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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08화 (808/1,000)
  • 808화 Help yourself (3)

    유창은 조디악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사람 봐 가면서 찝쩍거려야지 이 사이코 새끼야. 우리 형님이 이제 뭐 너 같은 놈이랑 어울릴 급인 줄 알아? 하여간 우리 형님한테는 왜 맨날 이상한 남자들이 붙는 건지.”

    ……창아, 너도 옛날에는 그 이상한 남자들 중 하나였어.

    하지만 유창의 사기 진작을 위해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한편, 유창을 본 조디악은 별일 아니라는 듯 피식 웃었다.

    “푸스스스… 웬 큰 개 한 마리가 따라왔네? 그러고 보니 한국인이지 참, 도시락 거리인가?”

    “그러는 너는 비루먹은 레드넥 하이에나냐? 인종차별주의자 새끼.”

    유창과 조디악은 서로를 마주보며 자세를 낮춘다.

    먼저 움직인 쪽은 유창.

    “이참에 누나의 빚을 갚아 주마. 정산 받고 가라.”

    예전 상하이의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다.

    퍼억!

    유창은 긴 다리로 조디악의 배를 걷어찼다.

    하지만 조디악은 배를 내주는 즉시 곧바로 주머니에서 송곳을 꺼내 유창의 다리를 찌른다.

    뿍!

    재빨리 발을 회수한 유창의 구두코에 스크래치가 났다.

    “아! 이 구두 비싼 건데!”

    “푸스스스. 덩치답지 않게 빠르네. 이걸 피하는 놈은 오랜만인데.”

    조디악의 분위기가 변했다.

    놈은 정색을 하고는 송곳을 역으로 꼬나쥐고 유창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쿠 무셔- 안 되겠다. 역시 자기 빚은 자기가 갚아야지.”

    유창은 너스레를 떨며 뒤로 슬쩍 물러날 뿐이다.

    조디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헛손질을 하는 순간.

    “야 이 개새끼야!”

    뒤에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적의!

    조디악의 허리를 걷어차는 다리가 있었다.

    골목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유다희.

    그녀가 온 힘을 다해 후려갈긴 미들킥에 조디악의 허리가 ㄱ자로 접혔다.

    “……켁?”

    조디악이 작게 기침하는 순간.

    “갈빗대 부수기 킥!”

    이번에는 유창의 미들킥이 반대편에서 날아들었다.

    …땅그랑!

    강렬한 2연타를 맞은 조디악은 송곳을 떨군 채 바닥에 엎어졌다.

    “와, 누나 킥이 더 세졌네?”

    “원래 싸커킥은 내가 너보다 더 잘했지.”

    유창과 유다희는 쓰러진 조디악의 등을 밟고 선 채 셀카를 남긴다.

    #앙신 #조디악 #레이드 #현피 #성공기념

    ……뭐 이런 건가?

    아무리 그래도 나름 최종보스 격의 메인빌런을 이렇게 쉽게 잡아 버리다니.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빨리 일으켜 세워 봐. 편지 내용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구.”

    그러자 유창과 유다희는 조디악의 등에서 발을 뗐다.

    나는 조디악의 앞으로 다가갔다.

    ……한데?

    이상한 점이 보인다.

    내가 알기로 분명 조디악은 무통증 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조디악은 허리를 부여잡은 채 옅게 신음하고 있었다.

    팔다리 역시도 가늘게 떨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보였다.

    “푸스스스… 아프네. 정말 지랄맞은 남매야.”

    파리한 얼굴색, 볼 살은 더욱 빠졌다. 다크서클은 이제 아예 검은 눈물처럼 번져 있었다.

    “너 어디 아프냐?”

    “푸스스스…”

    내 말에 조디악은 그저 기분 나쁘게 웃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원래는 땀도 못 흘리던 놈이 이제는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다.

    내가 놈의 상태를 조금 더 살펴보려고 하는 순간.

    “푸스스스스- 오빠는 참 뭘 모른다.”

    “?”

    “얼굴을 그렇게 빤히 들여다보면 실례지. 화장 번진 거 티 나잖아.”

    조디악은 골목의 어둠 속으로 다시 몸을 파묻었다.

    때문에 놈의 표정 변화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또다시 실실 웃는 것을 보니 확실히 머리가 어딘가 맛이 가긴 간 모양.

    나는 이 녀석과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그렇다면야 휘둘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불어.”

    나는 편지를 팔랑거리며 말했다.

    조디악이 언급하고 있는 2.5차 대격변이란 무엇일까?

    본디 내가 회귀 전 겪어 보았던 뎀 세계에는 총 3번의 대격변이 일어났었다.

    1차 대격변 ‘천공섬’은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2차 대격변 ‘대홍수’는 생태계를 바꾸어 놓았다.

    3차 대격변 ‘용마동맹’은 기후를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중간에 있는 2.5차 대격변이란 건 대체 뭘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측은 바로 ‘파리 대왕’이다.

    회귀 전, 벨제붑이 일으켰던 오염된 피 사건에 전 대륙 인구의 1/3이 희생되었고 이 대참사가 일명 ‘1.5차 대격변’이라고 일컬어졌던 적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추리.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지. 벨제붑은 이미 내가 잡아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이 시점에 대격변이라고 부를 만할 대참사가 있을까?

    나는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불길함에 조디악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 2.5차 대격변이라는 게 뭐냐? 뭘 노리고 있지? 그리고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야.”

    그러자 조디악은 힘없이 웃는다.

    그러더니.

    빙글-

    자리에서 몸을 한번 굴려 옆에 있던 유창의 정강이를 걷어찬다.

    “억!?”

    유창이 뒤로 쓰러지자마자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조디악.

    유다희가 바로 뛰어와 조디악에게 덤벼들었다.

    “너 이 새끼!”

    “워워. 진정해. 대화로 풀자고, 요 호전적인 원숭이들 같으니.”

    조디악이 허리를 숙여 유다희의 하이킥을 피한 뒤 바닥에 떨어진 송곳을 집어 들었다.

    유다희는 조디악에게 재차 달려들려다 말고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뒤로 물러나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녀는 조디악에게 따져 물었다.

    “대격변이고 뭐고, 너 같이 음흉한 놈이 왜 우리한테 그 정보를 넘기려 하는데? 뭔가 지저분한 꿍꿍이가 있겠지.”

    “맞아. 있지. 밝고 명랑한 꿍꿍이가.”

    조디악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가 향한 곳은 골목의 가장 외진 곳, 맨홀이 있는 곳이었다.

    “사실 싸울 생각은 별로 없어. 나도 비무장으로 왔고.”

    “지랄, 그 송곳은 뭔데?”

    “악세서리 같은 거지. 총보다는 훨씬 귀엽지 않아?”

    “…….”

    그가 미국인임을 고려하면 약간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어디 좀 들어가서 얘기할까?”

    말을 마친 뒤, 조디악은 바닥에 있는 맨홀 뚜껑을 발로 탁 차 열었다.

    그리고 마치 무대 아래로 꺼지는 광대처럼 안으로 뛰어내려 순식간에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

    나는 조디악이 들어간 맨홀 아래를 내려다본다.

    한없이 깊은 어둠. 아래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심연.

    옆에서 유다희와 유창이 말했다.

    “야, 이건 아니지. 저 새끼가 뭔 짓을 할 줄 알고!”

    “형님. 느낌이 안 좋습니다. 돌아가시죠 이쯤해서.”

    하지만 고인물로서의 감이 말한다.

    저 안에 고여 있는 것을 지금 외면한다면 훗날 더욱 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무리수 같겠지만… 이번 한번만 날 믿어 줘.”

    내가 하는 진중한 말에 유창은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유다희만이 가방에서 무전기를 꺼내 허리춤에 찰 뿐이다.

    “……너 위험한 짓 하기만 해 봐? 바로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이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투덜거리면서.

    “굳이 너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는데.”

    내가 말을 꺼내자 유다희는 또다시 발끈했다.

    “누, 누가 너 때문에 따라간대냐!? 내 동생도 가잖아!”

    “누나가 언제부터 그렇게 날 챙겼다고.”

    “넌 닥쳐 좀! 쫌!”

    유창의 머리를 몇 번이나 쥐어박는 유다희다.

    *       *       *

    맨홀 속, 벽에 달린 사다리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니 물이 흐르는 지하수로가 나왔다.

    뭐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공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옆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에는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 막혀 있었고 중앙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로가 있다.

    그리고 물 위에는 작은 조각배가 떠 있었는데 음울한 미소를 띠고 있는 조디악이 그 위에서 등불을 치켜들고 있었다.

    “어서 와. 올 줄 알았어.”

    활짝 웃는 조디악.

    이 기분 나쁜 광경에 나도 유다희도 유창도 몸을 한번 파르르 떨었다.

    “무슨 게임 속 세계도 이렇게 음침하진 않겠는데.”

    “딥 다크한 판타지 세계의 맵 같다.”

    유다희와 유창이 수군거리는 것을 뒤로하고 나는 조디악의 배에 탔다.

    그러자 조디악은 긴 장대를 노 삼아 배를 밀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끼긱 …끼걱 …철썩!

    점점 수로 깊은 곳으로 몰아가는 배.

    그리고 지하수로는 안쪽으로 가면 갈수록 넓어진다.

    곳곳에 테이프에 꽁꽁 묶인 큰 사이즈의 비닐봉지들이 널브러져 있거나 물에 둥둥 떠 다니고 있었다.

    조디악은 그것들을 쓰레기 치우듯 장대로 툭툭 밀며 나아간다.

    곳곳에 비쩍 마른 쥐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이 장소는 뭐야? 너 이런 데 살아?”

    “훌륭한 집이지? 정식으로 등록된 주소는 아니지만.”

    킥킥 웃는 조디악.

    나는 등불 때문에 더욱 창백하게 보이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너는 대체 뭐냐?”

    내 질문을 들은 조디악은 비로소 입가의 미소를 지운다.

    “내가 누구인지는 네가 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는 흔들거리는 배 위로 나에게 바짝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경멸의 눈으로 보면 미치광이, 살인마, 부적응자.”

    “…….”

    “애정의 눈으로 보면 방랑자, 혁명가, 신.”

    “…….”

    “하지만 똑바로, 있는 그대로를 봐. 그렇다면 내가 뭘로 보일까?”

    조디악은 두 눈을 크게 벌리고 나를 삼킬 듯 내려다본다.

    그리고 그의 검은 눈동자에 비친 것은…….

    “너 자신이 보일 거야.”

    조디악은 나를 보며 웃었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졸졸졸……

    잔뜩 쌓인 쓰레기들 사이로 검은 물이 흐르는 수로의 끝. 배는 막다른 길에 도착했다.

    “어우, 이게 무슨 냄새야. 고기 썩는 냄새 같은데?”

    유다희가 코를 막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독한 악취가 수로 곳곳에 꽉 차 있었다.

    철창이 내리그어져 있는 곳 어귀에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큰 비닐봉지들이 잔뜩 쌓여있다.

    그리고 인도 옆에 콘크리트를 펴발라 만든 평평하고 마른 공간이 나왔다.

    조디악은 배에서 내려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를 따라 콘크리트 섬 위로 올라간 우리는 깜짝 놀라야 했다.

    “……이건!?”

    그곳에 쌓여 있는 것들은 바로 돈이었다.

    달러. 어마어마하게 많은 달러들이 고무줄에 묶인 채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진동하는 악취, 산더미 같이 쌓인 돈.

    마치 폭식의 벨제붑과 탐욕의 마몬이 현세에 강림한 듯하다.

    “이, 이게 다 돈이야?”

    “뭐야 이 자식. 엄청 부자였네?”

    유창과 유다희도 깜짝 놀란 듯 지폐의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도 깜짝 놀랄 만한 액수인지라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이 돈들은 다 뭐야? 어디서 난 거고?”

    내가 동요하는 듯하자 조디악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별 거 아냐. 다른 창고에는 더 많지.”

    “……더 많다고?”

    “그래. 게임머니를 환전한 돈들이거든. 이래 봬도 자금 세탁까지 끝난 것들이지.”

    조디악의 말은 돈의 액수보다도 놀라운 것이었다.

    게임머니를 환전한 거라고? 이 돈들이 다?

    이 자식… 대체 얼마를 벌어들인 건지 감도 안 잡힌다.

    멍하니 있는 나에게, 조디악이 씩 웃으며 말했다.

    “스크루지 공작보다도 돈이 많은 플레이어 본 적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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