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화 사탄 (1)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역시 나를 들여다본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피안(Jenseits Von Gut Und Bose)』中-
* * *
아몬 후작은 찜찜한 대사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바스러져 내렸다.
놈이 말해 준 사실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Hic. sordidum diaboli. Quia adversarius vester sit a me.’
악마어를 할 줄 알던 골리앗이 악마어를 할 줄 모르는 이스비브놉과 멀어지며 소리쳤던 대사.
이스비브놉은 그것을 ‘이쪽이다, 나를 따라와라’ 같은 뜻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반대였다.
‘오른쪽으로 도망친다, 저쪽을 쫒아가라.’
그것은 결연한 용사의 유언이 아니라 자기 대신 친구를 팔아넘기는 이의 대사였다.
“친구를 팔아넘긴다라…….”
나는 찜찜한 기분으로 고개를 내렸다.
아몬 후작은 죽어 가는 그 순간까지도 내게 기분 나쁜 낙인을 새겨놓았다.
‘아몬 후작의 저주’ / 상태이상: 디버프
↳?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진이 내 가슴팍 정중앙에 새겨져 있다.
둥그런 원 안에 새겨진 붉은 역오망성, 그리고 거꾸로 뒤집힌 십자가, 문(門) 자 모양으로 새겨진 기묘한 문양들이 그 주위로 복잡한 무늬를 수놓고 있었다.
“잡고도 찜찜한 놈은 처음이네.”
레이드 시작 전보다 후가 더 불안하다.
용자의 무덤에서 잡았던 개체에게는 이런 패턴이 관측되지 않았었기에 더더욱.
드레이크와 윤솔 역시도 비슷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었다.
“어쩌면 위험등급 S급의 몬스터 중에서도 진짜 독보적으로 강한 존재였기에 잡고도 찝찝함을 남겨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군. 이 찝찝함조차 놈의 사냥 난이도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지.”
“어떻게 해…… 이스비브놉 씨가 너무 가엾어.”
뭐, 이스비브놉의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지금 내 가슴팍에 정체불명의 낙인이 찍혀 있는 판에 그것까지 걱정해 줄 여유는 없는 노릇이다.
그때.
-띠링!
비로소 퀘스트 완료를 뜻하는 알림음이 떴다.
<히든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편지전달자의 자격’>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이스비브놉을 대신해 악마 웨이브를 1회 이상 방어해 낸 자>
<히든 퀘스트 수행 제한: ‘히든 퀘스트 500년 전에 부친 편지’, ‘히든 퀘스트 영원한 상봉(相逢)’을 클리어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아몬 후작(1/1)’ 처치>
<※‘히든 퀘스트 거인국으로 가는 길’과 연계된 퀘스트입니다>
나는 퀘스트 창을 확인한 뒤 말했다.
“일단 퀘스트부터 클리어하러 가자고.”
* * *
거대한 척추뼈가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곳.
붉은 피가 배어든 대지에 거대한 사람 하나가 큰 대(大)자로 누워 뻗어 있는 것이 보였다.
바산의 왕 이스비브놉. 산을 뽑아 던지고 태양을 끌어당겼다는 신화 속 거인. 아마도 현 세계관 최강의 NPC임이 분명한 존재.
그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주저앉아 깊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몬 후작이 소멸하기 직전까지 이어졌던 마지막 악마 웨이브가 역대급으로 거셌던 모양인지 천하의 이스비브놉조차 전신에 긁히고 베인 상처들이 가득했다.
히드라 성체조차 목졸라 죽이는 괴력의 사나이가 이 정도였다면 마지막 대전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저 핏물로 흥건해진 드넓은 대지를 바라보며 입만 딱 벌릴 뿐.
하지만.
[어엇? 작은 친구들 왔는가!]
최후의 악마 웨이브를 막아 낸 이스비브놉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오랜 거마전쟁의 끝에 서 있는 전설적인 존재.
이스비브놉은 우리에게 아주 친근하게 굴었다. 아몬 후작을 처치해 준 게 누구인지 아는 모양이다.
[고맙네, 작은 친구들. 자네들 덕에 우리 거인국은 멸망을 면했어. 비록 나 하나뿐이긴 하지만 거인족은 멸종되지 않은 거야! 내 평생 자네들을 친구로, 은인으로 생각하겠네.]
수천 년 동안 묵은 한숨과 웃음을 같이 토해 내는 그.
피로 얼룩진 미소에는 짙은 슬픔과 회한, 그리고 기쁨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는 나에게로 거대한 손을 뻗었다.
[이렇게 기쁜 날에 친구의 전언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지.]
드디어 이스비브놉의 인정을 받았다.
나는 인벤토리를 뒤져 편지를 꺼냈다.
-<뇌옥 죄수의 답장> / 재료 / D
-구름 거인 골리앗이 보낸 답신.
‘거인국의 마지막 왕이자 나의 절친한 벗 이스비브놉에게’ 라고 적혀 있다.
천공섬에서 건네받은 이 편지.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배달하는군.”
나는 이 편지를 집어 들어 이스비브놉에게 건넸다.
……아니, 건네려고 했다.
순간.
핏-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리고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내 가슴팍에서 검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가슴팍에 새겨져 있던 아몬의 낙인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기이한 빛을 뿜어냈다.
낙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마치 교활한 뱀처럼 내 팔과 손목을 타올랐고 그대로 편지에 스며든다.
“……어엇!?”
이런 패턴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었기에 황급히 손을 뒤로 물린다.
하지만 이미 시스템 상에는 퀘스트가 클리어된 것으로 떠 버렸다.
-띠링!
<히든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거인국으로 가는 길’>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영원한 상봉’ 퀘스트를 선행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거인 왕 이스비브놉에게 구름 거인 골리앗의 편지를 전해주자, 편지 배달 1/1>
<※거인국 입장 시 거인의 몸 조각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편지는 이스비브놉의 손아귀로 빨려들 듯 건네진다.
회수하려고 해도 소용 없었다.
“헉!?”
나는 아몬의 디버프가 깃든 편지를 보고 헛바람을 들이켜야만 했다.
츠츠츠츠츠츠츠……
편지지가 검게 물든다.
악의(惡意)의 악마 아몬 후작의 낙인이 편지봉투 겉면에 우표처럼 새겨졌다.
그리고 말라붙은 피딱지 때문에 그것을 살필 겨를이 없던 이스비브놉은 아무런 의심 없이 내가 가져온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 ……! ……!]
거인의 왕 이스비브놉의 두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피딱지가 찢어질 정도로 두 눈을 크게 뜬 모습.
수천 년간 단 한 번도 쓰러지지 않았던 전사의 굳건한 몸뚱이가 처음으로 휘청였다.
나는 황급히 그의 손 위로 올라가 편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이윽고, 편지지 안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 공개되었다.
이스비브놉. 너는 나를 감옥에 버려둔 채 도망쳤지.
그날 이후 나는 너와 친구가 된 것을 쭉 후회하고 있다. 평생에 걸쳐 말이다.
함께 죽자는 약속을 잊고 혼자만 도망간 너는 위대한 전사가 아니라 비열한 겁쟁이에 불과하다.
나는 네가 좀 더 괜찮은 녀석인 줄 알았지만…… 결국 네놈은 우정을 나눌 대상이 아니었던 게지. 누구를 원망하겠나, 나의 사람 보는 눈이 없음을.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해 두고 싶군.
그날 뇌옥에 수감되어야 했을 이는 내가 아니라 너였다.
-어느 먼 감옥에서, 골리앗-
나도 윤솔도 드레이크도,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몬 후작의 디버프가 편지의 내용을 바꿔 버린 것인가?
아니면 원래 편지의 내용이 이랬던 걸까?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난 수천 년간 굳건하게 버텨왔던 전사의 영혼.
그것을 무너트리는 것은 날카로운 칼도 뾰족한 창도 아니었다.
깨져 버린 우정.
그것만큼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이스비브놉은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온몸의 피가 전부 다 토해져 나올 정도로 크게 절규했다.
그리고.
피에 젖은 대지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죽어 나자빠진 악마들의 원혼이 부르는 노래.
[Hic. sordidum diaboli! Quia adversarius vester sit a me!]
[Hic. sordidum diaboli! Quia adversarius vester sit a me!]
[Hic. sordidum diaboli! Quia adversarius vester sit a me!]
[Hic. sordidum diaboli! Quia adversarius vester sit a me!]
.
.
사면초가(四面楚歌).
주변을 온통 가득 채우고 있는 악마들의 비웃음 소리.
이스비브놉은 무너져 가는 정신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또렷하게 떴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작은 친구들. 저것이 무슨 뜻인가? 저 악마들이 지금 무어라고 하는 건가?]
오래 전 헤어졌던 친구가 마지막으로 했던 대사.
그 대사의 뜻을 이스비브놉은 여지껏 알지 못했다.
“…….”
“…….”
“…….”
나도 윤솔도 드레이크도 입을 다물었다.
아몬 후작이 죽어 가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던 장면이 머릿속에 아직 선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눈치 없는 오즈가 아무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오른쪽으로 도망친다, 저쪽을 쫒아가라’ 였던가? 뭐 대충 그런 뜻이라더군.]
나는 재빨리 쥬딜로페에게 눈짓해 오즈의 머리통을 나뭇가지로 가격하게 시켰지만…… 이미 한 발 늦고 말았다.
[그, 그런…… 그럴 수가!]
이스비브놉의 눈동자가 아까보다 더욱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믿고 있었던 생각이 무너진다.
아몬 후작까지 처치하고 돌아온 우리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아아아아아-!]
그는 계속해서 절규했다. 하늘에 큰 구멍이 뚫리도록 계속해서 절규했다.
그리고 그 동안.
츠츠츠츠츠츠츠츠……
골리앗의 편지에 깃들어 있던 검은 기운, 아몬 후작의 마법진이 점차 이스비브놉의 가슴팍으로 자리를 옮겨 놓기 시작했다.
이 불길한 역오망성이 이스비브놉의 가슴팍에 자리잡는 순간.
…핏!
디버프의 정체가 비로소 세상에 드러난다.
‘아몬 후작의 저주’ / 상태이상: 디버프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는 법.
그것은 늘 이스비브놉이 입에 달고 살던 대사였다.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이스비브놉의 입에서 내장 조각이 섞인 핏물이 울컥울컥 올라온다.
그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들어 하늘에 고정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스비브놉. 극강의 육체를 가진 신화적 존재. 거인들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거인 영웅. 세계관 최강의 NPC.
츠츠츠츠츠……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문(門) 모양의 마법진이 검붉은 빛기둥을 뿜어낸다.
그리고.
쩌저저저저저적!
그의 가슴이 반으로 찢어지며 수천 년간 쌓이고 또 쌓였던 화가 폭발했다.
[그-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지르는 이스비브놉.
격렬한 화가 그의 전신을 시뻘겋게 데웠고 이내 뜨거운 불길이 피어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문처럼 활짝 열린 가슴팍의 마법진, 그 뻥 뚫려 버린 구멍 안에서 시뻘건 불길이 토해져 나왔다.
쿠르르르륵! 기긱- 끼긱-
무언가가 이스비브놉의 몸속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가슴팍에 쪼개진 균열 틈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바산의 왕 이스비브놉의 의지가 꺾였습니다]
[거인국의 마지막 생존자가 절규합니다]
[‘거마전쟁의 흑막(黑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몬 후작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이번 레이드의 최종 목표.
‘사탄’
분노(忿怒)와 천불(千火)의 악마성좌가 드디어 제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