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32화 (832/1,000)
  • 832화 고인물 VS 마동왕 (4)

    방송국 LGB.

    한국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전문 방송국으로 여러 가지 게임 방송 부문 최초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에는 가상현실 게임 대회 방송이나 사설리그 중계 등등, 한국 E스포츠 시장에서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방송국이었다.

    그 외에도 모든 게임 콘텐츠 방송을 100% 자체 제작하며 그 중에는 현 10대 20대 시청률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프로그램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압도적인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은 바로 ‘켠김에 제왕까지’ 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장기간, 다양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게임 방송.

    명실상부한 LGB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얼마 전에는 케이블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30%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장기간 누리는 중에 있으며 가상현실게임 방송의 황금기를 불러일으킨 주역이었다.

    최신 유행어 같은 트렌드를 꾸준히 반영하며 시청자와 소통도 자주 하는지라 젊은 층들에게 인기가 좋으며 중장년층 역시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알려 주고 배려하는 콘텐츠도 않아 전 연령적으로 사랑받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압도적인 화제성, 이로 인한 높은 광고 수익, VOD 서비스 매출 등은 웬만한 타 게임방송 프로그램을 압도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점급 겜방이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송이 한때 인기가 너무 없어서 존폐의 위기까지 몰렸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토종 양서류의 생태, 올챙이부터 떡두꺼비까지’, ‘본격 분석! 북부지방 나비의 산란기’, ‘저수지 패왕전, 메기 VS 가물치’와 같은 자연 다큐에게도 예산 우선 순위가 밀리던 시절, 판권을 중국에 파네 마네 하던 것은 이제 아주 오래 전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지금 한국 게임방송의 명실공한 넘버원은 켠김에 제왕까지가 지키고 있는 실정, 그것도 자그마치 6년 동안이나!

    ……하지만.

    “자식들아! 정신 똑바로 좀 차려! 우리 다음 주면 콘텐츠 바닥난다고! 그나마 있는 쥐꼬리만 한 예산도 다 짤리는 꼴 봐야겠냐!?”

    이 부서, 그러니까 게임영상콘텐츠사업부서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아직도 팔팔하게 현장을 뛰고 있는 조태호 전무이사의 대사는 늘상 똑같다.

    지난 6여 년간 그의 닦달에 익숙해진 직원들은 그런 조태호의 히스테리와 발작을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단순히 신경질을 내는 게 아니라 게임업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예산이 삭감될 때마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살신성인의 산증인이었으니까.

    “유명 연예인이고 뭐고,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을 MC나 게스트로 쓰라고! 아이돌들은 뭐 보기에만 좋지 게임에 대해 아는 거 하나도 없잖아! 아, 니아 그 친구들은 빼고. 저번 회차 반응 아주 좋았지~”

    게임 방송은 게이머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렇기에 게이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고 그들을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조태호 이사의 신념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의 잔소리는 오래 듣기 힘들 정도의 수준인지라 그것이 유일한 문제.

    바로 그때.

    “어허~ 보챈다고 좋은 방망이가 나오나~”

    저 파티션 뒤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나온다.

    홍영화 부장.

    그녀가 다른 직원들을 대신해 조태호 이사에게 일침을 넣고 있었다.

    조태호 이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크윽! 홍부장. 요즘 잘나간다고 이게 아주 그냥 건방져져서는!”

    “아니. 그렇잖아요! 무슨 6년간 맨날 똑같은 잔소리야!”

    “오메, 요놈새키 이거 말하는 거 보게! 신입 때 퇴근도 눈치 보면서 하던 홍영화 어디 갔냐! 내 부하직원 돌려줘!”

    “홍영화 미국 갔다! 나 이제 부장이야! 신입사원 홍영화 아니다 이거야요!”

    홍영화는 켠왕의 공적과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미지 영향력을 인정받아 사내에 전례 없는 ‘최연소 팀장’, ‘서른한 살 부장’ 타이틀을 달게 되었으며 현재 게임영상콘텐츠사업부서를 독자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부장으로 승진한 이후 늘 훌륭한 성적을 내 왔기에 아무도 그녀에게 자격 논란을 제기하지 않는 실정이었다.

    “너 이럴 거면 다시 대리 해!”

    “흥! 자기가 직접 추천해서 승진시켜 줄 때는 언제고!”

    “어우,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네 이거 증말!”

    ……늘 툴툴거리는 조태호 이사를 제외하면 말이다.

    조태호 이사와 홍영화 부장의 티격태격에 옆에 있던 직원들이 킥킥 웃는다.

    조태호는 이제 아예 홍영화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비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좀 저렴한 예산에 콘텐츠 짤 수 없겠냐?”

    “어허, 겜방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방송국 가 찍으우.”

    “게스트 더 안 모아도 되니 그만 방송해라!”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시청자들이 좋다는데 무얼 더 촬영한다는 거야! 홍부장, 외고집이시구먼! 방송 예정일까지 시간이 없다니까!”

    “다른 데 가서 방송하우. 난 안 찍겠소.”

    “……그럼 마음대로 찍어 봐 어디.”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홍영화의 말에 조태호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두 손을 허리에 올린다.

    “야, 니가 무슨 겜방 깎는 노인이여? 대체 뭘 믿고 그렇게…….”

    그러자.

    홍영화는 당당하게 조태호의 앞으로 자신의 서피스 북을 내민다.

    화면에는 방송 의뢰 계약서가 떠 있었고 출연자가 출연을 결정하는 최종 사인까지 마쳐 놓은 상태였다.

    그것을 본 조태호 이사의 두 눈이 찢어지기 직전까지 커졌다.

    화면에 떠 있는 이름.

    그 이름은 지금의 ‘켠김의 제왕까지’를 만들어 주다시피 한 0등 공신의 것이었다.

    LGB 전체의 은인.

    사옥 1층 로비, 사장실, 주주총회가 벌어지는 회의실 벽면에 순금 액자로 사진과 현판까지 걸려 있는 남자.

    [방송 출연하겠습니다]

    -From. 고인물-

    바로 어젯밤에 온 메일이었다.

    그것을 본 조태호의 표정이 환희로 물든다.

    “끼얏호우!”

    “아까 뭐 예산 아끼고 빨리빨리 찍으라던 분 어디 갔나~”

    “미국! 미국 갔어! 지금 어진 씨 오신다는데 뭐가 대수겠냐! 우리가 가오가 없지 돈이 없나!”

    방방 뛰던 조태호는 갑자기 문득 자리에 멈춘다.

    그리고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진 씨가 왜 우리 방송에?”

    “갑자기는 아니죠. 저번에도 우리랑 독점 계약해서 용자의 무덤 클리어했는데.”

    “뭐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뭔가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을 때만 연락을 주시잖아 그분은. 용자의 무덤 때 독점중계 계약한 것도 아스모데우스 잡는 걸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그런 거였고.”

    맞는 말이다. 언제나 윈윈 관계일 때만 계약은 체결되는 법.

    홍영화 역시도 그것을 아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진이가 뭐 시청자들한테 할 말이 있대요.”

    “할 말?”

    “네. 뭔지는 저도 모르겠는데,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공개하고 싶다네요.”

    뭘 말하려고 방송국까지 섭외하는 걸까?

    조태호는 턱을 짚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사람의 뜻은 알 수가 없다.

    “……하기야, 난다긴다하는 천재들도 그 사람만큼은 논외라고 하니. 우리 같은 범인들이 짐작할 수나 있겠어?”

    조태호는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홍영화는 조태호 이사 역시도 그 난다긴다하는 천재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고인물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생각은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조태호는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런데.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고 싶은 메시지야 뭐 차지하고서라도…… 어떤 콘텐츠로 그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걸까?”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뭐든 간에 그 메시지를 들을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면 어떠한 화제거리가 있어야 한다.

    물론 고인물이 방송에 나온다면 시청률이야 보장되겠지만…… 그 정도 수준에 만족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시청자를 모으겠다’라는 말을 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시청률 500%, 아니 그 사람의 스케일이라면 1,000% 정도는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한 것일 텐데. 그만한 시청률을 뽑아낼 만한 콘텐츠가 있나?”

    지금껏 켠왕의 시청률이 그 정도 수치에 육박했던 적은 딱 두 번뿐이었다.

    첫 번째는 마동왕이 세계리그를 제패했을 때.

    두 번째는 고인물이 용자의 무덤을 올클리어 했을 때.

    “아마 어진 씨는 그때 시청률을 생각하시고 우리를 골라 준 것일 텐데…… 그만한 시청률을 뽑아내려면 세계리그나 용자의 무덤 올클리어 정도의 이슈가 되는 획기적인 콘텐츠가 있어야…….”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조태호는 우려스러운 기색이었다.

    그러나.

    홍영화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시청률 500%? 1,000%라고요?”

    그리고 확정적인 어조로 조태호의 걱정을 불식했다.

    “장담하는데 아마 10,000%는 나올 겁니다.”

    다섯 배, 열 배가 아니다.

    시청률 백 배.

    그 말을 듣는 순간 조태호의 표정이 굳었다.

    조금이라도 방송을 아는 이들이라면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칠 수치다.

    인생의 절반 정도를 방송업계에 있었던 조태호조차도 한 번도 듣도보도 못했던 숫자였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고인물이라면, 또 그를 잘 아는 홍영화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그 콘텐츠가 뭔데 그래?”

    조태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가 아는 고인물은 절대 허언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아무리 말도 안 되어 보이는 목표라도 그것을 반드시 현실에 이뤄내고야 하는 존재.

    대체 그가 기획하고 있는 소재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말도 안 되는 호언장담을 하는가!

    “…….”

    “…….”

    “…….”

    사무실 안에 있던 모든 직원들이 어느덧 이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홍영화의 입이 열리는 순간.

    사잠꺼.

    사무실이 잠깐 꺼졌다.

    ……! ……! ……!

    전 직원들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모든 행동을 정지했다.

    전율이 정적을 타고 흐른다.

    홍영화가 내민 서피스 북의 기획서, 고인물이 보낸 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마동왕 VS 고인물>

    최후의 메가 매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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