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6화 2.5차 대격변 (5)
부서져 가는 화면 속.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Nuclear launch detected!]
핵이 감지되었다는 메시지가 전 세계인들의 모니터를 잠식한다.
동시에, 암흑의 핵(核) 조디악이 전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맨 처음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는 꽤나 달라져 있었다.
창백하긴 했지만 매끈했던 피부는 푸석푸석 갈라져 있다.
곳곳에는 옅은 검버섯마저 보인다.
두 볼은 움푹 들어가 불거져 나온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였고 다크서클은 너무 진해져서 이제 아예 그 부분의 피부가 원래부터 군청색이었던 것 같다.
머리는 군데군데 하얗게 새어 있었고 눈에는 핏발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좀비. 지금 당장 쓰러져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화면 속의 조디악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몇 번 쓱쓱 한 뒤 다시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어.]
마치 친근한 친구를 대하듯 하는 음성. 그러나 소름끼치도록 퀭한 눈동자는 정감이 가기는커녕 그저 오싹할 뿐이다.
“……!”
나는 조디악의 모습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2.5차 대격변’의 진짜 정체를 말이다.
이윽고 놈은 내 예상대로 깨진 화면과 노이즈 사이로 폭탄발언을 터트린다.
[아, 그 전에 참고로. 이번 돈복사 버그 및 초인플레를 터트린 게 바로 나야. 푸스스스스스스-]
진성 또라이답게 이 상황에서도 웃음와 여유를 잃지 않는 조디악.
하지만 놈의 발언에 전 세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주가 그래프는 불구덩이에 내던져진 뱀처럼 요동쳤고 전 세계 모든 게임 커뮤니티들이 연쇄적으로 터져나간다.
조디악에 관련된 검색어들이 단번에 순위권 최상위층을 모조리 점령해 버렸으며 뉴스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한편, 이 모든 일련의 현상들을 예측하고 있던 나는 그저 침음성만 삼킬 뿐이다.
“……지하수로에서의 인터뷰가 생각나는군.”
얼마 전, 나는 세계리그 시상식에 참석하러 영국을 방문하던 차에 한 지하수로에 들러 조디악을 만났었다.
돈 복사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던 지하수로 밑의 작업장.
그때 조디악은 분명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푸스스스- 나는 뎀 유니버스 본사에 핵폭탄을 터트릴 거야.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위력적일 화폐 폭탄을 말이야!’
‘……미친. 무슨 재벌강점기도 아니고.’
‘제아무리 윌슨이라고 해도 이번 것에는 타격을 입겠지. 무고한 이들을 납치해 만든 이따위 게임은 망해야 해.’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바로 백섭이 일어날 거고 버그들이 대대적으로 수정되겠지.’
‘푸스스스… 그렇게 되면 또 나름대로의 대비책이 있지. 원래 덫은 이중 삼중으로 깔아두어야 해. 짐승이라는 게 의외로 힘이 좋아서, 목숨 내놓고 발버둥치면 덫 하나쯤은 쉽게 망가지거든.’
그 2중, 3중의 덫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걸 말했던 모양이다.
백섭 뒤에 올 혼란을 틈타 뎀 유니버스의 방화벽을 넘어 메인스트림 본진에 바로 침투한다는 계획.
유다희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술을 뗐다.
“그러고 보니, 뎀 유니버스의 서버는 백섭하는 도중이 가장 취약하다고 그랬어. 마치 게가 허물을 벗고 있는 도중이 가장 약하듯…….”
“그렇군. 심지어 김정은, 그 여자는 부서를 처리반으로 옮기기 이전에 서버 관리실에서 백섭을 담당했다고 했었지.”
첨언하자면 내가 벨페골의 악몽지대에서 무투룡의 싸움 나락으로 갈 수 있게끔 서버의 상하를 한 바퀴 뒤집어준 것 역시도 김정은의 준 ‘Do a barrel roll’ 코드 덕분이었다.
또한 어마어마한 용량과 트래픽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메인스트림이라고 해도 서버 전체를 일정 기간 롤백시키는 것은 상당한 부담, 평소였다면 절대로 생겨나지 않았을 빈틈들이 여기저기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조디악은 17개의 서브스트림 중 3개의 힘을 흡수한 존재.
거기에 서버 내부를 잘 아는 김정은까지 붙어 오랜 시간을 작정하고 준비해 왔으니 제아무리 뎀 유니버스라고 해도 이들의 해킹을 바로 잡아내는 것은 무리다.
최소 몇 분간은 이 스크린을 장악하게 될 조디악.
[미안해. 이거 보여 주려고 어그로 끌었어.]
놈은 화면 속에서 계속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오오? 계속해서 공격이 들어오네? 뎀 유니버스 본사에서 열심히 일하나 봐. 아무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군. 그러니 빨리 본론부터 얘기하도록 하지.]
이윽고, 조디악은 화면에 동영상을 띄웠다.
군데군데 깨지고 노이즈가 심했지만 사람들이 영상의 정체에 대해 눈치 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살려 줘, 제발 집에 보내 주세요 제발!]
[죽여 줘, 차라리 죽여 달라고……]
[여기는 지옥이야!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냐고! 이 악마들아!]
[호호호, 뭐 아무튼. 오늘 치 누미노제는 다 추출했으니 이만 할까?]
[내일은 조금 더 많이 추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이번 달 할당량 맞추려면 빠듯해.]
그것은 조디악이 벨페골의 악몽지대에서 겪었던 모든 이들, 그리고 현실에서 과거 누미노제 팀에 종사했었던 이들의 인터뷰.
[살려 줘 제발, 나는 죽여도 괜찮으니 남편만은…… 애들만은…….]
[다 불게…… 다 불 테니까 제발…… 모든 건 윌슨, 그 사이코의 계획 때문이야.]
[그는 이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 해. 모든 이들의 상상력을 이용해서!]
[그래! 내가! 내가 사람들을 납치했다! 누미노제를 추출하려고! 그래서 그게 뭐!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게임을 만들 수 있었으니 된 거 아냐!? 차라리 죽여! 후회 안 해!]
피범벅이 된 채 과거 자신들의 악행을 자백하는 전 누미노제 팀, 아니 처리반 직원들의 고백.
게임과 현실을 오가는 피비린내 나는 증언들이 필터 하나 없이 적나라하게 방송되고 있었다.
지금 화면 속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나온 생존자는 담담한 광기로 그것을 전 세계에 송출해 낸다.
[푸스스스스……]
바스라져 가는 몸뚱이로, 바스라져 가는 미소를 지으며.
[LIVE]
라이브. 그것은 살아 있다는 뜻임과 동시에 실시간 생중계라는 뜻도 있다.
“…….”
나는 턱을 짚은 채 모니터 속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심연 역시도 모니터 밖의 나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내가 벨페골과 무투룡의 인스턴트 던전에서 봤던 것보다도 훨씬 더 끔찍하고 처절한 것이었다.
난데없이 평화롭던 일상에서 쫓겨나 모든 것을 잃고 지옥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
영문도 모른 채 발버둥 치던 존재들의 처절한 발자취, 투쟁의 기록, 삶의 자국, 생존의 흔적.
조디악은 말했다.
[이 게임은 멀쩡한 생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여 가면서 만든 게임이야. 나는 단지 너희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 때문에 지금껏……]
하지만.
…파직!
조디악이 송출하던 화면은 단말마와 같은 노이즈와 함께 꺼져버렸다.
그리고 이내 갑작스럽게 떠오른 새로운 메시지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띠링!
<회사의 오류로 인하여 9분 11초간 잘못된 방송이 송출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해당 방송은 예전에 근무했던 직원이 장난삼아 만든 데모 방송이었으며 당사자는 중징계를 받을 예정입니다>
<방금 송출된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악의적인 허위 사실 유포 시 민, 형사상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급하게 쓴 것처럼 보이는 조악한 문장들. 심지어 번역된 언어의 수도 몇 개 없다.
임시조치.
아마 뎀 유니버스 본사의 컨트롤 타워에서 해킹을 방어해 낸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 사람들은 모두 조디악의 방송을 봤다.
그 광기 어린 처절함은 충분히 온 세상에 사무쳐 들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총 시가총액 1천 조 상당의 갓겜.
그 파생상품들의 시장 규모까지 합치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시장을 거느린 게임.
역사상 이 게임보다 위대했던 게임이 존재했던가?
하지만 그 찬란한 아성(牙城)의 밑바닥에는 피와 고름의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충격적인 내용이었는지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이 방송을 다시 보기 위해, 그리고 진위여부를 따지기 위해 움직인다.
선악과(善惡果). 그리고 뱀의 혓바닥.
거대한 혁명인가 아니면 희대의 사기극인가.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전 세계 모든 이들은 한 순간에 심판대에 올라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다.
-개주작ㅋㅋㅋㅋㅋ
-이거 몰래카메라임??
-ㄴ현직 영상 편집자입니다...조작 흔적이 안 보이는데요?
-ㄴ앙신의 말을 믿음? 그게 더 호러인데ㅋㅋㅋ
-스너프필름아님?ㄷㄷㄷ
-실제 살인사건들 기록이랑 다 겹치는데???
-찐
-너무 소름끼친다 뭐야 이거ㅠㅠㅠㅠㅠ
-사실이라면 역대급 소름인데 왜 지금까지 방송 탄 게 하나도 없음??
-당연히 구라지 ㅂㅅ들아...선동좀 당하지 마라
-근데 딥웹 같은데 들어가보면 간간히 의혹 있긴했었음;;;;
-아니 근데 뎀 유니버스 본사를 해킹해서 말할 정도면...
-이건 사실상 테러 아니냐?
-무섭다 진짜...
-역대급 음모론 터졌는데 이건???
-뎀 유니버스는 해명해야 할 듯
-보니까 조디악이 작정하고 노린거같은데...
-저 인터뷰 내용을 떠나서...영상 자체는 아무리 봐도 조작 티가 안남
-현직 프로입니다. 저 영상 조작 아니네요
-와;;;지금 공중파들에서도 냄새 맡았다!
-바로 보도 나오네ㄷㄷㄷㄷ
-스트리머들 개신났네ㅋㅋㅋㅋ꿀잼콘텐츠
-조디악 하면 인터폴에서도 수배내린 연쇄살인마인데? 저놈 말을 믿냐ㅡㅡ
-저ㅅㄲ가 게임 안에서 벌인 일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근데 그걸 떠나서 현실하고 게임은 분리해서 봐야지;;;
-만에 하나 사실이면 어캄???
-미안하다 이거 보여줄라고 어그로끌었다...의 현실판???
-주작이라기엔 영상이 너무 생생한데...? 그동안 현실에 있었던 사건사고들이랑도 아다리가 맞아 떨어지고..;;;
-아니 진짜 너무 무섭다....내 상식을 부정당하는 느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임???
-말이 안 되지. 뎀 같은 초국적기업에서 머가 아쉬워서 저런 짓을 함ㅋㅋㅋ
-ㄴ세계 최고의 거대 기업이 되기 위해서라면 먼가 가능성 있을거 같은데...
-와;;; 찾아보니까 진짜 저 영상에 찍힌 사람들 다 실종됨;;;
-사고사로 처리된 사람들도 있네ㄷㄷㄷ
-내가 알던 세상이 낯설다 갑자기...현실이 게임같고 게임이 현실같음...
-조디악한테 협박당하고 죽은 사람들 뭔가 낯익은데???
-ㄴ와 방금 인터뷰로 증언한 사람 얼굴 낯익어서 옛날 신문 찾아보니까 실제 처리반 임원들이었다ㅅㅂ!!!
-ㄴ킁킁...난다...거대한 음모의 냄새...
-세상 믿을 곳 없구나...뭘 믿고 살아야 하나
-자기가 믿을 것 정도는 자기가 찾아야지
-개무섭네 진짜...
-아니 이게 사실이라면 경찰은 지금까지 뭐했겠음ㅋㅋㅋㅋ
-ㄴ뭐하긴;;;경찰보다 뎀 유니버스가 더 큰 조직인데
-ㄴ또 국가 단위로 움직이잖어 경찰은...뎀은 초국적기업임
-ㄴ누가 뎀을 심판할 수 있겠음ㄷㄷㄷ
-ㄴ뎀의 총수면 사실상 지구의 지배자 아니냐??ㅋㅋㅋㅋ
-님들앙 미국 대통령이 더 쎄지 않아여???
-ㄴ진지 좀 빨자면 그 미국 대통령이 2대에 걸쳐 만나뵙게 해달라고 애청했는데 쌩까고 문 안열어준게 뎀의 윌슨 총수다...
-뎀 유니버스....희대의 악마 기업이었던 건가???
-않이 윌슨 총수가 그런 엽기적인 비리를 저지를 이유가 뭐냐???
-ㄴ위엣놈은 방송 보긴 봤냐? 누미노제라는 물질을 추출했대잖어...
-안 그래도 뎀 플레이 할때마다 그 생각 늘 했다. 이걸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ㄴ한 사람이 만들기에는 지나치게 방대한 세계였다...
-엌ㅋㅋ스토리작가들을 갈아넣었다고 했는데...진짜로 갈아넣었던거임ㅋㅋㅋㅋㅋ
-ㄴ너는 이게 재밌냐? 사이코패스 새끼..
-ㄴ네다음선비~^^ 어차피 스너프필름이야~^^
-실제로 사람이 죽었다면 진짜 수사 들어가야겠는데 이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벌써 무섭다....
-이거 온 세상이 다 뒤집어지겠구만;;;
-이게 구라라면 나는 지금 금세기 최고, 아니 역사상 최고의 악마를 보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오히려 뎀 유니버스가 악마같음 난ㄷㄷㄷ
-동영상 속 사람들 너무 불쌍하다...찾아보니 지금은 다 실종 아니면 사망 처리되었다던데...
-미국 켈리포니아 어바인 시 쪽에 무연고 시신들이 급증했다는 뉴스...우연일까...합리적 의심...아니 이쯤되면 킹리적 갓심...
-제발 선동좀 하지 말자ㅅㅂ 뭔 소설들 쓰고 앉았어
-ㄴ원래 현실이 소설보다 더해요 님아;;;
.
.
전 세계가 통째로 들썩이고 있었다.
믿는 이도 있고 믿지 않는 이도 있다.
입을 여는 이도 있고 입을 다무는 이도 있다.
분노하는 이도 있고 분노하지 않는 이도 있다.
뛰기 시작하는 이도 있고 자리에 멈추는 이도 있다.
우는 이도 있고 웃는 이도 있다.
조디악이 토해 낸 말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간에 세상이 크게 바뀔 것임은 자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