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44화 (844/1,000)
  • 844화 신데렐라 (1)

    샤를페로 대분화구 7부 능선의 어느 한 고점.

    편잭과 조디악 일당은 어색한 거리를 유지한 채 하나의 거대한 몬스터와 대치하고 있었다.

    화산재 와이번들을 거느리고 등장한 인간형태의 마물.

    안면을 덮고 있는 검은 삼각두건과 그 아래로 드리워진 칼날 같은 이빨들.

    전신을 뒤덮고 있는 비늘은 용비늘에 견줄 만큼 견고해 보인다.

    <용옥(龍獄)의 고문기술자> -등급: S / 특성: 어둠, 지진, 능지처참(陵遲處斬), 하수인, 1:1, 싸움광, 야수, 뺑소니, 만근추, 전율, 고속이동, 고속재생

    -서식지: 불타는 땅, 제 1 용옥.

    -크기: 15m

    -드래곤은 레어를 짓고 주변을 미궁처럼 만들어 놓았다.

    보물을 탐내다가 이 미궁에 갇힌 자들은 용의 하수인, 이 고문귀들에 의해 벌을 받는다.

    제1 용옥의 파수꾼.

    두 개의 커다란 송곳을 양 손에 꼬나 쥔 이 불길한 마수는 샤를페로 대분화구 정상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김정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 클베에서도 애먹였던 놈이네. 날개도 없는 게 빠르기는 무지 빨라서는.”

    “조심혀. 저놈을 맞상대해서는 곤란해. 한번이라도 스치면 무조건 죽게 된다.”

    편잭 역시도 이 몬스터를 잘 아는 모양.

    무수히 많은 죽음으로 다져진 경험치이니만큼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조디악은 피식 웃었다.

    “고인물, 그 자식은 이걸 어디서 잡아서는 게임 시작부터 저 송곳을 들고 다녔을까. 하여간 또라이야 그놈도. 이해가 안 돼.”

    “네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께 이상하구먼.”

    편잭이 살짝 핀잔을 준다.

    이윽고.

    용옥의 고문기술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력, 스피드, 재생력.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초엘리트 몬스터.

    그중에서도 스피드는 정말 발군의 영역이다.

    “야잇! 마법으로 맞히기 진짜 어렵네 저놈! 궁수들 저격도 피하겠는데!?”

    김정은은 연이어 빗나가는 화염구들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용옥의 고문기술자는 김정은의 광역 염계마법까지 스피드 하나로 피해 버린 뒤 곧장 이쪽으로 쏘아져 왔다.

    바닥을 부수고 튀어 오른 파편이 또다시 절반으로 갈라지고 또다시 절반, 그렇게 4등분, 8등분, 16등분, 32등분으로 쪼개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초도 되지 않는다.

    찰나를 찰나로 비틀어 쪼개 버리는 그런 미친 속도의 영역!

    용옥의 고문기술자가 찔러 넣는 송곳 두 개가 나란히 조디악과 편잭을 노린다.

    하지만.

    …퍼펑!

    이내 용옥의 고문기술자의 머리 한 부분에서 시커먼 지옥불이 피어올랐다.

    조디악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송곳을 피해 옆으로 몸을 틀며 바로 마법을 캐스팅했던 것이다.

    “푸스스스스…… 하도 많이 당해 본 공격이라 그런가, 익숙하잖아?”

    고인물의 깎단에 찔려 죽었던 게 벌써 몇 번이냐? 조디악은 도트뎀 송곳 피하는 데에는 아주 도가 텄다.

    한편 편잭 역시 칼을 빼들어 고문귀의 송곳을 막아 냈다.

    그녀는 가벼운 체중, 날랜 몸놀림에 용옥의 고문기술자의 힘까지 역이용해 뒤로 빠졌고 그래도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저놈은 일정 영역을 벗어나지 않어. 그냥 내빼는 게 상책이여.”

    “어어? 할매! 같이 가! 망할! 성격 하고는! 좀 같이 가자고!”

    조디악은 허겁지겁 부유 특성을 발동해 하늘로 떠오른다.

    용옥의 고문기술자는 편잭의 말마따나 일정 거리 동안만 무섭게 추격해 오다가 어느 경계부터는 따라오지 않고 원래 리젠되었던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쪽의 피해라고는 미끼로 던진 해골병 십 수 마리가 파괴된 것이 전부였으니 싸게 먹힌 결과이다.

    그것을 본 편잭은 눈을 가늘게 떴다.

    “도망칠 때 수고는 덜었으이.”

    “푸스스스- 누군가한테 미끼취급 당한 건 처음…… 아니 두 번째로군.”

    조디악은 스산한 눈빛으로 편잭을 노려보지만 그녀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는다.

    이윽고, 편잭과 조디악 일당은 샤를페로 대분화구의 정상 ‘화산쇄설류 길’의 끝에 서게 되었다.

    그들의 발아래로는 자욱한 잿가루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저 아래 거대한 분화구 절벽이 놓여 있었다.

    “눈발이 더 심해지는디.”

    편잭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녀의 손바닥 위로 눈송이 하나가 떨어져 쌓인다.

    차갑지도 않고 녹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눈이 아니라 재인 탓이다.

    손바닥 위에 떨어져도 녹아서 물이 되지 않는, 차갑지도 따듯하지도 않은, 그저 맵고 건조할 뿐인.

    아무리 외형이 비슷하다고 해도 재는 결코 눈이 될 수 없다.

    “할매의 좀비 개도 그런 것 아닐까? 암만 해 봐야 진짜 개가 될 수 없는…… 읍읍!”

    조디악이 편잭을 향해 빈정거렸지만 그것은 이내 김정은의 소리 차단 마법에 의해 가로막혔다.

    “미친놈아! 왜 자꾸 저 사람 속을 긁어 놔! 싸워서 이기지도 못할 게!”

    “푸스스스- 열 받잖아. 태도가. 그리고 누가 못 이긴다는 거야. 단가가 안 맞아서 안 죽이는 거지.”

    조디악과 김정은이 티격태격 싸우고 있을 때.

    -띠링!

    <‘화산쇄설류 길’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편잭>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음은 모두의 이목을 잡아끈다.

    편잭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맵은 진입했다는 것은 시험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니 긴장혀.”

    “뭐? 시험?”

    “내가 해 줄 말은 여기까지구먼. 각자 살 길을 찾들 허라고.”

    편잭은 조디악 일행과 파티를 맺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내 잿빛 안개 너머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저 제멋대로인 할망구를 봤나. 셰르파로 좀 써먹어 볼까 했더니만…….”

    조디악이 이를 뿌득 가는 순간.

    -띠링!

    <자정 5분 전>

    <‘화산쇄설류 길’에 쇄설류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쇄설류는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흐릅니다>

    기분 나쁜 알림음들이 추가로 뜬다.

    동시에.

    쿠드드드드드드……

    샤를페로 대분화구가 떨리는가 싶더니 안에서 엄청난 양의 화산재들이 솟구쳐 올랐다.

    잔불이 남아 있어 엄청나게 뜨거운 화산쇄설류가 대분화구 주변의 미궁과도 같은 길을 따라 분출된다.

    화산쇄설류 길을 넘어 제 1용옥을 거쳐 쭉쭉 범람하는 화산재들. 그것은 저 멀리 분화구 기슭에 있는 그레이 시티의 하늘까지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콜록! 콜록! 으아 미쳤다! 숨을 못 쉬겠어!”

    김정은이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로 외쳤다.

    맵고 따갑고 건조한 잿가루가 뜨겁고 거센 바람에 실려와 살갗을 때린다.

    곳곳에 피멍과 화상이 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폭풍이었다.

    큰 체구의 방씨 형제마저 허공에 몸에 몇 번인가 뜰 정도로 센 바람, 심지어 진짜 폭풍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이런 자연재해가 자그마치 24시간 동안 몰아닥치는 것이다!

    “푸스스스스! 가지고 온 마스크로 잘 막으라고. 잿가루가 눈에 많이 들어가면 영구실명 와서 캐릭터 삭제해야 할지도 몰라!”

    조디악은 불의 벽을 일으켜 상승기류를 만들어 냈고 재의 폭풍을 어느 정도 막아 세웠다.

    김정은은 끊임없이 바람과 물을 생성해 허공에 뿌려 잿가루를 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버티는 것만으로도 고역인 이 극한의 환경을 더욱 더 끔찍하게 만드는 존재들이 가세했다.

    우-우우우우……

    온몸이 불타버린 듯한 사람들.

    재로 만들어진 인형(人形)들이 폭풍 넘어 분화구 아래에서 천천히 기어 올라온다.

    <재투성이 망자 ‘상드리용(Cendrillon)’> -등급: A / 특성: 어둠, 언데드, 하수인, 잔불, 매운바람

    -서식지: 제 1용옥, 잔불지대, 화산쇄설류 길

    -크기: 2m

    -한때 용을 쓰러트리겠다며 호언장담했을 정도로 용맹했던 영웅들.

    이곳 샤를페로 대분화구까지 먼 원정을 왔던 그들은 전부 잿더미 속으로 삼켜져 잔불에 절여져야 했고 그 결과 이런 모습이 되었다. 이 망자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대분화구 깊숙한 곳으로 끌고 가 자신의 동료로 삼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숫자는 그야말로 부지기수(不知其數)!

    일일이 눈으로 보고 세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매운 재 때문에 두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푸스스스스…… 그 할망구가 해골병들을 유난히 잘 잡던 이유가 있었구먼. 이런 것들이랑 지금껏 줄창 힘겨루기를 해 왔으니 당연할 수밖에.”

    이런 재 폭풍 속에서 위험등급 A랭크의 망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것도 다음 날 자정까지 24시간 동안 1분 1초도 쉬지 않은 채로!

    “……진짜 극한은 극한이구만.”

    조디악은 시커멓게 변한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이미 온몸은 죄다 재에 찌들었다.

    코와 입, 눈과 귓속까지 파고든 재 때문에 사계가 완전히 틀어막혔을 뿐만 아니라 호흡까지 곤란하다.

    전신의 습기를 빨아들이는 재는 심지어 잔불의 온도까지 머금고 있어서 지독하게도 뜨거웠고, 입자마저 거칠어 바람에 날아와 피부를 때릴 때마다 유리가루에 베이는 듯한 통증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바위나 고목들마저 뿌리 뽑아 날려버리는 강맹한 태풍은 그야말로 분화구 속에서 지옥이 토해져 나오는 듯한 광경을 연출해 낸다.

    그때쯤 해서, 조디악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무투룡을 잡고 온 보람이 있구만.”

    이윽고, 조디악의 등에 어울리지 않는 흰색 날개가 뻗어 나왔다.

    -<무투룡 카프카타렉트의 군단기 날개> / 망토 / S+

    한평생 전쟁과도 같은 삶을 살아온 이의 상징.

    그 무한한 투쟁심은 지켜보는 이의 마음마저 고양시킨다.

    -이동속도 +200%

    -파티원 스탯 증가 +100%

    ※아군 몬스터의 경우 증가폭이 5배로 적용됩니다

    아군에게 버프를 걸어 주는 날개.

    하지만 이 아이템의 진가는 ‘몬스터’를 상대로 해야 발휘된다.

    우드득! 뿌득!

    이윽고, 조디악의 명령에 따라 잿더미 밑에서 기어 올라온 고대화석 해골병들의 외관에 변화가 생겼다.

    <고대화석 해골병 정예부대> -등급: A / 특성: 어둠, 암석, 언데드, 하수인, 백전노장

    -서식지: 죽음길 나락, 만마전 외성, 썩고 불타는 땅

    -크기: 2m

    -땅 속에서 오래 묵어 화석으로 변한 해골 병사.

    지력에 의해 숙성되어 더욱 더 단단해졌지만 석유로 변해 흐물흐물해진 일부 신체부위에서는 지옥의 불길이 타오른다.

    조디악이 부리는 고대화석 해골병들의 위험등급이 한 랭크 상승했다.

    열 배로 강해진 해골병들이 재투성이 망자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퍼석! …파삭! …폭삭!

    해골병들과 잿더미 망자들이 뒤섞여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조디악의 해골병들은 골망(骨網)을 구성해 폭풍을 막아 냈고 그대로 스크럽을 짜 재투성이 망자들의 진격을 막는다.

    분화구에서 올라오는 망자들과 조디악이 일으키는 해골병들의 수는 거의 박빙이었다.

    “나는 군단이다.”

    조디악은 네 자릿수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수의 해골병들을 한 손으로 부리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연신 지옥불 마법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역시나 ‘앙신(殃神)’ 그 자체, 김정은은 새삼스러운 전율과 함께 그런 조디악을 서포트하고 있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잿빛 안개로 가득 찬 저 나락 밑에서 기어올라오던 망자들도 어느덧 주춤한다.

    이윽고.

    …뎅! …뎅! …뎅! …뎅! …뎅! …뎅! …뎅! …뎅! …뎅! …뎅! …뎅! …뎅!

    밤 12시. 어디서 울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괘종시계 소리가 열두 번 울려 퍼졌다.

    지난 24시간 동안 단 1분 1초도 쉬지 못하고 싸워야 했던 조디악 일행은 비로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뼈로 만들어진 제단, 불타고 있는 보석 호박.

    공물을 받기 위해 나타난 거대한 무엇인가가 분화구 너머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것은 바로 호박.

    이 치열한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호박마차가 이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뭐야 저건?”

    김정은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클로즈 베타 때도 보지 못했던 페이즈.

    하지만.

    “……드디어 나오셨군.”

    어느새 잿빛바람을 타고 바닥에 착지한 편잭만은 칼을 반쯤 뽑아든 채 호박마차를 바짝 경계하고 있었다.

    이윽고.

    호박마차의 문이 열리며 이곳 샤를페로 대분화구의 지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늘씬한 8등신의 여성체, 전신을 뒤덮고 있는 매끄러운 비늘, 아름답게 쭉 뻗은 꼬리와 다리, 그리고 발에서 빛나고 있는 유리구두까지!

    마치 신데렐라와도 같은 아름다운 자태로 강림한 존재.

    잿빛 용 ‘로도피스(Rhodopis)’의 등장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