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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03화 (803/1,000)
  • 803화 심록용(深綠龍) 브라키오 (8)

    [????]

    브라키오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성룡이 된 이래 무언가를 올려다본 것은 실로 간만이다.

    브라키오의 머리 위로 떠올라 있는 것은 거대한 요새.

    성벽과 망루, 수많은 첨탑들을 가지고 있는, 말 그대로 요새 그 자체다.

    하단부에서 불을 뿜어내며 날아오른 요새는 그대로 브라키오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망루 위에 선 채 오연하게 외쳤다.

    “핫하! 요새에서 뭔가를 날려 보내는 것은 봤어도 요새 자체를 날려 보내는 것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이윽고, 요새는 브라키오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쾅! 우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엄청난 폭음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나부끼는 나뭇조각들.

    [크-아아아악!]

    브라키오는 묵직한 데미지를 입은 채 뒤로 비틀비틀 물러섰다.

    아까 집이 무너져 내린 것과는 붕괴의 차원이 다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파편들이 브라키오의 몸을 때렸고 그것은 주변을 온통 개박살내 놓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마, 말도 안 돼! 저게 뭐야!]

    불을 뿜으며 날아드는 요새 다음으로 보인 것은 원뿔형의 거대한 목재 미사일이었다.

    “자, 이것은 물로켓… 아니 물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나는 꽁무니에서 엄청난 수압의 물무리를 분사하며 날아오는 로켓의 머리 부근에 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물로켓이 브라키오에게 피격되기 직전에 점프!

    콰-콰콰콰콰콰쾅!

    브라키오는 또다시 가슴팍에 날카로운 관통 데미지를 입은 채 뒤로 비틀비틀 물러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뛰뛰빵빵!”

    나무와 바위를 이용해 만든 거대한 바퀴들에 불이 붙은 채 마구 굴러 내려온다.

    화염 자동차!

    그리고 그 옆에는 기름 고로쇠나무 수액을 맹렬하게 뿜어내며 굴러오는 폭포 자동차도 보인다.

    기름진 수액 바퀴와 불타는 바퀴들이 한데 모여 브라키오의 몸을 때리는 순간.

    콰콰콰콰콰쾅! 우지지지직!

    2차 폭발이 일어나 브라키오의 몸을 불태운다.

    [크윽……고작 이런 나무쪼가리로 나를……!]

    <크윽……고작 이런 나무쪼가리로 나를……!>

    육탄공세로 밀고 나가려던 브라키오는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는 눈앞의 물체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지금 이게 무슨…….>

    그렇다.

    두 번씩 중첩되는 대사.

    브라키오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브라키오였던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무로 만들어진’ 브라키오지만 말이다.

    -<‘말도 안 되게 잘 만든’ 목재 브라키오> / 재료 / ?

    ……밖에도 좀 나가고 그러십시오 휴먼.

    -방어력 +5,800

    ※이 아이템은 그린헬 외부로 나가는 순간 파괴됩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목재’ 브라키오의 어깨 위에 서서 그를 향해 소리쳤다.

    “왜! 스스로에게 겁이 나나!”

    동캐전. 혹은 미러전.

    대전격투게임에서 흔히 완벽한 실력 차이를 보여 주기 위해 쓰이는 방법이다.

    상대가 고른 캐릭터와 같은 캐릭터를 골라 완전히 발라 주는 악랄한 수법.

    그야말로 실력으로 상대를 찍어 눌러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 때 쓰는 방법이다.

    “원래 철X이라는 게임에서도 나무로 만든 모쿠X이라는 캐릭터가 있으니까.”

    나는 스탠드 술사가 되어 거대한 목각인형을 조종한다.

    물리엔진 오류가 나지 않도록 정교하게 말이다.

    <크르르르르…….>

    이번엔 목재 브라키오가 먼저 울음소리를 냈다.

    그렇다. 이 목재 브라키오는 진짜를 따라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나의 명령에 따라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는 셈.

    <크오-오오오!>

    목재 브라키오가 앞발로 브라키오를 공격했다.

    그러자 브라키오는 싱겁다는 듯이 몸을 비껴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런 시덥잖은 공격으로…….]

    하지만 목재 브라키오의 앞발은 기묘한 각도로 꺾여 브라키오의 가슴팍을 후려갈긴다.

    …뻐억!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나뭇조각.

    [크으윽!]

    브라키오는 명치 부근을 쎄게 맞고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고고한 태도로 말했다.

    “브라질리언 앞발펀치다. ‘zx현재접속중xz’ 형님이 발명하신 기술이지.”

    잠시 그리움이 스친다.

    회귀 전, 그린헬에서 가장 인기 있던 종목이 바로 지금의 종목이었다.

    브라키오와 똑 닮은 목재 건물(이미 건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을 만들어 브라키오와 대적하기 놀이.

    물론 그래 봐야 나무기 때문에 얼마 안 가 부서지겠지만, 고인물들은 버티는 시간을 1초라도 더 늘리기 위해 꾸준한 연구를 해 왔다.

    그리고 나는 그 조립법들 중에서 알짜배기만을 추려서 브라키오에게 맞서고 있는 중이다!

    “슉슉, 피하고, 뒤 잡아서 꼬리로 목 감고! 좋아 원투! 박치기!”

    정신없이 몰아치는 목재 브라키오의 공격에 브라키오는 점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어설픈 잔재주를 봐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브라키오는 사나운 기운을 폭사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지독한 심록 폭발이 또다시 이어진다.

    와지끈! 우드드득!

    목재 브라키오의 몸이 부서져 내린다.

    안쪽에 있는 세밀한 파츠들까지 삐걱거리고 있는 걸로 봐서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듯싶었다.

    “1분 23초라…… 선방하기는 했지만 결국 선배님들을 넘어서진 못했군.”

    목재 브라키오를 컨트롤해 2분가량을 버텨내던 회귀 전 용자 썩은물들을 따라가려면 아직 먼 모양이다.

    하지만 아쉽진 않았다.

    내가 준비해 놓은 패는 이게 다가 아니니까.

    철컥- 철컥- 철컥-

    기우뚱하고 쓰러지던 목재 브라키오는 별안간 수없이 많은 부품들로 분해되어 진짜 브라키오를 감쌌다.

    위이이잉- 철컥- 차캉- 킹!

    그 광경을 본 드레이크가 입을 딱 벌렸다.

    “……지금 이 소리는!?”

    남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소리.

    요철이 맞물리고, 철과 철이 부딪치며, 기어가 끼리릭 돌아 제자리에 끼워지는 소리.

    “아머 슈트!”

    그렇다.

    목재 브라키오는 파츠별로 분해되는 즉시 갑옷이 되어 브라키오의 온몸을 감쌌던 것이다.

    [이노오오옴! 대체 무슨 짓을!]

    브라키오가 격렬하게 발버둥 쳤지만 아직 나무 갑옷들이 부서지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다.

    그사이 윤솔이 급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어진아! 저러면 우리한테 불리한 거 아냐?”

    적에게 갑옷을 입혀 주다니.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상식 안에서의 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아, 에X게리온이라고 알아?”

    “예전에 보긴 했는데……. 혐한 캐릭터 디자이너가 참여한 만화 아냐?”

    “으음… 혐한이었나. 그건 몰랐군. 아무튼 거기에 유명한 대사가 하나 있지.”

    로봇 에X게리온의 갑옷은 사실 갑옷이 아니었다는 설정.

    “갑옷이 아니라 사실은 구속구였다…… 라는 대사가 말이야!”

    동시에, 나는 나무로 된 버튼 하나를 꾹 눌렀다.

    그러자.

    콰콰콰콰콰쾅!

    또다시 격렬한 폭발이 브라키오를 감싼다.

    [오-오오오오!]

    격분한 브라키오가 온몸에 절여진 데미지를 흔들어 털어내고 있을 때.

    “자, 총출동이다.”

    나는 만들어 둔 목재 공예품들을 모조리 이끌고 나왔다.

    콰쾅! 와지지지직!

    다시 한번 브라키오의 몸 위로 하늘을 날아온 요새가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이번엔 거기서 끝이 아니다.

    “건축 박람회 시작!”

    에펠탑, 오페라 하우스, 만리장성, 63빌딩, 국회의사당, 피라미드, 설악산 흔들바위, 스핑크스 등등 수많은 랜드마크들이 브라키오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모터쇼가 빠지면 섭하지.”

    나무로 만들어진 엔쵸 패라리, 램보르기니, 롤즈로이스 등 유명한 차량들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 브라키오의 발톱 밑을 노린다.

    억센 나무 간지럼 기구, 고무나무 빨판 부황 키트, 칼날해초 각질제거기, 새부리나무 비늘 뽑기 핀셋 등 수많은 고문기구들도 어지러이 날아가 브라키오의 시야를 교란하고 있었다.

    나는 다음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근처의 나무들을 부지런히 모았다.

    “이야, 2차 대격변 이후로 나무들이 많아져서 그런가. 재료 조달하기가 너무 쉽네.”

    나는 잽싼 손놀림으로 나무기둥들을 겹치며 말했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내 옆에서 열심히 다음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어진아! 부품을 장착할 때 이미 장착된 부품에 다른 부품을 겹치면 경고 창이 뜨잖아! 그걸 무시하고 억지로 끼워 넣으면 방패나 적당한 크기의 나무토막들은 중첩이 돼! 여기 버그 되게 많다! 숲이라서 그런가?”

    “나무 기둥 파츠들이 특히나 더 불안정한 것 같다. 무언가 딱히 작동될 것도 없는데 플레이 버튼이 떠서 누르면 팝콘처럼 튀어나간다. 이거 잘만 하면 기계장치의 무게와 균형에 간섭을 주어 폭발의 트리거로 사용할 수도 있겠는데?”

    하나를 가르쳐 주면 최소 둘, 많으면 열까지 아는 윤솔과 드레이크다.

    이윽고, 친구들의 실력은 일취월장으로 늘어만 갔고 그 결과물들은 고스란히 브라키오의 눈앞에 위협으로 구현된다.

    두다다다다다다-

    수백 개의 프로펠러로 날아다니는 나무 헬기.

    밑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휘발유 샤워와 불똥 세례들은 마치 네이팜탄과 같은 위력을 자랑한다.

    폭발열매를 주렁주렁 싣고 있는 목마들이 네 개의 다리로 뒤뚱뒤뚱 뛰어가 브라키오에게 돌격하고 있었다.

    [그아아아악! 이것들이 다 뭐냐 대체!]

    기껏해야 발리스타, 투석기 등을 예상하고 있던 브라키오는 점점 더 진화하는 공성병기들의 괴랄한 생김새에 몸을 부들부들 떤다.

    “왜? 날아다니는 집 본 적 없어? 상상력이 부족하구만.”

    나는 브라키오의 머리 위에 화약으로 가득 찬 자유의 여신상과 손에 들린 횃불을 떨어트리며 말했다.

    콰콰쾅! 퍼퍼퍼펑! 와장창창…!

    개판.

    그린헬의 숲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하하! 브라질 대통령이 보면 좋아하겠군!”

    나는 불길에 괴로워하는 브라키오를 보며 미소 지었다.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반드시 한 줌 육편으로 짓이겨 주리라!]

    이윽고, 브라키오는 삼림을 살라먹는 화마를 찢고 나왔다.

    전신의 비늘에는 불타고 그을린 자국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두 눈에 선 핏발은 놈이 아직 건재함을 알려 주고 있었다.

    “으음, 과연 고정 S+급 몬스터.”

    “……이대로라면 우리도 고전하겠는데요.”

    드레이크와 윤솔은 침음성을 삼키며 눈앞에 있는 거대한 존재, 원시림의 황제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벌써 쓰러지면 재미없지.”

    이윽고, 물안개 너머. 까마득한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있었다.

    먹구름층을 뚫고 등장하는 거대한 모서리.

    그것을 본 윤솔과 드레이크, 심지어 브라키오마저 입을 딱 벌린다.

    너희가 남자의 로망을 아느냐?

    …쿠궁!

    하늘에서 등장한 것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UFO.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초거대 배틀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 메가톤급 우주선의 함장은 바로 나!

    “나는 지금부터 시작인데.”

    그린헬에 고이고 고인 고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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