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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41화 (841/1,000)

841화 저장(Save)하지 못했던 기억 (2)

편귀연은 그 길로 고물상으로 갔다.

리어카 가득 실린 폐지를 본 고물상 할배는 폐지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이구, 뭐 이리도 많이 모았어?”

한참이나 폐지를 분류하던 그는 이내 깜짝 놀란 듯 편귀연을 불렀다.

“이봐 편씨, 여기 돈 들어 있는데?”

고물상 할배가 폐지 속에서 집어든 것은 오만 원권 두 장.

하지만 편귀연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폐지여.”

“엉?”

“폐지라구 그거.”

그 말에 고물상 할배는 별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잉 그려? 진짜 돈 같이 생겼는디. 가짜인가 부네.”

그는 오만원권 두 장이 섞여 들어간 폐지들을 무게로 단다.

그리고 이내 편귀연에게 백원짜리 몇 개를 건넸다.

편귀연은 그 동전들을 전대에 넣었다.

그녀가 고물상을 나오자마자 향한 곳은 근처의 한 캡슐방.

낡은 모델의 게임캡슐들을 저렴한 가격에 중고로 판매한다는 광고가 붙어 있는 곳이었다.

“오락기 하나 줘.”

가게 사장은 편귀연이 가져온 돈을 보고 깜짝 놀란다.

얼추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는지라 그렇다.

“아이고, 할머님. 전에 이 돈 장례비로 쓰신다고 그러시지 않았나요? 갑자기 왜 게임 캡슐을…….”

약간의 걱정이 묻어나는 그의 말에 편귀연은 건조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게 내 관짝이여.”

*       *       *

[쨘! 다 됐습니다!]

신관이 편귀연에게 내민 것은 흰 털을 가진 한 강아지였다.

편귀연은 펫을 분양받자마자 펫의 외형 변화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다양한 선택지가 뜬다.

-띠링!

<펫의 외형을 꾸며 주세요>

<품종, 털 색깔, 털 길이, 눈 색깔……>

<한번 정해진 펫의 외형은 다시 바꿀 수 없습니다>

<신중하게 선택해 주세요>

.

.

편귀연은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품 안에 들어온 흰 강아지를 커스터마이징한다.

“어디 보자. 네 털 색깔이 어땠더라, 다리 길이는, 혀 모양은, 눈동자는…….”

편귀연은 강아지를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입을 꽉 다문다.

한참 동안이나 먹먹하게 서 있던 그녀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늙어서 치매가 왔나. 벌써 네 얼굴이 생각이 안 나부려야. 사진이라두 한 장 남겨둘 것을.”

곧 늙어 죽을 늙은이가 영정 사진 말고 뭐가 필요하냐며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던 것이 이토록 후회가 될 수가 없었다.

감정은 또렷한 데 반해 기억은 점차 흐릿해져 간다.

그녀는 한 땀 한 땀 펫의 얼굴을 바꿔나간다.

아주 정밀하게, 때론 오랫동안 기억을 더듬어 가며.

*       *       *

[왕! 왕왕! 컹!]

커스터마이징이 끝난 뒤. 강아지는 편귀연의 기억 속 그 녀석과 꼭 닮게 되었다.

더 이상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도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길 정도로 꼭 닮은 펫이었다.

[헥헥헥헥-]

주인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따르는 것 역시도 그 녀석과 비슷했다.

편귀연은 강아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이것아.”

[헥헥헥헥- 끼이잉……]

비록 가상현실 속 데이터에 불과하지만 편귀연은 많은 위안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강아지를 데리고 마을 근처를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강아지는 편귀연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왔다.

둘은 아침 광장의 분수대에서 물을 마셨고 점심의 들판에서 바람을 쐬기도 했으며 달 호젓하게 뜬 호숫가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생활을 반복했다.

편귀연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대로 레벨을 조금만 더 올려서 근처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이 녀석과 행복하게 살아야지.

다른 강아지 펫을 입양해서 짝도 만들어 줄 것이다.

맛있는 음식 아이템도 구해다 줄 생각이었다. 녀석이 좋아서 깡충깡충 뛰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그러나. 인생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던가.

전에도 말했듯, 이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편귀연이라고 해도 일상을 불쑥 비집고 들어오는 개입에는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다.

가령 제가 살던 필드를 벗어나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떠돌이 몬스터가 이에 속했다.

저 멀리 악의 고성 쪽에서 기어 내려온 좀비 하나가 한가로이 과일을 채집하고 있던 편귀연의 등 뒤를 덮쳤다.

<반쯤 문드러진 자> -등급: C / 특성: 어둠, 언데드, 독

-서식지: 악의 고성, 자살 숲, 썩고 불타는 땅.

-크기: 1.5m.

-산 채로 어둠에 잡아먹힌 마을 주민. 한때는 평범한 NPC였을 것이다.

약하기 그지없는 좀비.

하지만 사냥 활동을 하지 않아 레벨이 낮은 편귀연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몬스터였다.

“어이쿠! 뭐여 이 괴물은!”

생전 처음 보는 끔찍한 외형의 괴물인지라 편귀연은 화들짝 놀라 뒤로 쓰러진다.

그리고 그 앞을 막아선 존재는…….

[컹! 컹컹! 아르르르르……]

아주 작은 흰 털뭉치.

녀석은 제 주인의 앞을 막아선 채 앙칼지게도 짖어댄다.

그리고 그 결과에 반전은 없었다.

…콱!

강아지는 좀비에게 물려 버렸다.

“어? 좀비다! 우리가 놓친 놈이 있었나?”

“이게 왜 여기까지 내려왔지?”

“아아, 아까 우리가 레이드 하다가 남겼나 보네.”

지나가던 몇 명의 플레이어가 그곳을 지나간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좀비를 처치한 뒤 편귀연을 일으켜 주었다.

“와아- 이런 할머니도 게임을 하시네, 할머니! 레벨도 낮으신 것 같은데 그냥 초보자 마을에만 계세요. 나오면 저런 괴물들 우글우글해요.”

플레이어의 말에 편귀연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좀비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숨을 헐떡이고 있는 강아지가 그녀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모험가들이 말했다.

“어이구, 펫이 오염됐네. 얼른 버리십쇼 그거.”

“다행이다, 싸구려 펫이네. 할머니 그거 몇 백 골드면 사요.”

“요즘 누가 이런 펫 데리고 다니지? 할머니, 제가 테이밍한 몬스터 한 마리 드릴까요? 필드보스 출신이라 엄청 다부진데.”

하지만 편귀연은 고개를 젓는다. 이 강아지를 꼭 치료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자 플레이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 신전에 가면 원래 상태로 치료할 수 있기는 한데…….”

“할머니, 근데 새 펫 사는 게 돈이 더 적게 들걸요?”

“맞아요. 포션비나 축복비가 몇 배는 더 나와요. 그냥 새 펫으로 사시지.”

이어지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편귀연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바로 신전으로 향했다.

“어이구 이 녀석아. 아직 살날도 창창한 녀석이…… 왜 그랬니. 차라리 내가 감염되었으면 치료받고 말 것을…… 차에 치인다고 죽기밖에 더 하나.”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게임 속? 아니면 현실 속?

흐려지는 시야와 어지러워지는 머릿속. 그녀는 하염없이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찾아간 신전에서도 신관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새로운 펫을 분양받으시는 편이 5,822골드 더 저렴합니다.]

편귀연은 고개를 젓고는 축복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신관들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상태이상 회복의 축복 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띠링!

<저장된 데이터가 없습니다>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해 덧입힙니다>

<펫의 커스터마이징과 이름이 초기화됩니다>

<펫을 새롭게 커스터마이징 해 주세요>

<펫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세요>

<……10초 전>

<……9초 전>

<……8초 전>

.

.

심상치 않은 알림음이 떴다.

D급 이하 생명체의 데이터 코드까지는 서버에 저장되지 않는단다.

즉, 편귀연의 강아지는 사라지고 자동으로 새로운 강아지의 데이터 코드가 생성된다는 뜻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편귀연은 황급히 축복을 취소했다.

그리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묻자 한결같이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네? 그야 당연하죠, D급 몬스터 데이터까지 하나하나 다 백업해두면 서버 터져요.”

“음? D급 펫의 데이터 코드 회복? 한번 오염되면 불가능하죠. 뭐 고위 랭크 몬스터들이야 오염되었다고 해도 백업 데이터가 있는데, 그런 양산형 싸구려 펫까지 원상태 그대로 살려내는 건 좀…… 온 세상 전체를 다 백섭시키지 않는 한 그건 좀 무리일 것 같은데요?”

“뭐 또 모르죠. 시간을 되돌리는 아이템이나 오염된 바이러스만을 완전 분리해 낼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모를까. 근데 그런 엄청난 히든 피스를 누가 D급 보급형 펫한테 쓰겠어요. 미치지 않고서야.”

편귀연이 좀비로 변한 개를 끌어안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자 몇몇 플레이어들이 말했다.

“아니 무슨 펫이길래 그렇게 원래 데이터 코드까지 살릴라고 해? 능력치 비슷하면 그냥 적당히 새 거 사지.”

“뭐 별로 좋은 개도 아니네 보니까.”

“이런 개 저기 펫샵 가면 드글드글해요. 똑같은 놈으로 하나 사세요.”

하지만 편귀연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린다.

“세상에 똑같은 개가 어디에 있어?”

좀비로 변한 채 으르렁거리는 강아지.

세상 모든 것들을 적대시하며 이빨을 세우는 것이 꼭 누구와 많이 닮았다.

그때.

신전 계단에 앉아 있던 어떤 이가 말했다.

“음? 하급 펫의 데이터 코드에서 오염 코드만을 추출해 분리하는 방법? 물론 있죠.”

특이하게도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채 신전 계단에 앉아 있던 젊은 청년.

편귀연의 두 귀가 번쩍 뜨인다.

평소였다면 정신 빼놓고 다니는 변태 놈이라며 멀리했을 일이지만 지금은 너무 다급했다.

“총각. 그, 그 방법이 뭔가?”

“에이, 아니다. 근데 사실상 그냥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돼요.”

“그래도! 방법만이라도 알려 주게.”

그러자 알몸의 젊은이는 턱을 짚고 잠시 생각한다.

“……으음. 뭐 게임 밸런스에 큰 영향은 없겠지? 기껏해야 할머니 한 명인데 뭐.”

그는 마치 큰 선심이나 쓰듯, 그리고 무슨 거대한 비밀이나 푸는 양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했다.

“저~기로 가시다 보면 그레이 시티라는 곳이 나오는데…… 거기서 또 저~ 뒤로 넘어가시다 보면 샤를페로 대분화구라고 있거든요? 거기에 사는 거대한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할머니의 펫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을지도…… 근데 뭐, 고정 S+급 몬스터라서 사실상 못 잡는다고 보시면 돼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한 변태의 말.

이내 덜렁덜렁거리며 일어난 남자는 그 말을 마친 뒤 어디론가 바삐 사라졌다.

“그레이… 시티?”

편귀연 역시도 좀비 강아지를 끌어안은 채 신전 계단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레벨 8, 알몸 남자의 레벨 32.

게임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벌어진 사소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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