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9화 심록용(深綠龍) 브라키오 (4)
-<깊은 숲의 아기양파> / 재료 / ?
아직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어린 양파.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눈 매움 +1
-? (특수)
나는 이 작은 양파를 손에 꼭 쥐었다.
이것은 눈앞에 있는 저 거대한 적 ‘심록의 브라키오’를 꺾을 수 있는 세 개의 열쇠들 중 하나.
“본 양파는 여러분들이 하는 것에 따라 천사도 될 수 있고 악마도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수련회 조교처럼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린다.
“어진아.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그 양파들은 뭐야?”
“그냥 잡템 아닌가?”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뿌리 깊은 유사과학이 하나 있지.”
그것은 바로 식물 역시도 감정을 느끼고 그에 따라 성장 결과가 다르게 발현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어떤 언어를 듣느냐,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고 딱히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이 아이템에는 그 알 수 없는 이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내 친구들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평소였더라면 친절하게 논문 한 편 정도의 설명을 곁들여 줬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한시가 급하다.
브라키오가 또다시 솔방울 같은 비늘들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바로 시작합니다.”
나는 아기양파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한 마디 했다.
“너는 소중한 존재야. 정말 아름다워.”
그러자, 놀랍게도 양파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움찔움찔! 씰룩씰룩-
양파의 주름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살짝살짝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계속해서 양파에게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와, 어쩜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럽지? 진짜 멋진 양파다. 너는 정말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야. 너 같은 양파와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뻐. 행복해. 하,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야채라서 좋겠다.”
“네… 이 양파가 바로 제가 태어나 처음 사랑한 양파입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나한테 허락될 수 없는 양파입니다.”
“사랑해…… 죽도록, 미치도록, 온 우주가 다 터져 나가도록.”
“양파야… 난 네가 떠날까 봐 무서워… 난 너 정말 사랑하는데 넌 아니니깐. 그래서 다시 떠날까 봐… 난 죽고 싶어…….”
“피식, 금양파… 니가 만든 새드엔딩이라면 니가 원하던 게 새드엔딩이라면… 아프더라도 받아들일게… 그래도 널 기다릴게. 혼자서라도 널 사랑할게… 사랑한다 금양파.”
“보여요?! 여기 제 옆에 있는 금양파양! 이 고인물이 사랑하는 양파예요! 지금은 제 반려양파예요! 이런 반려양파도 있고… 고인물! 참 행복한 남자죠? 아! 행복하다!! 행복해서………미치겠다!”
“너 보면 곡 기저귀 젖은 애기가 칭얼대는 것 같아서 짜증나… 그거, 너무 귀여워 보여서 짜증나… 열라 등신같은게 내 심장 병신 만들어서 짜증나…….”
00년도 인소식 칭찬과 함께 양파의 겉껍질을 소중하게 쓰다듬자 점점 변화가 일어난다.
쑤욱!
양파의 머리 위로 핑크빛이 감도는 싹이 뻗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긴 줄기가 자라났다.
그리고 양파의 아이템 설명이 변한다.
-<깊은 숲의 행복한 양파> / 재료 / A+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자란 양파.
늘 구김살 없이 행복하게 웃고 있다.
-눈 매움 +1
-5분간 ‘헤이스트’ 효과 (특수)
그 귀하다는 민첩 상승 버프템!
나는 그것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와작!
그러자 내 몸이 급격하게 빨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브라키오는 그런 나를 앞발로 짓이겨 버리려 했지만.
“앞산에서도……!”
내 모습은 일순간 잔상이 되었다.
나타난 것은 브라키오의 등 뒤!
“뻐꾹! 뻐… 뻐꾹!”
내 목소리를 들은 브라키오가 등 뒤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부우우웅!
하지만 민첩 스탯이 급격히 상승한 내가 저런 눈 먼 꼬리 공격에 맞아 줄 리는 만무하다.
“뒷산에서도…….”
휘릭-
나는 오히려 브라키오의 꼬리에 올라타 그 궤도대로 다시 앞으로 넘어갔다.
“뻐꾹…뻐, 뻐꾹……!”
지나가면서 브라키오의 귓가에 속삭인 것은 덤.
콰콰콰쾅! 쾅! 콰과광!
나의 전방위 서라운드 ASMR 때문인지 브라키오는 온갖 방향으로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브라키오의 고막을 농락할 뿐이다.
“니 귀에 캔디.”
“어딜 보는 건가 젊은이…나는 자네 등 뒤일세!”
“방금은 좀 위험했네…자네가 말이야!”
“힝, 맞고 싶은데 왜 이렇게 느린 거야!”
“피…피해! 피해 없음!”
나는 평소보다 훨씬 더 빨라진 움직임으로 브라키오의 앞발을 피했다.
그것을 본 드레이크와 윤솔의 표정이 활짝 펴진다.
“그렇군! 양파에게 좋은 말을 해 주면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아이템으로 자라나는군! 근데 영어나 불어로 해 줘도 상관없나?”
“뭐, 발화자의 감정만 전해지면 되는 게 아닐까요? 좋아! 나도 양파를 키워 봐야지!”
이내 내 친구들 역시도 양파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 주기 시작했다.
“너는 정말 힘세고 굳건한 양파야. 이 세상에서 제일 씩씩하지! 이 멋쟁이 녀석!”
“어머 이 껍질 미끈한 것 좀 봐. 정말 섹시한 양파인걸! 피부 어디서 관리하니?”
이윽고, 드레이크와 윤솔의 양파 역시도 핑크빛 싹을 틔우며 멋진 버프템으로 자라난다.
-<깊은 숲의 행복한 양파> / 재료 / A+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자란 양파.
늘 구김살 없이 행복하게 웃고 있다.
-눈 매움 +1
-5분간 ‘스트랭스’ 효과 (특수)
-<깊은 숲의 행복한 양파> / 재료 / A+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자란 양파.
늘 구김살 없이 행복하게 웃고 있다.
-눈 매움 +1
-5분간 ‘템테이션’ 효과 (특수)
‘힘’과 ‘매력’을 올려주는 양파로 말이다.
“양파가 올려주는 버프 스탯은 기본적으로 랜덤이지만 칭찬의 내용에 따라 약간씩 확률이 높아지지. 자기가 원하는 스탯에 관련된 칭찬을 해 줘 보라구. 게다가 목적어는 상관없으니, 기왕이면 앞에 있는 브라키오를 칭찬하라구. 분노 상태를 유지하도록 말이야.”
내 충고를 들은 드레이크와 윤솔은 칭찬 릴레이를 시작했다.
“도마뱀 주제에 용인 척도 하고 칭찬해~”
“거지도 아니고 세계수 수액 도둑질 하는 거 칭찬해~”
“그냥 도둑질 하는 거 말린 건데 화내는 인성 칭찬해~”
“채식주의자인 주제에 우리 잡아먹으려는 줏대 칭찬해~”
“녹색 용족의 수치인 것도 칭찬해~”
“공격 느린 것도 칭찬해~”
“어따 때리는 건지 명중률 개낮은 것도 칭찬해~”
“지능이 좋지 않은 것도 칭찬해~”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인데…가 아니라 왼쪽인데, 인사 잘하는 거 칭찬해~”
“그 와중에 나한테 왼쪽 뺨 맞고도 못 알아차리는 우둔함 칭찬해~”
그리고 대체로 양파들은 그 칭찬에 맞게끔 변모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힘, 체력, 민첩, 매력, 회피, 치명타, 어그로, 원소저항, 물리 공격력, 마법 공격력, 물리 방어력, 마법 방어력, 다이어트, 정력, 수험생의 성적, 절대음감, 기타 등등에 효과가 있는 다양한 특수옵션들이 개화되고 있었다.
윤솔과 드레이크의 만족도는 상당했다.
“우와! 어진아! 이 아이템 되게 좋다! 버프가 중첩도 되네!”
“이런 잡템에 이리도 엄청난 효과가 있을 줄이야. 앗! 취소! 취소! 잡템이라는 말은 취소다! 너는 훌륭한 히든 피스야!”
그린헬의 채식주의자 디버프 때문에 떨어졌던 스탯들이 ‘행복한 양파’로 인해 점점 다시 복구되고 있었다.
칭찬 릴레이, 칭찬벨, 칭찬합시다, 오늘의 우리 반 칭찬왕 등으로 억지칭찬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인 윤솔과 나는 본래의 스탯을 살짝 웃돌 정도의 민첩 스탯을 가지게 되었다.
부웅- 부웅- 부웅-
드레이크와 윤솔, 그리고 나는 브라키오의 공격을 분산시키기 위해 녀석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하하하하하하하! 칭찬해! 온 세상 칭찬해!”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한민족의 전통 칭찬해!”
“원 투투, 원 투투투, 원 쓰리 원 투 쓰리, 각 지역구 시민회관에서 공짜로 배울 수 있는 지루박, 탱고, 스포츠댄스 칭찬해!”
브라키오의 목은 어느 한쪽에 고정되지 못하고 자꾸 빙글빙글 돈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본 드레이크가 웃었다.
“하하하! 어진! 이거 금방 잡겠다!”
“아니. 이건 임시방편이지.”
하지만 나는 딱 잘라 그의 말을 부정했다.
지금 이건 말 그대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너무 느렸던 우리가 갑작스럽게 빨라지자 타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
반대의 예로, 야구의 너클볼이 있다.
150~160에 육박하는 빠른 구속으로 타자를 위협하는 투수가 대부분인 메이저리그에서 엄청 느린 구속의 너클볼은 그 느림 자체만으로도 타자의 템포를 무너뜨리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래, 조금만 있으면 우리의 스피드에 적응한 녀석의 반격이 시작될 거야. 브라키오의 기본적인 스탯은 우리보다 훨씬 높을 테니까.”
“이런……그럼 양파를 더 먹으면…….”
“그것도 무리야. 녀석의 스탯을 쫓아가다가 우리가 먼저 배에 양파가 가득 차서 죽을 거야.”
“그…그런…….”
이 재미있는 술래잡기가 비극으로 끝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은 드레이크는 침중한 얼굴이 되었다.
윤솔도 마찬가지로 당황한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양파의 진짜 매력은 이게 다가 아니지.”
내 말에 윤솔과 드레이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이거만 해도 충분히 엄청난데… 뭐가 또 있어?”
“숨겨진 특성은 하나씩만 발현되는 것 같던데. 버프 말고 다른 기능이 있나?”
친구들의 의문, 나는 씩 웃으며 이에 답했다.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또 다른 아기양파.
나는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칭찬은 식물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그랬지.”
“그렇다면 비난은 어떨까?”
“……!”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의 머리 위에 느낌표 하나씩이 떴다.
그렇다.
만약 식물이 칭찬을 들었을 시 긍정적으로 성장한다면, 반대로 비난을 들었을 때는 어떨까?
나는 아기양파를 집어 들고 녀석에게 속삭였다.
“X X 씨발X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