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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24화 (824/1,000)
  • 824화 아몬 후작(Marquis Amon) (5)

    -띠링!

    <‘불의 후작 아몬’이 죽었습니다. 악마 진영 ‘격노의 군단’이 허물어집니다>

    <거인국에 생성되던 악마병들이 사라집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

    .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다음의 3개와 같다.

    악의와 이기심의 악마, 불의 후작, 아몬이 쓰러졌다.

    츠츠츠츠츠츠츠……

    아몬 후작이 ‘악의 요람’ 특성으로 만들어 놓았던 뇌옥이 천천히 붕괴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윤솔, 드레이크, 쥬딜로페와 오즈는 아몬 후작의 방을 나와 지상으로 올라왔다.

    죽어 나자빠진 거대한 개미귀신이 랜드마크로 남은 곳.

    휘이이이잉……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불어 얼굴의 식은땀을 말려 준다.

    거인국 침공의 최전선을 진두지휘하던 아몬 후작이 사라졌으니 이제 거인국은 잠시 소강 상태가 되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던 악마병 웨이브가 멎었으니 이제 바산왕 이스비브놉 역시도 조금은 편해지겠지.

    “뭐 그런다고 멸망한 거인국이 다시 부흥하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거인족이 다시 소생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스비브놉이 홀로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저 쇠락해 가는 명멸의 끝자락을 간신히 잡은 채 버티고 있는 것뿐.

    거인들이 사실상 멸종된 것만은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세 번째 알림음에 주목했다.

    “보상! 보상을 보자!”

    나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상태창을 열었다.

    <이어진>

    LV: 98

    HP: 980/980

    호칭: 불의 후작 아몬의 인성(특전: 헤아릴 수 없는 자)

    레벨은 오르지 않았고(애초에 고정 S+급 몬스터 정도를 잡아야 간신히 1씩 오르는 수준이니 말 다한 셈) 대신 경험치 바가 오른쪽으로 상당히 많이 이동했다.

    아몬 후작을 세계최초로 사냥했으니 새로운 호칭이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자’

    ↳이 특성을 보유한 자의 정신 저항력이 가장 높은 스탯에 비례하여 상승하며 어둠 속성에 한하여 50%의 속성 데미지가 추가 반감됩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간단하다.

    내 스탯 중 가장 높은 항목은 ‘민첩’, 그러니 나의 정신 저항력이 나의 빠르기만큼 더 강력해진다는 뜻.

    예전에 크라켄을 처음 사냥할 당시에도 강조한 바 있지만, 게임 초반부에는 정신계 방어력이 쓸모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사실 게임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 된다.

    “……예전에 상해(上海)로 가는 쇠공에 갇혔을 때, 그리고 창해룡 버뮤다와 싸울 때 뼈저리게 느꼈지.”

    그때 내 귀를 괴롭혔던 기괴한 소음들, 그리고 깨져서 나오는 상태창의 글귀나 심하게 떨리던 각종 수치들.

    이런 것들이 다 정신계 공격의 영향이다.

    만약 정신력이 높다면 레이드 도중 귀나 눈을 교란하는 환청, 환각 등을 보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까마득히 강한 상위의 몬스터를 보았을 때 상태창이 깨지는 일 없이 열람 가능하다는 것도 좋은 혜택.

    게다가 이 특성에는 어둠 속성 데미지 반감 옵션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특전이었다.

    “앞으로 뛸 악마성좌 레이드에 큰 도움이 되겠다.”

    나는 상태창을 닫았다.

    특이하게도, 아몬 후작은 보상 아이템을 떨구지 않았다.

    ……아니.

    땅그랑!

    떨구기는 떨궜다.

    오직 드레이크 한 사람에게만!

    “으음? 왜 나에게만 아이템이 떨어졌지?”

    드레이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레이드 종료 후 집계된 딜 미터기를 보면 나 69%, 윤솔 13%, 드레이크 11%, 오즈 4%, 쥬딜로페 3%로 기여도가 배분되어 있다.

    펫 시스템에 분류되어 있는 쥬딜로페와 오즈는 차지하고서라도, 왜 기여도가 제일 낮은 드레이크에게만 보상 아이템이 떨어졌는지는 조금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몬 후작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이간질 특성이지.”

    ‘이간질’, 아몬 후작이 가지고 있는 기분 나쁜 특성.

    이것은 레이드의 보상을 가장 기여도 낮은 한 명에게만 몰아 주어서 팀의 내분을 일으키게 만드는 보스 몬스터급 스킬이다.

    으레 레이드를 잘 치러낸 팀이라고 해도 공적을 논하고 보상을 배분할 때에는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데 아몬 후작은 딱 이 순간을 노려 논란이 생길 만한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죽어서까지 팀을 와해시키고 플레이어들에게 데미지를 주기 위한, 실로 이기(利己)의 악마다운 최후 공격 패턴이었다.

    그러나 드레이크는 아몬의 발악을 그저 웃어넘겼다.

    “하하, 별로 의미도 없는 수작질이었군.”

    그리고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보상 아이템을 내게 내밀었다.

    “어진. 가장 기여도 높은 네가 받아라.”

    “맞아맞아. 그게 당연하지. 딱 봐도 너 전용 아이템이네~”

    드레이크와 윤솔은 흔쾌히 내게 보상 아이템을 양도했다.

    일반적으로 이해타산에 의해 결성되는 공격대와 달리,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고 현실에서도 끈끈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가능하다.

    아몬의 교활함을 겪어 본 뒤라서 그런가? 늘 있어 왔던 광경이었지만 새삼 코끝이 시큰한 감정이 들었다.

    한편, 나는 아몬이 떨군 아이템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고대 혈액포식자의 링> / 반지 / S

    “적의 피는 곧 나의 포도주이니라.”

    -아몬 후작-

    - 물리 공격력 +3,000

    - 어둠 속성 저항력 +50%

    -특성 ‘혈액포식자’ 사용 가능 (특수)

    꽤나 익숙하다.

    과거 악의 고성의 보스였던 어둠 대왕을 잡고 얻었던 ‘혈액포식자의 링’보다 상위 등급의 아이템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로서 나의 반지는 3개가 되었다.

    오즈가 봉인되어 있는 브로큰 링과 아스모데우스를 잡고 얻은 애간장을 녹이는 링, 그리고 아몬 후작을 잡고 얻은 이 고대 혈액포식자의 링.

    나는 원래 끼고 있던 일반 혈액포식자의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냈다.

    비슷한 아이템을 두 개나 끼고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건 어떻게 할까? 필요한 사람 있어?”

    “그건 드레이크 씨가 끼면 좋지 않을까?”

    나는 윤솔의 의견을 존중했다. 드레이크가 기뻐한 것은 물론이다.

    “혈액포식자 특성이 있으면 좋지. 급할 때 포션이 따로 필요 없으니까.”

    물론 혈액포식자 스킬은 초반에만 유용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

    몬스터의 체력을 흡수하는 것은 좋지만 포션을 마시는 것에 비해 체력 회복 속도가 더딘데다가 상위 티어로 갈수록 피에 지독한 독성을 띠고 있는 몬스터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경우에는 벨제붑을 잡고 얻은 독 저항력 특전이 있기 때문에 그 점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즉, 맹독 특성에 카운터를 찔릴 일이 전혀 없는 우리에게 있어서만큼은 혈액포식자 특성이 여전히 아주 유용한 스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좋아. 이걸로 아몬 레이드 종료다. 이스비브놉에게 돌아가자고.”

    내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편지배달부로서 자격을 증명했으니 퀘스트도 완료할 수 있겠지?

    윤솔과 드레이크가 들뜬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스비브놉 씨가 얼마나 기뻐할지 벌써 눈에 선해요.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친구의 편지를 받았으니까요.”

    “호감도가 엄청나게 오르겠군. 어쩌면 이 퀘스트 클리어 한 방으로 MAX가 될지도 몰라. 히드라 빅헤드를 힘으로 눌러 죽일 정도로 강한 NPC와 우호적으로 지내면 좋겠지. 어쩌면 나중에 힘을 빌릴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바로 그때.

    우리들의 대화를 방해하는 존재가 있었다.

    [킥킥… 킥킥킥킥……]

    불길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아몬 후작!

    이놈이 부서져가는 몸을 이끌고 포탈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HP는 이미 0, 시스템 상 죽은 것으로 처리된 이놈이 아직 살아서 우리 앞에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뭐, 뭐지? 분명 잡았는데? 호칭이랑 아이템 보상도 받았고!”

    “다시 레이드 개시인가? 이번에는 반드시 확인사살까지……!”

    윤솔과 드레이크가 곧장 뒤로 돌아 전투태세로 돌입한다.

    하지만.

    “잠깐만.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된 이상 레이드가 종료된 것은 맞아. 조금만 기다려 보자구.”

    나는 아몬 후작이 현재 공격 불가 상태임을 눈치 챘다.

    우리가 공격을 할 수도, 놈이 공격을 할 수도 없는 상태.

    즉 우리는 지금 흘러가는 세계관 속 역사, 메인 퀘스트 에피소드의 흐름에 합류해 있는 것이다.

    피딱지가 바짝 말라붙은 아몬 후작의 주둥이가 달싹거렸다.

    [키킥킥…… 너희들은 정말 사이가 좋구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몬 후작의 눈동자가 불길한 적빛으로 빛난다.

    [언제까지 내 그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는지 내가 지켜보마. 죽어서도 말이야.]

    천천히 바스러져 가는 아몬 후작.

    하지만 놈의 저주가 입 밖으로 나와 떨어지는 순간!

    츠츠츠츠츠츠츠……

    기분 나쁜 아우라가 내 몸에 깃든다.

    아몬 후작의 저주, 이 정체불명의 디버프가 내 몸을 순식간에 감쌌다.

    ‘아몬 후작의 저주’ / 상태이상: 디버프

    ↳?

    거부할 수 없는 흐름에 숨이 턱 막혀 온다.

    황급히 상태창을 열었지만.

    “어? 뭐야 이거?”

    딱히 바뀐 점은 없었다. 호칭이나 레벨, 경험치, 스탯 등은 모두 그대로였다.

    혹시나 해서 아이템 창도 한번 슥 훑었지만 딱히 소멸하거나 빼앗긴 아이템도 없었다.

    디버프의 내용은 알 수 없다. 뭔가 걸리긴 걸렸는데 뭐가 걸린지를 몰라 찜찜할 뿐.

    -핏!

    그때쯤 해서 공격 불가 상태가 해제되었다.

    나는 아몬의 앞으로 걸어가 최후의 공격을 준비했다.

    “이건 이스비브놉의 복수이기도 하지.”

    마몬의 건틀릿이 일발 장전된다.

    끝내기 전, 나는 놈에게 악마어로 선고했다.

    “Hic. sordidum diaboli. Quia adversarius vester sit a me.”

    화려한 무대, 거인국 에피소드 최후의 막이 내려간다.

    아마도 먼 옛날 결연한 용사의 유언이었을 그 대사.

    그것을 놈에게 들려주면서 레이드와 히든 퀘스트의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선고를 들은 아몬 후작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다.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하나?]

    “……뭐?”

    나 역시도 아몬 후작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몸을 멈춘다.

    …파사삭!

    내가 일격을 가하지 않아도 아몬 후작의 몸은 먼지처럼 바스라진다.

    놈은 죽기 직전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른쪽으로 도망친다, 저쪽을 쫒아가라’ 라는 말을 뜬금없이 왜 지금 하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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