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93화 (793/1,000)
  • 793화 채식주의자 (3)

    ‘지금까지 섭취했던 육류의 양만큼 스탯을 너프한다.’

    그린헬의 룰에 따라 우리는 디버프를 짊어진다.

    츠츠츠츠츠……

    이윽고 우리들의 눈앞에 각기 다른 상태창이 떴다.

    <이어진>

    현재까지 소비한 육류량(최대 디버프 50%) / 최근 일주일간 소비한 육류량(최대 디버프 50%)

    소: 3마리 / 0마리

    돼지: 8마리 / 0마리

    닭: 503마리 / 0마리

    생선: 3021마리 / 0마리

    양: 0.8마리 / 0마리

    칠면조: 0마리 / 0마리

    도도새 : 1마리 / 0마리

    .

    .

    결과값: 스탯 감소율 -50% / -1%

    <드레이크>

    현재까지 소비한 육류량(최대 디버프 50%) / 최근 일주일간 소비한 육류량(최대 디버프 50%)

    소: 7마리 / 0마리

    돼지: 11마리 / 0마리

    닭: 1003마리 / 4.7마리

    생선: 151마리 / 0마리

    양: 3마리 / 0마리

    칠면조: 552마리 / 1마리

    .

    .

    결과값: 스탯 감소율 -50% / -3%

    <윤솔>

    현재까지 소비한 육류량(최대 디버프 50%) / 최근 일주일간 소비한 육류량(최대 디버프 50%)

    소: 1마리 / 0마리

    돼지: 4마리 / 0마리

    닭: 285마리 / 1마리

    생선: 2998마리 / 0마리

    양: 1마리 / 0마리

    칠면조: 12마리 / 0마리

    .

    .

    결과값: 스탯 감소율 -50% / -1%

    나와 드레이크, 윤솔이 평생 먹어온 동물들의 마리수가 떴다.

    “평생 먹어 온 육류량에서 최대 50%의 스탯이 저하될 수 있고 또 최근 일주일간의 육류 섭취량에 따라 최대 50%까지 스탯 저하가 이루어지지.”

    내 설명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가 입을 반쯤 벌린다.

    “드레이크 씨는 고기 되게 많이 드시네요. 소고기를 특히 좋아하시나 봐요. 저는 소고기는 별로라서.”

    “솔. 너는 생선을 주로 먹는군. 나는 생선을 싫어한다. 가시 바르기가 귀찮거든.”

    본의 아니게 자기 식성과 식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에게 화를 냈다.

    “아니. 요 근래 일주일간 고기 먹지 말랬잖아! 근손실…… 아니 스탯 손실 온단 말야! 다들 저기 표에 보이는 거 뭐야?”

    내가 고객의 식단을 관리해 주는 헬스트레이너라도 된 양 다그치자 윤솔도 드레이크도 모두 고개를 떨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스탯 디버프를 최대한 막기 위해 최근 일주일간의 고기 섭취를 금지했었다.

    평생 먹어 왔던 고기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일주일간의 고기 정도는 의지에 따라 끊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드레이크는 고새를 못 참고 4.7마리의 닭을 먹었다.

    윤솔 역시도 한 마리의 닭을 먹어버렸다.

    “면목없다 어진. 운동을 할 때 참치랑 닭가슴살을 조금씩 먹었더니 그만…….”

    “아아 미안해…… 어제 자려고 누웠는데 새벽 2시에 진짜 치킨 생각이 너무 나서.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하는 드레이크와 윤솔.

    하지만 추가적인 스탯 손실은 기껏해야 2~3%정도였기에 이 정도면 꽤나 선방한 편이다.

    “쩝. 그래도 잘 했어. 일주일 동안 고기를 아예 안 먹는 건 힘드니까.”

    나의 토닥임에 윤솔도 드레이크도 고개를 든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어진. 너는 어떻게 디버프가 1%인가?”

    “맞아. 그게 가능한 거야?”

    요 근래 내가 먹어 왔던 식단을 모르기에 묻는 것이리라.

    “지난 일주일은 거의 채식만 했지.”

    사실 스탯 디버프를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채식만 한다고 해도 조미료 따위에 들어가는 미세 분말형, 혹은 과립형 육류가 있기 때문.

    고기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생인류는 육식으로부터 절대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뭐. 디버프를 막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아니, 방법이 딱 하나 있기는 있다.

    바로 100% 과일만을 먹는 것.

    그것도 익을 대로 익어서 땅에 자연적으로 떨어진 과일만을 골라서 말이다.

    식물도 생명이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되고 오로지 식물이 먹으라고 허락한 부분만 먹어야 환경에 가장 덜 피해를 준다는 방식.

    심지어 과일이나 견과류의 씨앗에도 생명이 잉태되어 있으니 먹으면 안 된다.

    직접 딴 과일도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채식주의자의 극단인 프루테리언(fruitarian)이 되면 거의 모든 스탯 저하를 막을 수 있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주일을 버티기가 참 힘들어진다.

    체력도 떨어지고 집중력도 흐려진다.

    무엇보다 게임을 장시간 뛸 수 있는 피지컬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디버프를 막는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손해다.

    ‘옛날에 한 고인물 선배는 단 0.001%의 디버프조차 짊어지기 싫다면서 감나무 밑에 입을 벌리고 홍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었지.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감이 안 떨어져서 삼 일 동안 낙엽만 먹었다고 했었던가?’

    뭐 아무튼.

    빨리 이번 레이드를 끝내야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나는 평소에도 원체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요즘 아주 죽을 맛이란 말이다.

    [냠냠냠. 어진어진~]

    [후후. 꼭 고기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가? 미개한 인간 같으니. 나 같은 필연적 존재는 이슬과 바람, 죽음만 먹고 살아도 충분하지.]

    슬라임 젤리를 오물거리고 있는 쥬딜로페와 오즈는 그런 나의 심경 따위는 전혀 모른다는 듯 저희들끼리 장난치고 놀기에 바쁘다.

    하지만 꼭 무언가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은 편향된 음식만 먹을 경우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소에 불평을 전혀 하지 않던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이번 레이드는 꽤나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아니 식물친화적인 맵이라면서 왜 식물을 먹는 채식주의자들을 우대하는 거야?”

    “맞다. 오히려 육식주의자들을 우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기를 못 먹어서 예민해진 친구들.

    나는 친구들의 의문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그래서 육식주의자들을 우대하는 맵도 있어.”

    실제로 그린헬 반대편의 동대륙 끝에는 레드헬이라는 지역이 존재한다.

    그곳은 그야말로 주지육림(酒池肉林).

    술의 연못이 펼쳐져 있고 고기의 나무가 돋아나 있다.

    거기서는 식물 먹는 것이 오히려 디버프의 척도가 되는 맵이다.

    “으음. 그렇다면 딱히 할 말 없네.”

    “뎀 유니버스에는 특이한 개발자도 있구만.”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납득하는 기색.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뎀은 언제나 늘 다양성을 존중한다.

    옳을 수도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옳지만 틀릴 수도 있다.

    틀리지만 옳을 수도 있다.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옳지만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틀리지만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옳거나 틀리거나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렇게 애매모호하고 불투명하면서도 회색 빛깔을 띄고 있는 것이 바로 뎀의 철학.

    그것이 개발자들의 철학인지 아니면 총수인 윌리엄 링트 윌슨의 철학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뎀 세계관 곳곳에는 이러한 사상들이 뿌리 깊게 녹아내려 있다.

    ‘하지만…… 이 개발자의 의도는 전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게 되지.’

    회귀자인 나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권장하는 이 맵은 인간으로 하여금 적은 자원을 사용하게 함으로서 CO2 발생을 줄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맵을 디자인한 환경운동가 개발자의 의도와는 전혀 별개로, 그린헬은 앞으로 온갖 기예를 뽐내는 육식주의자 고인물들의 장기자랑 대회 장소가 된다.

    고기를 미친 듯이 많이 먹은, 고이고 고인물 유저들의 자신의 스탯 디버프를 거의 100%에 가깝게 설정해 놓고 누가 누가 이 지옥 같은 밀림에서 오래 살아남는가를 겨루는 대회.

    기예(技藝)를 넘어서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썩은물 유저들은 99.99%에 이르는 디버프를 짊어지고도 미친 듯이 강했다.

    그리하여 그린헬은 결국 불편하게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 썩은물들이 극한의 기예를 펼치는 콘테스트 장소가 되어 줄곧 기괴한 사냥 동영상들이 줄줄이 연출, 업로드되는 핫플레이스로 전락하는 것이다.

    “……뭐, 그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주의를 현재 내가 있는 장소로 돌렸다.

    스슥- 스스슥- 그르르르르……

    사나운 식물들이 울부짖는 소리.

    도처에 악의를 가진 몬스터들이 가득하다.

    불타는 기름뿌리, 썩음폭발열매, 가시걸음 잎사귀, 인간파리지옥, 짖는 두꺼비, 늙은 늪도마뱀, 역병 고름줄기, 발목절단 넝쿨 미치광이, 끌어당기는 늪 수초, 그린헬의 마귀굴 게…….

    그린헬 초입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던 몬스터들보다는 약한 개체들이었지만 우리의 몸에 가해진 디버프를 감안한다면 사냥 난이도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치솟은 셈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도도 높아졌지.”

    나는 옆에 있는 넝쿨을 하나 끊은 뒤 그 끝에 무거운 나무토막을 매달았다.

    끝으로 넝쿨에 가시덤불에 붙은 가시들을 콕콕 박아 넣자 이내 살벌하게 생긴 곤봉 채찍이 완성되었다.

    -<‘대충 만든’ 변태의 채찍> / 한손무기 / B

    조잡하게 만들어진 채찍이지만 한 대 맞으면 꽤나 아프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신음 소리는 맞은 쪽이 아니라 때린 쪽에서 터진다고 한다.

    -물리 공격력 +250

    -민첩 +3%

    -방어력 -20

    -특성 ‘가학성애’ 사용 가능

    ※이 아이템은 그린헬 외부로 나가는 순간 파괴됩니다.

    “이런 아이템을 자체 제작해서 들고 다닐 수도 있지. 다른 맵보다 자유도가 월등히 높은 게 그린헬의 장점이야.”

    디버프가 있는 만큼 자유도도 높다.

    이래서 고인물들이 이 땅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리라.

    “오호. 그럼 나도 한번 아이템을 제작해 봐야겠군. 독 있는 식물이 많으니 마름쇠나 지뢰를 제작해 볼까?”

    “와아- 그럼 여기서는 누구나 다 대장장이이고 목수네! 신기해라! 나는 목관악기 만들어 봐야지!”

    드레이크와 윤솔 역시도 깨달은 모양이다.

    육식으로 인한 디버프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에서 놀고 싶어하는 고인물들의 마음을. 이 맵의 진짜 매력을.

    “자. 가자고.”

    나는 그린헬의 더 깊은 곳으로 전입했다.

    2차 대격변 이후 벌과 개미들의 시체를 양분삼아 덩치를 불린 거대한 밀림이 우리를 삼켜 버린다.

    그리고 식물들의 거대화 이후 가장 성가셔질 존재를 나는 찾아간다.

    ‘심록(深綠)의 용 브라키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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