우정이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의 신념이었다.

    그래서 대책팀은 서버를 계속 운영하는 동시에 서버 전체를 무(無)로 돌리기로 했다.

    개발팀과 운영팀은 며칠간의 특별 휴가를 통해 심신을 회복한 뒤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동안 꾸준히 세계관의 멸망에 대한 떡밥을 던져왔었기에 게임 속 세계를 붕괴시키고 신생시키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플레이어들에게 이 세계관의 종말을 납득시키는 것.

    이를 위해 모든 개발자들은 최선을 다해 떡밥을 풀고 또 회수해 나갔다.

    전 서버 차원의 대규모 퀘스트.

    서비스 종료 일정에 맞추어 수많은 몬스터들, 그리고 세계관의 월드보스가 플레이어들의 마을을 침공한다.

    거대한 전쟁이 벌어졌고 수많은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이 과정에서 게임을 접었던 이들도 복귀하여 다시금 우정과 결속을 다지기도 했다.

    점점 혼돈의 도가니로 변해 가는 세계.

    하늘에서는 거대한 위성이 떨어지고 거대한 몬스터들이 주요 도시를 파괴해 나간다.

    그리고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 게임 서비스 종료를 코앞에 두고 있을 때.

    모든 유저들에게 엔딩 무비가 떴다.

    절망하는 사람들. 멸망하는 고향.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난 대현자는 찬란한 빛무리와 함께 모든 플레이어들을 안전한 어딘가로 순간이동 시킨다.

    그리고 게임 서비스 종료.

    이후 게임은 다음 시리즈로 이어지며 순탄한 행보를 이어갔다.

    “……설마 그런 계획인가?”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도시 곳곳을 공격하는 비행 몬스터들을 올려다보며 입을 반쯤 벌렸다.

    아마 윌슨은 이 ‘X이널판타지 14’의 전략을 비슷하게 가져올 생각인 듯싶다.

    하기야 지금껏 수많은 고전 콘텐츠들에서 무수한 오마주를 가져온 그이니 이런 결정을 한 것도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

    이슈는 이슈로, 논란은 논란으로.

    윌슨의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는지 지금 주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유저들이 접속해 있는 것이 보인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실에서 윌슨이 휩싸인 논란과 의혹은 게임 속에서 그동안 플레이했던 게임 콘텐츠와는 또 별개다.

    그렇게 생각한 수많은 사람들이 요 수년간 즐겨 플레이하던 이 애정 어린 세계로 접속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NPC, 캐릭터들, 이 세계의 긴급한 구조 요청에 응한 채 말이다.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가 손을 잡았단다!”

    “이제 악마고 용이고 다 한통속이야!”

    “막아! 어머니의 도시를 지켜라!”

    현재 뎀의 동시 접속자 수는 역대 최다수.

    실로 어마어마한 수의 복귀 유저들이 3차 대격변 퀘스트에 참전했다.

    현실의 논란과 의혹에도 불구하고 게임으로 되돌아온 플레이어들.

    그들은 인간, 오크, 리자드맨을 가리지 않고 똘똘 뭉쳐 반쯤 파괴된 성벽을 지킨다.

    ……하지만.

    도시를 침공하는 몬스터들의 힘과 숫자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

    작정하고 서버를 밀어 버리려는 윌슨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띠링!

    <동대륙의 ‘어비스 터미널’이 태양룡 일족의 ‘아르파닉’에 의해 붕괴했습니다>

    <서대륙의 ‘세계수해’가 ‘오만의 군단’ 소속 고위악마 ‘파이몬 왕’에 의해 불타 버렸습니다>

    <남대륙의 ‘그레이 시티’가 태양룡 일족의 ‘오메가닉’에 의해 완파되었습니다>

    <북대륙의 ‘화이트워싱’ 마을이 ‘오만의 군단’ 소속 고위악마 ‘대공작 단탈리안’에 의해 소멸했습니다>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에 속속들이 올라오는 동영상들.

    각 대륙에 퍼져 있던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촬영해 올리는 사진과 동영상들 속에는 실시간으로 파괴되어 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가 보인다.

    예전 2차 대격변에 필적하는, 아니 그 이상의 거대한 파멸이 온 대륙을 끝에서부터 천천히 잠식해 들고 있었다.

    거대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황금색 비늘의 용들이 동대륙의 사막지대를 초토화시킨다.

    유난히 덩치가 큰 태양룡 한 마리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싱크홀을 토사로 꽉 메워 버리는 동영상이 실시간으로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한편 서대륙에서는 낙타 위에 타고 있는 고위악마 하나가 200개가 넘는 군단을 이끌고 그린헬 밀림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세계수 역시도 악마들이 토해 내는 불길과 저주 앞에서는 결국 기둥뿌리가 뽑히고 말았다.

    남대륙의 그레이 시티 역시 멸망하고 말았다.

    과거 잿빛용 일족에 의해 멸망한 뒤 길고 쓰라린 재건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었던 그레이 시티는 이번에는 태양룡 일족에 의해 두 번째 멸망을 맞이한다.

    레벨 높은 엘리트 경비병들이 필사적으로 항전했지만 결국 무너진 성벽과 밀려들어오는 용군단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플레이어 측 최후의 보루, 2차 대격변 때에도 끝끝내 파괴되지 않았던 북대륙의 가혹한 설산 역시도 악마들의 총공세를 이겨 낼 수는 없었다.

    36개나 되는 얼굴을 가진, 귀족 특유의 연미복을 빼 입은 신사는 수없이 많은 악마병들을 이끌고 가혹한 설산을 이루는 72개 얼음산을 피로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플레이어 측의 항전도 거셌다.

    제일 먼저 대형 길드들이 나섰다.

    게임이 망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그동안 비축해 놓은 물자를 아낌없이 풀어 저항군들을 지원했다.

    랭킹을 이끌던 상위 티어의 고수들 역시도 모든 힘을 다 바쳐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고 있었다.

    상상외로 많은 랭킹 밖의 실력자들이 오랜 은거를 깨고 등장해 놀라운 신위를 선보였고 그들의 용기에 힘입어 풀뿌리 저항군들이 서로 연대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플레이어 연합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위험등급 A+~S랭크의 네임드 마수들이 하나둘씩 잡히기 시작했다.

    “골드 드래곤도 뭐 다구리 치니까 별 거 없네!”

    “으아아아! 발록 ‘마두루스’ 잡았다! 잡았다고!”

    “황금색 바실리스크들이 그리로 갑니다! 포위해서 섬멸하죠!”

    “저기 대망자 군단이 또 온다! 전 웨이브에서 떨어져나갔던 악마병 잔당들로 추정……!”

    마지노선.

    그렇게 어느 정도 방어선이 구축되는가 싶었다.

    총 350킬로미터의 방어선.

    독립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142개의 요새와 352개의 포대 그리고 5,000여 개가 넘는 벙커들이 촘촘하게 설치되어 몬스터들을 막아 낸다.

    이것은 유저들이 고향 땅을 지키고자 하는 목적 하나로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 낸 거대한 합동전선.

    몬스터들의 중앙대륙행을 방어하는 최후의 전선이었다.

    하지만.

    유저들이 그토록 힘을 합쳐 만든 모든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콰콰콰쾅!]

    영상 속, 마지노선을 두부 으깨듯 짓밟고 들어오는 존재들이 있었다.

    고정 S+급 몬스터, 일곱 악마성좌들 중 최강으로 통하는 존재.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

    그리고 마찬가지로 고정 S+급 몬스터이자 일곱 용군주들 중 최강으로 통하는 존재.

    태양룡 바이어스!

    일개 유저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막아설 수 없는 이 존재가 일선(一線)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모든 것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두 괴수의 중앙행. 그 누가 이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대형 길드들이 만든 방어선은 순식간에 부서졌고 유저들의 연대 역시도 흔들린다.

    절대적인 힘, 엄습하는 공포,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남아있었다.

    “모두들 물러나십시오! 휘말려들 위험이 있습니다!”

    “여기는 우리가 맡을게요!”

    “안심하시오. 우리가 어떻게든 해 보겠소.”

    “……약한 것들은 빠져. 방해된다.”

    악몽 같은 참호전 속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들.

    6대주 리그의 에이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 세계 통합랭킹 1위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전 세계 통합랭킹 2위 비앙카 트럼프.

    전 세계 통합랭킹 3위 페이사 릴레사.

    전 세계 통합랭킹 4위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월드클래스급 랭커들이 모두 모였다.

    이들이 동시접속을, 그것도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극도로 진귀한 광경.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게임이 출시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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