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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26화 (826/1,000)

826화 사탄 (2)

[그-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지르는 이스비브놉.

그의 가슴이 반으로 찢어지며 수천 년간 쌓이고 또 쌓였던 화가 폭발했다.

…화르르르륵!

세로로 길게 찢어진 가슴팍의 구멍으로부터 천불이 토해져 나온다.

그리고 그 불길과도 같은 울화(鬱火)를 타고 기어 나오는 존재.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

.

나타난 것은 소용돌이치듯 굽어진 두 개의 거대한 뿔과 넓적한 안면, 입술 없는 입 안으로 날카로운 이빨들을 훤히 드러낸 거대한 악마였다.

그것은 이스비브놉의 상처를 비집고 나와 밖으로 몸을 끄집어낸다.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화염은 놈과 이스비브놉을 하나의 몸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쿵!

이스비브놉의 심장을 찢고 나온 악마가 땅 위로 커다란 두 팔을 짚었다.

노란 눈은 초점도 없이 멍하니 풀려있고 날카로운 이빨들 사이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유황이 뚝뚝 떨어진다.

기괴할 정도로 길게 늘어진 두 팔은 짧은 상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

나는 이 녀석을 전에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한 눈에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탄> -등급: S+ / 특성: ?

-서식지: 거인국 ‘뼈만 남은 수도’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불과 분노를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너. 무저갱 속 영원한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질 것이다.”

-사탄- <『계시록』, 20:1-3~20:10>

드디어 거인국 최후의 고정 S+급 몬스터, 진(眞) 보스가 떴다!

불같은 화, 속에서 끓는 천불, 눈에 뵈는 게 없는 분노, 몸 속 깊이 타오르는 자, 이 세상 모든 화(火)와 불화(不和)의 근원.

사탄.

잭 오 랜턴, 식인황제 보카사, 아몬 후작에 이어 ‘선악과’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네 번째 몬스터.

칠죄종(七罪宗)을 상징하는 일곱 대악마 중 가장 유명한 녀석이 바로 이 녀석일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회귀 전 지식을 더듬어 보았다.

‘……사탄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군.’

있다고는 해도 단편적인 지식들뿐.

사탄은 만마전 서열 7위로 모든 악마성좌들 중 가장 낮은 서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단순 스탯의 종합치가 낮다는 것뿐이다.

사탄은 ‘지능’ 스탯이 유난히 낮아서 그렇지 힘과 체력, 민첩성, 방어력 따위의 전투 관련 스탯들은 오히려 다른 악마성좌들보다도 훨씬 월등했다.

고정 S+급 몬스터들 중에서도 실질적인 개체값과 공략 난이도가 가장 높으며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해서 상대해야 하는 적.

윤솔과 드레이크는 눈앞으로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불기둥을 보며 입을 딱 벌린다.

“이스비브놉 씨의 말이 맞았네요.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었어. 진짜 내부에 말이야.”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더니…… 니체의 말이 딱 맞군.”

이 압도적인 규모의 겁화(劫火)는 지금껏 수많은 고정 S+급 몬스터와 싸워 오면서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다.

마치 필드 전체를 불태워 버리려는 듯한 기세.

…쿵!

이윽고, 우리의 앞으로 사탄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놈은 이스비브놉의 육체를 그대로 흡수하여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게 되었다.

“……히드라 빅헤드를 목 졸라 죽이던 그 육체를 말이지.”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스비브놉. 역사상 최강의 거인. 단신으로 일개국의 멸망을 수천 년간 막아 냈던 영웅. 세계관 최강의 NPC.

그런 존재의 몸을 빼앗은 사탄의 전투력은 싸워 보지 않아도 가히 알 만하다.

극강의 물리공격력. 아마 불길로 인한 속성 공격력을 더한다면 마몬의 힘과 비등하거나 그를 상회하는 수준이겠지.

한편,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오즈는 하악질을 하며 온몸의 비늘을 빳빳하게 세우고 있었다.

[저놈! 나를 이렇게 만든 놈! 감히 내 비늘을 상하게 한 노옴!]

지금껏 삐딱한 태도로 나의 레이드에 훈수질을 하던 때와 사뭇 다른 태도.

이윽고 오즈는 진중한 어조로 나에게 이런저런 정보들을 전수해 주기 시작했다.

[인간! 잘 들어라! 사탄, 저놈은 오래 전 용마전쟁 당시 나에게 입었던 데미지 때문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걸레 조각이 되었어! 그래서 지금껏 이스비브놉의 몸속에 들어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최강의 거인으로 알려진 이스비브놉의 육체를 잠식해 빼앗기 위해서였겠군. 악마병들의 습격으로 몸이 지친데다가 분노와 절망으로 인해 이성까지 잃은 지금이 기회였고.”

[그렇다! 참고로 나와 싸울 당시에 사용했던 육체는 저 이스비브놉의 아버지 것이었지. 강한 육체이긴 했지만 내 비늘과 손톱보다는 약했어. 하지만 저 아들 녀석의 몸은 확실히 제 아비의 것보다 더 강해 보이는군. 내가 전성기 때의 몸으로 와도 이길지 어떨지…….]

오즈가 전해 주는 비화들은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꽤나 재미있는 것이다.

확실히, 나는 이스비브놉의 힘을 몇 번 봤었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지진을 일으킬 정도로 강한 발길질, 성벽을 통째로 뽑아 휘두르는 힘, 거기에 위험등급 S랭크 몬스터들 중 최강이라 알려진 히드라 빅헤드를 통째로 짓이겨 죽이는 호전성까지.

이 규격 외적인 힘이 이제 고스란히 사탄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더군다나.

…화르륵!

이스비브놉의 거대한 전신을 휘감고 있는 것은 초고온의 지옥불.

사탄이 다루는 수족이다.

사탄은 이스비브놉의 가슴팍으로 상체를 빼냈고 이내 이스비브놉의 불타는 몸을 조종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쿵! …쿵! …쿵! …쿵!

지면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떨리기 시작했다.

모래톱의 모래들이 위아래로 요동치는 동시에 뜨거운 불길에 닿아 유리알과 도자기 조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퍼퍼퍼펑!

이스비브놉의 불타는 주먹과 사탄의 깡마르고 날카로운 손톱이 한꺼번에 날아든다.

나는 눈앞 시야를 꽉 채우는 이 네 개의 팔에 정면으로 맞붙었다.

“……어디 한번 붙어 보자고.”

마몬의 건틀릿이 열기를 만나 뻘겋게 달아오른다.

불을 찢고 쇠를 두들기는 대장장이의 힘.

뻑-

마몬의 힘은 이스비브놉의 주먹과 부딪쳤다.

힘의 대악마, 그리고 힘의 거인 대왕.

결과는 놀랍게도 동수! 호각이었다.

콰콰콰쾅!

하지만 그 뒤 이어진 충격파는 호각이 아니었다.

불이 붙어 지글거리는 유황들이 사방팔방으로 튀긴다.

시뻘건 뱀과 같은 불기둥들이 마치 코로나(corona)처럼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후우우욱-

태양풍과도 같은 강력한 열풍이 주변을 온통 초토화시켜 놓는다.

붉은 흙이 열에 삼켜져 단단하게 변한 뒤 다시 바스라져 내리기를 수십 번, 나는 상당한 체력을 손해 본 뒤 나가떨어져야 했다.

“어우, 만근추 특성을 썼는데도 이렇게 밀려나네.”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사탄의 압도적인 힘에 전율, 경악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파괴력!

이 무지막지한 대분화는 사람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도 같다.

하지만 고정 S+급 몬스터와의 싸움인데 이 정도야 이미 예상했던 바.

…파캉!

버뮤다의 창을 땅에 꽂아 물바다를 만든다.

동시에 크라켄의 풍랑 특성으로 거대한 폭풍을 일으켜 사탄의 화마를 막아 세웠다.

쿠오오오오오오!

크툴루 크라켄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풍랑파가 사탄의 불길을 일순간이나마 주춤하게 만들었다.

나는 바로 마몬의 주먹으로 수면을 때려 깨트렸고 데스웜의 힘을 이용해 거대한 와류를 만들어 사탄을 그 중심부에 가뒀다.

그러나.

파스스스스스스……

말스트룀, 거대 소용돌이의 중앙에서는 그저 엄청난 양의 수증기들이 버섯구름처럼 피어오를 뿐이다.

사탄은 지독하게도 뜨거운 체온을 이용해 몸에 닿기도 전에 모든 바닷물들을 끓여 기화시켜 버리고 있었다.

“……으음, 물 데미지도 안 먹히네.”

불 속성 몬스터에게 물이 쥐약인 것은 당연한 상식이지만…… 사탄 정도 되는 불 속성 몬스터는 아예 물의 접근 자체를 불허해 버리니 만큼 물은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창해룡 버뮤다의 힘마저 막혀 버릴 정도라니.

[오-오오오오오!]

사탄의 전신이 거세게 타오른다.

시뻘건 불길로 뒤덮여 이제 원래의 모습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오로지 노랗게 타오르는 두 개의 눈알과 날카로운 이빨들뿐!

불덩이 자체가 살아서 날뛰는 모습이었다.

“……저런 걸 어떻게 잡아.”

“이건 진짜 정말로, 잡으라고 만든 몬스터가 아닌데?”

윤솔과 드레이크조차 이렇게 말할 정도니 사탄의 포스가 어느정도인지는 말 다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나도 친구들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가 있었다.

‘이스비브놉의 몸속에서 뛰쳐나오기 전에 잡았어야 했나? 이건 실패한 페이즈인가?’

사탄이 이스비브놉의 몸을 완전히 먹어 버린 이상 잡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창해룡의 힘마저 먹혀들지 않는 지금, 아무리 나라도 눈앞에서 괴물처럼 날뛰는 저 불덩어리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나가린데.”

그냥 닥치고 도망가는 것만이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

심지어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튀어도 저 괴물을 따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나는 몇 초 동안 실로 많은 생각을 했고 결국 결론을 내렸다.

‘이건 아직 못 잡겠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이놈을 잡기 위해서는 조금 더 수련을 하고 장비도 좋은 것으로 맞춰 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빠르게 뒤로 빠지며 친구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친구들, 이번 레이드는 포기하……웁!”

하지만 나는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내 입술을 막고 있는 작고 앙증맞은 손바닥 하나.

[잘 들어라, 인간… 아니 주인님.]

오즈가 답지 않게 진지하고 정중한, 그리고 비장한 태도로 내 입을 막고 있었다.

[지금부터 저놈을 죽일 수 있는 필살 솔루션을 제공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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