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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35화 (835/1,000)
  • 835화 고인물 VS 마동왕 (7)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나는 로그아웃 후 캡슐 밖으로 나왔다.

    “잘 끝나서 다행이네.”

    ‘고인물 vs 마동왕’

    이 컨셉 싸움의 끝은 결국 무승부였다.

    나는 과거 고마대전의 1라운드에서 도플갱어 마동왕에게 패하는 척 연기해 마동왕에게 1승을 안겨주었고 2라운드에서 도플갱어를 죽임으로써 고인물에게 1승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열린 이 3라운드에서 고인물과 마동왕이 동시에 사망함으로써 고마대전에 대한 논란은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논쟁이 되었다.

    ……아, 고인물과 마동왕이 어떻게 해서 동시에 죽게 되었냐고?

    답은 간단하다.

    마동왕으로 변한 도플갱어 카이저를 빈사상태에 몰아넣기 전, 나는 고인물로 변신한 일반 도플갱어 한 마리를 생포해 둔 상태였다.

    마동왕 도플갱어와 고인물 도플갱어의 싸움.

    물론 이 싸움은 수십, 수백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예행연습을 했던 것이다.

    먼저 본체 능력의 33%를 발휘할 수 있는 일반 도플갱어 두 마리를 생포해 한 놈은 마동왕 모드로, 다른 한 놈은 고인물 모드로 변신시켜 싸우게 만든다.

    그로 인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거의 대부분 50:50으로 나왔다.

    초반부에는 강력한 한 방 기술, 광역기술로 승부하던 마동왕이 우세했고 후반부에는 빠른 이동속도와 카운터, 도트뎀으로 승부하는 고인물이 유리했다.

    그리고 이제 진짜 본게임의 막이 올랐다.

    나는 본체 능력의 99%이상을 발휘하는 도플갱어 카이저를 마동왕으로 변신시켰다.

    고인물로 변신한 일반 도플갱어가 마동왕으로 변신한 도플갱어 카이저와 싸웠다가는 승부가 너무 쉽게 날 것이 뻔했기에, 나는 마동왕 모드로 변한 도플갱어 카이저와 직접 싸우던 도중 놈의 힘이 적당히 빠졌을 때쯤 고인물 모드의 도플갱어와 교대했던 것이다.

    마동왕 모드의 도플갱어 카이저가 불의 와류에 갇혀 반동 데미지를 버텨내지 못하고 자멸하기 직전, 나는 도플갱어 카이저보다 스탯이나 각종 능력치 등이 현저히 떨어지는 고인물 모드의 일반 도플갱어를 불의 소용돌이로 집어던져 버렸고 수십, 수백 번 시뮬레이션 했을 때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절묘한 타이밍에 두 놈 다 리타이어 당하는 결말 말이다.

    그리고 방송사고인 척 잠시 중단시켰던 화면을 다시 송출.

    결국 기가 막힌 타이밍에 두 도플갱어가 사망하면서 고인물과 마동왕의 동시 리타이어가 연출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계획한 나는 썩은물 모드로 변해 계곡의 맨 꼭대기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마동왕 도플갱어와 고인물 도플갱어를 한꺼번에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뭐, 이번 기회에 썩은물로 데뷔하는 것도 나쁘지 않긴 하지.’

    세계의 정점으로 군림하던 고인물과 마동왕의 양대산맥.

    하지만 그 둘의 승부가 막 하이라이트에 이를 때쯤 둘 모두를 압도적으로 제압해 버리는 의문의 암흑랭커.

    약간 오그라들긴 하지만 이것도 꽤나 멋진 컨셉 아닌가.

    진정한 천외천(天外天), 고인물을 넘어선 썩은물의 데뷔무대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딱히 그렇게까지 쇼맨십을 벌일 만한 이유와 개연성은 없는 일이다.

    나는 고인물과 마동왕의 무승부, 즉 원안(原案)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무너진 협곡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로그아웃한 상태로 인터넷에 동영상의 조회수를 검색하고 있는 것이다.

    “……대박은 대박이네.”

    나는 고인물의 개인방송 채널과 마동왕의 개인방송 채널을 비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총 구독자가 3억 명을 넘었다.

    나는 유튜뷰 역사상 최초로 3억 구독자 스트리머에게 주어지는 ‘블랙 다이아 버튼’을 두 개나 소유한 사람이 되었다.

    백금으로 된 판에 검은 육각 다이아가 박혀 있는 버튼.

    그것은 마동왕의 계정을 담당하는 구단의 로비에, 다른 하나는 고인물의 오피스텔 거실에 걸렸다.

    물론 이번에 송출한 3차 고마대전의 시청률도 어마무시했다.

    조회수를 논하는 것보다는 이날 방송 한 번만으로 LGB 방송국의 주가가 8%나 껑충 뛰었다는 것이 더욱 더 상황을 잘 설명해 줄 수 있겠지.

    여러모로 흡족한 일이다.

    내가 계산대로의 상황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가증스러워~”

    옆에 있던 유다희가 나를 비난했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도플갱어들을 내세우다니, 사기꾼 기질이 아주 농후해~ 나중에 여자 마음으로도 이런 장난치는 건 아닌가 몰라~”

    “여자 마음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너도 공범이잖아.”

    내 일침을 들은 유다희는 뜨끔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한다.

    하기야, 고인물로 변한 도플갱어를 전장에 밀어넣는 타이밍에 실수인 척 기가 막히게 영상 송출을 끊은 유다희의 편집 센스도 돋보였다.

    그녀는 살짝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슬며시 말을 돌렸다.

    “와! 그래도 마동왕이랑 고인물의 도플갱어들이 싸우는 거 진짜 대박이더라. 나중에 이 특집으로 방송해도 재밌겠던데?”

    “뭐 도플갱어 카이저의 존재만 알려지지 않는다면 상관없어.”

    일반 도플갱어들은 본체 능력의 33%밖에 발휘하지 못하기에 가짜인 티가 확 나지만 도플갱어 카이저는 아니다.

    이 녀석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면 혹시나 고인물과 마동왕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으니 한동안 도그숲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이 히든 던전은 통제해야 했다.

    “뭐, 리젠될 타이밍마다 가서 나랑 창희랑 세희랑 가서 잡아 버리면 그만이지.”

    유다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는 도플갱어 카이저에 관련된 일은 이 삼남매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한편.

    …위이이이잉!

    아까부터 핸드폰이 계속 진동하고 있다.

    LGB의 홍영화 부장이나 유튜뷰 코리아의 송승우 팀장에게 계속해서 연락이 오고 있었지만 용건은 뻔했기에 굳이 지금 대답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현재의 일에 집중했을 뿐이다.

    유다희가 긴장한 표정으로 마우스를 잡고 나를 돌아본다.

    “그럼 시작한다?”

    “……오케이.”

    “오케이! 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다희는 매니저처럼 힘차게 오케이 사인을 외쳤다.

    그러자 이내 듀얼 모니터 각각에 서로 다른 동영상들이 떴다.

    [시청자 여러분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사실 저희 둘은…….]

    고인물과 마동왕. 경기 전에 미리 녹화해 둔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수많은 시청자들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

    나는 이 메시지를 위해 오늘의 고마대전 행사를 기획했던 것이다.

    이윽고, 고인물과 마동왕의 대사가 한 순간에 정확히 겹친다.

    [……이번 기회에 개인 리그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나의 오랜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이름을 딴 개인 리그를 개최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리그보다 상위의 리그.

    일명 ‘마고 리그’, 혹은 ‘고마 리그’.

    고인물과 마동왕의 이름으로 개최되는 이 사설 리그에는 아마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랭커들, 은둔 고수들이 출전할 것이다.

    화면 속 고인물과 마동왕은 이미 협약된 내용을 착실하게 말한다.

    [프로이든 아마추어이든 따지지 않습니다. 국적, 인종, 나이, 직업, 그 모든 것들을 불문에 부칩니다.]

    [또한 현실의 격투기가 몸무게에 따른 체급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이 리그에서는 레벨에 따라 체급이 나뉠 것입니다. 물론 두각을 나타내는 저렙 체급의 유저들에게는 따로 아이템이나 솔루션 등이 제공될 수도 있습니다. 무체급 리그도 존재하고요.]

    레벨이나 템빨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피지컬 괴물들, 극강의 재능충들, 상상초월의 고인물들을 선발하는 리그.

    한편 이런 내 계획을 들은 유다희는 의아한 기색이다.

    “근데 굳이 이런 대회를 여는 이유가 뭐야? 인지도라면 너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잖아. 딱히 돈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아니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들 것 같은데? 참가자들에게 솔루션 제공하고 아이템까지 지급하려면…….”

    뭐,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만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개인리그를 주최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찾고 싶은 얼굴들이 있어.”

    “뭐, 뭐? 누구? 누군데?”

    갑자기 유다희의 표정이 변했다.

    뜬금없이 진지한 얼굴.

    “서, 서, 설마 여자냐? 무슨 TV는 사랑을 싣고도 아니고! 좀 유명해졌다고 과거 첫사랑이라도 찾으려는……!?”

    “그게 언제 적 프로그램이야. 아무튼 그런 건 아니고.”

    나는 왠지 모르게 부산을 떠는 유다희를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렸다.

    회귀하기 전.

    눈을 감으면 아직도 또렷하게 생각나는 얼굴과 목소리.

    접속자 수도 많이 떨어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든든한 버팀목들.

    ‘응? 아이고! 이게 누구야! 어진이! 우리 7만 시간짜리 청정수 왔는가?’

    ‘거 막내가 빠져가지고, 마! 빨리빨리 안 다녀? 계속 너 기다렸잖아!’

    ‘어허! 우리 파릇파릇하고 귀여운 뉴비한테 뭣들 하는 거야! 저러다가 쟤 겁먹고 게임 접으면 책임 질 거야?’

    ‘응~ 너 하나 없다고 게임 망해~ 접지 마~ 어진아~’

    ‘아휴, 어제 패륜아의 둥지 끝나고 바로 칼침의 탑 가야 했는데… 레이드가 늦어지는 바람에 그만 2분 차이로 다음 던전 입장을 못 했지 뭐야. 나도 많이 해이해졌어. 역시 빤스 한 장에 면봉 한 개비만 들고 던전 클리어는 무리인가?’

    ‘동감이야. 나이가 드니까 아무래도 피지컬이 딸려. 오늘 자기 전에 용옥의 고문기술자 10번만 죽이고 자야지.’

    ‘그래? 아 그럼 나는 오랜만에 얼부(얼어붙은 부패) 가서 하린마루나 잡아 볼까?’

    ‘너는 하린마루가 불쌍하지도 않냐?’

    ‘눈썹으로만 잡는데 뭐가 불쌍해.’

    한때 내가 선배, 형, 누나라 부르며 따랐던 존재들.

    7만 시간 동안이나 플레이한 나를 애기, 뎀린이 취급하던 극한의 고인물들.

    나는 그들을 찾고 있었다.

    ……물론 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내가 그들을 찾는 이유는 단지 추억팔이 때문만은 아니다.

    ‘Help yourself.’

    순간 머릿속에 조디악이 남겼던 말이 떠오른다.

    놈은 분명 이 세계에 거대한 혼란을 몰고 올 것이다.

    어떤 쓰나미가 되었든, 그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튼튼한 배와 많은 사공이 필요한 법.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한다.’

    나는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더 필요했다.

    난다긴다하는 랭커, 천재들조차도 모두 떠나고 남은 텅 빈 세상에 오직 이 세계에 대한 애정 하나로 진득하게 고이고 고였던 고인물들.

    비록 후발주자인지라 템빨이 구리고, 젊어서 두각을 드러낸 천재들에 비해 피지컬이 딸린다고 해도…… 애정을 가지고 수없이 플레이하고 또 플레이하며 결국 일가(一家)를 이뤄냈던 올드비들.

    그들이 충분한 솔루션과 공략 팀, 장비가 지원된다면 과연 어떻게 바뀔까?

    나는 그것이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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