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00화 (800/1,000)
  • 800화 심록용(深綠龍) 브라키오 (5)

    식물은 칭찬을 들으면 잘 자라고 비난을 들으면 잘 자라지 못한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인문사회의학교실 팀은 식물에게 진심을 담아 한 긍정의 말이 무심하게 하는 말보다 식물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사람과 인공지능이 역할을 나누어 매일 2차례에 걸쳐 긍정과 부정의 말을 10번씩 들려준 결과, 사람이 진심을 담아 직접 긍정의 말을 한 애기장대는 0.42mg이었지만 컴퓨터가 낸 긍정의 말을 들은 것은 0.31mg에 불과했다.

    사람이 부정의 말을 한 경우는 0.34mg, 컴퓨터가 낸 부정의 말을 들은 것은 0.27mg에 그쳤다.

    진심이 담긴 긍정의 말을 들은 애기장대는 뿌리와 줄기도 튼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부정보다는 긍정의 말에 식물은 더욱 잘 자라며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는 단순한 긍정보다는 진정성 있는 긍정의 말이 중요하다’라는 심경을 밝혔다.

    물론 이것이 과학의 영역인지, 아니면 그냥 말도 안 되는 유사과학인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       *       *

    만약 식물이 칭찬을 들었을 시 긍정적으로 성장한다면, 반대로 비난을 들었을 때는 어떨까?

    “야 이 XXXX야.”

    내가 양파에게 한 마디 하자.

    …파르르

    양파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해서 양파에게 쌍욕을 박았다.

    “너네 부모님 잘 계시나 이 싹수 노란 양파 자식아. XX같은 X.”

    그러자 이내 양파는 격렬한 움직임을 보인다.

    부들부들……

    마치 핸드폰 진동 온 것처럼 떨리는 양파.

    “양파는 껍질을 벗기고 5mm 정도 두께로 채를 썬다.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채 썬 양파를 넣고 달달 볶다가 살짝 숨이 죽으면 다진마늘, 다진파를 넣고 부드럽게 될 때까지 볶는다. 아까 만들어 뒀던 소시지를 넣고 좀 더 볶으면 양파볶음 완성.”

    내가 쐐기를 박자.

    뷰루룻!

    이내 양파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칭찬을 들은 양파가 분홍색 싹을 틔운 것과 달리, 비난과 욕을 들은 양파는 검은색 뿌리를 틔운다.

    츠츠츠츠츠츠……

    마치 머리카락처럼 검고 길게 자라난 양파의 뿌리는 아주 촘촘하고 질겼으며 또한 매우 길다.

    -<깊은 숲의 삐뚤어진 양파> / 재료 / A+

    좋(같)은 것만 보고 좋(같)은 것만 듣고 자란 양파.

    어지간해서는 이렇게까지 삐뚤어지지 않는데… 정말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눈 매움 +100

    -5분간 ‘명중률 저하’ 효과 (특수)

    흑화(黑化).

    훌륭한 버프 아이템으로 자라날 수도 있었던 아기양파는 타락한 디버프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진아! 왜 버프템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을 디버프 템으로 만들어!?”

    “어진. 설마 그걸 먹을 건가!?”

    다들 브라키오의 비늘과 앞발, 꼬리를 피하느라 생각을 깊게 할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이걸 왜 내가 먹어.”

    “……!”

    그제야 친구들은 내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듯하다.

    나는 삐뚤어진 양파를 허공에 집어던졌다.

    비행청소년처럼 날아가는 비행양파.

    그것은 쩍 벌어진 브라키오의 거대한 입 속으로 정확히 안착해 들어간다.

    이윽고, 브라키오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진다.

    [무엇이냐? 왜 눈이 맵지. 으윽…….]

    동시에 공격 시 에임이 미묘하게 흐트러진 브라키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이 아이템은 중첩이 가능하다는 것에 의의가 있지.”

    버프도 그렇고 디버프도 그렇고 같은 효과가 여러 번 중첩된다.

    나는 아기양파들을 쫙 꺼내놓고 부정의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양파 튀김. 1. 튀김 반죽: 달걀 노른자를 분리하여 믹싱볼에 풀어놓고(흰자는 따로 둔다.) 소금, 후추, 밀가루를 혼합하여 체에 내린 후 우유를 농도에 맞게 넣어 부드럽게 반죽한 다음 다진 마늘과 치즈를 섞어 30분 정도 발효시킨다. 2. 양파는 껍질을 제거하고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데쳐 얼음물에 식혀 물기를 뺀다. 3. 파슬리는 다져서 반죽에 넣고 흰자 100%로 거품을 내어 반죽에 섞는다. 그 후, 양파에 약간의 밀가루를 묻혀 반죽에 넣었다가 건져서 튀김유에 황금색이 나도록 튀겨 페이퍼타월에 건져 기름기를 뺀 후 뜨거울 때 곧바로 제공한다.”

    “양파장아찌. 양파를 새콤달콤하게 달인 간장에 담가 먹는 장아찌이다. 고기요리와 같이 먹으면 입맛을 개운하게 하고, 고지혈증과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효능까지 있어 음식 궁합이 좋다.”

    “니네 아빠 양파빵. 니네 엄마 양파밥. 니네 형제들 양파잼. 사촌들은 양파수프. 아들은 양파쑥전.”

    “넌 제대로 된 양파가 아니라, 퀘르세틴이 없어서 고혈압에도 안 좋고, 프로필메트캅탄 성분도 없어서 달지도 않고, 쿨타치온에스 전이표소를 비활성화하기 때문에 암을 증식시키고, 시스틴 유도체가 없어서 클루타티온이 만들어지지 않아 숙취에도 좋지 않아.”

    그러자 이윽고, 아기양파들은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깊은 숲의 현타 온 양파> / 재료 / A+

    좋(같)은 것만 보고 좋(같)은 것만 듣고 자란 양파.

    ‘내가 왜 이런 말까지 들어가면서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에 멍하고 무기력해진 상태이다.

    -눈 매움 +150

    -5분간 ‘마비’ 효과 (특수)

    -<깊은 숲의 개빡친 양파> / 재료 / A+

    좋(같)은 것만 보고 좋(같)은 것만 듣고 자란 양파.

    24시간 화가 나 있어서 항상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눈 매움 +500

    -5분간 ‘화상’ 효과 (특수)

    -<깊은 숲의 막나가는 양파> / 재료 / A+

    좋(같)은 것만 보고 좋(같)은 것만 듣고 자란 양파.

    살짝만 힘을 주어 던져도 몸의 통제력을 잃고 마구 날아간다.

    -눈 매움 +700

    -5분간 ‘회피력 저하’ 효과 (특수)

    -<깊은 숲의 눈에 뵈는 것 없는 양파> / 재료 / A+

    좋(같)은 것만 보고 좋(같)은 것만 듣고 자란 양파.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런가 세상 두려울 게 없다.

    -눈 매움 +900

    -5분간 ‘실명’ 효과 (특수)

    -<깊은 숲의 몰락인생 양파> / 재료 / A+

    좋(같)은 것만 보고 좋(같)은 것만 듣고 자란 양파.

    양파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이쯤 되면 양육자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나?

    -눈 매움 +1,000

    -5분간 ‘연대책임’ 효과 (특수)

    톨스토이가 그랬던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Все счастливые семьи похожи друг на друга, каждая несчастливая семья несчастлива по-своему)’라고.

    양파 역시도 그와 비슷했다.

    행복한 양파는 아이템 설명 창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고 특수 옵션만 조금씩 다르지만 불행한 양파는 제각기 상태창이 달랐다.

    “핫하! 받아라!”

    나는 타락한 양파들을 마구 집어던졌다.

    휘리리릭-

    양파들은 브라키오의 입, 혹은 몸에 닿는 즉시 검은 뿌리를 뻗어 놈을 휘감는다.

    브라키오는 워낙에 체적이 큰 몬스터였지만 내가 벨제붑의 폭식 창자 안에 쌓아 둔 양파들도 그만큼이나 많았기에 디버프 효과는 상당했다.

    [……크윽. 이 하찮은 생물들이!]

    브라키오는 온몸을 뒤덮은 검은 넝쿨들을 잡아 뜯어냈지만 그보다 양파들이 쌓이는 속도가 더욱 빠르다.

    심지어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양파의 버프를 받은 상태였기에 거의 원래의 피지컬을 회복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더 강해져 있었다.

    “받아라!”

    나는 펄쩍 뛰어올라 고목의 나무껍질 같은 브라키오의 비늘들 위를 달렸고 결국 끝끝내 놈의 콧구멍 부근에 깎단을 한 방 먹이는 것에 성공했다.

    츠츠츠츠츠……

    깎단의 도트 데미지와 벨제붑의 역병 데미지가 들어간다.

    [오-오오오오오!]

    브라키오는 괴성을 지르며 긴 목을 흔들었지만 이미 쌍살벌처럼 침을 박아 넣은 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바로 그때.

    브라키오가 움직임을 뚝 멎더니 이를 갈았다.

    [나에게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모두 헛된 노력이 될 것이다.]

    말을 마친 브라키오는 깊은 심호흡을 하더니 두 발을 지면에 댄다.

    이윽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지지지지지직- 뿌드드드득!

    주변에 있던 숲 전체가 브라키오의 부름에 응답한다.

    근처에 있는 모든 풀과 나무들이 브라키오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나는 표정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기껏 깎아 놓았던 브라키오의 HP가 다시 맹렬한 속도로 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리지(連理枝) 특성으로 회복하는 건가? 골치 아프네.”

    브라키오는 숲의 위상에 영향을 받는 몬스터.

    이 세상의 숲이 맹렬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한 절대로 그 생명력이 다하지 않는다.

    2차 대격변 이후 숲이 늘어났고 플레이어들 역시 식물계 메타를 많이 픽하는 상황 속에서 브라키오의 스탯은 나날이 폭증하고 있었다.

    이 사기에 가까운 초회복능력 또한 점점 강해지겠지.

    윤솔과 드레이크가 경악에 차 외쳤다.

    “어진아! 여기는 사방 천지가 다 나무야! 이것들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포션이라고 생각하면 브라키오의 HP는 사실상 무한이나 다름없어!”

    “제길! 이대로라면 마치 잡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잖아!”

    응. 잡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 맞다. 고정 S+등급 몬스터란 으레 그런 존재니까.

    “하지만 다 방법이 있지요.”

    예전에 만마전의 마몬을 잡을 때 썼던 방법을 그대로 쓰면 된다.

    당시 ‘무저갱의 수전노’였던 마몬은 산맥처럼 쌓인 황금들을 곧 생명력으로 치환하던 존재.

    그래서 나는 돈을 빨아먹는 ‘돈지랄 의자’를 가지고 와서 놈의 재산을 모두 말려 버렸고 이내 파산 상태에 이르게 함으로서 놈의 추가 생명력을 0으로 만들었던 전력이 있다.

    브라키오 역시도 공략법 자체는 비슷하다.

    놈은 주변에 있는 풀과 나무들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존재.

    숲의 생태계가 잘 순환되고 그 기세를 유지하는 한 무한의 체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숲의 기능을 정지시켜야겠지.”

    풀과 나무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브라키오.

    나는 그 앞에 서서 그동안 꼭꼭 숨겨 놓았던 히든 피스를 꺼내들었다.

    -<거미여왕의 부름호각> / 양손무기 / S

    이 세상 모든 거미들의 최종결정권자.

    그녀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거미는 없는 모양이다.

    -공격력 +500

    -특성 ‘군락’ 사용 가능

    -특성 ‘소집’ 사용 가능

    -특성 ‘소집해제’ 사용 가능

    그것은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커다란 호루라기였다.

    먼 옛날 부유섬의 보스몬스터 ‘여덟다리 대왕 큘레키움’을 쓰러트리고 얻은 아이템.

    하지만 그 당시 부유섬 자체가 침몰하는 바람에 아이템을 미처 수거하지 못했었다.

    이 아이템을 다시 만나게 된 곳은 심해괴물 레비아탄이 지배하던 하해(下海), 당시 나는 레비아탄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한 선장에게서 이것을 넘겨받았었다.

    “이걸 이제야 쓰는군.”

    말라죽은 거미의 외골격을 깎아 만든 듯한 외형의 이 기묘한 호각은 분명 S급 아이템.

    하지만 ‘깎아내는 단말마’처럼 S급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은 형편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템은 무척이나 유용하지.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는 말이야.”

    아이템 설명과 특수옵션의 상관관계를 미루어 짐작컨대 이 호각은 근방의 거미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언뜻 듣기에 무슨 효과가 있나? 싶기도 하겠지만… 이 게임의 생태계에 있어서 거미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감안하면 의외로 굉장히 유용하다.

    한편, 내 호각을 본 브라키오는 코웃음 쳤다.

    [트르 트르 트르- 뭔가 했더니 고작 거미 따위를 부르려는 게냐? 나는 그 호각을 알지. 부유섬에 있는 하잘것없는 거미년의 심벌이 아니더냐.]

    브라키오의 기세가 더더욱 강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강성해지고 있는 삼림의 기운을 받아 더욱 더 몸을 부풀리는 심록의 용군주!

    [암만 거미들을 불러 봐라! 그 하찮은 것들이 감히 나의 털끝 하나라도 다치게 할 수 있는가!]

    절대적인 자신감. 여덟다리 대왕을 포함해 이 세상 모든 거미들이 덤벼들어도 모조리 죽여 버릴 수 있다는 폭군의 기개!

    ……하지만.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브라키오의 생각을 정정해 주었다.

    “내가 거미들에게 내릴 명령은 너에게 덤벼들라는 게 아냐.”

    폭군의 힘은 강하다. 온 백성들이 다 덤벼들어도 그를 이길 수 없을 만큼.

    그러나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진 폭군조차도 어쩔 수 없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온 백성들이 자기를 떠나는 것이다.

    “이 숲의 모든 거미들에게 고한다.”

    나는 호각에 대고 명령했다.

    “현 시간부로 모두 이 숲을 떠나라.”

    생태계를 궤멸시켜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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