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96화 (796/1,000)
  • 796화 심록용(深綠龍) 브라키오 (1)

    화르륵-

    어두운 숲에 작은 모닥불이 하나.

    원래 그린헬에서는 모닥불이 금지되어 있다.

    불은 너무 많은 이목을 끌기 때문이다.

    나무는 불을 싫어한다.

    공격성 강한 식물들이 돌아다니는 지형이니만큼 어그로를 모으는 행위는 자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식물형 몬스터들을 모조리 박살내 버린 이후라면야 걱정할 것은 없다.

    [호앵- 어진어진~]

    [크큭. 그린헬에서의 야숙이라. 조금은 낭만적일지도?]

    쥬딜로페와 오즈도 나뭇잎 텐트와 모닥불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나는 모기와 거미를 쫓기 위한 쑥과 허브를 모닥불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자, 친구들. 잘 들어. 이 숲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과 그것들의 사용법을 알려 줄 테니.”

    고인물로서의 십 수 년 노하우가 모두 방출된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내 말을 경청하며 정신없이 받아 적는다.

    “자 우선 인벤토리를 열어 보자고.”

    우리 모두는 인벤토리 상태창을 한 곳에 모았다.

    벨제붑의 폭식 창자 특성 덕분에 지금까지 그린헬을 거쳐 오며 모아온 아이템들의 수량은 어마무시했다.

    <아이템>

    -물 (깨끗함)

    -물 (오염됨: 독 감염)

    -물 (오염됨: 기생충 감염)

    -나무 수액 (깨끗함)

    -나무 수액 (오염됨: 독 감염)

    -커다란 코코넛

    -커다란 코코넛 과육

    -커다란 코코넛 껍질

    -바나나 (썩음)

    -석류 (썩음)

    -애벌레 고기 (생)

    -애벌레 고기 (구이)

    -풍뎅이 고기 (구이)

    -뱀 고기 (생)

    -뱀 고기 (구이)

    -두꺼비 고기 (삶음)

    -토끼 고기 (훈제)

    -식인어 고기 (생)

    -식인어 고기 (썩음)

    -사슴 고기 (썩음)

    -거머리 (생존)

    -장구애비 (생존)

    -정글 흰개미 (생존)

    -목탄

    -숯

    -버섯 (독)

    -버섯 (식용)

    -정체불명의 견과류

    -정체불명의 고기 (생)

    -정체불명의 고기 (오염됨: 기생충 감염)

    -정체불명의 고기 (썩음)

    -정체불명의 과일

    -대마초

    -쑥

    -허브

    -정체불명의 꽃

    -정체불명의 뿌리

    -정체불명의 잎사귀

    -단단한 목재

    -무른 목재

    -무른 목재 (썩음)

    -커다란 활엽수 잎사귀

    -뾰족한 침엽수 잎사귀

    -질긴 넝쿨줄기

    -끈적한 수액

    -굳은 꿀

    .

    .

    .

    수많은 아이템들이 보인다.

    식량은 누가 봐도 먹을 수 있는 것, 먹을 수 없는 것들로 나뉘어 있었고 간간히 식용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건축에 써도 될 듯한 목재들도 있었고 무기로 쓸 수 있을 법한 가시나 뿌리들도 간간히 보였다.

    “자, 물가에 팔이나 발을 담그고 있으면 거머리나 장구애비들이 와서 피를 빨지. 이것들을 방치하다가는 체력이 바닥나서 죽게 돼.”

    하지만 독은 잘 쓰면 약이 되는 법이다.

    나는 늪지에서 잡은 거머리와 장구애비를 상처가 난 부위, 특히나 고름이 차오르거나 퉁퉁 부은 부위, 혹은 독에 오염된 부위에 붙였다.

    그러자 거머리와 장구애비는 내 피를 빨기 시작한다.

    이윽고 고름과 고인 피가 빠져나간 곳에 치료 효과가 돌기 시작했다.

    멍이 사라지고 고름이 빠져나간다.

    물론 내 피에는 강력한 독이 깃들어 있었기에 거머리와 장구애비들은 바로 죽어 버렸지만 말이다.

    “이처럼 흡혈충들은 잘만 이용하면 치료제가 되지.”

    나는 말을 마친 뒤 모닥불에서 아직 덜 탄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 내 자리 옆에 있는 구멍을 푹푹 쑤셨다.

    그러자 구멍 속에서는 딱- 딱- 하고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목탄을 구멍 밖으로 빼내자 그것은 깔끔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목탄을 구멍에 넣었다 뺐을 때 딱딱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탄이 잘려나갔다면 그 구멍 안에는 맹독 전갈이나 뱀이 살고 있다는 뜻이야. 은신처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으니 다른 곳을 알아봐야지. 뭐, 나의 경우에는 예외지만.”

    그린헬에 서식하는 거의 모든 독타입 몬스터들은 특유의 경계음을 내므로 소리에만 주의하면 위험이 닥쳐오기 전에 피할 수 있다.

    “체력과 정신력을 동시에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야생 동물의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지. 기생충에 감염된 고기도 속까지 바싹 익혀 먹으면 별 탈이 없어.”

    내가 인벤토리 속의 고기들을 꼬치에 꿰어 모닥불 위에 올려놓자 드레이크가 손을 들었다.

    “어진. 그렇다면 썩은 고기들은 어떻게 하는가?”

    인벤토리 속에 구린내가 풍겨 나오는 고깃덩이들이 몇 조각 보인다.

    진한 빨간색과 갈색 사이에 있는 육빛이 식욕을 감퇴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저게 무엇의 고기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꺼림칙하다.

    나는 이 썩은 고기들을 버리려는 드레이크를 만류했다.

    “썩은 고기들은 흙 위에 둬. 아, 과일도.”

    썩은 고기와 과일을 땅바닥에 던져 놓은 뒤 그 주위에 깊은 홈을 둥글게 파 놓는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썩는 냄새를 맡고 몰려온 작은 애벌레와 풍뎅이들이 홈 아래로 떨어져 갇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애벌레와 각종 곤충들을 잡아 꼬치에 꿰어 구웠다.

    “이 애벌레는 식용이지. 굵고 토실토실한 것 봐. 이게 오늘 우리의 저녁이 될 거야.”

    “우욱! 어진아, 나는 못 먹겠어.”

    “흐음. 티몬과 품바가 된 기분이군. 식용 곤충 연구는 현실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지?”

    비위 약한 윤솔과 달리 드레이크는 흥미로운 기색이다.

    그 외에도 많은 팁들이 있다.

    나는 남은 애벌레 몇 마리를 낚시 바늘에 꿰어 늪지대에 던졌고 이내 큼지막한 식인어 몇 마리를 낚아 보였다.

    일부러 방치한 화상 자국에 꿀과 재, 허브를 발라 치료하는 것도 보여 주었다.

    긁히거나 베인 흉터는 정글 흰개미의 턱으로 찝은 뒤 개미의 머리통만 남기고 몸뚱이를 떼어낸다면 봉합 수술과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살이 썩어 들어간 자리에 애벌레 몇 마리를 붙여두면 상처 주위까지 썩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대부분의 오염된 물은 한참 동안 끓이면 먹을 수 있게 된다.

    벌레들을 잡고 난 뒤 남은 썩은 고기는 분해한 뒤 뼈를 추렸고 그것으로 낚시 바늘을 만들었다.

    식중독은 정체불명의 견과류를 먹으면 낫는다.

    기생충은 정체불명의 주황 버섯을 먹으면 낫는다.

    물을 끓여서 해독할 때는 허브를 넣으면 효과가 더 좋다.

    모닥불은 금기시되나 몰래 피울 수만 있다면 목탄을 얻을 수 있다.

    목탄은 전갈이나 뱀 등의 독물을 찾아내는 데 유용하다.

    고기 훈제기를 만들어 놓은 뒤 그 밑에 모닥불을 피우면 비가 와도 꺼지지 않지만 대신 연기가 많이 나 눈에 띄는 편이다.

    숯, 목탄, 판자, 나뭇가지, 목재 순으로 타는 시간이 늘어난다.

    다수의 식물형 몬스터에게 쫓기게 되었다면 무조건 늪지 쪽으로 도망치는 게 안전하다.

    육지 식물과 수생 식물 사이가 매우 나쁘기에 서로 어느 정도 서식지를 겹치지 않게 생활하며 이로 인해 물가 부근에 중립지대가 형성되기 때문.

    깨끗한 물이 부족할 경우 코코넛을 반으로 가르면 얻을 수 있다.

    대마초를 태운 뒤 흡입하면 정신력 고갈 속도가 조금 더뎌진다.

    거미줄은 접착제나 그물, 매듭용으로 쓸 수 있기에 보이는 대로 모아두는 편이 좋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지.”

    나는 계속해서 생존에 관련된 팁들을 알려 주었다.

    “이 앞으로 가면 그린헬 불결한 산란장, 왼쪽 옆으로 가면 죽창숲, 오른쪽 옆으로 가면 사시미 잎사귀 밀림, 1시 방향 대각선으로 가면 부두술사의 부둣가, 11시 방향 대각선으로 가면 버려진 원주민 마을 전초기지…… 그리고 우리들이 넘어가야 할 곳은 거미계곡 점액지대…….”

    그때, 내 말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찰싹!

    바람에 실려 날아온 끈적하고 가느다란 무언가가 내 얼굴에 들러붙는다.

    나는 침을 뱉으며 얼굴을 쓸어내렸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끈적한 무언가는 계속해서 얼굴과 목에 들러붙는다.

    살에 닿는 기분 나쁜 간지러움은 분명 머리카락의 그것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끈적끈적하고 길었다.

    “……거미줄?”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바람에 실려 날아온 점액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밀림은 그야말로 거미들의 천국이야.”

    거미는 이 숲에서 아주 중요한 생태계 구성원이 된다.

    곤충들의 수를 조절하고 때로는 식물들의 꽃가루를 나르는 배달부가 되기도 하기 때문.

    “이 세상에서 버그(Bug) 잡는 것을 좋아하는 유일한 웹 디자이너(Web designer)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저 멀리 바닥을 사사삭 기어가는 작은 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솔은 자기 머리 위에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거미를 바라보며 몸을 한번 바르르 떨었다.

    “우으… 거미가 진짜 리얼하게 생겼다. 고증이 엄청 잘 되어 있나 봐.”

    나와 드레이크는 과거 부유섬에서 ‘여덟다리 대왕’ 레이드를 치러 본 경험이 있었기에 거미와 꽤 친숙했지만 윤솔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윤솔이 거미들과 빨리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언을 해 주었다.

    “뎀에 등장하는 거미 계열 몬스터들은 확실히 고증이 잘 되어 있는 편이지. 절지동물 특유의 강모와 상큐티클, 외큐티클, 내큐티클, 표피를 그대로 재현해 냈고 심지어 발톱은 물론이요 외골격 내부의 힘줄, 근걸이, 거근, 억제근까지 똑같이 구현했어. 그뿐일까? 시야각이 좁지만 사물을 확대해 볼 수 있는 전중안, 원근감을 기가 막히게 컨트롤하는 전측안, 뒤와 옆의 움직까지 포착하는 후측안, 아직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후중안을 제대로 살렸을 뿐만 아니라 꽁무니 부근의 실젖까지 완벽하게 디자인했지.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만 그물을 치는 습성과 그물 위에 사는 새실젖거미목 거미들이 먹이를 그물 위에서 떼어내 들어 올릴 때 쓰는 수평형 아래턱, 땅에 사는 가운데실젖거미아목, 원실젖거미하목 거미들이 먹이를 끌고 갈 때 쓰는 수직형 아래턱까지 완벽하게 구분했다고.”

    “……아, 알겠어 어진아. 근데 이것도 다 외워야 해?”

    “어진. 거미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 필요가 있나?”

    윤솔과 드레이크가 나의 설교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 들어두면 쓸 데가 있는 법이지.”

    나는 얼굴에 들러붙은 거미줄을 떼어 한 올 한 올 모으며 말했다.

    바람을 타고 주변으로 날아오는 거미줄을 한데 모으니 이것도 양이 꽤 된다.

    나는 거미줄들을 한 곳에 모았고 이내 큼지막한 솥에 집어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거미줄은 한동안 끓더니 이제 아예 풀죽처럼 걸쭉한 액체로 풀어져 버렸다.

    [어진어진~]

    쥬딜로페가 나뭇가지를 솥 안에 넣고 휘젓다가 빼자 거미줄이 엿가락처럼 주욱 늘어져 이내 허공에서 굳는다.

    그것은 마치 고무줄을 보는 듯한 외형이었다.

    주위를 날아다니던 몇몇 날벌레들이 그 거미줄에 붙어서 낑낑거린다.

    나는 쥬딜로페가 거미줄에 붙을까 봐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앞으로 알게 될 거야. 거미가 여러모로 유익한 동물이라는 것을.”

    솥 안에서 끓고 있는 상당한 양의 거미줄.

    이것이 이번에 브라키오를 잡을 핵심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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