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8화 심록용(深綠龍) 브라키오 (3)
<브라키오>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98m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목본(木本)과 초본(草本)을 지배하는 위대한 녹색 용.
“나무는 대지의 갈망을 상징하듯이 발돋움하고 서서 하늘을 본다.”
-브라키오 기라파티탄- <구약, 삼록기(三綠記) 상권,
본초(本草) 4절>
고정 S+급 몬스터 브라키오.
몸길이 70m, 체고 20m, 체중 195t의 괴물급 용각류.
늑골 한 대의 길이 15m, 혓바닥의 무게만 해도 5t이니 그 거대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등갈비 한 쪽만 잘라 먹어도 몇 인분이냐 저게.”
나는 고개를 들어 숲에 밤을 드리운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심록의 용군주 브라키오.
원시림의 고대 황제.
태초의 나무 세계수를 관장하며 이 세상 모든 숲과 호숫가를 지배하는 녹색 용족의 지존, 일곱 용의 위상 중 하나이자 ‘젊은 피’로 통하는 존재.
놈은 다소 특이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용 특유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양 미간 사이에 코뼈가 변형되어 돌출된 볏 부분이 있었고 그 부분에 뚫려 있는 하나의 콧구멍으로 뜨거운 숨을 내쉰다.
목이 아주 길었고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더 길었다.
긴 꼬리는 너무나도 길어서 아직도 종양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진짜 엄청 크군.”
“우와아… 옛날에 이렇게 생긴 공룡을 영화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드레이크와 윤솔도 입을 딱 벌린 채 감탄했다.
심록용 브라키오의 거구는 심지어 같은 용군주 출신인 죽음룡 오즈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이 자식, 언제 이렇게 커졌지?]
죽음룡 오즈가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브라키오의 몸집이 예전보다 더 커졌다는 설정인가 보다.
“원래는 작았어?”
[그렇다. 나보다 훨씬 작았지.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몸을 키웠단 말이냐. ……혹시 로이더?]
도핑 의혹을 제기하는 오즈.
나는 녀석의 말을 듣고 종양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종양의 깨진 부분에서 아직도 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수액.
아마도 저것이 브라키오가 단기간에 급성장한 원인이리라.
“세계수의 수액을 빨아먹고 커졌군. 뿌리에 기생했던 건가.”
[……그렇군. 설득력 있다. 놈에게 있어 최고의 영양제는 세계수의 수액이겠지. 덩치를 키운 걸 보니 하루에 최소 500리터 이상은 흡수한 모양이군.]
세계수의 수액은 부피에 비해 밀도가 높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액체다.
500리터라 하면 최소 1톤 이상일 텐데…… 그게 하루 식사량이라니.
윤솔과 드레이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는 서대륙 전체를 지탱하는 단일 원시림이야. 그 정도 수액을 공급할 능력은 되겠다.”
“거기에 2차 대격변 이후로 세계수가 흡수하는 영양분도 폭증했을 테니까. 브라키오가 급성장한 것도 이해가 된다.”
[흐음… 어쩌면 창해룡, 그 늙은이보다도 큰 것 같은데. 골드 족의 ‘그 놈’에게는 약간 못 미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오즈가 마지막에 한 말에 주목했다.
“‘골드 족의 그 놈’이 누구야?”
[크큭! 인간. 궁금한가? 황금 비늘 종족의 젊은 천재이자 용족 전체의 기린아인 ‘그 놈’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면 당장 무릎을 꿇고 저자세로…….]
하지만 나는 오즈에게서 정보를 미처 듣지 못했다.
…쿵!
내 앞으로 거대한 앞발을 내려놓은 브라키오가 긴 목을 내려 이쪽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네놈은… 내가 아끼는 화초를 해친 놈이로구나.]
브라키오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증오가 실려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바로 눈치 챘다.
<세계 최초로 ‘저주받은 고목 쟈쿰’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저주받은 고목’이 쓰러졌습니다. 용 진영 ‘채식주의자’ 집단의 사기가 감소합니다.>
<그린헬의 숨은 지배자가 ‘윤솔’ 님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
.
과거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의 러시아 전을 앞두고 나와 윤솔은 쟈쿰을 사냥했었다.
이 알림음은 그 당시 들었던 것으로 아마 여기에 나오는 ‘그린헬의 숨은 지배자’가 바로 브라키오를 뜻하는 것이리라.
놈은 윤솔과 나를 곱지 않은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게다가 이 알몸 원숭이에게서는 악마 비린내가 진하게 나는군. 네놈은 종족이 무엇이냐?]
누가 봐도 사람이잖아.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윤솔과 드레이크가 어째 시선을 피한다. 왜일까.
하지만 브라키오는 인자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계속 독설을 퍼부었다.
[털투성이의 몸에서 풍기는 비린내. 내장에서 타올라오는 역겨운 악취. 네놈은 발록이로구나!]
아, 세계리그 결승전에서 발록으로 변신했던 것을 알아본 건가? 만약 그렇다면……
“냄새 한번 잘 맡네.”
나는 바로 깎단을 빼들었다.
●REC
영상 녹화 설정을 완료한 지금부터는 진짜 가릴 것 없다.
팟!
나는 이끼 낀 땅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일단 깎단을 한번 먹여 놓는 것이 우선.
벨제붑의 독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브라키오의 표정이 더더욱 찌푸려진다.
[어디서 이런 악취가 풍겨 나오나 했더니만…… 그 버러지 파리 놈의 창자를 가졌구나 이놈!]
브라키오는 거대한 앞발을 들어올렸다.
나를 찍어 눌러 압사시키려는 모양.
“근데 그렇게 느려서야 파리 한 마리도 못 잡을 것 같은데?”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브라키오의 발을 지나 윗배 부근에 이르렀다.
여기서 점프를 해 한 방 먹이고 튈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브라키오의 몸에 가까이 접근하자마자 이변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차.’
브라키오가 들어 올린 앞발은 나를 찍어 누르기 위함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지직!
브라키오의 앞발, 발등 부분의 툭 튀어나온 비늘들이 칼처럼 일어선다.
그것들은 마치 잘 익은 잣, 혹은 해바라기씨나 솔방울처럼 벌어지기 시작했다.
…투투툭! …투두둑!
잘 익은 꼬투리가 떨어져 벌어지듯, 녹색의 비늘 속에서 갈색의 작은 비늘들이 무수히 많이 튀어나온다.
그것은 마치.
“어진! 수류탄이다!”
감이 좋은 드레이크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리고.
쾅!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브라키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비늘들이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켰다.
비늘 속에 꽉 차 있던 아주 작은 비늘들이 사방팔방으로 터져 나온다.
북쪽의 그 어떤 위대한 수령님이 그랬다던가?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던졌다고.
브라키오가 보이는 공격 패턴이 딱 그렇다.
두껍고 메마른, 고목(枯木)의 나무껍질 같은 비늘 한 장을 떨구면 그것이 수없이 많은 새끼 비늘들을 터트리며 날아든다.
마치 솔방울 그 자체가 수류탄이 된 듯한 모양새.
퍼퍼퍼퍼퍼퍼퍼퍽!
나는 전신을 솔방울에 난자당했다.
초속 700m의 속도, 시속으로 환산하면 2520km/h 정도의 스피드로 날아드는 파편들을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온몸이 파편에 절여진다.
전신을 꿰뚫고 가는 무수히 많은 대바늘.
하지만 나는 앙버팀과 여벌의 심장으로 인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우와, 간만에 탄막 슈팅 게임 해 보나 했는데……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과연 고정 S+등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난이도.
예전에 고르딕사나 씨어데블, 인간 지네 등이 던지던 탄막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파팟! …쿵!
나는 뒤이어지는 브라키오의 앞발 도장을 피해 맥없이 뒤로 물러났다.
딜교 개손해.
결국 깎단의 도트 데미지는 입히지도 못하고 괜히 막대한 양의 포션만 손해 봤다.
“뭐, 그래도 괜찮아. 공격력은 크게 올랐으니까.”
-<애간장을 녹이는 링> / 반지 / S+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이 착용했던 반지.
남자든 여자든 간에 이 반지에 닿은 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방어력 +100
-특성 ‘변태패티쉬’ 사용 가능 (특수)
아스모데우스를 잡고 얻은 특전.
데미지를 입을 경우 물리공격력이 증가한다. 그러니 아주 손해는 아닌 것이다.
얻어맞는 일이 많은 나에게는 아주 요긴한 특성.
[더러운 악마의 씨앗. 말살하리라.]
“세계수 뿌리에 기생하는 주제에 말이 많네. 매미 애벌레도 아니고.”
나는 브라키오가 휘두르는 거대한 꼬리 채찍을 앞두고 이를 꽉 깨물었다.
콰콰콰콰쾅!
숲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격,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도 강아지풀처럼 뽑아 날려버리는 브라키오의 꼬리 힘이다.
하지만.
꽈드드드득-
나는 뒤로 거의 밀려나지 않은 채 브라키오의 꼬리를 막아 내고 있었다.
-<무저갱 허리띠> / 허리띠 / S
너무나도 무거워서 평평한 땅 위에 올려두면 그 부분을 움푹 꺼지게 만들어 무저갱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허리띠.
신기하게도 자기가 인정한 주인에게는 아무런 무게감도 전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리 방어력 +100
-특성 ‘만근추’ 사용 가능
용자의 무덤을 올클리어 하고 얻은 추가 보상.
이게 있으면 나의 몸무게는 순간적이지만 브라키오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된다.
‘비록 숨을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브라키오는 거대한 덩치, 육중한 몸무게를 무기로 삼아 싸우는 덩치 타입 몬스터.
이런 놈을 상대할 때 체급이 높다는 것은 큰 메리트가 된다.
[하잘것없는 놈. 감히 누구의 꼬리를…….]
브라키오가 또다시 꼬리를 들어 올린다.
“……어우, 두 번은 못 막겠다.”
나는 허리띠의 내구도가 급감한 것을 보고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
다음 한 방에 간당간당, 세 방 째에는 무조건 뽀개진다.
내가 뒤로 연신 물러나자 윤솔과 드레이크가 재빨리 내 옆을 보조했다.
“어진아, 이거 적이 너무 크고 무거운데? 평타 한 방 한 방이 광역기야.”
“이거 원딜이 박히기는 하는지 모르겠군. 나무껍질 같은 비늘 자체도 두껍지만 그 위에 자라난 이끼와 버섯 층도 아주 성가시다. 아무래도 쿠션처럼 충격을 대폭 흡수해 주는 모양이야.”
일단 적의 체적이 너무 넓으니 회피라는 개념이 거의 의미가 없어진다.
게다가 이쪽은 방어가 어렵지만 저쪽은 몸의 대부분이 고목의 껍질처럼 딱딱한 비늘과 푹신한 이끼, 버섯 층에 뒤덮여 있어 피격 판정을 받아내기도 힘든 것이다.
상대는 지금까지 봐 왔던 몬스터들 중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거대하다.
어쩌면 블루드래곤보다도 클지도 모를 정도로 큰 적.
“하지만 다 방법이 있지. 쥬딜로페!”
나는 준비해 온 비밀무기를 꺼내들었다.
[호앵!]
내 오더에 응답하며 튀어나오는 쥬딜로페.
하지만 그녀의 눈시울은 어쩐 일인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윽고, 쥬딜로페는 허공을 포르르 날아와 쫙 펴진 내 손바닥 위에 안착한다.
그리고 행여나 떨어트릴 새라 꼭 품고 온 자기 몸만 한 덩어리 하나를 내게 넘겼다.
[잉잉잉… 포애앵-]
“울면서까지 그렇게 꼭 끌어안을 필요는 없는데. 아무튼 고맙다.”
나는 쥬딜로페에게서 받아든 동그란 아이템을 손에 꽉 쥐었다.
-<깊은 숲의 아기양파> / 재료 / ?
아직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어린 양파.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눈 매움 +1
-? (특수)
이제부터 반격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