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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16화 (816/1,000)
  • 816화 거마전쟁(巨魔戰爭) (3)

    야생의 히드라(HYDRA) 성체.

    심지어 악마병들에게 포획되는 도중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인지 아홉 번째의 거대한 머리마저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

    여덟 개의 머리마다 채워져 있는 수갑과 쇠사슬, 몸통마다 묶여있는 매듭과 밧줄.

    그리고 마지막 아홉 번째 머리는 나머지 여덟 개의 머리들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구속구들의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구속구를 차고 있었다.

    [그-아아아악! 쉬잇! 쉭-]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독기를 뿜어내고 있는 이 구두룡(九頭龍)은 굳이 사슬이나 수갑에 묶어 끌고 올 필요도 없다.

    눈앞에 있는 악마병들을 향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으니까.

    콰지지직! 뿌득! 꿀렁- 꿀렁- 꿀렁-

    날카로운 이빨과 비늘로 악마병들을 짓뭉개는 히드라.

    작은 악마병들은 히드라를 잡아당긴다기보다는 먹이가 되어 유인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쇠사슬을 잡아당기던 거대한 중갑 악마병들의 몸도 땡볕에 내팽개쳐진 아이스크림처럼 점점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독한 독안개!

    “저 녀석을 여기서 또 보네.”

    나는 끙 소리를 내며 뒤로 빠졌다.

    악마병들은 거인대왕 이스비브놉을 쓰러트리기 위해 야생의 히드라 빅헤드까지 사냥해 온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수없이 많은 악마병들이 희생되었지만, 일단 어찌되었건 거인국 변방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히드라 성체를 깨워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의의는 충분하다.

    뭐니뭐니해도, 히드라 성체는 단신으로 대륙 전체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힘과 독을 가지고 있는 육상 최강의 전투생물이니까.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내 방송에서 히드라 성체의 압도적인 힘을 구경했던 바 있었기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용자의 무덤 107 번뇌층의 주인…… 어진이도 결국 완전히 이기지는 못했다고 했었죠?”

    “그럴 만해 보이는군. 위험등급 S랭크 중에서는 제일 강하다고 하는 모양이니.”

    지금까지 수많은 보스 몬스터 레이드를 겪어 본 윤솔과 드레이크조차 긴장할 정도로 히드라 성체의 위압감은 대단하다.

    나 역시도 굳은 표정으로 히드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회귀 전, 통합 세계랭킹 1위인 튜더와 그를 따르는 최강의 60인 공격대를 168시간에 이르는 사투 끝에 모조리 전멸시켜 버린 몬스터.

    ‘S클래스 몬스터 중에 두 번째로 강한 몬스터를 꼽으라면 후보들은 넘쳐납니다. 용옥의 고문기술자, 크라켄, 여덟 다리 대왕, 식인황제, 리치 왕, 발록, 데모고르곤, 일곱의 네임드 데스나이트, 데스웜, 아몬 후작……. 하지만 제일 강한 몬스터를 꼽으라면 단언컨대 히드라 하나뿐일 것입니다.’

    튜더가 했던 통한의 인터뷰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아스모데우스만 아니었더라도 1:1로 한번 붙어 봤을 텐데.’

    당시 나는 용자의 무덤에 있던 히든 룰을 발굴해 겨우겨우 승리를 거머쥐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꼼수로 이긴 것이지 제 실력으로 이긴 것은 아니다.

    만약 고정 S+급 몬스터 레이드가 바로 직후에 이어지지만 않았어도 나는 내 모든 힘을 발휘해서 녀석과 일기토를 떴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누가 이겼을까?’

    쉽게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

    지금의 나야 아스모데우스 이후 브라키오까지 연달아 사냥하면서 비약적으로 강해졌다지만, 과연 그때의 나는 히드라 빅헤드의 벽을 넘을 수 있었을까?

    “이참에 한번 가늠해 봐야겠네.”

    히드라와 거인왕 이스비브놉의 전투를 보다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오즈가 히죽 웃으며 나를 돌아본다.

    [인간. 보기에 어떤가? 누가 우세할 것 같지?]

    “……으음. 나는 히드라랑 붙어봐서 잘 알지, 저 녀석이 얼마나 쎈지.”

    솔직한 말로는 히드라가 우세할 것 같았다.

    이스비브놉은 몬스터가 아니라 NPC인지라 힘이 잘 가늠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까 전에 성벽을 뽑아 휘두르던 것을 보면 또 이스비브놉이 우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내가 고민하고 있을 무렵.

    [……쉬익!]

    히드라 성체가 전장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거인 이스비브놉을 발견했다.

    마치 거대한 콜로세움처럼 변해버린 옛 왕궁터.

    거인국의 왕과 거인국 최악의 맹수가 드디어 마주쳤다.

    이스비브놉이 피가 말라붙어 빳빳해진 수염을 쓸며 중얼거렸다.

    [호오…… 냄새 지독한 것 보게. 이런 뱀은 왕국 변방의 유적지에나 살 법한 종인데. 한데 이렇게까지 크게 자란 녀석은 또 처음 보는군. 여기까지 어떻게 끌고 왔지?]

    그는 거구의 몸을 굽혀 대지를 뒤덮고 있는 뱀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일단 대가리부터 박거라.]

    운석이 떨어지는 듯한 주먹이 곧장 이어졌다.

    …콰쾅!

    히드라의 머리 하나가 지면에 때려 박힌다.

    [어디서 감히.]

    …쾅!

    [자기 나라의.]

    …쾅!

    [대왕을.]

    …쾅!

    [몰라보고.]

    …쾅!

    [대가리들을.]

    …쾅!

    [빳빳이.]

    …쾅!

    [쳐드는고?]

    …쾅!

    한 주먹에 하나의 머리.

    단매에 때려죽인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마치 말뚝 대가리를 망치고 때려박듯, 이스비브놉의 주먹은 단 8번 왕복 끝에 히드라의 머리 8개를 지면에 쑤셔 박고 말았다.

    …바둥바둥!

    히드라는 몸을 빼려 했지만 이미 여덟 개의 머리가 각 방향에 말뚝처럼 틀어박혀 있는지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내 아홉 번째 머리, 거대한 큰바위얼굴이 흉측하게 찢어진 입 밖으로 두드러진 잇몸과 빼곡한 이빨들을 끄집어 낸다.

    [오-오오오오!]

    히드라 빅헤드가 이스비브놉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콰쾅!

    이스비브놉은 마치 행성을 부수는 레킹볼(Wrecking ball)이라도 된 듯 주먹을 날릴 뿐이다.

    그 한 방에 아홉 번째 머리조차도 속절없이 나가떨어진다.

    우지지지직! 퍼퍼펑!

    수없이 많은 이빨들이 박살났고 찢어진 혓바닥 조각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는 법!]

    이스비브놉은 특유의 대사를 내뱉으며 히드라 빅헤드를 내려다보았다.

    빅헤드는 몸을 움직여 피하려 했지만 부하 격인 여덟 머리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땅속에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네 수족이 오히려 짐이 되는구나.]

    이스비브놉은 휘청거리는 히드라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는다.

    결국.

    [그오-오오오옥!]

    히드라 빅헤드는 땅에 박힌 다른 머리들을 물어뜯어 끊어냈다.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 새로운 머리가 두 개씩 자라난다.

    츠츠츠츠츠츠……

    빅헤드는 16개로 변한 머리들을 데리고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하지만 이스비브놉은 가당찮다는 듯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16개가 오면 16개를 박아야 할 것이고, 32개가 오면 32개를 박아야 할 것이고, 64개가 오면 64개를 박아야 할 것이로다. 바로 네놈의 대가리 말이다!]

    그리고.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이스비브놉은 숨을 한번 고르더니 그 무시무시한 주먹으로 히드라의 머리들을 난타한다.

    히드라 빅헤드는 황급히 땅에 박힌 머리들을 끊어냈지만 그보다 이스비브놉의 주먹이 때려박히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이윽고, 히드라는 256개나 되는 머리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중 절반가량은 아직도 땅에 말뚝처럼 박혀 본체의 이동을 방해하고 있었고 다른 머리들은 전부 잘려나갔다.

    부글부글부글……

    뜯겨나간 머리 하나가 재생된다.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느려진 재생 속도였다.

    히드라는 256개의 머리들을 가누기도 쉽지 않은지 독 숨결을 가쁘게 몰아쉰다.

    …와작!

    도망가던 악마병 하나가 히드라의 머리에 잡아먹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속속, 작은 녀석들은 한 입에 큰 녀석들은 몇 입에 걸쳐.

    하지만 꽤나 많은 악마병들을 집어삼켰음에도 불구하고 히드라는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었다.

    주변에 있는 악마 잡병들을 잡아먹는 것으로는 이 급격한 칼로리 소모를 충당할 수 없다.

    그리고.

    지나치게 많은 머리들을 거느리느라 지친 히드라의 앞으로 이스비브놉이 시뻘건 얼굴을 들이민다.

    [지쳤느냐?]

    천하의 히드라 빅헤드가 위압감에 짓눌려 뒷걸음친다.

    하지만 이스비브놉은 가차 없었다.

    [이 하잘것없는 것.]

    동시에, 이스비브놉의 거대한 손바닥이 히드라 빅헤드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크-아아아악!]

    히드라가 독기를 내뿜으며 저항한다.

    빅헤드의 빼곡한 이빨들이 이스비브놉의 몸에 틀어박힌다.

    하지만 그 이빨은 절반도 채 들어가지 못하고 정지했다.

    이스비브놉의 강철같은 근육을 뚫지 못한 것이다.

    [반으로 갈라져 죽거라.]

    동시에, 이스비브놉은 거대한 두 손바닥을 펼쳐 히드라 빅헤드의 윗턱과 아래턱을 붙잡았고 그대로 힘주어 벌리기 시작했다.

    히드라 빅헤드는 당황하여 아가리를 다물려 했지만 이스비브놉의 악력에 의해 점점 턱과 턱 사이는 벌어질 뿐이다.

    이윽고, 뱀의 유연한 턱 근육도 한계를 맞이해 비명을 지른다.

    찌지지지지직-

    입가부터 찢어지기 시작한 아가리 가죽은 이윽고 히드라 빅헤드의 거대한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 놓는다.

    부와악!

    이스비브놉은 그렇게 히드라의 몸 전체를 반으로 찢어 버렸다.

    “…….”

    나도 윤솔도 드레이크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천하의 히드라 성체가 통째로 찢겨 죽는 광경을 본다면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저게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용자의 무덤 107층의 주인이 맞나 싶을 정도다.

    “……심지어 내가 상대했던 개체보다 덩치도 더 컸던 것 같던데.”

    내가 아무리 아스모데우스와 브라키오를 잡고 난 이후 더욱 강해졌다지만 히드라 성체를 저 지경으로 압도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뭐 아무튼.

    [오-오오오오오오오!]

    이스비브놉은 걸레짝이 된 히드라를 짓밟은 뒤 벼락처럼 포효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피어에 굳어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던 악마병들을 또다시 학살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거인국은 망하지 아니한다!]

    단신으로 악마병 웨이브를 견뎌내는 그 모습은 흡사 거대한 암초 그 자체.

    새로운 지배종인 악마족의 순항을 가로막는 최강의 적이었다.

    *       *       *

    붉게 물든 대지 위, 악마들의 파도도 슬슬 말라간다.

    대부분의 악마들을 밟아 죽인 이스비브놉은 썰물처럼 빠지는 악마들과 갯벌의 뻘흙처럼 펼쳐진 시뻘건 고기조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지친 모양새. 하기야 아무리 신적인 존재라고 해도 피로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스비브놉은 한시도 쉴 수 없었다.

    또다시 붉은 모래톱 너머에서 새로운 악마병들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오오오오!

    악마족 대망자들이 수없이 모여 움직이는 성채가 되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악마병들이 또다시 웨이브를 이루어 몰려온다.

    […….]

    이스비브놉은 또다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눈앞에 다가오는 악마들의 파도를 향해 거대한 몸을 전진시켰다.

    바로 그때가.

    “……피곤해 보이는데 좀 쉬는 게 어때?”

    내가 나설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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