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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01화 (801/1,000)

801화 심록용(深綠龍) 브라키오 (6)

모든 이들이 덤벼드는 것이 무섭지 않은 존재도 모든 이들이 떠나는 것은 무섭다.

……!

나는 호각을 한번 불었다.

그러자 높고 날카로운, 인간의 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소리가 청명한 하늘 높이 뻗어 나간다.

스스스스스스스스……

녹색의 물결,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퍼지고 있었다.

숲 전체가 내 부름에 응답한다.

나는 호각에 대고 짧게 말했다.

“이 숲의 모든 거미들에게 고한다. 현 시간부로 모두 이 숲을 떠나라.”

나는 거미들을 한데 모아 브라키오와 싸우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분명 브라키오는 강하다. 원시림의 황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힘과 체구를 가지고 있다.

아마 숲에 사는 모든 거미들을 죄다 모아 끌고 온다고 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미들이 모두 숲에서 빠져나간다면?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생태계의 한 자리가 텅 비게 된다면?

숲의 성장세와 생태계의 순환에 영향을 받는 브라키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윤솔과 드레이크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진아. 근데 거미가 숲에서 빠져나가는 게 브라키오에게 타격이 될까?”

“차라리 거미들을 모조리 불러들이는 게 낫지 않겠나? 저레벨 몬스터들이지만 모인다면 그래도 꽤나 무시할 수 없는 화력이…….”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뎀 세계관에서 거미는 벌, 개미, 와두두와 함께 대체 불가능한 4종 중 하나야.”

거미는 기본적으로 익충이다. 모든 생물들이 완벽한 공생을 이루게끔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수많은 거미들이 거미줄을 쳐 플레이어들에게 해를 끼치는 벌레들을 사냥한다.

뎀 안에는 4만 5천 종 이상의 거미형 몬스터들이 살고 있으며 분포지는 서대륙의 밀림지대는 물론 북대륙의 차가운 극지부터 남대륙의 무더운 열대지방, 동대륙의 사막지대까지 다양하다.

거미형 몬스터들은 바람과 거미줄을 이용해 하루 최대 300킬로미터 밖까지 이동할 수 있으며 바다를 건너거나 하늘을 나는 것, 지하로 파고드는 것에도 능숙하다.

거미줄은 돛이 되고 다리는 노가 되어 가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

거미들은 다양한 초지 생태계에서 최고 ㎡당 1,000마리의 평균 밀도를 보이며 실제로 이곳 그린헬만 해도 거미의 수가 무척이나 많아서 ㎡당 1,152개체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 거미형 몬스터들이 먹어치우는 다른 몬스터들의 수는 1년에 약 8억t 이상으로 이는 어지간한 초대형 급 몬스터 종족의 식사량을 아득히 초월하는 수치이다.

(참고로 현실의 인류가 해마다 소비하는 육류, 해산물의 무게는 약 4억t)

“또한 거미는 다른 몬스터들의 진화트리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뎀 속의 수많은 충왕종, 나방이나 나비 계열 몬스터들은 거미의 거미줄에 달라붙어도 빨리 도망치기 위해 날개에 가루를 묻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지네나 그리마, 노래기 류의 절지동물들이 갑각이나 다리 등을 떼고 도망칠 수 있게 진화한 것도 모두 거미를 피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거미는 다른 몬스터들의 먹이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

거미형 몬스터를 잡아먹는 몬스터들의 종류는 약 1만 종 이상으로 거의 대부분이 대형종이다.

거미가 없다면 이들도 없게 되고 이는 곧 먹이사슬의 붕괴를 낳는다.

“이처럼 거미들은 수분, 먹이, 중요한 병원체의 매개동물이지. 있을 때는 몰라도 없을 때는 그 빈자리가 확 드러나.”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호각을 불어 모든 거미들로 하여금 그린헬에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스스스스스스스슥-

들려온다.

너무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라 극히 미미했지만 어째서인지 똑똑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여왕이시여.’

‘폐하의 분부대로.’

‘당장.’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방금 포장이사 불렀……’

땅굴 속에서, 바위 틈에서, 폐가의 천장 위에서, 잎사귀와 잎사귀 사이에서, 얕은 물 밑에서, 때로는 허공의 안개나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들.

수없이 많은 거미들이 전해 오는 사념이 호각을 통해 내게 전달되고 있었다.

초지 생태계의 육상 먹이그물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이는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낼 것인가?

나로서도 직접 겪어 보지 않은, 그러니까 집단지성에 의해 가능성 높은 가설로만 접해 본 일이기에 가능성은 반신반의다.

……바로 그때.

[……!]

브라키오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 이 무슨!?]

눈에 띄게 동요하는 녹색 용군주.

이윽고.

츠츠츠츠츠츠……

놈의 거대한 몸 곳곳에서 이변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연리지 특성으로 빨아들이던 숲의 생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점점 커지던 녹색 용의 덩치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부풀지 않게 되었다.

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

아까부터 요란하게 들려오는 바람과 나뭇잎 소리가 점차 사그라든다.

거미들이 숲에서 빠져나가면서 생태계가 꼬이고 이 때문에 숲의 신진대사가 멎어 버린 것이다.

먹이를 구하지 못한 대형 포식자들이 당황한다.

천적이 사라진 작은 해충들이 기승을 부린다.

나무들은 번식을 하지 못해 사멸했고 풀들은 병충해에 시들어 버렸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변화 폭은 뚜렷하게 체감된다.

숲 전체의 생태계가 마비되고 있었다.

심지어 세계수마저도 땅에서 영양분을 끌어올리던 것을 멈춘 채 침묵할 정도로.

브라키오는 뿌리에 난 종양에서 흘러나오던 세계수의 수액이 말라 버리자 크게 당황했다.

[이, 이럴 순 없다. 나의 성장세가!]

하지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

이미 숲 바깥으로 빠져나간 수많은 거미들을 무슨 수로 다시 불러들일 것인가!

오즈가 그것을 보고 통쾌하다는 듯 낄낄 웃었다.

[노력 없이 몸을 키운 녀석이라 그런가 욕심만 많군. 당연히 조바심이 들겠지. 내실을 채우지 않고 겉만 살찌웠으니까.]

확실히, 브라키오는 2차 대격변 이후 급격하게 몸을 키운 젊은 녀석이다 보니 죽음룡 오즈나 창해룡 버뮤다와는 달리 느긋함이 덜하다.

그 때문일까? 수세에 몰렸을 때의 동요도 꽤 심한 편이었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외쳤다.

“어진아! 브라키오의 성장이 멈췄어!”

“후후, 이제는 회복도 못 하는군. 딜 타이밍인가!?”

하지만 나는 손을 뻗어 친구들을 막았다.

“젊어서 그런가 감정의 동요가 격심해 보이는데. 곧 큰 게 올 것 같으니 대비해.”

내 말 그대로다.

브라키오는 숲이 더 이상 생명력을 보내오지 않는 것에 격분했다.

[이 벌레같은 것들이 감히! 무슨 짓을 한 게냐!]

두 발로 땅을 박찬 브라키오가 전신의 비늘들을 빳빳하게 일으켜 세웠다.

‘심록 폭발’

또다시 수류탄 같은 솔방울들이 떨어져 내린다.

이번에는 그 수가 약 1만 개에 이르렀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경악했다.

“꺄아악! 한 개도 무서운데 만 개라니!”

“수류탄 만 개가 한꺼번에 터진다고? 끔찍한걸.”

하지만 어쩌겠나? 이 페이즈를 견뎌내지 못한다면 브라키오를 잡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한 개의 비늘에 약 6,500개의 작은 씨앗. 그러니까 만 개의 비늘이라면 총 65,000,000개의 탄막만 피하면 돼.”

할 수 있다. 행복한 양파로 인해 강화된 나의 몸 상태라면 가능해!

“자! 간다! 탄막슈팅게임 가즈아!”

나는 온 힘을 다해 브라키오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이윽고 내 시야를 꽉 채울 정도로 많은 탄막들이 펼쳐졌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온 세상을 날려버릴 듯한 폭발이 숲을 덮친다.

“자! 간다! 브라키오의 탄막 슈팅 패턴! 강약약 강강강약 강중약! 우와아아앙!”

나는 전방을 꽉 채우고 날아드는 솔방울 수류탄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퍼퍼퍼퍼퍼퍼퍼퍽!

당연히 못 피하지.

“크윽… 사람이 이걸 어떻게 피해.”

회귀 전 나를 키워 주었던 고인물 형, 누나, 선배들이라면 가능성 있겠지만… 이제 겨우 게임 플레이 10만 시간을 넘긴 나 같은 뉴비에게는 아직 무리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그간의 특전들로 인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비록 여벌의 심장을 담가둔 커다란 오크통의 포션을 모조리 소모해 버렸지만.

“어, 어진아! 괜찮아!? 힐! 힐! 힐 줄게!”

“내가 가져온 포션이라도 마셔라! 얼른!”

내가 총알받이가 된 덕에 윤솔과 드레이크는 무사하다.

[휴- 저 덩치만 크고 무식한 놈. 원래 녹색 비늘 일족은 온화하고 환경 친화적인데 왜 저 망나니 놈만 저리도 유별난 게야?]

[포애앵 뿌… 어진어지인~]

오즈와 쥬딜로페 역시 내 등에 붙은 채 무사히 칭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윤솔이 걸어 주는 힐 마법과 드레이크가 준 포션을 넘겨받으며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로써 브라키오의 발악기 심록 폭발 페이즈는 무사히 견뎌냈다.

제아무리 심록의 용군주라고 해도 이 정도 급의 대형 기술은 함부로 펑펑 써대지 못할 테니 한동안은 안심.

나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았다.

그린헬의 울창한 밀림은 지금 이 순간 온통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수류탄 1만개가 한꺼번에 터졌으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덕분에 나도 포션 한 방울 없는 알거지 신세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이 나라에서……! 가 아니라. 뭐 아무튼.

나는 고개를 들어 크레이터 중앙에 서 있는 브라키오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대규모 광역 발악기를 쓴 브라키오는 현재 스턴 상태에 걸려있다.

그리고 나는 이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최종 오더를 내렸다.

“튀자.”

이것이 지금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멍한 표정을 짓는다.

“어, 어진아. 여기까지 와서 빠지는 거야?”

“으음, 하지만 너무 아쉽지 않나? 기껏 이렇게 몰아붙여 놓았는데.”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격노한 브라키오는 절대로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는 무작정 후퇴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소리야, 브라키오는 오늘 잡을 거야. 지금이 아니면 절대 못 잡아.”

내가 뒤로 빠지는 이유는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라 놈을 쓰러트리기 위함이다.

깊은 숲의 아기양파, 거미여왕의 부름호각에 이은 세 번째 비밀무기.

이른바 ‘최종병기’ 가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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