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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28화 (828/1,000)

828화 사탄 (3)

눈앞에 불우이웃들의 인터뷰가 동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사탄에게 1의 데미지를 가할 때마다 뎀 사가 후원하는 금액에서 1센트가 차감된단다.

천사의 집, 요양원, 참전용사 복지재단, 결식아동 지원센터, 노숙자 재활 시설, 환경보호단체, 소외계층 긴급 의료 서비스 센터, 제3 세계 후원금, 유기동물 보호시설 기타 등등 수도 없이 많은 단체들.

고정 S+급 몬스터인 사탄은 교활하게도 이들에게 돌아갈 지원금을 인질로 삼아 나를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스턴에 걸렸나, 왜 가만히 있지? 딜 넣기 딱 좋군.”

나는 계속해서 사탄을 쥐어 팰 뿐이다.

…퍽! …퍽! …퍽! …퍽!

한번 폭딜이 꽂힐 때마다 딜 미터기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깎단 디버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탄의 HP를 착실하게 깎아내고 있었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와! 진짜 악마! 리얼 사탄이 여기 있…… 다고 생각할 뻔했어 어진아!”

“하하, 나도 그렇다 솔. 어진! 이거 아몬 후작의 이간질 특성이지? 깜빡 넘어갈 뻔했잖나!”

하지만 그런 거 아니다. 나는 그냥 기회가 있을 때 패는 것뿐.

“걱정 마, 창해룡이랑 마몬 잡을 때 돈 많이 쌓아 놨어.”

사탄을 잡음으로써 감소하는 후원금의 액수 정도는 내가 지금껏 모아둔 재산으로도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이번 연말에 레드문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당이 들어올 테니 그걸로 커버해도 될 일!

혹은 CF 출연료나 개인방송 채널 광고료, 영상 수익 등 연말에 돈 들어올 곳은 많으니 적어도 재정적으로 걱정할 일은 없었다.

“소외계층을 향한 지원금을 방패로 삼아? 너어는 진짜 안 되겠다.”

나는 사탄의 교활한 수작에 넘어가지 않고 계속해서 폭딜을 꽂았다.

이내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 챘다.

“역시! 생각해 보니 어진이가 그럴 리가 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잠깐이지만 친구를 나쁜 놈으로 생각했어. 부끄럽군!”

신성불가침 보호막과 불카노스 화살들이 날아온다.

오즈와 쥬딜로페 역시 양파와 젤리를 던져 딜을 넣고 있었다.

나는 옆으로 다가온 친구들을 향해 외쳤다.

“레이드 영상 수익으로도 기부금은 충분히 메꿔질 수 있어! 만약 모자란다면 창해룡이나 마몬을 잡고 획득한 사비로 메꾸면 돼!”

“역시! 어진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믿고 있었다 친구! 안심하고 딜 넣어도 되겠군!”

친구들 역시 사탄의 계략에서 빠져나왔다.

다시 게이머 본연의 마음을 되찾은 우리들의 목표는 그저 하나뿐.

‘몬스터를 잡는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그저 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온 힘을 쏟아 붓는 것이다.

[그오-오오오오오!]

사탄이 입에서 유황불을 토해 낸다.

포효에 비명이 섞여 있다.

놈은 사람들의 양심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공격을 피해 체력을 회복하려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

동영상이 재생되는 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에 가깝게 변한 사탄은 깎단과 역병 디버프, 거기에 상당량의 데미지까지 허용한 채 뒤로 비틀비틀 물러났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물리방어력 탓에 놈의 체력은 급감, 게다가 윤솔의 디버프 때문에 운신 역시도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나와 윤솔, 드레이크에게는 악마 속성 몬스터에게 추가 데미지를 부여하는 특성들이 꽤나 많았기에 순간적인 폭딜의 양이 정말로 엄청나다.

“요즘은 사탄도 취업난을 겪는 시대지. 인간을 얕보지 마랏!”

나는 사탄의 복부에 주먹을 날리며 외쳤다.

바로 그때. 또다시 호재가 찾아왔다.

…철썩!

버뮤다의 창에서 쏟아져 나온 바닷물이 척추뼈 성벽을 넘어 범람하기 시작한 것이다.

촤아아아아악! 콸콸콸콸……

드디어 물이 충분히 쌓였다.

아까 리듬게임 페이즈를 견뎌낸 뒤 사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눈에 띄게 줄어든 지금.

쿠오오오오오……

다시 한번 크툴루 크라켄의 힘이 거대한 풍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이스비브놉이 태양을 끌고 온 이후 한 번도 밤이 온 적 없던 거인국의 하늘에 먹구름들이 몰려와 사나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폭풍. 휘몰아치는 쓰나미. 그리고 이내 거대한 소용돌이가 사탄을 삼킨다.

…콰콰콰콰콰콰쾅!

거대한 와류의 한복판에 갇힌 사탄은 레이드 초반처럼 막대한 양의 바닷물을 기화시킨다거나 하지 못했다.

“초반부터 힘을 아끼지 않은 채 펑펑 낭비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놈이 리듬게임 페이즈에서 쏟아놓은 무시무시한 불기둥은 사탄 교향곡의 러닝타임인 40분가량 쉬지 않고 쏟아졌었다.

이스비브놉이 지난 수천 년간 쌓아온 울화의 온도는 그만큼이나 뜨거웠으며 그것이 남김없이 배출된 결과 모래톱은 유리알 언덕으로 바뀌어 버렸고 사탄의 체온은 확 떨어져 버린 것이다.

[갸오-오오오오오오!]

사탄은 범람하는 대홍수를 별 수 없이 정면으로 맞받아야 했다.

푸쉬이이이이이익!

무시무시한 양의 수증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소용돌이의 중앙에서 뿌연 버섯구름이 피어올랐고 그 위로 또다시 창해룡이 만들어 낸 푸른 포말이 끼얹어지길 몇 차례나 반복한다.

……치이이이이익!

사탄의 뜨거운 몸이 바다 소용돌이의 한복판에서 점차 식어 간다.

그리고 이스비브놉의 것을 빼앗아 단단하게 탈바꿈한 육체 역시도 격렬한 수류에 깎여나가 조금씩 마모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쯤해서 불완전변태 모드를 가동했다.

카라락! 까각!

어차피 폭풍우 때문에 동영상 녹화도 안 되겠다, 이참에 킬 체인까지 써서 사탄의 목에 휘감았다.

…드르르르르르륵! 드극- 가깍- 가가각- 끼기기긱!

철조망이 사탄의 목에 휘감긴 채로 와류를 따라 빙글빙글 돈다.

듣기 불편한 소음이 팔을 타고 손목, 손아귀, 손가락 끝까지 전해져 오고 있었다.

‘오케이, 제대로 꽉 감겼네.’

나는 만근추 특성까지 가동한 뒤 불완전변태 특성으로 인해 강해진 마몬의 근력으로 철조망을 잡아끌었다.

무거워진 나의 무게에 의해 철조망은 강력한 원심력으로 회전했고 그것은 사탄의 목을 계속해서 조른다.

……아니, 조른다기보다는 아예 비틀어 깎아내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악!]

사탄은 점점 갈려나가는 자신의 목과 그 안으로 파고드는 철조망을 끊으려 발버둥 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와류에 실려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나의 주먹이었다.

콰쾅! 뻑!

나는 사탄의 목에 빙빙 감겨 짧아진 철조망을 잡아당겼고 이내 사탄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이스비브놉의 몸뚱이를 흡수한 사탄의 체적은 넓어서 대충 휘둘러도 피격 판정이 들어간다.

비록 막대한 반동 데미지가 되돌아왔지만 크라켄의 완갑에 붙어 있는 완충 특성이 그 충격을 분산해 준다.

‘……마몬의 건틀릿이랑 크라켄의 촉수 완갑이 꽤나 상성이 좋단 말이지.’

나는 내일은 없다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불완전변태로 인해 한층 더 강력해진 마몬의 건틀릿이 계속해서 불을 찢고 사탄의 몸을 두들긴다.

결국.

…콰쾅!

사탄이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놈은 최후의 힘을 쥐어짜 불길을 뿜어냈고 주변의 폭풍우를 모두 수증기로 만들어 날려버렸다.

그 강력한 충격파와 열풍에 킬 체인마저 끊어져 버렸고 나는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저 멀리 나가떨어져야 했다.

하지만.

“……얏! 받았다!”

윤솔이 날아가는 나를 도중에 붙잡아 땅바닥에 구르지 않게 해준다.

시기적절하게 힐도 들어왔기에 포션도 꽤나 아낄 수 있었다.

허공으로 날아간 쥬딜로페와 오즈는 드레이크가 받아냈기에 결국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나는 윤솔의 품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사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푸쉬이이이익……

버섯구름처럼 솟구치는 수증기.

[그르르르르르……]

전신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사탄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든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두 폭풍우를 연달아 소멸시킨 뒤라서 그런가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많이 식었다.

쩍 벌어진 아가리 속, 목구멍 깊은 곳에서 화마(火魔)가 앓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후-하하하하! 저 빌어먹을 자식 꼴 좀 봐라! 초장부터 그렇게 힘을 낭비하니 그 모양이지, 저능한 놈! 천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구만!]

오즈가 내 어깨를 팡팡 치며 꼴좋다는 듯 웃어댄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슬슬 끝나가는 레이드에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탄의 체력 게이지도 이제 거의 바닥이네요.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는 없지만!”

“최후 패턴까지 뚫었으니 이제 정말 코앞이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쥬딜로페 역시 던지려고 들었던 젤리를 슬쩍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리는 걸 보니 정말 고지가 코앞까지 온 게 실감이 된다.

……하지만.

고정 S+급 몬스터, 일곱 악마성좌 중 가장 의외성이 높은 사탄은 과연 쉽게 함락되어 주지 않았다.

[크르륵…… 그윽……]

놈은 고개를 들어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터져나간 두 눈알에서 누런 유황액이 질질 새어 흐른다.

부러진 이빨 사이로 불이 옮겨 붙은 가스와 유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세상 모든 살기(殺氣)를 죄다 끌어모아 품은 듯한 기세.

이윽고, 놈이 이쪽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

사탄의 손아귀를 본 우리 모두는 선 채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레이드가 끝나갈 무렵, 잠깐 마음을 놓은 순간에 이변은 시작되었다.

사탄의 손에 들린 ‘그것’은 모든 인과율을 부정하고 결과를 뒤틀어 버리는 존재.

지금까지 쌓아왔던 공든 탑을 한낱 모래성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사기적인 것.

매끈한 유선형의 검은 씨앗. 금단(禁斷)의 상징.

천공섬의 꿀열매.

사탄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 바로 ‘선악과(善惡果)’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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