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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06화 (806/1,000)
  • 806화 Help yourself (1)

    신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신이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시니.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런데 뱀은 신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신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사람이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구약(舊約) 『창세기(創世記)』 中-

    *       *       *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나는 게임 캡슐 문을 열고 몸을 일으켰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용자의 무덤 공략 및 세계리그 우승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린헬 공략은 조금 나중에 올려야겠다.”

    그 기나긴 고생 끝에 브라키오를 잡기는 했지만, 그 공략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것은 지금이 아니다.

    고인물은 용자의 무덤 공략 영상, 마동왕은 세계리그 우승으로 인해 지금 한창 핫할 시즌.

    따라서 그린헬 동영상은 대중들의 나에 대한 관심이 식을 때쯤 해서 한번 더 터트리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니 우선 공개적으로 뛴 레이드와 공식 대회에 대한 평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인터넷 기사들이랑 베스트 댓글 위주로 여론 조사를…….”

    하지만. 한참이나 마우스를 클릭하던 나는 이내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야 했다.

    “어우, 뭔 놈의 기사만 10만 건이 넘냐.”

    20개씩 모아보기만 해도 수백, 수천 페이지가 넘어가는 뉴스 기사들.

    나는 정보의 바다가 만들어 내는 이 거대한 물결 앞에 여론 파악을 약간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기사들의 99.9%는 나의 업적을 찬양하는 것들뿐, 그나마 0.1%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전하는 담백한 기사들이다.

    욕하거나 흠집을 내려 하는 역바이럴의 싹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고인물이나 마동왕이나 보여준 성과가 너무나도 압도적이니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깔 곳 하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이런 상황에서 괜히 관심 받기 위해 나를 까는 기사를 썼다가는 그 신문사는 바로 폐업행일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핫한 스타가 바로 나 아니겠나.

    -캬~~용자의 무덤을 공략해 벌이네~~클라쓰 갓갓갓!

    -고인물은 이제 진짜 월드클래스급이네...

    -게임만 잘해도 충분히 우주대스타 될 수 있다 이거야!

    -자꾸 자꾸 보니 얼굴도 잘생긴 거 같음ㄷㄷㄷ;;;

    -ㄴ그건아님ㅎㄷㄷ;;;

    -ㄴ고인물 횽 본인 어서오고~

    -마동왕 vs 고인물. 한국인들은 누굴 더 좋아합니까?

    -그 둘이 예전에 1:1로 붙은적 있지 않음??ㅋㅋㅋ

    -누가 이기려나 진짜 둘이 지금 다시 붙으면

    -그때 두 레전드가 혈기왕성하게 맞붙던 시절이 있었지 확실히ㅋㅋㅋㅋ

    -지금은 둘다 잃을게 많아서 안붙을 듯?

    -만약 그 둘이 싸운다면...그거야말로 진짜 세계리그다...

    .

    .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 또한 호평일색뿐.

    이제 악플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그마저 고인물이나 마동왕 한 쪽에 악플을 단 이들은 다른 한 쪽에는 선플을 남기고 있는 식이다.

    “결국 모두 내 팬이라 이거지.”

    고인물에게 우리횽 느그횽 하든, 마동왕에게 우리오빠 느그오빠 하든 간에 상관없다. 어차피 둘 다 나니까!

    나는 흐뭇한 얼굴로 기사와 댓글들을 열람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응?”

    묘한 정황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고인물이나 마동왕과는 딱히 상관없는, 그저 게임 포탈 사이트에 으레 올라오곤 하는 정보글들에서 발견된 잡정보.

    -요즘 유토러스? 쪽에 엄청난 부자 하나가 떴더라

    -ㅇㄱㄹㅇ진짜 돈 많아 보이는 사람이든데;;;

    -스크루지 공작 말하는거 아님? 그 NPC 원래 돈 많음ㅋㅋ

    -ㄴㄴ아님. 엄청 젊어 보였고...NPC도 아닌 것 같던데?

    -ㅇㅇ유저 같았음. 근데 한낱 유저가 돈을 그렇게 많이 벌 수 있나?

    -돈이라면 우리 돈지랄 축제 연 고인물 백작님 따라갈 사람이 읎제~

    -ㅋㅋ그건 그럼. 근데 그 신흥부자 플레이어도 장난 아니게 돈 많아 보이던데...

    .

    .

    언뜻 보기에는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뜬소문이다.

    하지만 스크루지 공작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약간의 흥미를 가졌다.

    “스크루지 공작은 세계관 최고의 대부호인데… 이 NPC에 비견될 정도로 돈이 많은 플레이어가 나타났다고?”

    그건 불가능하다.

    스크루지 공작은 전 세계 곳곳의 무기상, 잡화상, 신전 등에 줄을 대고 세금과 로열티 등등을 받고 있는 대귀족.

    이 세계관에서 그보다 많은 부를 소유할 수 있는 존재는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을 제외하고는 없다.

    천하의 나조차도 벌어 놓은 돈을 모두 게임머니에 현질하고 나서야 스크루지 공작의 관심을 살짝 끌 정도의 부를 쌓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 마당에 플레이어 중 스크루지 공작에 필적하는 부를 가진 플레이어가 나타났다고?

    그것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10대나 20대 중에 삼성이나 현대의 총수보다 돈이 많은 젊은이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르지. 대한민국의 대기업 하나가 시가총액을 모조리 끌어다 현질한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결국 스크루지 공작의 진짜 부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인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이 자꾸만 이 댓글들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고인물로서의 감. 이 세계에 깊이 몰입하고 있는 이로서 느끼는 미증유의 직감.

    그것이 이 상황으로 하여금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게 만든다.

    바로 그때.

    위이이잉-

    갑자기 울린 핸드폰이 나를 상념에서 깨어나게 했다.

    번호를 보니 발신인은 유다희다.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야! 너 세계리그 시상식 간다며!]

    “음? 아아, 어. 그렇지. 다음주 일요일 비행기야. 영국행.”

    [와! 되게 서운하네! 내가 이 소식을 우리 막내 통해서 들어야겠냐? 명색이 팬클럽 회장인데!]

    유다희는 통화 시작부터 불만스러운 기색이다.

    그 뒤로도 한동안 왜 시상식이 열리는 곳이 영국이어야 하냐고 볼멘소리로 투덜거린다.

    “별 수 없지. 뎀 유니버스 본사는 지금 알 수 없는 이유로 폐쇄 중이고,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지부가 영국 런던에 있으니까.”

    말 그대로다.

    원래대로라면 세계리그의 시상식은 뎀 유니버스의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시에서 열려야 하지만 현재 그곳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뭐 새로운 업데이트를 개발 중이라고 선전하고 하지만…… 김한선 이사나 남세나 반장에게 듣기로는 내부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나?

    [근데 원래 이렇게 리그가 다 끝나고 나서 시상식 시즌이 따로 열리기도 하는 거야?]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있는 일이지. 심지어 이번에는 퍼레이드 시즌도 따로 있다던데?”

    [오오, 경비도 다 내주나?]

    “어어. 팬클럽 인원들까지 다 내준다더라.”

    [우와! 진짜 통 크네. 공짜 영국여행이잖아!]

    유다희는 꽤나 기쁜 듯하다.

    나는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너 근데 이번에 돈 진짜 많이 벌었다며? 영국 여행이 공짜인 게 그렇게 좋아할 일이야?”

    [뭐래. 누가 여행비 굳은 게 중요하댔냐? 여행은 같이 가는 사람이 중요한 거…….]

    순간 유다희가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말을 중간에 멈춘다.

    그러더니.

    [……가 아니라! 도, 돈이 중하지!]

    “너 돈 많잖아. 저번에 고기 사줄 때 카드 긁는 거 보니까 많아 보이던데.”

    [돈이 많아도 돈 굳으면 좋지! 아니, 그리고 저번에 고기집 가서도 너는 상추만 꾸역꾸역 먹드만! 애가 식성이 왜 그러냐! 너 그러다간 키 안 큰……]

    “이제는 고기 먹을 수 있다. 또 사 줘라.”

    [엇? 아, 알겠어.]

    나는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항공 일정을 짜기로 하고는 유다희의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잠시 밀어두고 메일함을 체크하자 이번 시상식에 참가하는 수많은 유명인사들로부터 메일이 와 있다.

    존경의 뜻이 물씬 느껴지는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의 메일.

    (참고로 이 녀석은 내게 파손된 엑스칼리버를 배상하느라 고생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여전히 툴툴거리는 기색의 비앙카 트럼프.

    그리고 같은 건물에 사는 페이사 릴레사.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이후 약간이나마 친해진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와 저우쯔위, 아키사다 아야카, 장 마오 쉰 등등이 함께 시상식에 참가한다.

    “……솔직히 트로피는 쌓일 만큼 쌓였고, 바빠서 별로 가고 싶지는 않은데.”

    내게 있어서 세계의 유명 랭커들과 친분을 다지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이다.

    이후의 레이드.

    내가 심록의 용군주 브라키오 다음으로 노리고 있는 고정 S+급 몬스터는 바로 악마성좌.

    단순 전투력만으로 따지면 7대 악마성좌 중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존재였다.

    아마 꽤나 역대급으로 빡센 단타전이 될 것 같은 느낌.

    “……레이드에 걸리는 시간은 짧겠지만 그만큼 또 힘들 것 같단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상식 같은 것에 한눈을 팔 때는 아니다.

    뎀 유니버스 본사에서 열리는 행사였다면 성지순례라도 갔겠지만 그곳은 지금 폐쇄 중이라니까.

    “아무래도 영국행은 거절해야 하나? 근데 그러면 재영이 형이 펄펄 뛰겠지? 어떻게 할까.”

    유창에게 마동왕 가면을 씌워 대신 보낼까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띠링!

    메일이 하나 왔다.

    이미 9999개가 넘게 쌓여 있는 메일들인지라 확인은 구단 직원들에게 맡겨 놓은 상황.

    발신자 불명의 메일이라 굳이 내가 볼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

    스크린을 닫는 데 걸리는 시간, 그 짧은 순간 흘낏 스쳐 지나가며 본 메일의 제목은 내 몸을 딱딱하게 굳어지게 만들었다.

    <이번에 런던 와? -친애하는 너의 J->

    짧지만 재수 없는 이 말투.

    나는 직원들이 확인하기 전에 앞서 메일을 체크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메일은 예전에 내가 세계리그 영국전을 치르기 전날 밤에 받았던 메시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한국 대 영국 전.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World Ultimate Olympiad) 3라운드의 결승전이자 게이머라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줄곧 내내 바라마지않을 성지(聖地).

    그리고 나는 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하나의 편지를 받았었다.

    검은 비옷의 누군가가 로비에 맡겨두고 간 편지.

    잘 살고 있나 친구 :)

    아니, 오늘은 친구가 아니라 선배로서 예우하지.

    바로 대격변 선배 말이야!

    너와 네 친구가 각각 일으킨 1차, 2차 대격변 흥미롭게 잘 보았어.

    나도 이번에 그 덕 많이 봤고.

    그런데 말이야.

    받기만 할 수는 없잖아?

    나도 대격변이라는 것 한번 일으켜 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이 점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면 나를 찾아와줘.

    네 친구도 같이 오면 좋고!

    P*S 1- 영국은 비가 자주 오니 감기 조심해.

    P*S 2- 너는 결국 오게 될 거야♥

    -런던 E, Tower hamlets, White chaple, 3-21 Avenue, 어느 어둡고 축축한 지하수로에서, 친애하는 너의 J가-

    내가 지금까지 받아 본 초대 중 단연코 가장 음습하고 기분 나쁜 초대.

    그 당시 나는 이 초대에 응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현재, ‘J’는 또 다시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안녕 친구. 서로 바쁜 것 같으니 짧게 말할게.

    이번에 안 오면 정말로 많이 후회하게 될 일이 생길 거야!

    P*S 1- 2.5차 대격변 준비는 거의 다 끝났어!

    P*S 2- 뎀 유니버스 본사가 문을 닫은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

    P*S 3- 영국은 비가 자주 오니 감기 조심해.

    -런던 E, Tower hamlets, White chaple, 3-21 Avenue, 어느 어둡고 축축한 지하수로에서, 친애하는 너의 J가-

    나는 메일을 읽고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2.5차 대격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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