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10화 (810/1,000)

810화 선악과(善惡果) (1)

신이 이르되.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뱀이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       *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접속을 알리는 환한 빛기둥.

나는 게임에 들어왔다.

오늘의 작업 대상 역시 고정 S+급 몬스터.

레이드를 위해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5분 일찍 모든 이들이 다 모였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진아! 시상식 끝나고 조디악 만났었다며!?”

“별일 없었나? 왜 말하지 않았나!”

친구들의 목소리에서는 걱정과 서운함이 느껴진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별일 아니었어. 일단 레이드부터 마치고 생각해 보자고.”

사실 말을 이렇게 하긴 했지만 결코 별일이 없지는 않았다.

조디악이 꼬시듯 했던 말.

그것은 예전 벨페골과 무투룡 레이드 때부터 쭉 마음 속 한켠을 무겁게 하고 있었던 일이다.

정말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 세계가 다른 누군가들의 끔찍한 희생을 통해서 만들어진 곳이라면.

그리고 조디악이 정말로 그 참사의 피해자였고 그를 위해 이 게임을 망치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이 세계를 사랑하고 또 깊게 몰입하고 있는 이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득, 머릿속에 살인자들의 탑에서 봤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것이 불타 버린 땅. 그리고 하늘에 그려지는 불의 궤적. 한 번도 본 적 없던 미지의 몬스터.

<멸망의 어머니 ‘오무아무아’> -등급: ? / 특성: ?

-서식지: ?

-크기: ?

-?

분명 회귀 전의 기억에는 없던 ‘멸망’, 그것이 도래한 미래.

그것은 조디악에 의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과거 페이사가 게이머로서의 성취와 한 국가의 일원으로서의 의무감에 고민하던 것이 약간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

복잡할 때일수록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는 고민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고민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나누어 분리했다.

그리고 냉정하게 현실을 짚었다.

“게임의 최종 콘텐츠를 보고 싶어 하는 것, 엔딩 크레딧을 보는 것은 모든 게이머들의 로망이자 숙명이지.”

미래가 어떻든 진실이 어떻든 간에, 나는 더욱 더 강한 몬스터를 공략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윌슨이 옳든, 조디악이 옳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거지.”

더 높은 곳으로, 더 강한 놈으로, 끝까지 간다.

나는 긴장한 표정의 윤솔과 드레이크의 앞으로 아이템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그것은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몽둥이로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인벤토리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인족 대망자의 8번척추 마쿠아휘틀> / 양손무기 / A+

거인의 척추는 부러지지 않는다.

같은 거인의 공격이나 세월,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물리 공격력 +6,000

-특성 ‘거인국으로 가는 길’ 사용 가능

굵은 뼈다귀 몽둥이 위에 먼지가 수북하다.

얻은 지 오래 되었고 그간 한 번도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게 뭐지?”

“……어, 예전에 봤던 아이템 같기는 한데.”

윤솔은 아예 이 아이템의 존재 자체를 까먹은 듯하다.

드레이크 역시 기억이 가물가물한 기색.

나는 친구들의 기억을 다잡아 주었다.

“예전에 살인자 다섯 명을 벨제붑의 강림 제물로 바쳤을 때 얻었던 거잖아.”

그러자 윤솔도 드레이크도 손뼉을 쳤다.

“아아, 맞아! 그레이 시티의 탈주 살인자 다섯 명을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로 유인했었지!”

“그래. 거기서 새로운 대망자가 나왔었고 그걸 잡고 얻은 아이템이 이거였어. 워낙 순식간에 홱 지나가서 잊고 있었군.”

이 아이템을 얻자마자 바로 벨제붑 레이드가 시작되었으니 존재감이 확 잊혀질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보기와는 달리 꽤나 중요했다.

“이게 뭘로 보여?”

나는 뼈다귀 몽둥이를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아이템을 곰곰이 살핀 뒤 각자 소감을 밝혔다.

“길고 딱딱하며 울퉁불퉁하다…… 흠,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얼핏 보면 치토X 같이 생기기도 하고…….”

아직 바로 정답이 나올 만큼 고이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몽둥이를 들고 왼쪽 오른쪽으로 기울여 보았다.

그리곤 은근한 기대감을 담아 물었다.

“우리 고인물 친구들~ 이젠 알 것 같지?”

그러자 생각에 골몰하던 드레이크가 무릎을 탁 친다.

“아아! 어진! 알 것 같다!”

“그래,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지 이건…….”

“어떤 거대한 존재의 귀이개가 아닌가!”

“……귀이개?”

“이건 분명 거인보다 커다란 존재의 귀를 후비는 귀이개가 틀림없다. 후후, 동양인들은 귀지가 건조해서 이렇게 솜이 달리지 않은 귀이개로 귀를 파는 걸 나는 알고 있다고.”

“아니, 드레이크 10점 감점.”

“오우 노!”

내 단호한 대답에 드레이크는 절망했다.

어렵게 쌓은 10점이 날아간 것에 대한 절망이다.

“미안, 너무 터무니없는 말이라…… 누가 이딴 걸로 귀를 쑤시겠어.”

드레이크와 윤솔은 요즘 부쩍 자신을 평가해 달라는 말을 자주 했다.

누군가 대적할 수 없을 만큼 멀리 올라오기도 했고 인게임 플레이에서 같이 다니는 유저라고 결국 나 하나밖에 없으니.

그래서 나는 점수제를 도입했다. 이른바 ‘고인물 점수제’다.

(현재 드레이크가 870점, 윤솔이 650점에 머무르고 있다)

“나, 나! 어진아, 나!”

오.

역시 윤솔. 늦게 게임을 시작했지만 650점까지 치고 올라온 발군의 센스가 엿보인다.

“그래, 이건 솔직히 자세히 볼 필요도 없지. 말해 봐.”

“좌우로 빙글빙글!”

“그래!”

“울퉁불퉁하고!”

“맞아!”

“뼈로 이루어진!”

“……솔아, 정답을 생각하고 말해야지. 5점 감점이야.”

“앗, 헤헤…….”

아무래도 둘 다 전투나 전투 대상에 대한 파악에 비해 아이템을 파악하는 숙련도는 낮은 것 같다.

히든 피스는 결국 알아보는 사람의 손에서만 빛이 나는 것이거늘!

“마지막이야. 자세히 봐. 드르륵, 철컥. 이제 알겠지?”

이제야 두 사람의 얼굴이 환해진다.

“드르르르륵, 머신건!”

“뼈로 만든 기계 장치의 기어봉!”

“사골 육수 우리기용 뼈!”

“파 추가하면 맛있겠다!”

“마늘 빻는 봉?”

“인공관절!”

“뼈마디 지압 안마기!”

“전통적인 드럼세탁기 빨래 방망이!”

“흔들면 관절 부근에서 소리 나는 걸 보니 마라카스?”

“게이트볼 막대기!”

……온갖 것들이 다 나오네 아주.

“안 되겠네. 이건 넘어가자.”

나는 결국 포기하고 뼈 몽둥이로 천천히 땅을 짚었다.

“이 몽둥이는 사실 열쇠야.”

그러자 두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열쇠? 이게?”

“열쇠라고? 진짜?”

윤솔과 드레이크는 이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말을 정정했다.

“아! 거의 다 맞췄는데!”

“……처, 처음에 나도 딱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이제는 아예 문제를 처음 맞추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머, 멀리서 보면 무슨 열쇠 같아 보인다. 어진아~”

“맞다. 아주 커다란 문을 열 때 쓰이는 열쇠 같은걸?”

눈썰미 말고 연기 실력만 한참 늘었네. 점수제의 폐해인가.

두 사람에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고인물 점수제는 오늘로 폐기해야겠다.

“맞아. 이건 열쇠야.”

그렇다는 것은?

“어딘가에 문도 있다는 거네.”

“자물쇠도 말이야.”

오, 이건 좀 하네.

아무래도 분석력은 합격점인 것 같다.

“이건 솔직히 플러스 10점!”

“어허, 솔. 내가 더 먼저 말하지 않았나! 너는 5점이면 족하다.”

척 하면 척, 친구들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       *       *

[싫어! 안 가! 안 갈 거야! 가기 싫단 말야! 아아아악-]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던전 ‘죽음길 나락’의 입구.

그리고 맨땅에 드러누워 바둥거리고 있는 이는 바로 오즈였다.

[싫어! 안 들어가! 안 들어갈 거란 말야!]

오즈는 자기가 원래 살던 곳인 죽음길 나락으로 들어가길 한사코 거부하고 있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1. 예전에 비해 볼품없이 작아진 몸뚱이에 자괴감.

2. 자기가 한번 죽었던 장소에 대한 트라우마.

3. 도로시 원정대가 남긴 잔여사념에 관한 공포.

나는 가기 싫다며 찡얼거리는 오즈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괜찮아. 예전에 쓸데없이 컸을 때보다 지금이 더 귀여워.”

[이익! 귀엽다니! 무례한지고! 말을 가려 해라 인간! 그리고 나는 저 아래로 되돌아가기 싫다! 자꾸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난단 말이다! 그날 이후로 소나기가 올 때면 관절이 시큰거리고 비늘이 빠지고 심장이 쿡쿡 쑤셔서…….]

“지금은 비늘도 잘 달려 있잖아. 빨리 따라와.”

[시, 싫다! 그리고 저 아래로 가면 그 도로시 년이랑 양철 나무꾼이랑 겁쟁이 사자랑…… 무엇보다 그 끈질긴 호박머리 허수아비가! 호옥시라도 그놈들이 아직 살아 있으면 어떻게 해! 나는 한번 죽인 녀석들의 혼을 따로 저장해 놓는단 말……]

“쓰읍- 그럼 오즈는 마트… 아니 여기 1층에서 살아. 우리는 지하 4층 갈 거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오즈를 놓고 갈 수는 없다. 녀석은 훌륭한 마법 방패였기 때문이다.

나는 오즈의 대사를 스킵하고는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질질 끌고 갔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죽음룡 오즈를 내려다본다.

“아휴, 참. 우리 오즈 착하지? 뚝! 예전에는 휘하에 S급 몬스터들만 6마리도 넘게 거느리고 있던 보스였는데… 지금은 완전 떼쟁이가 됐네.”

“그러고 보니 이 자식이 도로시 원정대를 몰살시켰었지. 테이밍이라는 게임 시스템이 참 묘해. 지금은 같은 편이라니.”

뭐 아무튼.

오즈는 한사코 죽음길 나락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별 수 없이 최후의 패를 꺼내들었다.

“……복수하고 싶지 않아?”

내 말을 들은 오즈의 몸이 순간 딱딱하게 굳는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너를 이 꼴로 만든 놈. 그 증오스러운 놈. 불구대천의 원수 자식…… 그놈의 이름은…….”

[바로 너!]

“……아니, 나 말고. 솔직히 내가 그 정도야? 아니잖아. 나 말고 그 전에 있잖아 왜.”

나는 오래 전 오즈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대사를 떠올렸다.

‘궁극적으로는 오래 전… 용마전쟁(龍魔戰爭) 때 당신을 그 꼴,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은 분노의 악마성좌 ‘사탄’! 그놈의 목숨을 노리고 있겠죠.’

오즈 역시 그 말이 기억났는지 노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린다.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작업 대상은 바로 그놈이야. 그놈이 아니었다면 너는 나한테 패하지도 않았겠지? 결국 네가 이 상태인 것은 모두 그놈 탓이잖아.”

[……그, 그런가?]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증오스러운 놈의 최후를 볼 수 있는 기회고. 안 그래?”

[……진짜 그런가?]

“당연하지. 나와 함께라면 가능해.”

내가 손을 뻗자 오즈는 망설이는 기색이다.

그때쯤 해서.

[……뿌!]

기다리는 것에 싫증이 난 쥬딜로페가 나무막대기까지 치켜듦으로써 오즈의 버티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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