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5화 2.5차 대격변 (4)
‘백섭(Back server)’이란 무엇이냐?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그것은 서버에 생긴 오류로 인해 오류가 생기기 이전의 서버로 되돌리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오류와 수정이라는 문제로만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유저들이 그 기간 동안 쌓았던 경험치, 아이템, 사이버머니, 추억 등등이 모조리 얻기 전의 상태로 리셋된다는 것이다.
만약 게임을 하나의 인격체로 친다면 백섭은 중증 치매나 다름없는 비극.
당연히 이는 수많은 이들의 반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백섭은 정말로 극단적인 수단, 그 후폭풍이 매우 심한 최후의 방법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터진 화폐폭탄은 정말로 게임을 통째로 망하게 할 수 있을 만큼의 위력을 가진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핵폭탄보다도 무서운 위조지폐 폭탄의 파괴력은 뎀 유니버스의 본사마저도 백섭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백섭 발표는 빠르게 났다.
당일 오전, 뎀 유니버스의 고위직들은 수많은 카메라 앞에 고개를 숙이며 담화문을 발표했다.
“저희들은 버그를 인지한 지난 24일 새벽 2시부터 8시까지 6시간 동안 긴급 점검을 해 해당 버그를 막고 피해 상황을 조사했습니다. 로그 분석 결과 버그 발생 빈도는 3,021회로 나타났고 이로 인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 안에 풀린 위폐의 액수는 약…….”
“아직 거래되지 않고 환전소와 은행에 쌓여 있는 위폐 추정 골드들은 50%가량 회수된 상태이며 해당 버그를 일으킨 유저는 현재 수색 중에 있…….”
“내부 회의를 통해 미회수된 골드에 관하여 논의한 결과, 현 시점에서는 이를 모두 회수할 방법이 없으며 이로 인해 서버 롤백(Roll back)이라는 힘든 결정을 내리게 된 것에 대해 유감…….”
결국 이번 돈 복사 버그는 대처할 방법도 없고 범인도 못 잡았다는 뜻.
뎀 유니버스 또한 두 손 들었다는 말이다.
전 세계 뉴스에 대서특필될만한 대사건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뎀 유니버스는 긴급 회의를 열어 백섭 날짜를 언제로 정할 것인지, 되돌릴 순간은 어느 시점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중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오늘 자정부터 바로 게임 접속이 중단될 것이며 재접속 가능 시간은 예전 1차 대격변 때처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그리하여 평소 뎀에 접속해 있어야 할 모든 동시 접속자들은 오늘 뎀을 플레이하지 않은 채 캡슐에 붙어 있는 모니터로 남은 서버점검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구ㅠㅠㅠ그동안 작업장에서 캔 광물들 다 날리겠네...
-뭐 보상이 있겠지?
-그래도 돈복사 버그 때문에 겜 망하는 것보단 훨배 낫다ㅇㅇ
-대충 백섭 차원에서 일단락되겠네ㅋㅋ
-의외로 뎀 본사가 빠르게 잘 대응했다고 본다 이건
-이건맞지 인정해줘야지
-썩은 부위는 걍 빨리 도려내는게 나음ㅇㅇ잘한거임 진짜
-아니;;; 나는 중간에 랜덤뽑기 가챠에서 아이템 좋은거 먹었는데ㅠㅠㅠㅠㅠ
-진짜 뭔가 보상 없기만 해봐라 난동부릴거다ㅠㅠㅠㅠ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지 뭐 걍 참으셈
-맞음ㅇㅇ다수를 지키려면 소수가 피해입을 수밖에 없는거임 원래...
-뎀 파이팅! 잘한다!
.
.
게임 커뮤니티에는 대부분 이번 뎀의 대처를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언제쯤 뎀의 서버가 정상화될지 기대하면서 캡슐에 붙은 모니터로 백섭 실 상황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2.5차 대격변’이라는 것은 고작 돈 복사 버그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돈 복사 버그는 그저 신호탄에 불과했으며 그것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일어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대격변’임을.
삐- 삐- 삐- 삐- 삐-
모니터 앞에서 서버 점검 시간을 카운트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캡슐에서 긴급하게 뿜어져 나오는 붉은 사이렌 소리와 경고음, 갑자기 지직거리는 화면을 마주해야 했다.
마치 80년대 흑백 TV가 브라운관 고장을 일으키기라도 한 듯, 캡슐 속 모니터는 군데군데 깨져 보이는 동시에 지직거리는 노이즈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이러한 변화에 당황하는 순간.
…핏!
화면에 기묘한 메시지가 떴다.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Nuclear launch detected!]
맨 처음 돈 복사 버그가 터졌을 때 떴던 경고문이 또다시 떠올랐다.
모든 이들이 보고 있는 스크린. 이윽고 버그(Bug)가 그 실체를 드러낸다.
[푸스스스스- 안녕 친구들?]
재앙(災殃)이 직접 방문했다.
* * *
“결국 이렇게 되네.”
유다희는 TV에서 벌써 몇 번이나 재방송 되고 있는 뎀 유니버스 긴급담화문을 꺼 버렸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캡슐에 기대어 앉아 있는 내 옆으로 와 슬쩍 앉는다.
한편, 나는 캡슐에 떠 있는 서버 점검 메시지와 남은 시간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얼마 전 윌슨을 만나고 온 뒤 나는 방에서 나가지 않고 있었다.
‘내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해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군.’
지금까지는 회귀 전의 지식과 그동안 체득한 피지컬에 의존해 왔었다.
하지만 회귀 전의 지식도, 다년간의 컨트롤로 다져진 피지컬도, 모두 내가 의지를 가지고 수련하거나 공부했던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인생의 낭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잘 하게 되어 버린 것들.
물론 그것들이 가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내린 첫 번째의 ‘선택’.
윌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은 결과적으로 조디악의 행보를 돕는 것이 되었고 그 결과는 캡슐에 부착된 모니터의 흑백화면, 그리고 뎀 유니버스의 긴급담화문과 사과문이다.
백섭.
한 사람의 게이머, 마치 그의 인생 한 토막을 지워 버리는 것과도 같은 이 결과를 나는 어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나는 아직도 내가 먹은 것이 선악과인지, 독사과인지, 아니면 그냥 평범한 사과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저 접속 제한이 풀리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
‘회귀한 이후 이렇게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기는 처음이네.’
사전 지식이 없는 미래라는 것은 원래 이렇게 뿌옇고 불안한 법이다.
나는 그것을 새삼스레 느끼는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과 그에 비례해서 짙어지는 무기력감에 깊게 침잠해 들고 있었다.
…….
……그리고 그런 내 방을 찾아온 이는 유다희였다.
상황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회귀 전 내 방을 찾아오는 유일한 인물도 그녀였던지라 어딘가 아이러니했다.
유다희가 물었다.
“심란해?”
“아니.”
“거짓말 되게 잘하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물었다.
“왜 왔어?”
“내가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도 네가 와 줬잖아. 이렇게.”
“경우가 좀 다르지 않냐?”
“다른 거지 틀린 건 아니잖아.”
“아무 말 대잔치네.”
“어? 웃었다? 웃었다!”
“어이없어서 웃은 거잖아.”
유다희 덕에 나는 건조하게나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네가 지금 이 시점에서 뭘 걱정하고 있는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거야.”
그 말은 맞다. 내 머릿속에는 #회귀, #불사조, #정반합, #조디악, #윌슨, #용마동맹, #대격변, #양자택일, #선택, #클로즈 베타, #처리반, #누미노제 #오늘뭐먹지? 등등의 키워드들이 짬뽕되어 둥둥 부유하고 있었으니까.
이 사실을 그 누가 믿어 주겠나, 하나 하나 떼어 놓고 말하자면 공감해 줄 존재들이야 있지만 이 총체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런 내게 유다희는 다시 한번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무슨 말?”
“그 왜, 혈압 마라톤 시상식 때의 인터뷰 말야.”
그녀는 고개 숙인 나의 얼굴과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오를 수 없는 산을 오르는 끔찍한 여정. 응원도 없고 세이브도 없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노력의 보상도 주어지지 않고 성공의 열매도 맛볼 수 없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
“…….”
“친절하지 않고 고통스러우며 변덕스럽기까지 하고 때때로 짜증이 나는, 관대하지 못하고 차갑고 비인간적이며 걸림돌로만 느껴지는, 냉소만이 가득한 과정들.”
“…….”
유다희는 과거 내가 했던 우승 인터뷰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말했다.
“인생은 어찌 보면 그런 과정들의 연속으로만 보이잖아. 네가 말했듯.”
“나는 인생이 아니라 게임을 얘기한 건데.”
“네 인생은 곧 게임이라며. 게임이 곧 네 인생이고.”
유다희의 말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은 내가 안다. 내가 그녀에게 해줬던 말이니까.
“쉽지 않은 조작, 까딱 잘못하면 결승선 직전에 출발선으로 되돌아와 버린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좌절감. 하지만 차분하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요령을 익혀나간다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은 것이 게임이지.”
“그리고 곧 인생이고 말이야.”
유다희가 씽긋 웃는다.
“만약 실수해서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아니, 원점보다 못한 곳으로 추락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이 전부 다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
“시간을 투자한 만큼 배우고 익힌 경험치가 남았지. 역설적이게도, 떨어짐으로서 우리는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거야. 바로 노련함과 능숙함 말야.”
“맞아. 그러니 떨어지는 것을 가끔은 ‘쿨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네가 말했던 것처럼.”
동시에, 그녀와 나는 같은 말을 입에 담았다.
“Get Over It.”
Help yourself에 이은 Get Over It.
분위기는 자연스럽게도 내 시선을 벽의 선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트로피, 그리고 그것에 적혀있는 문구를 향하게끔 만들었다.
‘나는 이렇게나 멀리 온 당신에게 이 우승컵을 바친다. 나의 모든 사랑을 담아.’
유다희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다시 돌아가자 우리. 정상으로.”
내가 막 그녀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어?”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는다.
치지지지직-
캡슐의 모니터에 이변이 일어났다.
[푸스스스스- 안녕 친구들?]
갑자기 웬 흰 가면의 남자가 캡슐 모니터에 떴다.
아마도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을 이 화면.
[음음, 아아, 마이크 체크, 원투원투-]
흰 가면의 남자는 목소리를 가다듬다가 이내 답답하다는 듯 음성변조장치와 가면을 북- 떼어내 버린다.
그 맨얼굴은 나도, 유다희도, 엄재영 감독도 아는 남자.
조디악 번디베일.
그가 화면 속에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화면 한 구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마저 떠올라 있다.
[LIVE]
실시간 생중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