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화 아몬 후작(Marquis Amon) (4)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Bad Ending Nightmare form) / 일명 ‘유토피아 폴(Utopia fall)’>
-등급: S
-특성: ?
-습성: 배회성
-서식지: ‘식인황제의 제전(齋殿)’
-발견일: 0월 0일 00시 00분.
-……일반적인 형태의 배드엔딩과는 뭔가 다른 것 같다.
식인황제 보카사.
메인 퀘스트를 진행해 나가다 보면 스토리 상 두 번째로 마주치게 되는 ‘선악과’ 특성 몬스터.
놈은 마찬가지로 선악과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세 번째 몬스터 ‘아몬 후작’의 충실한 노예가 되어 있었다.
…짜악!
아몬 후작이 불과 천둥의 채찍을 들어 보카사의 등을 후려갈겼다.
[그아아아아악!]
수레를 끄는 짐승.
보카사는 입술도, 잇몸도 없이 훤히 드러난 이빨들 사이로 체액을 게워내며 몸부림쳤다.
뜻밖의 재회에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윤솔과 드레이크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용자의 무덤 공략 영상에서 한 번씩들 봤지?”
내가 이미 시청각자료들을 이용해 충분히 교육을 시켜 뒀기 때문이다.
과거 아스모데우스 레이드를 가던 도중 용자의 무덤 106층에서 만났던 아몬 후작 역시도 HP가 일정치 이하로 감소하면 이 보카사를 사역마로 소환해 부렸었다.
“침착하게, 전에 하던 대로만 하면 돼.”
나는 바로 레이드에 착수했다.
“좌우로 휘둘러지는 보카사의 커다란 손바닥을 피해 좌우로 원투, 자! 이어지는 꼬리치기를 피해 점프한 뒤 왼쪽으로 탁탁 스탭, 꼬리가 지나가고 텅 빈 옆구리에 원투, 다시 빠져 주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주먹이 쾅쾅! 백스텝 두 번으로 샥샥- 피해주고 다시 돌진해서 원투! 바로 빠져 주시고,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탁탁 스탭, 날아오는 체액 분사는 깔끔하게 구르기로 피한 뒤 다시 돌격! 원투! 반격기로 이빨 딱딱 오는데, 안 맞지 그런 거, 뒷구르기로 샤샤샥, 어이쿠 다리쓸기 오면 더 낮게 납작 엎드려 주시고, 다시 하복부에 원투쓰리까지! 그리고 또 꼬리가 붕! 날아오면 백스탭 탁! 붕탁……!”
“으앙, 못 따라 가겠어! 패턴을 아예 기보처럼 다 외운 거야?”
“……무시무시하군. 보카사 말고, 어진 너.”
[끔찍한 인간이로다. 과거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것을 적으로 돌렸던고.]
[호앵뿌루뿌…]
나, 윤솔, 드레이크, 오즈, 쥬딜로페는 열심히 보카사를 공략한다.
나는 깎단으로 보카사의 전신 구석구석을 찔러 도트데미지가 골고루 퍼지게끔 했고 윤솔은 신성불가침 보호막으로 보카사의 움직임에 제약을 걸었으며 드레이크는 원거리에서 말뚝 딜을 넣는다.
거기에 오즈와 쥬딜로페가 열심히 던지고 있는 슬라임 젤리와 타락 양파 때문에 보카사는 꾸준한 속성 데미지와 디버프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이것이!”
“다른 배드엔딩들의 원한이다!”
윤솔이 대천사의 랩소디 하프를 연주해 보카사의 몸을 묶고 드레이크는 배드엔딩의 외골격으로 만들어진 화살을 놈의 몸통에 박아 넣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윤솔이 가지고 있는 하프의 디버프는 맨 마지막의 즉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먹혀들어갔다.
‘마비’, ‘공포’, ‘환각’, ‘실명’, ‘과부하’, ‘영구저하’라는 여섯 개의 상태이상에 노출된 보카사는 허우적거리며 날뛰지만 애꿎은 주변만 파괴할 뿐이다.
심지어.
[으읏!? 이놈이 미쳤나! 감히 누구에게 이빨을 들이미는 것이냐!]
눈먼 에임은 오히려 주인인 아몬 후작을 공격하고 있었다.
보카사의 이빨과 손톱에 날개를 조금 찢긴 아몬 후작은 격분한 표정으로 채찍을 들었다.
…짜악!
휘둘러진 채찍은 보카사의 등가죽을 죄다 터트려 놓은 뒤 그것도 모자라 목에 착 달라붙어 휘감겼다.
보카사의 목을 채찍으로 조르는 아몬 후작, 그는 이내 채찍을 쥐지 않은 반대쪽 손을 쫙 폈다.
퍼억!
여리여리해 보이는 체구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손아귀, 그 끝에 달려있는 늑대의 손톱이 보카사의 뺨을 걸레쪼가리로 만들어 놓는다.
[열등한 천사 놈이라 그런가 노예 역할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구나.]
이 패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보카사의 HP가 일정 수치 이하로 감소하자 아몬은 직접 나서 보카사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뿌지직!
아몬의 입에서 튀어나온 검은 혀가 이내 송곳처럼 변하더니 보카사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간다.
[내 너에게 주었던 힘을 도로 회수하리라.]
본디 천공섬의 집정관이자 수석마법사로 있던 보카사를 타락시킨 장본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대사였다.
아몬은 악의와 이기의 악마답게 보카사의 전신에서 악(惡)의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꾸드득! 뿌득!
뼈가 자라고 근육이 불어나는 소리.
여리여리하던 아몬의 체형은 순식간에 근육질 덩치로 변한다.
동시에.
[…….]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빠져나간 보카사가 힘없이 늘어졌다.
그 모습은 우리가 맨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의 흰 모습. 늙고 힘없는 인간형태의 몸이었다.
보카사 바리새인. 종족의 부흥을 위해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한 남자.
하지만 그 신념을 맹신한 나머지 완전히 비뚤어져 종국에는 숙적의 노리갯감으로 전락해 버린 비운의 사도.
머릿속에 끼어 있던 어둠이 남김없이 빠져나갔기 때문일까?
보카사는 더없이 잔잔한 눈동자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윤솔을.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나름대로 모두를 위해 도움이 되고 싶었다.]
동시에, 눈앞에 동영상 몇 개가 떴다.
그것은 천공섬에 살며 열심히 업무를 보던 시절의 보카사.
그리고 어느 날 산책길에 검은 씨앗 하나를 줍는 보카사.
그 씨앗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고는 놀라는 보카사.
씨앗이 퍼트리는 어둠에 점점 물들어 가는 보카사.
저항해 보지만 항거할 수 없는 어둠에 절규하는 보카사.
그리고 보카사. 보카사 바리새인.
그는 윤솔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맑은 정신으로 말할 수 있어 다행이구나.]
보카사의 입에서 마지막 대사가 흘러나왔다.
[……미안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파삭!
보카사는 흰 재로 변해 바스라졌다.
그리고 그의 힘을 남김없이 흡수한 아몬이 싱글싱글 웃으며 걸어온다.
<아몬 후작(Marquis Amon) 眞> -등급: S / 특성: 어둠, 하수인, 악마, 숨은 자, 헤아릴 수 없는 자, 뇌옥, 악의 요람, 혈액포식자, 연옥정화, 미래예지, 이간질, 선악과
-서식지: 거인국 ‘후작의 방’, 용자의 무덤 ‘106 번뇌층’
-크기: 4m
-과거 대악마들만이 앉을 수 있는 일곱 개의 좌(座)에 도전했다가 패한 아몬 후작은 서열 8위에 머물며 호시탐탐 빈 좌석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곱 악마성좌를 제외하면 ‘가장 강대하며 엄격한 마물’로 통하며 자신의 본 모습을 본 이는 반드시 죽이는 것으로 악명 높다.
보카사를 흡수한 이후 놈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전의 모습이 여리여리한 인간 형태의 미남자였다면 지금의 모습은 흡사 마수(魔獸) 그 자체.
얼굴은 거대한 올빼미의 것이었고 입은 사람의 것이되 입안에 빼곡하게 들어찬 이빨들이 몹시도 날카로웠으며 두 팔은 늑대의 것, 그리고 가슴 아래쪽부터는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전신에 이글거리는 먹구름에서는 화염과 플라즈마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불타 사라져라.]
아몬은 ‘불의 후작’이라는 별명답게 입에서 거대한 불기둥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아쉽네. 크라켄의 방패가 지금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딱히 불 데미지가 무섭지는 않다.
나에게는 마몬의 건틀릿이 있기 때문이다.
…콰악!
불을 찢고 쇠를 두들기던 대장장이의 망치.
이 대망치 건틀릿은 아몬이 토해 내는 불기둥을 정면으로 맞붙어 찢어 버린다.
[……!?]
아몬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하지만 이변은 없다. 용자의 무덤에서도 그랬듯 말이다.
강한 공격력을 더 강한 공격력으로 짓누르고 반동 데미지는 몸으로 때운다.
더군다나 애간장의 링 덕분에 HP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나의 공격력은 오른다.
위기의 순간에는 앙버팀으로 한번 버티고 여벌의 심장으로 HP를 채우면 그만.
[이노옴!]
아몬은 혈액포식자 특성으로 내 생명력을 도둑질하려 하지만.
츠츠츠츠츠……
오히려 내 몸속에 흐르는 오염된 피에 중독되어 추가 데미지만 역으로 입을 뿐이다.
“어때? 힘이 빠지지?”
나는 아몬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제 한 몸을 회복하기 위한 이기(利己) 때문에 보카사라는 이기(利器)를 스스로 없앤 것이 놈의 결정적 패인이다.
그리고 불을 찢으며 앞으로 전진하는 내 뒤로는 윤솔의 든든한 힐과 드레이크의 엄호, 오즈와 쥬딜로페의 젤리와 양파 지원사격이 함께한다.
[그윽! 갸아아아악!]
아몬은 불을 토해 내던 것을 멈추고 다시 채찍을 잡아들지만 이미 늦었다.
콰쾅!
마몬의 건틀릿과 데스웜의 건틀릿이 각각 아몬에게 한 방씩 크게 먹인다.
놈의 이빨들이 우수수 박살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빨이 나가서 드러난 입 안으로 드레이크의 화살들이 퍽퍽 들어가 박힌다.
아몬은 거리를 벌리려 발버둥 쳤지만 이미 윤솔의 신성불가침 보호막 안에 들어온 뒤라 도망칠 수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몬 후작의 얼굴에 두려움의 빛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이렇게 밀려 본 적 없을 거야.”
일곱 악마성좌를 제외하면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악마.
하지만 우리는 이미 칠죄종(七罪宗)을 상징하는 일곱 악마성좌들 중 무려 5마리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노련한 파티이다.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 나태의 악마성좌 벨페골,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 색욕의 악마성좌 아스모데우스.
이 중 벨페골을 제외하고는 모두 잡았다.
그러니 아몬 후작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큰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보카사를 소환했을 때에는 조금 놀랐지만 말이야.”
위험등급 S랭크, 그것도 꽤나 상위 티어에 속하는 몬스터 두 마리를 상대하는 것이니만큼 단단히 준비해 왔다.
보카사를 잡은 시점에서 아몬의 변신 2페이즈 단계는 그리 어렵지 않은 벽이었다.
…쾅!
버스트 다이브(Bust dive), 영혼의 한타!
나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쏟아낸 마지막 일격에 결국 아몬 후작이 고꾸라진다.
우지지직!
자기가 만든 뇌옥의 벽에 머리를 처박는 아몬.
거대한 뱀의 몸체가 휘청이며 쓰러지는 순간.
-띠링!
<‘아몬 후작’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불의 후작’이 죽었습니다. 악마 진영 ‘격노의 군단’이 허물어집니다>
<거인국에 생성되던 악마병들이 사라집니다>
<거인국의 기상이변들이 사라집니다>
<‘분노의 악마성좌’가 고인물 님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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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가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