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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48화 (848/1,000)
  • 848화 처리반 (1)

    [왕! 왕왕! 켁… 켁켁! 왕!]

    원래대로 돌아온 강아지는 샤를페로 대분화구의 화산재 때문에 켁켁 기침을 하면서도 야무지게 짖어대고 있었다.

    아마도 나와 조디악을 경계하는 듯싶었다.

    “푸스스스스…… 제 주인을 지키려는 건가? 쬐깐한 놈이 뭘 할 수 있다고.”

    조디악은 강아지를 비웃었지만 눈빛은 어째 꽤나 부드러워져 있었다.

    나 역시도 펫과 주인의 감동적인 해후를 지켜보고 있다.

    전후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애써 얻은 S+급의 아이템을 F급 펫에게 쓰는 것을 보면 저 할머니가 강아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누구든지 이 세계를 사랑하고 깊이 몰입하는 이라면 호감이 가기 마련이다.

    그때.

    김정은이 말했다.

    “야, 변태. 잠시 휴전하는 게 어때?”

    내가 눈썹을 찡그리자 그녀는 재차 말을 잇는다.

    “보시다시피, 우리도 지금 꼴이 말이 아니라서. 그리고 저 할머니는 우리와 상관도 없이 휘말리게 생겼잖아. 산을 벗어날 때까지만이라도 손을 잡자고.”

    뭐, 그도 그렇다.

    조디악과 싸우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고 저 할머니와 강아지도 휘말릴 수 있겠지.

    유다희와 경비병들은 나의 의사에 따르겠다는 태도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일단은…….”

    굳이 손을 잡자는 표현까지 쓸 것 있나? 임시 휴전 정도로만 해도 괜찮겠지.

    하지만.

    나는 휴전 선언을 끝까지 말할 수 없었다.

    “……손을 잡는다고?”

    나와 조디악 사이를 가로막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코끝을 스치는 쌉쌀한 냄새. 이 박하향은 익숙한 것이다.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조디악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같은 방향을 돌아본다.

    대분화구의 정상, 땅에 떨어져 죽은 잿빛용 로도피스의 날개뼈 위에 우뚝 서 있는 존재가 있었다.

    GM 처리반.

    도깨비 가면 아래 검은 피풍의를 걸친 인영들이 전깃줄 위 까마귀 떼처럼 쭉 늘어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 서 있는 작은 체구의 도깨비.

    나는 그녀가 처리 2반의 반장 남세나임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가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으스스한 음성으로 내게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고인물이 조디악 번디베일과 손을 잡는다?”

    아차. 나는 고개를 돌려 저 건너편에 있는 김정은을 바라보았다.

    김정은은 싱긋 웃으며 윙크를 날린다.

    “어머, ‘손을 잡는 광경’을 들켜 버렸네?”

    “…….”

    심계에 당했다. 어쩐지 굳이 ‘손을 잡는다’라는 표현까지 쓰더라니. 나로 하여금 처리반과 대립하게 할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막 아니라고 해명을 하려는 순간.

    “오우, 친구! 우리가 동맹을 맺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저런 방해꾼들이 난입해 들다니. 매우 유감이야.”

    조디악이 갑작스레 친한 척을 하며 다가와 나를 껴안으려 하는가 싶더니…….

    콰콰콰쾅!

    바로 마법서를 펼쳐 도깨비들을 향해 지옥불을 끼얹어 버린다.

    “푸스스스스! 이 재수 없는 망령들, 지긋지긋하게도 따라다니는구나!”

    조디악의 급습에 몇몇 처리반들은 미처 피하지 못한 채 쏟아지는 불꽃 세례를 그대로 맞아야 했다.

    하지만.

    …펑!

    조디악이 내뿜는 시커먼 불의 뱀은 순식간에 허리가 끊겨 나간다.

    남세나가 손에 쥔 톤파로 강력한 찌르기를 날려 불길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이다.

    그르르르륵…….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난 채 사그라드는 불의 뱀.

    그 커다란 구멍 안에서 남세나가 엄청난 기세로 튀어나온다.

    “죽여 버린다, 번디베일.”

    지독한 살기가 뚝뚝 묻어 떨어지는 목소리.

    나는 남세나와 카페에서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왜 그렇게 조디악에게 집착합니까?’

    ‘……제 선임자 때문이죠.’

    그때 나눴던 대화 이후, 나는 벨페골의 영역인 ‘악몽의 땅’으로 향했었다.

    ‘카르마의 일기장’이라는 S급 주문서를 통해 갈 수 있는 인스턴트 던전으로 무투룡의 싸움 나락과도 맞닿아 있는 곳.

    나는 그곳에서 분명 남세나의 오빠로 추정되는 인물도 만났었다.

    Code: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한때 ‘누미노제 1팀(지금은 처리반으로 이름이 바뀐)의 팀장이었던 몸.

    조디악이 지껄였던 바에 의하면 그는 윌슨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비참하게 폐기되었다.

    말 그대로 토사구팽(兎死狗烹), 사냥개에서 실험용 쥐로 전락해버린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조디악의 악몽 속에 NPC로 등장해 끊임없이 고통받던 남세혁, 그가 남겼던 대사들이 몇 개 떠오른다.

    [말하자면 원 포 올(one for all), 올 포 원(all for one)인 거야.]

    [계속. 회귀 같은 거지.]

    [무한은 아니야. 뇌에서 분비되는 누미노제가 말라붙으면… 폐기처분 되는 것이지.]

    [느껴져.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이제는 완전히 말라 버린 게.]

    [아마도 이게 내 마지막 플레이겠지.]

    [……이제 끝내고 싶어. 자.]

    자신을 죽여 달라며 송곳으로 목을 들이밀던 모습.

    푸스스스- 부서지는 것 같던 그의 웃음소리.

    나는 말라붙은 피로 얼룩져 있던 남세혁의 모습과 지금 분노로 길길이 날뛰고 있는 남세나의 모습을 겹쳐 보고 있었다.

    한편, 조디악은 그런 것에는 딱히 관심 없다는 듯 남세나를 상대하며 연신 낄낄 웃고 있다.

    “그러고 보니, 네 오라비도 나처럼 웃었었지? 푸스스스스…….”

    “입 닥쳐!”

    도발에 넘어가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남세나가 조디악을 무섭게 뒤따라간다.

    나는 그 틈을 타서 슬쩍 뒤로 빠지려 했으나.

    “안 되지.”

    “더 이상 움직인다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조디악과 동맹을 맺는 정황이 포착된 이상…….”

    수많은 처리반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유다희의 두 눈썹이 찌푸려진다.

    “이것들이 지금 선량한 유저한테 뭐 하는 짓들이야?”

    하지만 조디악에 관련된 일은 뎀 유니버스 본사가 직접 개입할 정도로 큰 사안.

    처리반들은 나를 쉽게 놓아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귀하와 조디악이 파티 사냥을 한 정황이 발견되었습니다.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

    “저는 그냥 막타만 먹으러 온 건데요?”

    “방금 전 김정은이 ‘손을 잡자’고 말한 것에 ‘좋다’라고 대답하는 것도 저희가 들었습니다.”

    “……후, 그건.”

    이쯤 되면 말이 통하지 않는군.

    처리반의 조사를 받게 된다면 캐릭터 정보와 아이템 등을 전부 다 제출한 뒤 검사를 받아야 한다.

    아마도 그 와중에 고인물과 마동왕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고 이는 카오 유저 처리 과정에 따라 처리 결과와 신상 공개로 이어져 업데이트 목록에 공지될 가능성이 컸다.

    결국 나는 성실히 조사에 임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뜻이다.

    그것을 안 유다희 역시도 경비병들을 이용해 처리반들과 대립하고 있었다.

    “선량한 유저를 건드는 거니까 카르마 수치도 안 오르겠지? 어디 한번 실력껏 해 봐.”

    유다희가 가지고 있는 일신의 무력은 상당한 수준.

    레비아탄을 잡고 얻은 그녀의 외뿔창 아래 그레이 시티의 닳고 닳은 베테랑 경비병들이 창과 방패를 들고 포진한다.

    나 역시도 무거운 입을 뗐다.

    “적대할 생각은 없지만, 나를 강제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겁니다. 그 경우에는 나도 힘을 쓸 수밖에 없어요.”

    내가 정색을 하자 처리반들 역시도 움찔한다. 하기야, 나를 상대로 위축되지 않을 게이머가 어디에 있겠어.

    ……그러나.

    “어이가 없군. 힘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하나 있었다.

    나의 협박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 사람이.

    …쿵!

    처리반들의 앞으로 착지한 남세나.

    그녀가 어느새 도깨비 가면마저 벗어던진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당탕!

    내 옆으로 피떡이 된 채 추락한 덩어리가 하나.

    조디악, 그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피딱지 말라붙은 입꼬리를 비튼다.

    “푸스스스스…… 여전히 염병하게 강하구나. 내일모레 특성까지 먹었는데도 이런 데미지라니.”

    나는 조금 놀라야만 했다. 천하의 조디악이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밀린다고?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한 김정은이 이를 갈며 말했다.

    “변태 씨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처리 2반의 반장은 일 잘하기로 소문났거든. 처리반에서 일 잘하는 게 뭐겠어?”

    처리반에서 일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 있다?

    그 말인즉슨 PK에 아주 도가 텄다는 뜻이다.

    그것도 미치광이들이 우글거리는 카르마 유저들을 상대로 하는 것에!

    김정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모든 플레이어들 중 공식적으로 가장 강한 플레이어는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라고 하지만…… 그것은 GM을 제외하고 말하는 것이지.”

    상식적으로 그게 당연할 것이다. 게이머 랭킹에 GM이 포함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사실 GM들도 플레이어에 가까워. 그들도 계정이 있고 캐릭터가 있으며 아이템을 착용하고 살아가는 게이머들이니까. 만약 GM들까지 플레이어로 쳐서 공식 랭킹에 합산한다면…….”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전 세계 공식 통합 랭킹 1위,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아마 그 위에 남세나가 있을 것이다.

    “……튜더 이상 가는 피지컬과 템빨에 게임 숙련도도 이해도도 모두 최상. 폭력과도 같은 재능에 복수심이라는 동기, 그로 인한 노력치까지 갖춰졌다 이건가.”

    그들은 공식 랭킹 위에 존재하는 하늘 밖의 하늘, 천외천(天外天).

    애초에 최고의 재능을 가진 이들만 선발해 키워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레벨업을 시키고 그 외 온갖 훈련과 적응을 마친 뒤 아이템들마저 최상급 옵션으로 맞춰 착용하고 다니는 규격 외의 플레이어들.

    그들이 바로 처리반이다.

    ……그리고 남세나는 그곳 처리반의 난다긴다하는 괴물들 사이에서도 정점에 올라 있는 존재!

    실제로, 현실에서 봤던 그녀와 게임 속에서 본 그녀의 아우라는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기세, 뿜어내는 위압감만으로도 주변의 지형들이 비틀려 보인다.

    남세나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나와 조디악을 향해 손짓했다.

    “시간 없으니까 한꺼번에 덤벼.”

    주인공만이 할 수 있는 대사를 거침없이 읊어 버리는 그녀의 패기에 나도 조디악도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현존하는 모든 플레이어들 중 사실상 최강으로 통하는 존재와 싸워 볼 기회는 이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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