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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40화 (840/1,000)
  • 840화 저장(Save)하지 못했던 기억 (1)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뻥-

    그날. 동네에서 시끄럽게 놀던 한 떼의 어린아이들이 공을 잘못된 방향으로 걷어차는 순간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어어어?”

    축구화를 신은 아이가 당황해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은 흡사 발이 달리기라도 한 양 움직여 한 집의 대문 밑 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에이 씨, 내가 빼 올게.”

    공을 찬 아이는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공을 찾으러 간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들이 우려스러운 기색으로 녀석을 말린다.

    “야. 그냥 공 버리자.”

    “저기 욕쟁이 할매 있는 집이잖아.”

    “갔다간 엄청 혼나. 울 엄마가 저 집 근처에도 가지 말랬어. 치매 걸려서 성격 더러워진 늙은이라구.”

    하지만 축구화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다 늙은 할매가 뭐가 무섭냐? 치매도 왔다며?”

    녀석은 피식 웃고는 슬레이트 지붕과 기울어진 콘크리트 담장 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녹슨 철문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공아~ 어딨니~ 나오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철문 아래를 엿보던 아이.

    순간. 녀석은 자기를 쳐다보는 시선 하나를 느꼈다.

    “히익!?”

    철문 사이로 싸늘한 시선이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편귀연 할머니가 그곳에 서 있었다.

    “으아아! 마귀할망구다! 공 그냥 버려!”

    축구화 소년이 부리나케 도망치자 다른 아이들도 기겁을 하며 도망친다.

    “……애새끼들이란.”

    편귀연은 도망치는 아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끄러운 것은 질색이다.

    편귀연은 마당에 놓인 폐지 수집용 리어카를 확인한 뒤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마루에 앉아 마당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펑펑 쏟아져 내리는 눈. 보고 있노라면 퍽 따듯해 보이지만 만져보면 사실 차갑기 그지없는.

    더군다나 리어카를 끌고 다녀야 하는 편귀연에게 있어서 길거리에 수북하게 쌓여 검게 물드는 눈덩이들은 아주 고역이다.

    “옘병. 그만 좀 와라.”

    눈에게 하는 말일까, 아니면 사람들, 세상에게 하는 말일까?

    편귀연은 대문 밑 틈으로 보이는 방문 판매원의 신발코를 보며 띵동-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대리님, 이 집은 거르세요~ 고약한 늙은이 집이에요.]

    밖에서 다른 판매원이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발소리도 대문 밖으로 멀어져 간다.

    편귀연은 비로소 고요해진 마당을 홀로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녀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렇게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물론 편귀연에게도 작고 포동포동하던 어린 시절, 해맑고 순수했던 소녀 시절, 풋풋한 사랑에 떨며 얼굴 붉히던 청춘 시절, 치열했던 중년 시절의 삶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것들은 격정의 불길처럼 활활 타들어간 뒤, 한 사람의 삶이 사그라드는 이 자리에는 맵게 탄 잿가루만이 남아 아직 덜 꺼진 불씨를 품고 있을 뿐이다.

    “부모님. 언니 오빠들, 친구들, 그리고 우리 영감…… 다들 먼저 가 버렸구먼.”

    이 세상에 홀로 남은 편귀연. 그녀는 지금껏 주변의 모든 이들이 떠나는 것을 배웅해 왔다.

    늙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것도 이럴 때는 큰 도움이 된다.

    “다 떠나보냈으니 이제 나만 남았으이.”

    더 이상 아무도 기다릴 사람이 없다. 서운하고 슬프면서도 어딘가 후련하고 홀가분한 느낌도 들었다.

    정은 붙여 봐야 떼기만 힘든 것. 이제 모든 정리는 끝났으니 자기의 인생만 잘 마무리하면 된다.

    편귀연은 언젠가 자기가 예기치 못하게 쓰러지게 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방 안 잘 보이는 곳에 꽤나 많은 현금을 놓아두고 있었다.

    발견한 사람이 장례비로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남에게 폐 끼칠 수야 있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며 혼자 조용히 중얼거리는 편귀연.

    그러던 그녀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아궁이.

    어제부터 장작을 넣지 않아 잿가루만 소복하게 쌓인 그곳에 뭔가 허연 것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으응. 아까 그 꼬맹이들이 차고 놀던 공이구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끄러운 것은 질색이다. 그것도 애새끼들이 지껄이는 욕설이나 호들갑만큼 듣기 싫은 것이 또 없다.

    공 찾는답시고 몰래 들어왔다가 리어카를 망가트리거나 돈을 훔쳐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저 공을 밖으로 내버려야겠다. 편귀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궁이 근처로 간 편귀연은 그것이 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끼잉…….’

    앓는 소리를 내며 바들바들 떠는 흰 털뭉치.

    축구화 족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등과 엉덩이, 온통 재투성이가 된 털.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편귀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베라먹을 놈들 같으니.”

    편귀연은 골목에서 축구를 하던 아이들을 향해 욕지꺼리를 내뱉었다.

    뭐 아무튼.

    눈앞에서 작은 핏덩이가 바들바들 떨며 죽어가는데야 어쩔 도리가 있나.

    편귀연은 냉장고에 있던 계란 두 알을 삶아 내왔다.

    “이거라도 먹고 나가거라.”

    강아지는 매운 재 때문에 잘 뜨지도 못하는 눈으로 계란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물 한 접시까지 야무지게 싹싹 핥아먹은 녀석의 배는 이내 곧 통통해진다.

    강아지는 이내 편귀연에게 다가와 얼굴을 부비려 했다.

    하지만.

    “아서라. 재투성이가 어딜 디럽구로.”

    편귀연은 그대로 강아지의 뒷목을 잡아 들어 올린 채 대문 밖으로 툭 내려놓는다.

    아까 그녀가 중얼거렸던 말마따나, 정은 붙이긴 쉽고 떼기란 어려운 것이니까.

    하지만 강아지는 몸집이 작아서 그런가 대문 밑으로 자꾸 다시 기어들어온다.

    그리고 어떻게든 편귀연의 몸에 자신의 몸을 부비적거리기 위해 꾸준히, 열심히 노력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강아지를 보며 편귀연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바닥에 발랑 드러누워 핑크빛 배와 발바닥을 내보이는 녀석.

    조그마한 혀를 빼물고 헥헥거리는 그 작고 통통한 녀석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웃음이 난다.

    어차피 하도 작아서 대문 밑 틈으로 기어들어오는 것을 막을 도리도 없었다.

    “네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까.”

    눈앞의 핏덩이와 자신의 수명을 조용히 견주어 보는 편귀연이었다.

    *       *       *

    세월은 쏜살같이 흐른다.

    편귀연은 고물상 할배의 배웅을 받으며 빈 리어카를 끌고 나온다.

    “요즘 꼬박꼬박 나오네 편씨. 얼굴도 많이 좋아졌는디. 먼 일 있으?”

    고물상 할배의 말에 편귀연은 피식 웃는다.

    “이 나이에 좋은 일이 뭐에 있당가.”

    “허허허- 왜 읎어? 손주놈들 커가는 재미에 사는 거…… 아차.”

    고물상 할배는 아무 생각 없이 지껄이다가 아차 싶어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편귀연의 처지가 뒤늦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대로라면 그냥 대꾸도 하지 않고 떠났을 편귀연은 건조하게나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뭐, 약간은 알겠구먼,”

    그 말에 고물상 할배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편귀연은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거의 하루치 일당에 해당하는 가격의 캔 간식까지 사서 말이다.

    저 멀리 대문이 보인다.

    낑낑- 낑- 헥헥헥헥-

    이제 막 골목의 초입에 들어섰을 뿐인데 벌써부터 문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요 털뭉치 녀석. 벌써부터 야단이냐. 저 주려고 간식 사 온 줄은 또 으떻게 알구.”

    편귀연은 배시시 웃으며 문을 연다.

    그러자 어느새 부쩍 커진 강아지가 편귀연의 발과 무릎에 얼굴을 부빈다.

    캔을 따서 줬지만 강아지는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편귀연의 손등과 팔뚝을 핥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슥. 맨날 구박만 하는 늙은이가 뭣이가 그래 좋다구. 어여 캔이나 가 무라. 혀 비지 않게 조심허구.”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웃는 편귀연.

    그녀는 이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구 보니까 너 덩치가 많이 커졌구나. 장 나가서 새 집 하나 사야겄다.”

    전에 쓰던 집은 벌써 작아서 강아지가 들어가면 코끝이 살짝 삐져나온다.

    편귀연은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 전대를 챙겼다.

    “시장 가자, 강생이야.”

    강아지는 당연하게도 그런 편귀연의 뒤를 쪼르르 따라온다.

    이제 이대로 시장에 가서 큼지막한 개 집을 하나 살 것이다.

    돈은 약 5만 원 정도가 들 것이고 그 정도 지출이야 모아둔 돈이 약간 있으니 괜찮다.

    집을 사서 리어카에 싣고 온 다음에는 오래 전 임자를 잃은 오리털 이불 하나를 꺼내서 안에 넣어 주어야지.

    편귀연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골목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인생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던가.

    이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편귀연이라고 해도 일상을 불쑥 비집고 들어오는 개입에는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다.

    가령 과속방지턱을 타넘어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돌진해 오는 저 고급 승용차가 바로 이런 경우에 속했다.

    앞유리로 엿보이는 운전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듯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댄 채 낄낄 웃고 있었다.

    전방을 전혀 보고있지 않은 모양새.

    “어엇?”

    편귀연은 깜짝 놀라 리어카를 내려놓고 몸을 웅크렸다.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비명소리, 빠르게 마모되는 타이어의 소음, 튀기는 돌과 퉁겨져 날아가는 주차금지 팻말 등등이 느리게, 하지만 또렷하게 느껴질 뿐.

    ‘여기까지인가.’

    편귀연의 머릿속에는 체념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그동안 많이 준비했던 마지막이다. 이런 식으로 끝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늘 준비해 온 터라 담담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강아지야.’

    자기가 이렇게 먼저 가면 누가 남아서 그 녀석을 챙겨 줄꼬.

    생의 마지막 순간에 든 생각이 이런 것이라니.

    …….

    바로 그때.

    편귀연의 눈앞을 가로막는 존재가 있었다.

    쏜살같이 튀어나오는 하얀 빛살.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차와 편귀연의 사이에 끼어든다.

    그리고.

    …쾅!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끼이이이익-

    차는 아슬아슬하게 편귀연의 앞에서 멈췄다.

    골목 앞 웅성거리는 사람들.

    이윽고 차에서 운전자가 내린다.

    그는 표정을 잔뜩 구긴 채 바닥에 침을 한번 탁 뱉었다.

    “어우, 깜짝이야. 갑자기 튀어나오고 지랄이고. 으악, 내 범퍼!”

    고급 승용차 앞부분이 움푹 찌그러졌다.

    수리비만 해도 소형차 한 대 값은 나올 것 같은 견적.

    하지만 그딴 것 따위는 편귀연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강생아!”

    편귀연은 골목 귀퉁이로 날아가 쓰러져 있는 강아지를 안아들었다.

    이 작은 것이 뭘 어쩌겠다고 그 큰 차로 뛰어들었을꼬. 이 작은 몸으로 뭘 어쩌겠다고, 뭘 어쩌겠다고.

    숨을 헐떡이던 강아지는 그대로 붉게 물들어간다.

    흰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고 있는 골목에 하나의 황혼이 저물고 있었다.

    그때.

    “할매. 이거 어떻게 할 거요?”

    운전자가 편귀연에게 묻는다.

    그는 재수 옴 붙었다는 듯 툴툴거리며 말했다.

    “이거 할매 개죠? 보험사 부를까, 아니면 현금으로 줄래요? 아 씨X, 거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그 말에 대신 대답한 것은 골목 사람들이었다.

    “아니 당신이 먼저 골목에서 차를 급하게 몰았잖아!”

    “아저씨 여기 일방통행인거 몰라요?”

    “나 여기 아트박스 사장인데, 거 듣자하니까 나이 드신 분한테 말이 심하시네.”

    많은 이들의 언성이 높아지자 운전자는 약간 주눅이 든 듯 말했다.

    “아, 알았다고 알았다고. 별 망할 개새끼 같으니. 나는 차 찌그러졌고 할매는 개 죽었으니까 그럼 서로 재물손괴 된 걸로 퉁칩시다. 뭐 별로 좋은 개도 아니네 보니까.”

    그 말에 편귀연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 뭐라고 했능가?”

    그녀의 말에 운전자는 의아한 기색으로 돌아본다.

    그리고 방금 자기가 뭐라고 했었는지 고민하다가 이내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퉁치자고요.”

    “그 다음에.”

    “에? 내가 뭐라고 했지? 아!”

    운전자는 축 늘어져 있는 강아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런 개 저기 시장통 가면 드글드글해요. 똑같은 놈으로 하나 사슈.”

    그는 편귀연의 행색과 리어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지갑에서 오만 원권 한 장을 꺼내주었다.

    “그래도 뭐 나름 살아 있는 거 죽였다고 마음이 좀 찜찜하긴 하네. 여- 도리는 다해야지.”

    “…….”

    “아 뭐해요. 가서 쌔 거 사슈. 똑같은 놈으루다가.”

    하지만 편귀연은 그 돈을 받지 않았다.

    다만 늙어서 잘 올라가지 않는 팔을 바들바들 떨며 물을 뿐이다.

    “세상에 똑같은 개가 어디에 있어?”

    하지만 늙고 노쇠한 노인의 목소리는 격한 감정에 파묻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운전자는 표정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하던 끝에 오만 원권 한 장을 더 꺼내 편귀연의 폐지 리어카에 꽂아놓았다.

    “원, 노인데. 어차피 잡아먹으려고 키우던 거면서 욕심은……,”

    그리고 차를 몰고 골목을 붕- 떠나 버린다.

    편귀연만이 홀로 눈 쌓이는 골목에 남아 강아지를 끌어안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 모든 것들은 다 하나뿐이 없는 거여.”

    그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흰 입김이 함박눈을 물기로 녹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펄럭-

    그녀의 폐지 리어카 위로 누군가가 들고 있던 전단지를 버리고 간다.

    “…….”

    편귀연은 문득 그 전단지를 바라보았다.

    알록달록한 광고 문구. 평소였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그것이 편귀연의 뿌연 망막에 아로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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