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22화 (822/1,000)
  • 822화 아몬 후작(Marquis Amon) (3)

    -띠링!

    <히든 던전 ‘후작의 방’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입장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

    .

    아몬 후작(Marquis Amon)이 보스로 군림하고 있는 장소.

    이 공간을 무어라 묘사해야 할까?

    굳이 따지자면 ‘원룸’, 거대한 원룸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우리가 포탈을 통해 반강제로 들어온 공간은 거대한 하나의 방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방의 천장이나 벽이 모두 넘실거리는 먹구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콰쾅!

    검은 기류가 넘실거리는 벽 위를 번쩍이는 실금들이 기어간다.

    먹구름 속에 치는 번개를 보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은…… 역시나 뇌옥(雷獄)인가.”

    과거 비행로에 갔을 때 보았던 거대한 먹구름 감옥이 절로 떠오른다.

    그 뇌옥을 만든 이는 역시나 아몬 후작이었다.

    나는 용자의 무덤 106층에서 만났던 놈을 떠올렸다.

    괴물이 끄는 수레에 올라 불의 채찍을 휘두르던 초고위 악마.

    놈의 서열은 일곱 악마성좌를 제외하면 전 악마들 중 가장 높다던가.

    그때.

    “어진. 저기.”

    눈 좋은 드레이크가 드넓은 방 저 안쪽을 가리켰다.

    나 역시 봤다.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즉시 몸을 일으키는 인간형태의 마물을.

    [서로 사이가 좋아 보이는구나. 모험가들이여.]

    나를 보며 빙긋 웃는 존재.

    아몬 후작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보스 몬스터치고는 상당히 빠른 등장이었다.

    그런 우리의 심경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아몬 후작은 어깨를 으쓱했다.

    [잡졸들을 주렁주렁 부리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 거추장스럽잖아.]

    아몬은 악의와 이기(利己)를 관장하는 악마. 자기 외의 다른 타인들은 모두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으며 오로지 혼자 고고하게 군림하는 존재였다.

    이윽고, 아몬 후작은 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왔다.

    가까워질수록 놈의 외형이 더욱 똑똑히 보인다.

    용의 두개골로 만들어진 투구에 뱀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미남자.

    가녀린 몸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두 손에는 늑대의 발톱이 달려 있었으며 등에는 올빼미의 날개가 달렸다.

    손에는 번개와 화염이 뒤섞여 타오르는 긴 채찍을 말아 쥐고 있는 상태였다.

    <아몬 후작(Marquis Amon)> -등급: S / 특성: 어둠, 하수인, 악마, 숨은 자, 헤아릴 수 없는 자, 뇌옥, 악의 요람, 혈액포식자, 미래예지, 이간질, 선악과

    -서식지: 거인국 ‘후작의 방’, 용자의 무덤 ‘106 번뇌층’

    -크기: 2m

    -지옥의 40개 군단을 이끄는 군단장. 일곱 악마성좌를 제외하고 그보다 높은 지위에 오른 악마는 없다.

    만마전 서열은 8번째로 가장 악마성좌에 근접했다고 알려진 존재.

    거인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놈은 얇고 가늘며 풍성한 은색 장발 사이로 시뻘건 눈을 빛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전성기 시절의 어둠 대왕 솔로몬을 보는 것 같았다.

    한편. 나는 아몬 후작의 얼굴을 보는 즉시 표정을 구겼다.

    “어우, 저 미끈미끈한 얼굴을 또 보네.”

    과거 아스모데우스를 잡으러 가는 길에 용자의 무덤 106층에서 만났던 적 있는 몬스터이다.

    잭 오 랜턴과 식인황제 보카사에 이어 ‘선악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 세 번째 몬스터.

    당시 105층의 층주였던 데스나이트 사묘아리, 107층의 층주 히드라 빅헤드와 더불어 정말로 상대하기 어렵고 까다로웠던 몬스터 중 하나였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바짝 긴장했다.

    “그 용자의 무덤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보스라면…… 이거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는걸?”

    “괜찮다. 어진이 혼자서도 잡았던 몬스터 아닌가. 셋이라면 더욱 수월할 것이다.”

    친구들의 판단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나는 예전에 한번 아몬 후작을 잡아 본 적 있었지만 그때의 아몬 후작은 용자의 무덤 안에 복제된 모조품에 가까웠으니 주의해야 한다.

    용자의 무덤에서 나오는 개체와 본래 지정된 맵에서 나오는 개체는 미묘하게나마 다른 공격 패턴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몬 후작은 용자의 무덤에서 맞닥뜨렸을 때와는 다른 공격 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라, 나의 아이들아.]

    아몬 후작이 채찍을 들어 바닥을 한번 휘갈기자 먹구름이 일순간 흩어지며 긴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커먼 비늘을 가진 뱀들이 우글우글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요르문간드, 쌍뿔칠흑, 독웅덩이 이빨비늘, 자이언트 파이썬, 인면 코브라, 우로보로스 등등…… 강력한 독과 마법 면역을 가지고 있는 뱀들이 우리를 포위한다.

    다행히 물리방어력은 형편없는 녀석들이기에 마법사가 없는 우리 파티 쪽이 상성 상 유리하다.

    드레이크는 뱀들이 다가오는 족족 화살로 쏘아 죽였다.

    대가리에 화살이 꽂힐 때마다 픽픽 쓰러져나가는 뱀들.

    [이런, 내 아이들과 상성이 별로 좋지 않구나.]

    아몬 후작은 고위 몬스터답게 빠른 판단을 내렸다.

    우리 파티에는 마법 공격을 주특기로 삼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놈은 뱀들을 뒤로 물린 뒤 커다란 손아귀를 뻗어 불과 천둥의 채찍을 쥐었다.

    …짜악!

    놈이 채찍을 한번 휘두르자 그 충격파가 고스란히 벽을 타고 이쪽을 향해 날아든다.

    콰콰콰쾅!

    불벼락. 화염과 뇌전 데미지가 그물처럼 뻗어 나와 우리를 요격했다.

    간신히 바닥을 굴러 피했지만 이 데미지는 계속해서 따라온다.

    이 방 안에 있는 한 아몬의 사정거리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것이다.

    “역시 뇌옥의 주인답군.”

    나는 아몬의 공격을 피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그냥 몸으로 뚫고 나간다!

    어차피 앙버팀 특성과 여벌의 심장 특성이 있으니 포션만 받쳐 주는 한 탱킹이 가능하다.

    또한 윤솔이 뒤에서 끊임없이 힐을 걸어 주고 있으니 든든한 일이다.

    “……어떻게 깎단만 한번 좀 먹이면 좋겠는데.”

    지난 레이드에서도 이게 가장 어려웠다.

    불과 천둥의 채찍으로 원거리를 요격하는 동시에 근거리에 다가온 적을 늑대의 손아귀로 찢어 죽이는 아몬.

    더군다나 놈은 올빼미의 날개와 뱀 꼬리를 자유자재로 놀려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혔다 늘렸다 아주 제 맘대로다.

    (심지어 독과 마법을 막을 수 있는 뱀 방패까지!)

    이 공간 안에 있는 한 아몬에게 유효타를 먹이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

    “윽! 신성불가침 배리어가 저기까지 안 닿아! 미묘하게 저쪽의 사정거리가 더 기네.”

    “불벼락 때문에 화살로도 저격이 쉽지 않군. 양손무기인 강궁이라면 모를까 쇠뇌로는 무리 같다.”

    윤솔과 드레이크도 난색을 표한다.

    나 역시도 전과 똑같은 패턴으로 계속되는 고전에 낭패감을 금할 수 없었다.

    용자의 무덤에서는 공간이 비좁은 것과 파괴불가 돌기둥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이용했지만 이곳 후작의 방 안에는 그런 오브젝트조차 없어서 접근이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 기술만큼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건만.”

    아몬의 완벽한 공방일체 철옹성에 틈을 만들 수 있는 기술.

    하지만 그 여파가 너무 심해서 쓸 수 없었던, 내 스스로 봉인했던 필살기를 쓸 순간이 왔다.

    “어, 어진아. 그런 기술이 있어?”

    “얼마나 위험한 기술이기에 그렇게까지 이를 악무는가?”

    윤솔과 드레이크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돌아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피가 나 줄줄 흐를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봉인시켜뒀던 금단의 기술을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찡긋!

    윙크(Wink).

    한 쪽 눈을 깜박이는 표정의 일종.

    성적인 호감 따위를 전달하는 데 쓰이는 비언어적 대화.

    “?”

    “?”

    [?]

    [?]

    윤솔과 드레이크, 오즈와 쥬딜로페의 머리 위에 동시에 물음표가 뜬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된 연속 동작을 취했다.

    다리를 살짝 굽힌 뒤 상체를 아래로 조금 숙이고 가슴골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윙크.

    “??”

    “??”

    [??]

    [??]

    윤솔과 드레이크, 오즈와 쥬딜로페의 머리 위에 뜬 물음표가 개수를 더해 간다.

    하지만 내 행동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

    [……크윽!?]

    내 윙크와 포즈를 본 아몬 후작이 갑자기 공격을 멈추더니 얼굴을 발그레 붉히기 시작한다.

    “???”

    “???”

    [???]

    [???]

    윤솔과 드레이크, 오즈와 쥬딜로페가 나를 돌아보며 당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상태창을 켰다.

    <이어진>

    LV: 98

    HP: 980/980

    호칭:  색욕의 악마성좌 아스모데우스의 위상(특전: 팜므파탈)

    보고 있나 아몬? 나의 치명적인 눈빛을.

    ‘팜므파탈’

    ↳남성에게 무조건적인 호감의 대상이 됩니다.

    ※이 능력은 몬스터와 NPC를 불문하고 적용됩니다.

    나는 색과 섹의 악마성좌 아스모데우스를 잡고 얻은 이 팜므파탈 특성을 한껏 개화한 뒤 윙크를 날려 보냈던 것이다.

    섹           도

    시           발

    나의 섹도시발, 아니 섹시 도발은 아몬 후작의 집중력을 흐트려 놓는다.

    “내 이 특성만큼은 꺼내지 않으려 했건만.”

    파급력(?)이 무서워 스스로를 봉인시켰던 기술.

    하지만 아몬 후작의 철옹성을 뚫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크, 크윽! 감히 나를 상대로 미인계를 쓰다니! 미모만 믿고 날뛰지 말지어다!]

    천하의 아몬 후작이라고 해도 악마성좌 아스모데우스의 힘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능글맞게 휘어져 있던 놈의 입꼬리가 굴욕감에 일그러지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기회였다.

    “이게 되네.”

    용자의 무덤을 한창 오를 당시에는 쓰지 못했던 기술인지라 반쯤은 도박이었는데 제대로 먹혀 다행이다.

    스팟!

    나는 두 개의 깎단을 교차하며 아몬 후작의 뒤를 잡았다.

    “등짝을 보자.”

    동시에 깎단이 아몬 후작의 뒤를 깊게 찌른다.

    쌍깎단의 도트 데미지와 벨제붑의 역병 데미지, 거기에 심록용의 채식주의자 공격력 버프까지 들어가자 아몬 후작의 표정이 고통으로 급격히 일그러졌다.

    [그아아앗! 이 건방진 놈! 감히 인간 따위가!]

    결국 아몬 후작은 조금 일찍 최후 페이즈를 선보인다.

    “……올 게 왔군.”

    나는 잽싸게 뒤로 빠져나가며 중얼거렸다.

    이윽고, 아몬 후작은 자기의 마차를 끌던 마수(魔獸)를 불러들였다.

    츠츠츠츠츠……

    차원문을 넘어 지옥 불구덩이에서 몸을 일으키는 검은 괴물.

    그리고 그것은 윤솔도 드레이크도 익히 아는 몬스터였다.

    [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라악마들의세상따위전부망해버려……]

    알아들을 수조차 없을 만큼 빠르게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괴물.

    시커멓게 물든 몸에 목과 손목, 발목을 구속하고 있는 거대한 구속구.

    등에 짊어지고 있는 크고 화려한 수레.

    그리고 선악과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두 번째 몬스터.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Bad Ending Nightmare form) / 일명 ‘유토피아 폴(Utopia fall)’>

    -……일반적인 형태의 배드엔딩과는 뭔가 다른 것 같다.

    1차 대격변의 최종보스였던 ‘식인황제 보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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