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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04화 (804/1,000)
  • 804화 심록용(深綠龍) 브라키오 (9)

    고오오오오…

    허공에 뜬 스타워즈형 배틀쉽은 수많은 반사판들을 이용해 태양열을 한 곳에 모았고 이내 엄청난 굵기의 빔 광선을 쏘아 보낸다.

    그뿐이랴? 귀상어 모양의 추가 전투순양함들이 먹구름을 뚫고 속속들이 등장했다.

    제공권을 완벽하게 틀어쥔 하늘 함대의 등장.

    배틀크루져(Battlecruiser)들은 지상에 있는 브라키오를 향해 농축 발효 가스와 휘발유, 화약들을 내뿜는다.

    “Good day, commander.”

    나는 브라키오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나의 윙크가 떨어지는 곳에서는.

    콰-콰콰콰콰쾅!

    어김없이 불벼락이 터져 나온다.

    디버프에 의해 모두가 알몸이 되는 숲, 유일한 무기는 바로 ‘창의력’ 뿐이다!

    이 모든 게 자유도 높은, 모든 것이 오픈되어 있는 샌드박스형 던전 그린헬에서만 가능한 플레이!

    “가라! 육군! 해군! 공군!”

    내가 버튼을 누르는 즉시 목재 건축물들이 움직인다.

    스프링에 달린 주먹을 내뻗는 충차, 불을 내뿜는 전차와 목마, 가스와 유증기를 뿜어내는 바퀴들이 브라키오를 향해 마구 굴러가고 있었다.

    늪지에서 불쑥 튀어나온 호스들이 늪지대 밑바닥에 가라앉은 장독(瘴毒)과 가연성 가스들을 싹싹 빨아들였고 역으로 브라키오를 향해 분사한다.

    하늘에는 수많은 프로펠러들에 의해 하늘을 나는 드론, 헬기, 요새, 전투선, UFO 등등이 날아다니며 포격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마지막은 결국 자살 공격!

    콰콰콰콰콰콰콰쾅!

    화력을 다한 공성병기들은 스스로 브라키오를 향해 돌진했고 장렬하게 박살나 파괴되고 있었다.

    고막을 찢는 굉음이 초 단위로 터져 나와 갱신된다.

    숲이 실시간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불길에 휩싸인 브라키오는 무지막지하게 밀려들어오는 물리 데미지와 화염 데미지에 몸부림쳤다.

    더군다나.

    […포앵스! 뿌!]

    [핫하! 꼴 보기 싫은 녹색비늘 자식! 꺼져라!]

    쥬딜로페와 오즈 역시도 브라키오를 향해 슬라임 젤리와 깊은 숲의 타락양파들을 마구 집어던지고 있었다. 디버프가 끊이지 않게 말이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해맑은 표정을 지은 채 목공예의 즐거움에 흠뻑 젖었다.

    “이제 나도 감을 좀 잡겠어! 쨘! 어때? 내가 만든 자살 전차야! 톱니바퀴를 이용해서 브라키오의 비늘을 절단할 수 있고 절단에 성공해서 톱니바퀴가 헛돌게 되는 순간 자폭해!”

    “어진! 나 새로운 건축법을 개발한 것 같다! 감결합기(decoupler) 출력 변경에 관한 것인데 디커플러 블록의 결속이 해제되는 순간 맞은편 블록에 가하는 힘이 급격히 상승하는 오류가 있는 게 이것으로 야매 캐논을 미칠 듯한 속도로 빠르게 생산 가능……!”

    디버프와 데미지가 끊이지 않고 브라키오를 난타한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숲에서 나온 부산물들.

    거기에 거미들의 집단이주로 인해 더 이상 숲의 기운을 나눠받지 못하게 된 브라키오는 계속해서 작아지는 몸과 떨어지는 스탯에 이미 멘탈마저 붕괴되어 있었다.

    “이때다!”

    한번 잡은 승기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거미여왕의 부름호각과 깊은 숲의 타락한 양파들로 인한 효과들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머지않아 떠났던 거미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고 삐뚤어진 양파들 역시 그 효과를 다해 사라지겠지.

    그러면 브라키오 역시 재생력을 되찾을 것이고 지금까지 입혀 놓았던 데미지들은 모조리 초기화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밖에는 답이 없다.

    마침 브라키오는 깎단과 역병으로 인해 HP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

    나는 마지막 무기를 빼들었다.

    “진정한 남자의 로망이 뭔지 보여주마.”

    동시에, 나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목각 반지들을 높게 들었다.

    그리고 그 정가운데에 있는 붉은 버튼을 손으로 누른 뒤 짧게 중얼거렸다.

    “변신.”

    그러자.

    위이이잉- 치익! 철커덕!

    육, 해, 공에 있던 모든 병기들이 일순간 작동을 멈추고 파르르 떨린다.

    이윽고, 모든 병기들의 모습이 변하더니 이내 두 팔과 다리를 가진 인간형 모습을 갖춘다.

    “합체.”

    그리고 한 곳을 향해 모여든 병기들은 하나하나가 손, 발, 몸통, 머리로 변해 서로의 파츠들을 결합하기 시작했다.

    변신 합체 로봇.

    그것도 초대형.

    이것이야말로 남자의 로망이 아닐까?

    위이이이이잉- 쿠구궁!

    이윽고, 브라키오를 상회할 정도로 거대한 로봇 하나가 숲 위로 머리를 들어 몸을 일으켰다.

    빛이 뿜어져 나오는 눈, 거대한 몸통, 스프링으로 되어 있는 두 주먹, 강력한 바위 관절과 통나무 다리.

    “가라-앗!”

    나는 이 거대 로봇의 조종사가 되어 브라키오에게로 다이브한다.

    어차피 이제 포션도 없다.

    그저 남자답게 한 몸 불살라 부딪칠 뿐!

    [오-오오오오오오!]

    브라키오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나의 로봇에 맞선다.

    이윽고, 나의 로봇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두 주먹의 스프링이 고속으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1초에 1천 번이 넘는 부스터 펀지를 날린다.

    로봇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동시에 팔꿈치에서 저절로 부글부글 끓는 증기와 휘발유, 가스들이 터져 나온다.

    그것은 더욱 더 가열찬 스프링 펀치가 되어 그 무게와 충격을 브라키오의 전신에 사정없이 실어 내보냈다.

    [그-아아아악!]

    격통에 괴성을 지르는 브라키오.

    하지만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위이이잉- 철컹! 키이이잉!

    허공에 떠 있던 배틀크루져들과 스타워즈 UFO마저 내려와 로봇의 등 뒤에 합체한다.

    이제 날개까지 생긴 로봇은 하늘로 붕 떠올랐고 브라키오의 거대한 몸을 찍어 눌러 파운딩을 시도한다.

    쾅! 콰쾅! 콰-콰콰콰콰콰콰콰쾅!

    1초에 1,000번을 왔다 갔다 하는 스프링 펀치!

    한 방 한 방 때릴 때마다 화약과 가스, 휘발유가 펑펑 터지는!

    이 광속 펀치를 동반한 버스트 다이브 앞에 브라키오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이 정도 화력이라면 내 불카노스 풀코팅 비늘도 못 버티겠는걸.]

    심지어 지켜보던 오즈마저 가늘게 떨 정도.

    펑펑펑펑펑펑펑펑!

    끊임없이 작렬하던 스프링도 이제 너무 달아올라 천천히 녹아내린다.

    과부하가 걸린 로봇의 몸 군데군데가 천천히 바스러지며 붕괴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깔린 브라키오는 부러져나가는 이빨을 꽉 깨물고 버티는 중이다.

    브라키오의 HP 감소폭이 점차 더뎌지고 있다.

    반면 로봇은 이제 슬슬 한계를 맞이했는지 부서져 나간다.

    이대로라면 간당간당하게 패한다. 이 싸움, 이길 수 있을까?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그린헬의 이 하잘 것 없는 잡템들이 끝까지 버텨 줄까? 엄격하게 식단 조절을 해 가며 해 왔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친구들과 함께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것이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된다면?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내면의 또 다른 자아.

    미증유의 불길함이 나의 나약함을 두드린다.

    바로 그때.

    “잘 들어 어진아! 그 로봇은 그린헬에서 거저 얻은 게 아니야! 그건 바로 오랫동안 준비해 온 네 노력의 결과야! 뎀 역사를 통틀어 브라키오를 잡을 수 있을 용자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너 하나밖에 없어!”

    윤솔이 외치는 소리가 내 귀를 두드린다.

    터져 나오는 열기류와 충격파 속, 드레이크가 이를 악물고 소리치는 것도 들린다.

    “어진! 너 자신을 믿어라! 이제 너에게 두려움을 허락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너 자신뿐!”

    두 친구들의 말이 뜨거운 화염에 실려 내게 전해져 온다.

    이제 포션도 한 방울 없는 상황.

    얼마 남지도 않은 HP가 깎여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래. 여기까지 온 바다. 회귀 전 수많은 고인물들의 노하우와 집념이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간다!”

    더 이상의 말이 뭣에 필요하랴?

    나는 마지막 목숨을 불살라 로봇을 조종했다.

    두 팔의 스프링이 펑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담은 나의 물리엔진 주먹이 작은 파츠들을 별똥별처럼 흩뿌리며 날아간다.

    목표는 원시림의 고대황제! 이 세상 모든 목본과 초본의 지배자! 심록의 용군주 브라키오!

    이윽고.

    콰-앙!

    내 주먹이 브라키오의 안면 정중앙에 작렬했다.

    우지지지직!

    놈의 비늘이 부서져 나감과 동시에 나의 주먹도 부서졌다.

    사방팔방으로 흩날리는 비늘 조각, 이빨의 파편, 불타오르는 파츠들.

    동시에 나는 내가 조종하던 거대한 로봇의 수명이 완전히 끊겼음을 직감했다.

    콰쾅! 와지지지직!

    한계를 넘어서까지 가열된 스프링이 녹아내리는 즉시 펑 터져 곳곳에 뜨거운 쇳물방울을 뿌린다.

    가스와 유증기가 불길을 실은 채 솟아올라 저 멀리 먹구름을 끓이고 있었다.

    …….

    내가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를 미처 닦지 못하고 옆으로 풀썩 쓰러졌을 때.

    …턱!

    그런 내 옆을 굳건하게 받쳐 주는 존재가 하나.

    “고생했다 어진.”

    드레이크가 내 등 뒤에서 손바닥을 밀어 올려 나를 받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윤솔이 옆에서 내 팔을 잡아 쓰러지지 않게 고정시켜 준다.

    쥬딜로페와 오즈가 내 볼 쪽으로 꼬물꼬물 타오르고 있었다.

    “…….”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불타 버린 잔해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뿌옇게 물든 시야에 시커멓고 커다란 것이 들어왔다.

    브라키오.

    놈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놈을 잡는 것에는 실패한 걸까?

    내가 필사적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있을 때.

    푸쉭-

    브라키오의 미간 사이, 이마에 달려있는 커다란 콧구멍에서 이내 뜨거운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쿠구구구……

    놈은 하늘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고정 S+급 몬스터의 위엄.

    몸에서 불타 바스라진 살점 가루와 숯덩이가 된 내장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것들에 신경 쓰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

    “…….”

    “…….”

    나도 윤솔도 드레이크도 모두 말없이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거대한 보스 몬스터를 바라본다.

    한참의 침묵.

    그것을 깬 존재는 브라키오였다.

    [나무는 대지의 갈망을 상징하듯이 발돋움하고 서서 하늘을 본다.]

    웅웅 울리는 브라키오의 낮은 목소리가 폐허가 된 그린헬에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브라키오가 우묵한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하는 순간.

    -띠링!

    그토록,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알림음이 모든 이들의 귓가에 빗발친다.

    <세계 최초로 ‘심록용 브라키오’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물.>

    <보상이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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