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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49화 (849/1,000)
  • 849화 처리반 (2)

    앙신 조디악이 어떤 인물인가?

    능히 이 세계에 멸망을 드리울 수 있는 존재, 제대로 미친 사이코이자 살아 움직이는 재앙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하지만 남세나는 그런 조디악을 마치 고양이가 생쥐 다루듯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는 남세나가 퍼붓는 공격을 마주한 뒤에야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실로 폭력적인 재능.

    남세나가 내지른 톤파, 이 육각의 쇠막대기가 나를 향해 쏘아져 온다.

    …따앙!

    나는 두 자루의 깎단을 들어 겨우겨우 그것을 막아 내었다.

    튜더의 엑스칼리버에조차 밀리지 않았던 내 몸이 뒤로 쭈욱- 밀려나간다.

    숨을 참고 만근추 특성으로 몸무게를 늘려도 소용없었다.

    펄럭- 차르르르륵!

    검은 피풍의 밑으로 흑색의 쇠사슬들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톤파의 손잡이 끝부분에 달린 쇠고리, 그리고 그 끝에 걸려 있는 쇠사슬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진다.

    턱!

    그 쇠사슬은 남세나의 손목에 연결되어 있었다.

    사슬을 잡아당겨 톤파를 회수한 남세나는 그 즉시 허리를 틀어 뒤편에 있는 조디악의 몸을 후려갈겼다.

    콰콰쾅!

    이번에는 조디악이 입고 있는 갑옷에서 불똥이 튄다.

    “끅!?”

    조디악이 입에서 핏물을 게워내었다.

    조디악은 분명 입은 데미지를 할부로 천천히 나눠받는 나태의 악마성좌 벨페골의 능력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렇게 데미지를 입고 있다는 것은 남세나의 물리공격력이 그만큼 무시무시하다는 것.

    “쓰레기 놈. 진실을 토해 낼 때까지 죽여주마.”

    남세나는 한 자루 톤파를 귀신같이 다루고 있었다.

    심지어 톤파의 손잡이 부근에는 길이가 얼마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긴 쇠사슬이 장착되어 있어 근거리 공격과 원거리 공격이 둘 다 가능하다.

    그녀는 톤파를 집어던지고 회수하기를 반복하며 나를 저 멀리 날려 보냈고 아직도 스턴 상태에 빠져있는 조디악의 가슴팍을 발로 짓밟아 찍어 눌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죽여 줄게. 내 오빠 일에 대해 입을 열 생각이 들 때까지.”

    그녀는 톤파를 세로로 세우고는 그대로 조디악의 머리통을 박살내려 했다.

    하지만 조디악은 약삭빠르게도 나를 향해 구조 요청을 보낸다.

    “도와주시게, 벗은 벗이여!”

    놈은 재로 이루어져 있어 푹신한 바닥을 이용해 남세나의 발에서 빠져나왔고 그 즉시 내 쪽으로 달려온다.

    남세나는 그런 나를 한 패로 간주했고 그 즉시 조치를 취했다.

    쾅! 콰쾅! 콰콰콰쾅!

    톤파에서 뿜어져 나온 보라색 아우라가 내 주변을 초토화시켜놓고 있었다.

    나는 오즈의 죽음비늘을 세워 그것을 막아 냈고 남세나에게 데미지를 되돌려 보냈다.

    “거 적당히 좀 합시다. 나는 얘랑 같은 편 아니라니까요.”

    “그럼 방금 내가 들었던 대화는 뭐지?”

    “오해지 뭐야!”

    “그렇다면 조사를 똑바로 받으면 될 일이다. 캐릭터 상태창이랑 착용 아이템, 그 외 창고나 살인자들의 탑 등 맵 곳곳에 은닉해 둔 아이템들까지 싹 다 GM에 제출해.”

    재벌들이 소환조사 및 세무조사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런 건가?

    이렇게 된다면야 나도 강경대응이다.

    “어쩔 수 없지 그럼.”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뭐지?”

    “뭐긴 뭐야.”

    실력행사지.

    이렇게 된 이상 조디악도 처리반도 이참에 다 죽여 버리는 게 낫겠다.

    내가 태도를 바꾸자마자 주변의 공기도 바뀐다.

    나는 죽음룡 오즈와 부패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아우라를 방출했다.

    쩍- 쩌적-

    주변 필드가 갈라져 터지고 곳곳에 녹색 역병의 기운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남세나가 휘파람을 불었다.

    “……호오, 진짜 해 보겠다는 건가. 나랑?”

    당연히 자기가 이길 것이라 전제를 까는 말투.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바로 급반전된다.

    퍼펑!

    브라키오의 힘이 실린 신발은 발바닥으로 바닥을 박찬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몸을 남세나의 코앞까지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그런 남세나의 코끝까지 날아든 것은 바로 두 자루의 깎단!

    스치기만 해도 수십 분 안에 사망 확정인 흉기다.

    “……큭!?”

    남세나는 뒤로 머리를 확 젖혔고 그 기세 그대로 바닥을 두 번 굴러 빠졌다.

    하지만 그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조디악이 만들어 낸 지옥불 방벽이었다.

    쿠르르르륵!

    남세나는 검은 피풍의에 옮겨 붙은 불길을 툭툭 털어 꺼 버렸다.

    “……쳇!”

    그래도 등에 열상 데미지가 들어가긴 들어간 모양이다.

    남세나는 이내 경계심이 잔뜩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녀의 톤파에 맞아 찢겨나간 옆구리에 방금 전 잿빛용을 잡고 얻은 화톳불 목걸이를 가져다 대었다.

    츠츠츠츠츠츠……

    나의 상처가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된다. 과연 S+급 목걸이는 뭔가 달라도 다르군.

    “…….”

    “…….”

    나와 남세나는 서로의 힘을 가늠하며 대치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경악의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일개 유저가 어떻게 이 정도까지 강해진 거지? 역시 조디악과 한패라서 버그의 힘을 나눠받은 건가. 잘도 지금껏……!”

    “마음대로 생각하쇼.”

    한편 나 역시 남세나의 힘을 가늠키 어려워 아직까지는 견적을 내고 있는 상태.

    싸워서 이길 것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승률을 따지자면 한 97% 정도려나.’

    원래 97%라고 하면 비어 있는 3%가 보이고 3%라고 하면 더 채워나갈 97%가 보이는 것 아니겠나.

    97%: 불안한데?

    3%: 할 만해!

    게이머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확률의 마법이기에 그렇다.

    나는 혹시나 일어날 3%의 변수를 경계하며 남세나를 견제해 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오-오오오오오!]

    난데없이 벌어진 이변이 남세나를 강타했다!

    …콰콰쾅!

    굉음이 일며 남세나의 몸이 한쪽으로 확 내팽개쳐진다.

    “윽!? 뭐야 이건 또……!”

    톤파와 완갑으로 몸을 방어한 그녀는 저 멀리 날아가 잿더미에 파묻힐 수밖에 없었다.

    한편,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허공을 올려다본다.

    잿빛용 로도피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 거대한 몬스터가 다시끔 몸을 일으켜 난동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에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몸을 일으킨 로도피스의 몸뚱이 위에는 조디악이 빙글빙글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놈은 죽어 나자빠진 로도피스의 몸을 무덤사역으로 되살려 언데드 해골병으로 만든 것이다!

    “잘려나간 목 꿰메느라 고생했지 뭐야. 푸스스스……”

    조디악은 로도피스를 되살리기 위해 온 마나통을 다 쥐어짰던 모양인지 얼굴색에 평소보다 훨씬 더 헬쓱해져 있었다.

    놈의 마나통이 완전히 텅 비어 버렸다는 증거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글우글하던 해골병들은 어느새인가 전부 다 역소환된 상태였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결국 잿빛용의 시체를 먹는 것이 목표였군.”

    놈의 스킬 숙련도가 설마 고정 S+급 몬스터의 시체마저 되살릴 수 있을 정도였던가?

    그것을 판단하지 못한 것은 나의 실책이었다.

    ……뭐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 다음이야 뻔한 일이다.

    “푸스스스스! 이제 볼 장 다 봤다. 죄다 죽어라!”

    조디악은 언데드 로도피스를 조종해 그 거대한 앞발로 지면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그곳에는 나도 있었고 말이다.

    콰콰콰콰쾅!

    지면이 뒤집어지며 매캐한 잿가루가 피어오른다.

    나는 여벌의 심장으로 HP를 회복하는 동시에 조디악이 날뛰는 것을 피해 도망쳐야 했다.

    그러자 나와 같은 방향으로 회피한 남세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묻는다.

    “……같은 편이 아니었어?”

    “아까부터 그렇다고 했잖아 이 여자야!”

    남세나와 처리반, 그리고 나와 유다희와 그레이 시티의 경비병들. 또 조디악과 매드독 일당이 삼파전 양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기묘한 침묵이 잠시 전장을 떠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조디악이었다.

    “자기가 믿을 것은 자기가 정해. Help your self야.”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

    나일까 남세나일까.

    누가 됐든 간에, 조디악은 그저 낄낄 웃을 뿐이다.

    …후다닥!

    조디악이 눈짓하자 김정은과 방씨 형제가 황급히 언데드 로도피스의 머리통 위로 올라탔다.

    “이 자식들! 어딜 도망가려고!”

    남세나가 또다시 톤파를 들어올린다.

    콰쾅!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나 샤를페로 대분화구를 뒤흔든다.

    하지만 이미 조디악은 언데드 로도피스를 조종해 허공으로 떠오른 뒤였다.

    “푸스스스스…… 조만간 또 볼 일이 있을 거야.”

    동시에, 그는 바닥을 향해 아이템 하나를 내던진다.

    폭발물인 줄 알고 황급히 방어 태세를 취하는 남세나와 처리반들.

    하지만 나는 그 아이템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굳이 경계하지 않았다.

    -<카르마의 일기장> / 주문서 / S

    한 사람의 ‘업보(業報)’가 기록된 주문서.

    제일 먼저 소유한 이의 업보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어 더 이상 무언가를 적어 넣을 여백은 없을 것 같다.

    ※원 소유자: 조디악 번디베일

    -특성 ‘싸움 나락’ 사용 가능

    유다희가 이 아이템을 줍는 즉시 나를 향해 가져왔다.

    “어어? 야, 이거 그때 그거 아니야!?”

    그녀 역시도 살인자들의 탑에서 봤던 적이 있는 아이템.

    그것은 과거 벨페골의 악몽 속에서 만났던 ‘앙신 조디악’을 죽이고 얻은 아이템이었다.

    이것은 진짜 조디악이 겪었던 악몽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게이트를 생성한다.

    그 안에서 내가 봤던 것은 분명 의사 시절의 조디악, 그리고 누미노제를 추출하기 위한 실험의 실험쥐로서 살아야 했던 시절의 조디악, 그리고…….

    나는 옆에 있는 남세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분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남세나가 보였다.

    이윽고, 그녀는 나를 향해 묻는다.

    “그 아이템은 뭔가요?”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이 안에 당신이 그토록 쫓던 조디악의 과거가 있다고? 당신의 오빠가 무한대의 죽음을 반복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조디악이 만들어 낸 사기극일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진실 혹은 거짓.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곳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관 속에서는 용과 악마가 끊임없이 대립한다.

    인간은 이 용과 악마의 사이에 놓인 중간자(中間子). 흑과 백. 어느 한 쪽에 속할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나는 지금껏 게임에서는 ‘용과 악마’, 현실에서는 ‘윌슨과 조디악’ 중 어느 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은 채 홀로 남아 있던 회색분자.

    지금껏 양자택일의 선택을 유예해 왔던 인간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시류는 바뀔 것이다.

    세상의 폭풍에서 언제까지고 나 홀로 고고할 수는 없는 일.

    나는 태도를 확실히 하기로 했다.

    내가 믿을 것은 내 스스로 정하기로.

    …풀썩!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카르마의 일기장’을 바닥에 던졌다.

    검은 책이 바닥에 떨어지자 매운 잿가루가 뭉게뭉게 올라온다.

    “…….”

    남세나는 그 책을 줍지 않은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 가지 대답밖에는 해 줄 수가 없다.

    “Help your self.”

    무엇을 믿을지는 남세나, 그녀가 스스로 선택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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