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53화 (853/1,000)
  • 853화 2.5차 대격변 (2)

    ‘화폐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것은 사회의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가장 사악하고도 확실한 수단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       *       *

    위조화폐 제작은 어느 나라에서나 중죄로 다루는 범죄이다.

    위조화폐의 역사는 화폐의 역사와 동일하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구리에 금을 도금하여 위폐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시금석이나 시금침이 생겨났으며 돈을 무게로 달거나 부피를 재거나 심지어는 아예 절단하여 내부를 확인하는 식으로 진위를 판별하는 일이 생겨났다.

    세계 최초의 위조지폐는 중국 송나라에서 나왔으며 원나라 말기에 반원파 공작원들이 일부러 위조지폐를 풀어 초인플레이션을 일으켰고 나라의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갔던 기록도 있다.

    물론 이런 위폐범에 대한 형벌은 아주 무겁다. 무기징역에서 사형까지 갈 수 있는 중죄.

    ……하지만.

    게임 속에서 위조화폐를 푼 것에 대해서는 아직 관련 법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

    그래서 현실도 게임도 조디악이 일으킨 2.5차 대격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현실의 주식들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진다.

    <레드문 281,300 ▼2,021>

    <미라클파츠 980 ▼120>

    <레고캡슐 3,210 ▼250>

    <성은게임즈 1,150 ▼100>

    <뎀 코리아 933,750 ▼32,210>

    .

    .

    휴지쪼가리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폭락하는 주식, 심지어 겨우 며칠 만에 반 토막 난 것들도 보인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진짜 돈과 가짜 돈을 구분하지 못하여 벌어진 상황.

    ……하지만!

    “잘 관찰한다면 위조화폐를 구분할 수 있지.”

    나는 현재 그레이 시티의 시장실에 있었다.

    모든 사람들을 전부 다 물린 뒤, 나는 유다희만을 데려다 놓은 채 독대한다.

    테이블 위에는 고액의 금화 두 닢과 마찬가지로 고액의 지폐 두 장이 있었다.

    “잘 봐. 내가 위조여부를 판별하는 법을 알려 줄 테니.”

    나는 우선 지폐를 들어 불빛에 비추었다.

    “……역시.”

    나의 기억과 똑같다.

    위조지폐 특유의 몇몇 특징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고 있었다.

    회귀 전 김정은 역시도 돈 복사 버그를 터트렸었고 막 현질을 한 참이었던 내가 그 피해를 크게 봤기에 잘 알고 있다.

    반면 그때는 조디악의 도움 없이 김정은이 혼자 벌인 일이었기에 이렇게까지 규모가 크지 않았고 결국 순식간에 진압되었었지.

    그 당시 GM들은 몇 주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위조화폐를 판별하기 위한 노하우들을 발표했었는데 나는 그 당시에 숙지해 둔 지식과 감각들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뎀의 화폐에는 위폐 방지를 위한 코드들이 삽입되어 있지. 그것은 지폐 중간에 은색 띠와 빛에 비추었을 경우 완성되는 앞, 뒤판의 맞춤, 그리고 불을 쬐면 나타나는 특수한 문양 같은 것들이 있어.”

    “?”

    “물론 주화에도 있지. 몇몇 부분의 두께를 조절하여 미세한 음각과 양각 무늬를 새겨두었기에 그 위에 검은색 물을 붓거나 특수한 각도로 빛을 쬐게 만들면 특정한 그림이 나타나. 거기에 홀로그램 장치 부착, 자외선으로만 비춰야 나타나는 코드, 레이저 구멍, 특수 잉크 등등도 사용되었지.”

    “??”

    “물론 이런 코드들은 GM들이 자기들만의 기준으로 만든 것이고, 감별 프로그램도 없는 일반인이 이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바로 ‘촉감’으로 구별하는 거야. 진폐와 위폐는 손끝에 스치는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 8년에서 11년 정도 돈을 만지다 보면 쉽게 간파할 수 있지.”

    “???”

    유다희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나와 돈을 번갈아 바라본다.

    하지만 오직 내 눈에는 보인다.

    복사된 돈에는 없는, 지폐의 원본 코드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들.

    가령 지폐 양면을 세로로 이등분하고 있는 미세한 은색 점선, 그리고 불빛에 비쳐 보였을 때 원래 우측에 자리하고 있었던 스크루지 후작의 초상화가 왼쪽에도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

    그뿐만이 아니다.

    금화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다 간장이나 콜라 같은 검은 액체를 부으면 얕게 파인 곳은 연한 갈색이 되고 깊게 파인 곳은 진한 검은색이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림의 각 부분별 채도와 농도를 측정해서 일정한 결과값이 나온다면 진짜, 그림이 엉성하고 군데군데 채색이 어색하게 되어 있다면 가짜다.

    또한 이는 만져 봐도 촉감으로 판단이 가능한데 위조화폐는 지폐와 주화를 불문하고 테두리 촉감이 조금 더 미묘하게 부드러운 경향이 있다.

    복사되는 와중에 데이터 코드가 닳아서 마모된 탓이다.

    나는 유다희에게 재차 경고했다.

    “모든 위조지폐에는 비슷한 특징이 있어. 일련번호의 알고리즘이 모두 동일한 것으로 적용되어 있다거나, 전혀 다른 특수기호들이 숨어 있다거나. 어디 한 군데에는 분명 ‘가짜’라는 표시가 되어있다는 소리지. 범인들이 구분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재수 없게 잡혔을 경우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니까…….”

    나는 육안으로 위폐를 구분해 낼 수 있는, 어쩌면 현 시점에서는 유일할지도 모르는 능력자.

    더군다나 내게는 든든한 조력자가 함께 있었다.

    <이어진>

    LV: 99

    HP: 990/990

    호칭: 불사조의 대리인(특전: 선택)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무조건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게 해 주는 사기적인 능력.

    나는 선택 특성을 발동했다.

    …핏!

    이윽고, 눈을 감았다 뜨자 시야에 붉은 실이 보인다.

    불사조의 힘을 받아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붉은 실.

    그것은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금화 중 오른쪽을 향해 뻗어 있었다.

    “오른쪽이 진짜군.”

    나는 오른쪽의 금화를 밑으로 내려놓은 뒤 새로운 금화를 올려놓았다.

    여전히 붉은 실은 오른쪽을 향해 있다.

    “이것도 진짜네.”

    나는 금화를 아래로 내려놓고 또다시 새로운 금화를 오른쪽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핏!

    눈앞에서 이글거리던 붉은 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이 경우에는 둘 다 가짜라는 소리지.”

    둘 다 가짜 돈이니 50%의 확률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자 선택 특성도 사라진 것이다.

    “와아, 그러면 주화와 지폐를 최고 액수로 가져와서 한 번에 구분하면 되겠다! 일일이 구분 안 해도 되게!”

    유다희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계약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시위대에게 가서 금화와 지폐를 가능한 최고액으로 가져오라고 하면 된다.

    현실에서는 1원, 10원, 50원, 100원, 500원, 1000원, 5000원, 10000원, 50000원밖에 없는 것이 화폐 단위이지만 게임 속에서야 화폐 단위를 편의에 맞게 재설정할 수 있다.

    1억 골드, 10억 골드짜리 주화도 액수만 기입하면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거기에 위폐가 섞여 있는지 아닌지는 얼마든지 구분해낼 수 있는 것이다.

    뭣하면 계속해서 액수를 쪼개 가면서 색출해 내도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통화가치 자체가 하락하는 상황에서의 수출, 수입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기에 나는 유다희의 무역을 일단 보류시켰다.

    “아무리 위조지폐를 구분해 낼 수 있다고 해도 통화가치 자체가 하락하는 것은 못 막아. 한동안 문을 봉쇄하고 수출, 수입을 통제해. 위조지폐는 중앙대륙에서부터 퍼지고 있으니 시의 금고를 잘 지키고 있으면 위폐가 섞여 들어오는 일은 없을 거야.”

    “그, 그래? 역시 그렇겠지?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진짜?”

    “……아니, 미안. 사실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어. 너무 정신이 없다 보니 요새.”

    유다희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한다.

    뭐 아무튼.

    시청 밖에 진을 치고 있던 시위대들은 하나같이 풀죽은 어깨로 돌아가야 했다.

    “고인물, 저 괴물 같은 인간. 어떻게 위조지폐까지 구분하는 거야.”

    “맞아. GM도 아직 감별법을 못 찾았다는데.”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알 수 있다니, 무슨 스킬 같은 건가?”

    “아니 진짜 그냥 고이고 고여서 저러는 것 같던데?”

    염소수염을 비롯한 다른 연금술사 유저들, 그리고 그 주위에서 시위를 지켜보고 있던 유저들은 재빨리 게임 커뮤니티에 접속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와;;;방금 그레이시티에서 대박인 거 봤다

    -고인물이 위조지폐감별하고 있더라ㅋㅋㅋㅋㅋㅋ

    -도랏멘진짜ㅡㅡ못하는게 뭐냐 그 변태는

    -옷입는거 빼고 다 잘하는 듯...

    -그 ㅅㅂㄹ 때문에 젤리 못구했다...어카냐 이제...

    -근데 ㄹㅇ말하는거 들어보니 설득력있던데?? 근데 따라는 못할 듯...

    -와 이 시국에 위조지폐를 구분한다고???

    -완전 대박 스킬인데...

    .

    .

    내가 위조지폐를 구별해 내는 것 목격했던 이들이 하나 둘씩 커뮤니티에 후기글을 남긴다.

    그 여파는 엄청났다.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내가 로그아웃해 게임 캡슐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받은 메일 +9,999>

    엄청난 속도로 울리고 있는 메일함의 알림음.

    나는 황급히 메일함의 알림음을 OFF로 설정했다,

    하지만 알림음을 껐다고 해서 메일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인물 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ㅠㅠㅠ!!!>

    <길드거래소에서 위폐 감별 의뢰드립니다 보수는 섭섭지 않게...>

    <포션 자동판매기 제조 길드입니다 제발 위조주화 감별하는 법좀 알려주세요...>

    <환전소 NPC들 목숨 한번 살리신다고 생각하시고 제발...>

    <저희 주식이 폭망했어요ㅠㅠㅠ일가족이 다 유토러스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

    .

    .

    수많은 메일들이 나의 도움을 애걸하고 있다.

    하지만 내 몸이 여러 개도 아니고 그들을 모두 일일이 도와주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내가 미처 그 메일들을 확인하기도 전에.

    -띠링!

    핸드폰으로 메일 하나가 왔다.

    그것은 고인물도, 마동왕도, 썩은물도 아닌 ‘이어진’ 개인에게 직접 온 메일.

    <자니? 뭐해?>

    마치 헤어진 전남친에게 오는 듯한 이 메시지.

    하지만 보낸 이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위압감은 감히 비할 바가 아니다.

    -윌리엄 링크 윌슨(William Linked Wilson)-

    전 세계를 주름잡는 초국적거대기업 뎀 유니버스.

    그곳의 이사도, 사장도 아닌 총수 본인이 직접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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