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20화 (820/1,000)
  • 820화 아몬 후작(Marquis Amon) (1)

    -히든 던전 ‘메다라메다라의 굴’-

    지름이 3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모래구덩이가 펼쳐져 있다.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만 한 넓이의 이 모래지옥 속 경사로에서는 입자가 거친 모래알이 시속 3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이 전력질주 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츠츠츠츠츠츠……

    그리고 이 흐르는 모래들의 중심에는 두 개의 거대한 집게뿔을 드러내고 있는 괴물이 자리하고 있다.

    단단한 외골격, 온몸에 빼곡하게 돋아난 가시, 모래를 빠르게 휘젓는 다리들.

    <지옥불구덩이 개미악귀 ‘메다라메다라’> -등급: S / 특성: 악귀, 하수인, 벌레, 어둠, 잠복, 와류, 백전노장, 만근추, 악의 뿌리, 다중와류

    -서식지: 거인국 ‘거인의 주방’

    -크기: 17m

    -개미지옥류 몬스터의 정점(頂點).

    수많은 아종과 변종들이 존재하는 개미귀신 계열 몬스터들의 공통점은 모두 ‘개미지옥’을 건설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거대하고 흉측한 악귀는 모래와 시체로 만들어진 요새 속에서 실로 오랜 시간동안 군림해 온 존재로 땅굴 깊숙한 곳에 숨어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능히 지면 위에 수많은 와류들을 만들어 적을 끌어들인다.

    놀랍게도, 일부 마물학자들은 이 끔찍한 존재가 무언가의 유충(幼蟲) 단계라고 주장하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근거는 제시되지 못했다.

    [갸-아아아아악!]

    유사(流沙)의 제왕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다.

    지옥불구덩이 개미악귀, 심지어 ‘메다라메다라’라는 고유 이름까지 하사받은 네임드 몬스터.

    가혹한 사막에 사는 필드보스 ‘모래구덩이 개미악귀’의 진화형태로 까마득한 상위종이다.

    크기도 5미터 정도이던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커졌고 다스리는 오픈필드형 던전의 영역 크기 역시도 어마어마하게 넓어졌다.

    한편.

    이 거대한 보스 몬스터를 맞이하는 드레이크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보자. 차지하고 있는 필드의 공간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반면 유효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체적은 보기보다 좁군. 드러나 있는 부분도 대부분은 외골격인가. 이렇게 되면 피격 판정 박스가 너무 좁아지겠는데. 개체의 물리 방어력이 높은 것은 당연하겠고 모래 벽을 세우는 특성 때문에 마법 방어력도 상당하겠군. 그렇다면 급소를 노리는 것만이 유일한 공략법인데…… 어디를 노려야 하나…… 흐음.”

    냉철하게 상대를 관찰하는 드레이크.

    그 시선은 사냥감의 것이 아니라 사냥꾼의 것이다.

    사냥꾼은 이기지 못할 싸움은 하지 않는다.

    [게에엑- 그으윽- 쉬익!]

    오랫동안 이 모래구덩이 속에서 적수가 없었던 제왕은 도전자의 존재 자체가 낯선 모양이다.

    그도 그렇듯, 지금껏 자신에게 걸려든 모든 것들은 혼비백산하여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 바빴는데 되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으니 생경할 수밖에.

    애초에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이곳까지 진입할 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윽고.

    파츠츠츠츠츠!

    모래의 유속이 빨라졌다.

    어마어마한 빠르기의 유사가 소용돌이의 원주를 넓혀나간다.

    …쾅! 콰쾅! 우지지직!

    유구한 세월 동안 한 자리에 굳게 서 있었을 바위들이 총알처럼 쏘아지는 모래알에 맞아 퍽퍽 깨져나간다.

    박살난 암석의 파편들은 순식간에 유사에 파묻혔고 이내 새로운 모래로 변해 휩쓸린다.

    움직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야욕! 사막의 모래는 한껏 굶주려 있다.

    [키-이이이익!]

    메다라메다라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드레이크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이쿠, 이 녀석. 내가 있는 곳을 통째로 빨아먹겠다는 건가?”

    드레이크는 딛고 서 있던 바위 위에서 껑충 뛰어 건너편 바위로 올라섰다.

    아직까지는 유사의 범위 바깥에 박혀 있는 암석지대였다.

    바로 그때.

    [퉤-엣!]

    유사 중앙에 우뚝 서 있던 메다라메다라가 무언가를 뱉었다.

    “……엇!?”

    드레이크는 바위에서 바위로 건너뛰던 도중 자신의 앞으로 확 날아드는 물체에 당황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악마병이었다!

    중갑옷을 입은 거구의 악마 전사 하나가 기괴하게 꺾인 자세로 허공을 날아 드레이크를 덮쳐왔다.

    “……악마를 뱉어내나? 소환계열 마물? 그렇다면 골치아픈걸.”

    드레이크는 황급히 싸울 준비를 했다. 상대가 근접공격형 소환수라면 쇠뇌 하나를 집어넣고 단검을 들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허공을 날아온 악마병은 드레이크를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퍼억! 뻥!

    그대로 바위에 부딪쳐 터져나갈 뿐이다.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온 악마병의 시체가 바위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악마 특유의 질긴 가죽이 찢어지며 안에서 터져 나온 것은 지독한 악취가 풍겨오는 배설물이었다.

    “아하, 그런가. 다 먹고 남은 잔반을 던지는 것이었군.”

    드레이크는 이 악마병이 메다라메다라의 공격 패턴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퉤엣! 퉷! 패앳!]

    메다라메다라는 계속해서 근처 모래 속에 파묻혀 있는 악마병의 시체를 집어던졌다.

    뎀에 등장하는 개미귀신 류 몬스터들은 현실의 실제 개미귀신이 으레 그렇듯 사냥한 먹잇감을 잡아 내장을 빨아먹은 뒤 텅 빈 몸뚱이 안에 자기의 배설물을 채워 구덩이 밖으로 집어던지는 습성이 있는데 이 메다라메다라 역시도 같은 식사 패턴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펑! 퍼펑! 퍽-

    중갑으로 무장한, 그러나 팔다리는 비쩍 마르고 배만 불룩 튀어나온 악마병 시체들이 내던져졌다.

    그것들은 바위나 땅에 부딪치는 즉시 터지며 지독한 배설물들을 흩뿌려 놓는다. 지독한 독 데미지가 사방팔방으로 터져나가는 것은 물론이다.

    “느리고 데미지도 적지만 귀찮긴 하군.”

    드레이크는 떨어져 내리는 배설물 시체들을 피해 계속해서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있었다.

    좀 자리를 잡고 에임을 잡으려 하면 날아드는 시체 폭탄 때문에 다시 이동해야 한다.

    펑! 퍼펑! 우지직!

    이제는 메다라메다라가 만들어내는 모래가 창처럼 쏘아져 오기 시작했다.

    파도의 형상으로 넓게, 때로는 창의 형상으로 좁게 날아드는 원거리 딜은 아주 골치 아픈 것이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주어진 상황에 하나하나 침착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악마병의 시체가 무한한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포기하겠지.”

    소용돌이는 딱히 더 넓어지지 않았다. 아직 발을 디뎌 놓을 바위들도 많다.

    또한 메다라메다라가 던지는 시체 폭탄의 속도는 S급 몬스터의 공격패턴치고는 상당히 느린 편이었기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메다라메다라는 드레이크를 잡지 못하자 패턴을 바꾸었다.

    [……끄르르륵!]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바둥거리던 메다라메다라는 이윽고 흐트러진 모래구덩이를 수선하기 시작했다.

    모래를 던질수록 자신의 몸이 바깥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다시 다리를 뻗어 주변의 모래들을 끌어모아 요새를 증축할 생각인듯했다.

    “그리고 지금이 딜 타이밍이지.”

    드레이크는 바로 쇠뇌를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눈여겨봐왔던 메다라메다라의 관절, 눈, 이빨 사이의 입 안 등등에 화살을 박아넣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래를 사방팔방으로 던져서 몸을 엄폐할 것이 사라진 지금이 적기였다.

    “자, 거리를 조금 더 좁혀 볼까?”

    드레이크는 앞으로 내달리며 쇠뇌를 겨누었다.

    지진이 멎자 에임이 훨씬 더 정확해지고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그 결과 메다라메다라는 여덟 개나 되는 눈알을 모조리 잃어버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관절 부근의 약한 키틴질 갑옷을 뚫고 불카노스 화살촉이 들어와 박힌다.

    “오? 약간 빗나갔는데도 데미지가 들어가나? 피격 판정이 보기보다는 관대한데? 흉악하게 생겨서 조금 긴장했잖나.”

    드레이크는 침착하게 쇠뇌를 장전했다.

    메다라메다라는 여덟 개의 눈에 여덟 개의 화살을 박은 채 드레이크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피눈물이 흘러나오는 열 개의 구멍이 크게 벌어진다.

    메다라메다라가 최후 필살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드레이크는 금방 눈치 챘다.

    “흐음. 뭘 꺼내드는지 한번 볼까?”

    드레이크는 연사를 멈추고는 잠시 뒤로 물러나 상황을 관망하기 시작했다.

    이내.

    츠츠츠츠츠츠……

    메다라메다라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의 모양이 변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던 소용돌이가 체적을 점차 불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여섯 개의 원으로 쪼개진다.

    육와류(六渦流).

    자그마치 여섯 개의 소용돌이가 전방위적으로 배치되어 점차 중앙을 향해 접근해 오는 모양새.

    “아하, 와류 스킬의 상위호환인가?”

    드레이크는 여섯 개의 와류 중앙에 놓이게 되었다.

    쿠구구구구……

    작은 산처럼 우뚝 솟아 있는 바위 역시도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미 주변에 있는 다른 작은 바위들은 뿌리째 뽑혀 나와 소용돌이들의 중앙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더군다나.

    “……음!?”

    드레이크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아까부터 지면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메다라메다라 역시도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드레이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발밑에 시커먼 뿌리 같은 것들이 돋아나 발목을 꽉 잡고 고정시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은 메다라메다라의 악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저 녀석…… 내게 뭔가를 한 건가?”

    드레이크는 난감한 표정으로 자세를 낮추었다.

    움직임을 제한하는 디버프인 것 같은데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발을 제외하고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여섯 소용돌이가 시시각각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발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큰 패널티였다.

    “……별 수 없군.”

    드레이크는 인벤토리를 뒤져 아이템 하나를 꺼내들었다.

    까드득-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히든 카드.

    “이쯤 되면 나도 성장했다는 걸 보여 줘야겠지?”

    한때 A급 몬스터 고르곤 따위에게 1:1로 쩔쩔매던 시절의 드레이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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