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37화 (837/1,000)
  • 837화 샤를페로 대분화구 (2)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보안 규정에 동의하지 않은 계정입니다]

    .

    .

    [동기화 과정이 안전하지 않습니다]

    .

    .

    [동기화 완료!]

    로그인을 알리는 환한 빛무리.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귓가에 들리는 알림음과 함께 한 사람이 필드 위로 떨어져 내린다.

    “푸스스스스…….”

    뒤로 넘긴 올백머리,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 눈물에 번진 마스카라처럼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

    조디악 번디베일.

    그는 눈앞에 있는 산맥을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푸헷취! 크학!?”

    그 즉시 입에서 피를 토해 낸다.

    한참을 쿨럭거리던 그는 입에 잔뜩 들어간 잿가루를 뱉어내며 투덜거렸다.

    “뭔 놈의 산이 죄다 재투성이야.”

    심지어 그냥 재도 아니다.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콧속과 목구멍 안쪽을 죄다 할퀴고 긁어 놓을 정도로 입자가 거친 재다.

    조디악이 현재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샤를페로 사화산.

    게임 세계관의 설정 상 죽은 지 아주 오래된 화산으로 세상에서 제일 거대한 분화구가 있는 장소였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하늘에서 펑펑 함박눈이 떨어져 쌓인다.

    회색 설산은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아 고요했다.

    …풀썩!

    조디악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눈길을 헤집고 앞으로 나아간다.

    분명 눈에 파묻히다시피 한 상태였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거대한 설산에 쌓인 눈들은 전부 화산재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타고 남은 흰 재.

    함박눈처럼 쏟아져 내리는 이 화산재들은 모든 것들을 조용하게 삼켜 버린다.

    뼈만 남은 채 말라죽은 고목, 앙상한 나뭇가지들 위에 소복하게 쌓인 화산재들은 소리 없이 덩치를 불려나가고 있었다.

    “……화산재 다 치우면 산등성이 높이가 수백 미터는 낮아지겠군.”

    조디악은 낄낄 웃고는 서둘러 산을 오른다.

    이윽고, 그의 뒤로 몇몇 사람들이 따라붙었다.

    “아오 씨! 접속을 했으면 기다려야지 왜 먼저 출발해! 길 잃으면 책임질 거야!?”

    김정은. 그녀가 방철우, 방철해 형제를 데리고 황급히 조디악의 뒤를 따라온다.

    이윽고 그들은 자기들의 키보다 훨씬 더 많이, 수북하게 쌓인 화산재들의 구역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화산재들을 치우며 간다기보다는 화산재들의 지층에 구멍을 파며 가는 것에 가깝다.

    때론 거대한 아가리를 드러내는 크레바스나 화산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절벽이 드러나 길을 방해했지만 조디악은 꿋꿋하게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푸스스스…… 분명 여기 어딘가에 그 ‘회색분자’ 녀석이 처박혀 있단 말이지.”

    바로 고정 S+급 몬스터 ‘잿빛용’을 잡기 위해서이다.

    김정은이 기관지로 들어가는 화산재에 켁켁대며 물었다.

    “아오 씨, 꼭 그 회색분자를 잡아야 돼? 그냥 바로 ‘본게임’에 들어가면 안 되는 건가?”

    그녀가 말하는 본게임이란 바로 2.5차 대격변을 뜻한다.

    돈 복사 버그.

    길드거래소의 신용 시스템을 악용하여 어마어마한 양의 게임머니를 만들어 낸 김정은 일당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안의 모든 화폐들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것은 나아가 현실의 주식시장에도 엄청난 파란을 몰고 올 것이다.

    하지만 조디악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아직 오지 않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럼 언젠데 그 때가!”

    “푸스스스…… 잿빛용을 잡고 난 다음이지.”

    조디악의 두 눈이 서슬퍼런 빛을 내뿜었다.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소용없어. 돈이라고 해 봐야 게임머니인데 환전이 막히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

    “이름이 남세혁이었던가? 네 남자친구의 복수를 하고 싶다면 그만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살벌한 힐난에 김정은의 두 눈썹이 확 치켜 올라간다.

    그녀는 살기가 뚝뚝 묻어 떨어지는 어조로 조디악을 다그쳤다.

    “뒈지고 싶지 않다면 다시는 그 입에 세혁이 이름 올리지 마.”

    “푸스스스스…… 아쿠 무셔라.”

    “농담 아니야.”

    김정은의 말에 조디악은 입가의 웃음을 지운다.

    그리고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

    “그렇게 이빨 세울 거면 애초에 내가 아니라 다른 쪽에 붙어야 했던 것 아닌가?”

    “……?”

    “뭘 모르는 척해. 처리 2반의 반장 말이야.”

    “너 진짜!”

    김정은이 두 손을 뻗어 마법을 캐스팅하려는 순간!

    …퍼억!

    조디악의 몸이 갑자기 ㄱ자로 꺾였다.

    퍼석- 파스스스스……

    매운 잿가루를 풀썩이며 뒤로 나가떨어지는 조디악.

    그 때문에 괜히 마법을 캐스팅하기 직전이던 김정은만 뻘쭘한 상황이 되었다.

    “……어? 나 아직 마법 안 썼는데?”

    김정은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끄아아아악!”

    조디악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김정은이 방씨 형제를 데리고 절벽 아래를 보니 조디악이 맨몸뚱이로 버둥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조디악은 상태이상 ‘언데드’에 걸려 있었다.

    피부는 썩어서 푸르딩딩하고 눈알 하나는 빠져 있는데다가 곳곳의 문드러진 살점 아래로 썩어가는 내장과 뼈다귀가 그대로 엿보인다.

    그 모습을 본 김정은이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천하의 앙신이 저게 뭔 꼴이래냐!?”

    “닥치고 빨리 포션이나 내놔!”

    조디악은 낑낑거리며 절벽을 기어 올라온다.

    그는 자신을 좀비로 만든,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목에 이빨을 박아 넣은 채 대롱거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좀비 강아지> -등급: F / 특성: 하수인, 어둠, 언데드

    -서식지: 전 대륙

    -크기: 0.5m

    -흔해빠진 개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습이다.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좀비 강아지.

    조디악은 회복 물약을 먹은 뒤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아직도 이빨을 드러낸 채 버둥거리고 있는 좀비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몸뚱이, 탁하게 풀려버린 눈알. 희던 털은 재투성이가 되어 이미 회색빛이 배어 버렸다.

    몸에서는 썩은 악취가 풀풀 풍긴다.

    “푸스스스- 뭐야, 초보자 마을에서 깔짝거리는 놈들이 액세서리용으로 데리고 다니는 펫이잖아? 이 싸구려 펫이 왜 여기에 있지?”

    D급도 아닌 F급 몬스터. 원래는 그보다도 하잘것없었을 초보자용 펫 한 마리.

    너무 흔해빠진데다가 능력치도 약해서 이제는 초보자 마을에서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펫이다.

    주로 사냥을 하지 않고 마을을 거닐기를 좋아하는 뉴비 유저들이 잠시 애완용으로 만지작거리기 위해 구매하는 싸구려 펫.

    한데 이 싸구려 펫이 왜 이런 먼 곳의 초고렙 사냥터에 돌아다닌단 말인가? 그것도 좀비가 된 채로?

    김정은 역시도 이 상황이 신기한지 고개를 갸웃한다.

    “이상하네. 샤를페로 대분화구에는 잔불지대나, 화산쇄설류 길, 매운재 크레바스나 제 1용옥 같은 위험한 구역들이 득실거리는데. 이 작은 강아지가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혼자 왔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으니 아마 누군가가 펫으로 데려왔다가 이곳에 버렸다고 보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놓았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구역에서 사냥을 할 정도면 꽤나 고렙 유저였을 텐데 왜 굳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강아지를 펫으로 데려왔단 말인가?

    심지어 이 필드는 지형이 너무 불안정한데다가 근처에 펫 전용 소모품을 조달할 만한 인가가 없는지라 펫을 데리고 사냥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환경도 아니다.

    고수라면 모를 리가 없는 점이었다.

    또한 이곳 샤를페로 대분화구에는 딱히 언데드라 할 만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될 일도 없다.

    만약 옆 필드에서 어쩌다 넘어온 언데드 몬스터가 있다고 해도 이 강아지는 물리거나 긁혀서 감염되기 전에 즉사해 버릴 만큼 작고 하잘것없는 존재.

    “……흐음.”

    싸구려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한 이 작은 강아지가 왜 이런 살벌한 사냥터에 있는지에 대해 의아해하던 조디악.

    하지만 이내 그의 눈동자에 어린 이채는 빠르게 식어 간다.

    “에이, 알 게 뭐야. 이딴 쓰레기 따위.”

    조디악은 마법을 쓸 필요도 없다는 듯 발을 높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좀비 강아지를 한 방에 밟아죽일 요량이다.

    하지만.

    조디악은 발을 끝까지 내뻗지 못했다.

    “……울어라, 지옥참마도.”

    어딘가에서 흘러오는 음산한 목소리.

    조디악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사뿍!

    칼빛이 일어 허공을 두 조각으로 베어 가른다.

    조디악은 순식간에 잘려나가는 발목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여 이건 또?”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의 조디악.

    그는 뒤로 쓰러지면서도 고개를 들어 자신을 공격한 칼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앙신은 과연 앙신.

    시선처리보다 빨랐던 것은 마도서를 펼쳐 언데드 해골병들을 소환하는 일이었다.

    <고대화석 해골병> -등급: B+ / 특성: 어둠, 암석, 언데드, 하수인, 백전노장

    -서식지: 죽음길 나락, 만마전 외성, 썩고 불타는 땅

    -크기: 2m

    -땅 속에서 오래 묵어 화석으로 변한 해골 병사.

    지력에 의해 숙성되어 더욱 더 단단해졌지만 석유로 변해 흐물흐물해진 일부 신체부위에서는 지옥의 불길이 타오른다.

    화석으로 된 열 구의 해골병들은 손에 든 냉병기를 휘두르며 적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스핏! 퍽- 쩍!

    휘둘러지는 참격은 눈 깜짝할 새에 화석 해골병 열 구를 잿가루로 바스라트려 버렸다.

    그것을 본 조디악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고대화석 해골병들이 B+등급의 몬스터들이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 쉽게 바스라지는 것 아닌가?

    그것도 처음 제작했을 때에 비해 위험등급이 1랭크나 상승한 녀석들인데?

    “……그럴 리가? 원래 해골병들이 살던 필드가 아니어서 스탯이 조금 감소했나?”

    조디악이 얼굴을 찌푸린 채 투덜거린다.

    열 구나 되는 화석병이 생각지도 못하게 파괴된 것이 그만큼 충격이라서 그렇다.

    뭐 아무튼.

    그런 조디악의 앞으로 그림자 하나가 길게 드리워진다.

    순간, 조디악도 김정은도 방씨 형제도 모두 자기 눈을 의심했다.

    “……내 강아지 내어놔.”

    그림자의 주인은 놀랍게도 허리 구부정한 노파였던 것이다!

    ID: 편잭

    아이디를 가리지도 않은 채 등장한 노파는 손을 앞으로 쭉 뻗는가 싶더니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움직여 조디악의 잘려나간 발목 밑에 깔려 있던 좀비 강아지를 회수해 갔다.

    이윽고, 그녀는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으로 조디악과 김정은, 방씨 형제를 톺아보았다.

    “샤를페로 대분화구는 내 영역이여. 잿빛 용은 나가 찜해뒀응께 싸게싸게 돌아가.”

    무려 ‘자리’ 선언! 그것도 천하의 앙신을 상대로!

    김정은과 방씨 형제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든다.

    하지만.

    “푸스스스스스스-”

    잘려나간 발목에 포션을 붓는 조디악의 눈에서는 연신 반짝반짝거리는 눈빛이 뿜어져 나온다.

    “……NPC가 아니라 유저 맞지? 제발 저 할망구가 NPC가 아니길 빌어.”

    조디악의 중얼거림을 들은 김정은과 방씨 형제는 오싹 치밀어 오르는 소름에 몸을 떨어야 했다.

    저 해맑은 광기를 마주하고도 멀쩡하게 제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을 못 봤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