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화 사탄 (5)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Bad Ending Nightmare form) / 일명 ‘사탄’> -등급: ? / 특성: 멸망의 어머니
-서식지: 거인국 ‘뼈만 남은 수도’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불과 분노를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너. 무저갱 속 영원한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질 것이다.”
-사탄- <『계시록』, 20:1-3~20:10>
※몬스터의 특성이 일부 봉인되어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을 마주한 인간은 그것을 신의 뜻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던가.
“……고정 S+급 몬스터의 상위종이라고?”
황당함을 금치 못하겠다.
세계관의 정점에 서 있는 고정 S+급 몬스터.
이들은 더 이상 강해질 수 없을 정도로 지고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존재를 무어라 설명해야 좋을까?
너무나도 강력한 피어를 뿜어내는 나머지 나의 정신계 저항력으로도 그 상태창을 온전히 다 들여다볼 수 없는 몬스터.
고정 S+급에서 한 단계 더 상위종으로 진화한 사탄이 불타는 눈을 들어 나를 노려본다.
…지직! …지지지직!
노이즈가 일어난다.
몬스터의 데이터량을 감당하지 못한 서버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와긱- 와기기긱!
배드엔딩으로 변한 사탄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공간이 왜곡되고 있다.
윤솔도 드레이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바로 오즈였다.
[말도 안 되는 수작! 불안정한 몸뚱아리로 저런 힘을 감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오즈는 양파와 젤리를 양손에 쥐고 힘껏 내던졌다.
하지만.
…파직! 파칫-
그것들은 사탄의 몸에 닿기도 전에 일그러지더니 이내 눈 깜짝할 사이에 소멸해 버렸다.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 사탄.
놈은 고정 S+등급을 초월하여 뭐라 지칭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이윽고.
……! ……! ……!
사탄이 입을 쩍 벌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동작이었지만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놈의 불타는 폐 속, 무저갱처럼 깊은 목구멍 속에서 타 올라오는 것은 인간의 가청영역을 넘을 정도로 큰 굉음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콰콰콰콰콰콰쾅! 우르릉!
사탄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충격파가 저 앞에 있는 거대한 척추뼈 성벽을 한 순간에 먼지로 바스라뜨려 날려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으니까.
파스스스스스스……
윤솔이 머리 위로 부스러져 내리는 뼛가루를 보며 입을 반쯤 벌렸다.
“……세상에.”
이스비브놉조차 힘들게 들어 올렸던 그 거대한 성벽이 사탄의 날숨 한 번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성벽에 뻥 뚫린 구멍은 어지간한 대형 아파트 단지 하나쯤은 너끈히 들어갈 정도로 광대했다.
“……이런 페이즈가 있을 줄이야. 세상 허탈해지는군.”
언제나 현실을 잘 직시하던 드레이크 역시도 이번만큼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쯤 되면 진짜로 잡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하지만 이 순간에서도 나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진화를 한 것뿐이지 몸을 다 회복한 것은 아니야. 전 페이즈에서 건 디버프들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 말인즉슨, 아직도 사탄의 몸은 깎단의 도트데미지를 입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까 오즈가 했던 말 속에도 분명 단서가 있었다.
[사탄, 저놈은 이만치의 힘을 감당할 역량이 안 돼! 전성기 때의 육체라면 모를까 지금의 무너져가는 육체로 저런 화력을 낸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오즈는 다시 한번 명확하게 말했다.
사탄의 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너져 가고 있고 그 한계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증거로 보라! 놈은 방금 전의 어마어마한 공격을 애꿎은 성벽에 대고 쏴 갈겼다.
“에임을 맞출 힘도 없다는 것이겠지.”
공격력 스탯만 미친 듯이 높으면 뭘 하나? 명중률이 저 모양인데.
나와 오즈의 대화를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눈치 챈 모양이다.
“그, 그럼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버텨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껏 한계를 초월한 힘을 발휘했던 고위 몬스터들의 말로를 되짚어 보았다.
죽기 전 100초간 상위종의 문턱을 밟았던 거미 여왕 큘레키움.
창해룡이 지배하던 대심해에서 한 단계 위로 진화했던 크라켄.
천공섬과 함께 자폭하던 순간만큼은 고정 S+급 몬스터만큼이나 강했던 식인황제 보카사.
이 문고리 3인방 외에도 선악과의 힘으로 각성했던 좀도둑 잭 오 랜턴, 우정의 힘으로 진화했던 하해의 게슈탈트, 무저갱의 힘으로 성장했던 데스웜 등등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얼마 가지 못했다는 것이지.”
그것이 몸의 한계가 와서인지, 아니면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자멸하든, 아니면 거대한 메인 퀘스트의 흐름 속에서 필멸하든 간에 세계관의 매듭은 결국 확실하게 지어진다.
내가 지금껏 겪어온 경험들의 흐름에 의하면 사탄 역시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것이 몇 초이든, 몇 분이든, 아마도 곧 결판이 나겠지.
“버텨 보자. 시간은 우리 편이야.”
나는 굳은 표정으로 몸을 바로 세워 눈앞의 ‘대적자(Satan)’를 노려본다.
사탄과 나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
[…….]
나는 심연을 들여다보고, 심연은 나를 들여다본다.
끈적한 침이 말라붙은 목구멍을 타고 길게 늘어진다.
타는 속. 불이 끓는 듯 뜨겁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사탄의 심계일 것이니 초조해 할 필요는 없었다.
“버티면 돼. 저놈은 제풀에 무너진다.”
사탄을 중심으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채 무작위로 떨어지는 포격을 잘 피하기만 하면 승리는 반드시 온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 그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윤솔과 드레이크, 오즈와 쥬딜로페.
내 친구들은 그런 나의 판단을 믿고 내 옆에 포진해 섰다.
……그리고.
그들은 고스란히 내 오판의 피해자가 되었다.
“어? 어진아! 사탄의 상태가 좀 이상한데?”
“……저건 설마?”
윤솔과 드레이크가 손가락을 뻗어 포위망 중심부의 사탄을 가리켰다.
“……!”
나 역시도 두 눈을 크게 뜬다.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 사탄.
놈은 네 개의 팔, 두 개의 다리를 곧장 지면에 박아 넣었다.
폭발적인 돌격을 감행하려는가 싶어 언제든 옆으로 구를 준비를 하고 있었던 나는 이윽고 불길한 예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오오오오오!
사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더욱 더 강해지고 있었다.
내일이 없는, 뒤를 생각하지 않는 폭주.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
“……자폭!?”
고정 S+급 몬스터의 자폭이라. 그것도 배드엔딩 상태에서의?
자멸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패턴이었다.
터질 듯 팽창한 사탄의 두 눈알에서는 상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집념이 엿보이고 있었다.
“빠져! 아니, 뛰어! 무조건 뛰어!”
오더를 철회했다.
모두들 온 힘을 다해 뒤로 내달렸다.
나는 윤솔을 안은 채 뛰었고 드레이크는 그런 내 옆을 바짝 따라온다.
죽어라 달려야 했다. 등 뒤를 핥을 듯 다가오는 필멸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말이다.
어깨 위에 있는 오즈가 용 특유의 초능력을 사용해 사탄의 자폭이 미칠 예정 범위를 보여 주었다.
[주인! 잘 들어라, 지금부터 내 시선이 닿는 곳까지가 사탄의 힘에 의해 소멸할 구역이다.]
동시에, 오즈의 시선이 내 시야로 공유된다.
지이잉-
용의 눈. 사탄의 자폭으로 인해 소멸 예정인 구역이 적색지대로 표시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맵 전체가 날아간다는 거잖아!”
사탄의 자폭은 중심기압 870 헥토파스칼, 초속 85m, 직경 1,850km로 몰아치는 거대한 화염의 폭풍이었다.
미니맵을 보면 이 거대한 멸망의 규모는 미국 본토의 절반가량을 집어삼킬 수도 있는 크기.
작은 섬에 불과한 거인국 정도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릴 것이다.
“……이걸 막을 수 있는 건 불사조의 ‘멸망주의보’밖에 없겠어.”
뭐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공격이 아니다.
숨거나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전무(全無).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 멀리 떨어진 곳, 우리가 처음 이곳 거인국에 진입할 때 사용했던 포탈을 통해 차원이동을 하는 것뿐이다.
“텔레포트 스크롤도 안 먹히는 구역이니 별 수 없지.”
나는 온 힘을 다해 포탈로 뛰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목(木) 속성을 띠고 있는 브라키오의 신발이 이곳 불타는 땅의 영역에서는 이동속도가 줄어드는 바람에 제시간에 탈출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안일했다. 자폭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어야 했는데!’
자책을 해 보지만 그것이 딱히 도주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마른오징어를 비틀어 즙을 짜듯, 그렇게 온몸을 쥐어짜 내달릴 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탈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만큼 먼 거리를 이동해 왔기 때문이다.
쿠오오오오-
설상가상으로, 사탄이 우리를 향해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놈은 폭발적인 도약력으로 우리의 뒤를 따라붙었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이 떨리는 거대한 손아귀를 뻗는다.
그 마수(魔手)에 잡힌다면 안 그래도 낮은 생존확률은 아예 0%로 바닥 쳐 버리겠지.
이제 우리들의 지상과제는 오로지 하나만 남았다.
‘도망쳐라’
죽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것. 저 멀리 있는 순간이동 포탈을 향해 뛰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다.
……하지만. 하지만 한 끗이 모자란다.
아슬아슬하게 포탈 근처까지는 갈 수 있을지언정 그것을 타 넘어갈 여유, 그 한 순간의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었다.
1초 1초가 절실한 상황.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내가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혹사시키고 있을 때.
“……어진. 방법이 있다.”
옆에서 뛰던 드레이크가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방법? 이 절망적인 상황에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건가?
내가 고개를 막 돌리는 순간.
“……!”
내 눈앞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었다.
쇠뇌. 그리고 화살.
…까드득!
드레이크가 내 눈앞으로 화살을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윤솔이 깜짝 놀라 외친다.
“드레이크 씨! 지금 뭐 하시는……!?”
하지만 드레이크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어진.”
내가 입을 열어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너희들은 정말 사이가 좋구나.’
귓가에 들려오는 음산한 목소리.
그것은 이기(利己)의 악마 아몬 후작이 죽기 직전 속삭였던 말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는지 지켜보마.’
동시에.
핑-
드레이크의 화살이 시위를 떠나 내게로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