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19화 (819/1,000)
  • 819화 거마전쟁(巨魔戰爭) (6)

    [……뭐, 그런 꿈이었지.]

    현실로 돌아온 이스비브놉은 콧김을 킁 하고 내뿜었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과거 기억이 담긴 동영상 속의 이스비브놉과 지금의 이스비브놉을 비교하며 경악한다.

    “세상에! 저렇게 작고 귀여웠던 소년이 커서 이렇게 된 거야!? 말도 안 돼! 이런 역변이 어디 있어!”

    “……잘 컸군. 정말 무럭무럭 잘, 너무 잘 커 버린 거야.”

    추억 속의 작고 유약한 소년은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나 산도 뽑아낼 정도의 거인이 되었다.

    이스비브놉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뽑아 던진 산 아래 깔려있는 게 그때의 악마섬이지.]

    맙소사. 우리 모두는 이스비브놉의 말을 듣는 즉시 발밑을 쳐다보았다.

    이 거대한 땅 거인국의 아래에 원래 악마들의 본거지가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어디서 이렇게 악마들이 지하수처럼 샘솟는지는 알겠군.”

    나는 저 멀리 또다시 몰려오기 시작한 악마 웨이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편, 이스비브놉은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잊고 있었던 옛 추억이 떠올라 버렸어. 골리앗…… 참 좋은 친구였지. 비록 그날 갈림길에서 헤어진 이후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말이야. 아마 내가 그날 악마섬에서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친구가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기 때문일 거야. 갑자기 죄스러워지는군.]

    이스비브놉은 답지 않게 눈시울을 붉힌다.

    수천 년간의 전쟁을 통해 완전히 말라 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금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때 골리앗이 마지막 순간 외쳤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분명 Hic. sordidum diaboli! Quia adversarius vester sit a me! 라고 했었지. 잊고 있었구만.]

    나는 소리쳐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뭐? 무슨 뜻이냐고? 그야 나도 모르지. 나는 여전히 악마어를 하나도 모르거든. 하지만 상황으로 짐작컨대…… 아마 여기다, 이쪽이다, 뭐 그런 종류의 말이 아닐까 하는데.]

    이스비브놉은 침통한 표정으로 눈가를 훔쳤다.

    [나는 그날 밤 혼자 도망쳐야 했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아무리 기다려도 골리앗이 오지 않았는데다가 추격병들이 곧 쳐들어왔거든. 또한 나는 차기 국왕으로서 반드시 본국으로 살아 돌아가야 했어. 악마들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왕이 되기 위해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도 윤솔도 드레이크도 쥬딜로페도 오즈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가운데 이스비브놉의 침울한 목소리만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끝에 귀국해 보니 나라는 이미 악마족의 침공을 받고 있더군. 나는 제일 먼저 나를 이곳까지 탈출시켜 준 친구 골리앗의 가족들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그들은 명을 달리한 뒤였어.]

    그 이후로는 내가 입수한 편지에 적힌 대로이다.

    이스비브놉은 골리앗의 가족들이 남긴 유품을 정리했고 혼란을 틈타 그것을 훔치려 한 해적들이 있었다.

    이에 격분한 이스비브놉은 이 해적선에 골리앗에게 보내는 편지와 물건들을 담은 채 그대로 하늘로 집어던졌던 것이다.

    혹시나 감옥에 갇힌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친구를 위해서.

    [내가 직접 가서 구해 주고 싶지만…… 보다시피 이렇게 홀로 남아 나라를 지켜야 하는 처지이지. 그래서 한 발자국도 국경을 넘어가 본 적이 없다네. 아아, 골리앗이 보고 싶군. 긍지 높은 전사이자 의리 있는 나의 벗이여.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살아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혹시나 감옥에 갇힌 채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이스비브놉은 커다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런 그를 위해, 나는 드디어 편지를 꺼내들었다.

    -<뇌옥 죄수의 답장> / 재료 / D

    -구름 거인 골리앗이 보낸 답신.

    ‘거인국의 마지막 왕이자 나의 절친한 벗 이스비브놉에게’ 라고 적혀 있다.

    더없이 적절한 타이밍에 꺼내든 아이템이다.

    “이걸로 히든 퀘스트 클리어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은 채 편지를 내밀었다.

    수신인 골리앗, 수취인 이스비브놉, 전달자 이어진이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이 퀘스트, 훨씬 더 까다롭다.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는 법!]

    이스비브놉이 전부터 계속 말하던 대사.

    이 대사가 왜 이 타이밍에 나오나 싶어 벙쪄 있는 나에게 이스비브놉이 일갈했다.

    [이 편지가 정말 내 친구 골리앗이 보낸 것이 맞나?]

    “당연하지. 여기 쓰여 있잖아.”

    [그걸 어떻게 믿지?]

    “아니, 여기 쓰여 있다고. 골리앗. 이스비브놉. 직접 눈으로 봐.”

    [그게 아니라! 그 글씨가 정말 골리앗이 쓴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냐는 말이다!]

    나는 순간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이 자식… 진짜다! 진짜로 편지를 안 받으려고 하고 있어!

    내가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있는 사이, 이스비브놉은 어느새 모래톱 너머로 다가온 악마병 군단을 향해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깐이나마 악마들을 막아 줘서 고마웠네, 작은 친구들!]

    “자, 잠깐만! 이 편지 읽고 가!”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는 법! 나는 아무나 믿지 않는다네!]

    말을 마친 이스비브놉은 또다시 벌어진 전투를 위해 전장으로 달려나간다.

    [정말로 그것이 내 친구가 보낸 편지가 맞다면! 자네들이 그 편지를 배달할 자격이 있는 전사임을 증명해 봐! 그래야 내 친구가 자네들을 믿고 편지를 맡겼다는 증거가 되지 않겠나!]

    우편 배달을 하려면 그에 맞는 자격을 보이라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택배 배달하기 참 어렵겠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 보니 상류층들은 택배를 시킬 때도 엄중한 자격조건을 만족시킨 엘리트 배달원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만…….

    그때.

    -띠링!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떴다.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편지전달자의 자격’>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이스비브놉을 대신해 악마 웨이브를 1회 이상 방어해 낸 자>

    <히든 퀘스트 수행 제한: ‘히든 퀘스트 500년 전에 부친 편지’, ‘히든 퀘스트 영원한 상봉(相逢)’을 클리어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아몬 후작(0/1)’ 처치>

    <※‘히든 퀘스트 거인국으로 가는 길’과 연계된 퀘스트입니다>

    “아몬 후작이라…….”

    나는 턱을 짚었다.

    아무래도 거인국 밑에 깔려 있을 이놈을 먼저 잡아야 이스비브놉의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는 모양.

    다만.

    [큭큭큭큭…… 인간, 괜찮겠나?]

    아까부터 오즈의 태도가 뭔가 수상하다.

    [더 이상 나아가면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 수 읽……!]

    오즈는 머리를 딱 때리는 쥬딜로페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자, 불길한 소리는 그만. 당장 해소되지도 않을 원인모를 불안감에 시청자님들이 하차하시면 네가 책임질 거야?”

    내가 단호하게 나가자 윤솔과 드레이크도 한마디씩 거든다.

    “으, 나 이런 거 진짜 싫어해. 괜히 찝찝한 여운 남잖아.”

    “맞다.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지 제대로 알려 주기라도 하면서 불길한 척 가오를 잡아야 할 게 아닌가? 이런 식의 전개는 시청자들을 지치고 힘 빠지게 할 뿐이지,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된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든다. 나는 그래서 미국식 공포 게임을 할 때도 버려진 산장이나 폐가에 가기 전 무속인 할머니나 알콜중독자 할아버지 NPC가 거기는 가지 말라고 하면 바로 안 가고 게임 종료하는 착한…….”

    나는 울먹거리며 궁시렁거리는 오즈의 뒷덜미를 잡아들고는 자리를 떴다.

    “뭐, 원래 사자(使者)를 뽑을 때는 그만한 평판과 실력이 있는 이를 뽑는 게 당연한 거지. 후딱 자격 증명하고 오자고.”

    이렇게 된 이상 빨리 아몬 후작을 잡고 퀘스트를 완료해야겠다.

    *       *       *

    [우우우… 인간… 앞으로 절대 뭐 안 알려 줄 거다. 일거수일투족에 비협조적으로 굴 테야. 가령 저 앞에 있는 거대한 모래구덩이 밑바닥에서 강한 악마의 기운이 느껴진다거나, 근처에 대형 마물이 은신해 있다는 것이라거나… 이런 것들 하나도 안 알려 줄 거다……]

    나는 투덜거리는 오즈를 살살 자극하며 정보를 얻어냈다.

    그 결과.

    -띠링!

    <히든 던전 ‘메다라메다라의 굴’을 발견 하셨습니다>

    <최초 발견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

    .

    나는 아몬 후작이 숨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깊은 구덩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기긱- 기기긱…… 킥킥!]

    모래구덩이 중앙에 딱 봐도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 같은 대형 몬스터 하나가 도사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개미귀신을 닮은 외형, 어지간한 수십 층짜리 고층 아파트만한 덩치만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놈은 전신주처럼 뻗은 두 개의 거대한 집게턱과 그 표면에 돋아난 수많은 가시와 갈고리들을 뽐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공격해 오지는 않지만 접근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이 모래지옥 안으로 끌어들여 단번에 찢어 죽이겠다는 듯한 기세.

    게다가 놈이 만들고 있는 거대한 모래의 와류 근처에는 전류마저 감돌고 있었다.

    쩌저적! 쩌적! 파지지지지직-

    보기와는 다르게 의외로 전격계열 속성을 가지고 있는 모양.

    드레이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전에 뇌옥에 치던 번개가 생각나는군. 저놈이 만들어 내던 거였나.”

    과연, 저 개미귀신이 만들어 내는 번개는 때때로 지면에서 하늘 높이 역으로 뻗어 올라간다.

    두 개의 거대한 집게턱이 마치 송전탑같은 역할을 하는 모양.

    지상에 있는 괴물이 하늘에 있는 감옥의 번개 창살을 만들어 내고 있는 모습은 꽤나 신기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후딱 잡고 그 밑에 있는 아몬 후작을 끄집어내자고.”

    나는 개미귀신이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눈치 채고 있었다.

    으레 개미귀신처럼 생긴 몬스터들은 아래에 모래시계와도 같은 빈 공간을 만들어두기 마련이니까.

    내가 막 어깨를 풀며 앞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어진.”

    드레이크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나와 윤솔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솔도 각자 한 몫씩 했다. 내게도 팀에 기여할 기회를 다오.”

    내가 악마병 웨이브를 막아 낸 것, 그리고 윤솔이 이스비브놉을 깨운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가 경험치를 쌓는다는데 말릴 게 있나.

    “여차하면 뒤로 빠져. 절대 무리하지 말고.”

    “알겠다.”

    내 노파심을 뒤로한 채 드레이크는 앞으로 당당히 걸어 나간다.

    알려진 데이터가 거의 없는, 신종 S급 몬스터와의 1:1 레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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