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05화 (805/1,000)
  • 805화 심록용(深綠龍) 브라키오 (10)

    <세계 최초로 ‘심록용 브라키오’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물>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린헬의 제왕 브라키오’가 쓰러졌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풀과 나무들이 당신의 업적에 경의를 표합니다>

    <세계수의 성장이 시작됩니다>

    <그레이 시티의 노련한 회색 군주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황금왕좌의 고귀한 젊은 군주가 당신을……>

    <악마성좌 사탄이 당신의 업적을 좋아합……>

    <악마성좌 루……>

    .

    .

    여러 가지 알림음들이 빗발친다.

    나는 해묵은 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내 팔을 잡아 일으킨 이들은 윤솔과 드레이크. 그리고 쥬딜로페와 오즈였다.

    쉬이이익……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게 솟구쳐 있는 목탄(木炭).

    한때 위대한 녹색 비늘 일족의 군주였던 그것은 이제 잔불 까맣게 타들어간 몸에서 아스라한 포연만을 뿜어내고 있을 뿐이다.

    용족의 젊은 피 쌍두마차로 이름 높았던 브라키오, 그의 마지막을 보는 오즈의 눈빛에는 착잡함이 깃들어 있었다.

    [에잉. 젊은 놈이 뭐가 그리 조급해서는. 그저 천천히 나이를 먹기만 하면 커지는 것이 몸집이거늘.]

    “너는 불카노스로 비늘 코팅했잖아.”

    [어허. 몸이야 가만히 있으면 자라지만 빠진 비늘은 다시 자라지 않지 않느냐. 그리고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오즈는 두 손을 정수리에 올려놓은 채 나에게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지만 몸집이 너무 작다보니 그저 하찮을 뿐이다.

    [아무튼. 세계수를 지키는 일족이 오히려 세계수에 기생할 생각을 하다니. 급격한 육체적 성장이 정신적 성장을 너무 한참이나 앞서 버린 결과로군.]

    나는 오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과 문화가 빠르게 발전한다고 해도 의식이나 도덕의 수준이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처럼, 브라키오 역시 몸은 컸지만 정신은 크지 못했다.

    녹색 비늘의 고룡들이 으레 가지고 있어야 할 인내심과 정신 수양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보니 숲의 평화와 생태계 순환보다는 일신의 전투력에 더욱 더 관심을 기울였으리라.

    나는 숯덩이로 변해 버린 이 거대한 용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퀘스트와 아이템을 살펴볼 차례이다.

    퀘스트 창을 열자 히든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상태창이 떠 있었다.

    <세계 최초로 ‘심록의 용군주 브라키오’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세계수의 뿌리’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나는 이름을 남긴 뒤 보상을 받았다.

    보상으로 주어진 아이템은 다음과 같았다.

    -<깊은 숲의 변태양파> / 재료 / S

    눈물을 흘리며 알몸으로 질주하는 양파.

    까도 까도 똑같은 내면을 드러낸다.

    -눈 매움 +1

    -민첩 +? (특수)

    ※옵션에 의한 스탯 상승은 랜덤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린헬 밖에서도 재배가 가능합니다

    이것은 바로 깊은 숲의 변태양파! 무려 S등급의 재료 아이템이었다.

    일반적인 몬스터를 잡고 얻은 잡템이 아니라 정식으로 나온 종자, 즉 씨앗이다.

    그린헬의 몬스터를 잡고 얻은 양파는 원래 그린헬 외부로 가지고 나갈 수 없지만 이 씨앗만큼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린헬 밖에서 재배한 뒤 얼마든지 나의 목적에 의해 사용할 수 있었다.

    “오오, 지옥불 코어와 슬라임 젤리에 이은 양파 아이템이 생겼군.”

    ……이름이 좀 걸리긴 하지만, 뭐 어때.

    안 그래도 민첩 옵션이 붙은 아이템이라면 뭐든지 모으는 나에게 있어 이 양파는 정말 천군만마와도 같은 히든 피스였다.

    살인자들의 탑 5층에서 대량 재배한 뒤 내 편의에 맞게 쓰면 되겠다 싶었다.

    히든 퀘스트 보상을 확인했으니 이제 상태창 점검 차례.

    나는 제일 먼저 레벨을 확인했다.

    <이어진>

    LV: 98

    HP: 980/980

    호칭: ‘녹색 용군주 브라키오의 위상(특전: 채식주의자)’

    레벨이 1 올랐다. 그린헬에서 잡은 그 무지막지한 필드 몬스터들, 그리고 그 꼭대기에 군림하던 브라키오마저 쓰러트린 결과였다.

    레벨 97이었을 때 레벨 98로 넘어가는 데 요구되는 필요 경험치량을 보고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거의 레벨업을 포기하고 있었던 터라 딱히 느끼진 못하고 있었었는데……

    ‘정말로 극악의 노력치가 요구되긴 했구나.’

    이번 기회에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무얼 해낸 것인지 말이다!

    뭐 아무튼.

    레벨업에 의한 감격도 잠시, 이내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함께 얻은 호칭에 주목했다.

    특성 ‘채식주의자’

    ↳식물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대에게 2배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좋아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그 많고 많은 브라키오의 특성들 중 이것이 떨어질 줄이야!

    이것은 심플해 보이지만 몹시 사기적인 특성이다.

    채식주의자 특성에 의한 추가 피해는 나의 깎단에 의한 도트 데미지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즉, 나는 깎단을 4개 든 셈이 되는 것이다. 이론 상 상대방을 2,500초. 즉 41분 만에 죽일 수 있다는 뜻.

    “……여기에 벨제붑의 힘까지 적용된다면 20분 컷도 노려볼 수 있겠는데.”

    물론 몬스터의 자연 회복력과 내성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무식한 셈법이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충분히 무시무시한 힘이다.

    “어디, 아이템 보상을 좀 볼까?”

    나는 불에 탄 덤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기둥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이내, 나는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심록용 브라키오의 원시림 워커> / 신발 / S+

    원시림의 황제가 내딛던 디딤발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걸음걸음마다 실리는 용의 힘은 착용자를 이 세상 어디로든 보내주며 밑창에서 흘러나오는 세계수의 수액은 그의 발자취를 영원토록 빛나게 만들 것이다.

    - 민첩 10,000

    -이동 속도 + 1,000%

    -특성 ‘마찰계수(摩擦係數)’ 사용 가능 (특수)

    레전드급 아이템이 떨어졌다.

    민첩과 이동속도를 중시하는 나의 메타에서는 아마 이보다 더 좋은 신발을 찾을 수는 없으리라.

    전에 쓰던 신발은 씨어데블을 잡고 얻은 A+등급의 것으로 이동 속도를 두 배로 올려주며 주변 필드가 물일 경우 최대 이동 속도가 5배까지 증가했었다.

    또한 ‘마찰계수’ 특성으로 인해 숨을 참을 때마다 전신에서 끈적한 점액이 흘러나와 회피력을 높여주는 부가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얻은 이 브라키오의 신발은 모든 옵션에서 씨어데블의 신발을 상회한다.

    심지어 숨을 참을 때마다 신발 밑창에서 흘러나오는 세계수의 달달하고 끈적한 수액이 ‘마찰계수’ 특성마저 제공해 주고 있었다.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아이템을 바꿔 착용했다.

    “오오.”

    몇 번 방방 뛰어 보니 서전트 점프가 족히 두 배는 더 높아졌다.

    강해진 각력(脚力)과 빨라진 몸에 적응하려면 한동안 훈련이 필요하겠다 싶을 정도였다.

    “지하철 전용 아이템이네. 이걸로 출근시간에 내 발 밟는 놈들에게 다 복수해 줄 수 있겠어.”

    리액션 좋은 윤솔이 내 농담을 듣고 옆에서 깔깔 웃는다.

    그녀 역시도 꽤나 괜찮은 아이템을 얻은 참이다.

    -<그린헬 피톤치드 목걸이> / 목걸이 / S

    이 세상에는 숲에게 편애 받는 자가 있어 좋은 기운을 몰아 받는다고 한다.

    - 마나 +50%

    - 근력 +5,000

    -모든 원소 자연회복량 +50%

    -특성 ‘광합성’ 사용 가능 (특수)

    브라키오의 긴 목뼈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목걸이.

    생긴 것이 다소 섬뜩하기는 하지만 착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나와 힘이 크게 오르는 히든 피스이다.

    더군다나 힐러에게 필수 옵션인 ‘모든 원소 자연회복량’과 ‘광합성’ 특성이 있는지라 더더욱 좋았다.

    한편, 드레이크 역시도 꽤나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

    -<원시림의 증오 마름쇠> / 한손무기 / S

    모든 나무가 다 인자하고 자비롭다는 것은 편견이다.

    무자비하게 벌목된 어떤 나무는 벌목꾼에게 지독한 증오를 품고 때때로 해코지를 가한다.

    가령 이 맹독 가시가 돋아난 열매를 땅에 소리 없이 뿌려둔다던가 하는 식으로.

    - 공격력 +3,000

    - 민첩 +5,000

    -특성 ‘맹독’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연쇄폭발’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살금살금’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여벌의 눈알’ 사용 가능 (특수)

    전에 쓰던 모든 마름쇠 류의 아이템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마름쇠가 나왔다.

    천공섬의 가챠 뽑기에서 얻었던 ‘라맛-레히(Ramath-lehi)’의 마름쇠, 패륜아의 둥지에서 얻었던 ‘고르곤의 뿔 파편 마름쇠’보다도 훨씬 더 좋은 옵션이었다.

    일단 깡 공격력과 민첩 상승이 두드러진다.

    적어도 전에 쓰던 마름쇠들보다 3배에서 6배 이상 우월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4가지나 되는 특수 옵션이다.

    일단 그린헬에 서식하는 식물들이 으레 가지고 있는 ‘맹독’ 특성, 그리고 마름쇠들이 효과가 다한 뒤에 스스로 터지게 만드는 ‘연쇄 폭발’ 특성, 뿌릴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살금살금’ 특성, 마지막으로 마름쇠가 뿌려진 곳에 시야가 닿게 만들어 주는 ‘여벌의 눈알’ 특성이 붙었다.

    “오오, 이 ‘여벌의 눈알’ 특성이 제일 마음에 드는군. 마름쇠를 뿌려 놓고 멀리 가도 이 마름쇠가 닿아 있는 곳을 감시할 수 있단 말이지?”

    드레이크는 궁수답게 시야 확보에 관심이 많았다.

    윤솔 역시도 힐러답게 회복에 중점을 두고 아이템을 살폈다.

    결과적으로 둘 다 매우 만족해하는 기색.

    물론 나 역시도 민첩에 목숨 거는 메타이니만큼 이번 레이드 보상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제 고정 S+급 몬스터도 얼마 안 남았네.”

    어딘가에 리젠되었을 불사조를 제외한다면 모두 5마리의 서브스트림이 남았다.

    세 용군주. 그리고 두 악마성좌.

    내가 턱을 짚은 채 고심에 잠기자 윤솔과 드레이크는 몹시 궁금하다는 기색으로 물었다.

    “어진아, 또 고정 S+급 몬스터 레이드 갈 거지?”

    “다음 타깃은 누구인가? 용? 악마?”

    둘 다 이번 레이드가 아주 재미있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아스모데우스에 이어 브라키오 레이드까지 연달아 뛰고 난 터라 굉장히 피곤하다.

    더군다나 세계리그 우승 시상식도 따로 영국에서 열린다고 하니 거기에도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할 행동은.

    “고기 좀 먹자.”

    현실로 가서 밥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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