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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11화 (811/1,000)
  • 811화 선악과(善惡果) (2)

    -???(어딘가의 불타는 땅)-

    부글부글부글부글…… 콰쾅!

    용암의 바다가 둘로 갈라지며 화산 하나가 솟구쳐 올랐다.

    검은 암석으로 된 표면에는 수없이 많은 균열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아아아아아아!]

    화산은 이내 입에서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자 주변의 암석들이 모조리 녹아내려 용암으로 변해 버렸고 그마저 대기 중에 산산조각 나 흩어진다.

    검은 표면과 시뻘건 금, 그리고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죽음룡 오즈!

    이 거대한 괴물은 온몸에 불기둥들을 줄기줄기 휘감고 용암의 바다 위에서 몸을 털어낸다.

    콰콰콰콰콰쾅!

    오즈가 한번 날뛸 때마다 천지가 요동친다.

    작렬하는 불꽃이 주변의 가스와 먹구름을 모조리 태워 버리고 있었다.

    쉬이이익- 츠츠츠츠츠츠……

    오즈의 검은 비늘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천천히 타들어간다.

    고통스러운 표정의 블랙 드래곤!

    이 거대한 덩치의 마수를 무릎 꿇린 존재는 불의 장막 저 너머에서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이노옴- 내 비늘! 감히 내 비늘을!]

    오즈가 격분했다.

    분노한 용, 불타는 검은 비늘들이 천군만마의 창검처럼 뾰족하게 곤두섰다.

    검은 비늘을 가진 용들이 하늘을 날아 오즈를 지원한다.

    지상에는 날개 없는 용, 바실리스크들이 오즈의 명령에 따라 용암 바다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 쪽에 한 걸음 더 다가가 있는 존재들이 시체보다도 더 차가운 냉병기를 들고 행군하고 있었다.

    하지만.

    …쿠르르르륵!

    지하 바닥에서 하늘 천장까지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불의 장막이 검은 용과 망자(亡者) 군단의 진격을 굳건히 가로막고 있다.

    가-아아아아악!

    불의 장막에 닿은 용과 언데드들이 비참하게 타들어간다.

    수많은 군단이 이 거대한 불기둥 앞에 와해되고 있었다.

    …풍덩! 콰콰콰쾅!

    보다 못한 오즈가 직접 용암의 바다로 뛰어들었고 이내 거대한 손을 뻗어 불의 장막을 잡아 찢는다.

    그리고 수천 개의 칼날처럼 빼곡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장막 너머의 존재를 물어뜯었다.

    [오-오오오오!]

    장막 너머의 존재가 비로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놈이 한번 몸을 떨 때마다 용암이 끓었고 한번 비명을 지를 때마다 불이 토해져 나온다.

    오즈는 온 힘을 다해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었지만 전신을 기어오르는 불과 용암에 대부분의 비늘들을 잃고 말았다.

    검은 비늘들이 부글부글 끓는가 싶더니 연기로 변해 바스라진다.

    …콰쾅!

    그때쯤 해서 두 거대한 존재의 힘겨루기도 끝났다.

    오즈는 몸 대부분이 불에 탄 채 잿더미 위로 쓰러졌고 불의 장막 너머의 존재는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나가떨어졌다.

    오-오오오오오오……

    그들의 위로 수많은 악마들과 용들이 달려든다.

    검은 비늘의 용과 불의 악마들이 사납게 맞붙어 싸우고 있었다.

    화마(火魔), 온통 뜨겁고 시뻘건 세상!

    이곳이 바로 지옥이다.

    *       *       *

    [……그것이 벌써 수천 년 전의 일이지.]

    오즈가 내 어깨에 드러누운 채 중얼거렸다.

    녀석이 눈을 감고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는 꽤 재미있는 것이어서 나도 윤솔도 드레이크도 간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경청했다.

    “또 이런 설정이 있었네.”

    “비하인드 스토리가 굉장히 흥미롭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호평, [SKIP] 버튼을 누르지 않기를 잘한 것 같았다.

    나 역시 오즈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나름 보람이 있었다.

    “그랬군. 그때 사탄에게 입은 화염 데미지 때문에 죽음길 나락 4층이 온통 불바다였던 거구나.”

    오즈가 있던 곳은 무저갱의 제일 지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만이 가득했던 곳이다.

    사실 불 속성과는 딱히 상관이 없는(굳이 속성과 연관이 있다면 얼음과 더 친숙한) 오즈이기에 왜 그런 곳에 있었나 했더니만, 용마전쟁 도중 몸에 침입한 화마(火魔)의 기운 때문에 주변의 맵이 용암대지로 바뀐 것이었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그 사실에 아연실색해 했다.

    “대체 사탄의 힘이 어느 정도이기에 수천 년 동안이나 잔불이 꺼지지 않았던 걸까.”

    “더군다나 그 잔불의 수준이 용암의 바다를 만들 정도라니. 과연 7대악마라고 밖에는……”

    분노의 관장자 사탄.

    놈은 공격력으로만 따지자면 7대악마성좌 중 제일이라고 할 만한 존재이다.

    [큭큭큭- 하지만 그놈의 피해는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어. 나는 그놈의 몸뚱이를 아주 갈가리 찢어발겨 놓았지. 제 형체조차 유지하지 못하게끔, 마치 걸레 쪼가리처럼 말이야! 놈은 아마 예전 몸뚱이의 형상을 회복하려 하겠지만…… 차라리 그것보다는 아예 다른 몸을 구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를걸?]

    “그래?”

    그때, 윤솔이 오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그러면 결국에는 누가 더 강했던 거야?”

    맙소사. 던져 버리고 말았다.

    결코 답이 나올 수 없는 금단의 화두를 말이다.

    ‘누가 누가 더 강하냐’

    혹자는 이게 왜 위험한 말인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만화, 영화, 게임 등 수많은 서브컬쳐들을 거쳐 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피가 끓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헤이, 솔!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슈퍼히어로의 본고장, 미국에서 온 드레이크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격한 반응에 윤솔은 되레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누굴 얕잡아 보려고 한 말이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였어요! 누가 이겼나.”

    바로 그런 점이 더 악마 같은 점이다.

    순수한 학구열.

    그 질문은 으레 상대방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이익! 솔직히 내가 풀 컨디션이었다면 금방 이겼을 것이다! 그날은 왠지 눈도 침침했고! 허리에서 뚝 소리도 났고! 혓바늘에 구내염도 좀 있었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었고!]

    오즈가 방방 뛰며 소리 지른다.

    그러자 윤솔은 난처한 듯 되물었다.

    “그러면, 사탄은 풀 컨디션이었다는 얘기지?”

    [그, 그건…….]

    싸움의 당사자인 오즈조차 말문을 잊게 만드는 윤솔의 악의 없는 반격.

    보다 못한 드레이크가 끼어들었다.

    “솔. 당연히 쳐들어온 상대는 최상의 컨디션이지 않겠나! 원래 병법에도 공격과 수비의 힘이 같다면 공격이 더 유리하다는 말도 있지 않나.”

    하지만 오즈의 표정은 더욱 더 굳어진다.

    [……내가 ……였어.]

    “으응?”

    [……내가 쳐들어간 거였다고.]

    그러자 드레이크 역시 아차 싶어 입을 다문다.

    ‘어휴.’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이 영원한 토론에서 나갈 수 있는 것은 온전한 이성을 유지한 자다.

    나는 절대 이런 유치한 토론에…….

    “아, 이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면 알지 않을까요?”

    “하하하, 그렇다면 역시 어진이 잘 알겠군.”

    큰일 났다.

    어그로가 나에게로 튀기 시작했다.

    나는 별 수 없이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오즈가 강하긴 하지, 고정 S+급 몬스터잖아. 하지만 사탄 역시도 고정 S+급 몬스터인지라 단순 비교는 쉽지 않아. 지형과 기후, 부관으로 거느리고 있는 몬스터 등 주변 환경의 변수들이 문제가 되는데 과거에 몇 번 이 두 존재가 겨뤘다는 고문헌상의 기록이 있는지라 이것을 참고한다면…….”

    “에이, 어진! 기록은 기록! 결국 설정일 뿐이지 않은가. 내 말은 현재를 말하는 거다, 현재!”

    “드레이크 씨, 저는 전성기 때를 비교하고 싶은데요?”

    [나는 언제나 전성기야!]

    “오즈, 너는 아직 발언 기회 없구요. 이따 얘기하렴, 호호호.”

    “그래그래. 어디서 끼어드는가. 이건 중요한 토론 과제다.”

    “흥! 됐어. 일단 문헌을 무시하는 드레이크의 판단에 나는 매우 실망스러워.”

    [내 이야기인데 왜 내 말을 안 듣는 것이냐!]

    “그래서 그 문헌 가지고 있나? 없으면 그건 정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아니, 그러니까…아, 답답해!”

    “그래서 오즈가 센 거야? 사탄이 센 거야?”

    “보이는 증거로만 보자고, 어진!”

    “보이는 증거로만 봐도 그래!”

    [뿌애앵!]

    .

    .

    결국 의미 없는 세 시간이 지났다.

    그렇지만 딱히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지루함을 느낀 쥬딜로페가 아무데나 나무막대기를 휘둘러대는 바람에 토론이 허무하게 끝나 버린 것이다.

    나는 단호한 얼굴로 상황을 정리했다.

    “둘 중 누가 더 쎄든 간에 중요한 건 한 가지야. 나는 오즈를 토벌했고, 이젠 사탄을 잡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내가 제일 센 거지.”

    심플한 결론이다.

    “차후 논쟁은 사탄 레이드 뒤에 하자고. 오케이?”

    “알겠다.”

    “좋아요.”

    ‘캐릭터 중 누가 제일 강한가’와 같은 토론은 사실 정답이 없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토론 자체를 미루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모두의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앞을 봐.”

    오즈가 해 준 이야기의 결말은 이것이다.

    죽음룡 오즈와 분노의 악마성좌 사탄은 오래 전 용마전쟁에서 맞붙어 싸운 끝에 서로 큰 데미지를 입었고 각기 이를 회복하기 위해 다른 길을 걸었다.

    오즈는 손상된 비늘들의 빈자리를 새로운 비늘로 채우기 위해 마몬의 불카노스 채굴장을 빼앗아 그곳에 둥지 겸 회복실을 틀었고 사탄은…….

    “우리가 지금부터 갈 곳에 숨어 있지.”

    나는 고개를 들어 죽음길 나락을 바라보았다.

    과거 오즈가 살았던 이곳은 그냥 텅 빈 4층짜리 던전이 되었다.

    1층부터 3층까지는 평범한 화염계열 몬스터들이 등장하고 4층은 봉인되어 있다.

    약간의 특이점이 있다면… 이 맵이 은근히 사냥효율이 좋은지라 현재는 대형 길드 몇 개가 독점에 가깝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 정도?

    아니나 다를까.

    “이봐. 지금은 여기 못 써.”

    “다른 데 가서 사냥하라고.”

    “이 시간대에는 우리 길드가 예약해 뒀다.”

    던전에 가깝게 접근하자 몇몇 플레이어들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리자드맨. 2차 대격변 이후 언어가 통하게 된 종족.

    현재 이 던전을 통제하고 있는 이들은 리자드맨 길드인 모양이다.

    우리가 검은 후드로 전신을 가리고 있는 것에 반해 저쪽은 그냥 훤히 정체를 드러내 놓고 있었다.

    나는 그 중 한 명을 알아보았다.

    ‘누구더라? 아아, 안티 니에미네.’

    패드립이 아니라 사람 이름이다.

    예전부터 분쟁지대에서 꽤나 유명했던 리자드맨 랭커.

    내가 고르딕사를 잡고 얻은 황금광의 혈안을 처음으로 시험해봤던 대상이기도 하다.

    뭐, 아무튼. 그때와 비교해서 레벨이 많이 오른 그가 다른 리자드맨들을 거느리고 던전 입구를 통제하고 있었다.

    “……어진. 치워 버릴까?”

    드레이크가 브라키오를 잡고 얻은 ‘원시림의 증오 마름쇠’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언어가 통하게 되었다고 해서 딱히 같은 편이 된 것도 아닌지라 PVP를 떠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 싹 잡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종족킬 수치도 올려놓을 겸.’

    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치우자.”

    내 오더가 떨어지자 어깨 위에 있던 쥬딜로페가 몸이 근질근질거린다는 움직임으로 앞으로 튀어나간다.

    [끼야호우앵-]

    ……저런 말투는 어디서 배워 온 건지. 인터넷 방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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