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91화 (791/1,000)
  • 791화 채식주의자 (1)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나는 게임 종료 후 캡슐 문을 열고 나왔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레이드가 끝났다.

    고정 S+급 몬스터, 색욕의 악마성좌 아스모데우스.

    그녀를 쓰러트리기 위해 화이트워싱 마을에서 용자의 무덤까지 꽤 긴 길을 걸어왔다.

    비록 절대적인 시간 자체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한 시도 집중을 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으니 정신적 피로도가 상당하긴 했다.

    최근 이틀간은 잠도 전혀 못 잤고 말이다.

    “휴, 이건 뭐. 쉬려고 게임을 켜는 게 아니라 쉬려고 게임을 끄는 게 되어 버렸으니.”

    하지만 지금은 한창 열심히 해야 할 때이니만큼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다.

    나는 간만에 일상으로 돌아와 사업체 관리, SNS 관리, 세금 관리 등등의 잡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인바디 측정 및 건강검진, 운동 등의 건강관리는 당연한 일이다.

    “……어디 보자. 용자의 무덤 클리어가 확실히 이슈이긴 이슈네.”

    나의 SNS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화젯거리였다.

    스포츠, 연예, 정치 등등 각종 다른 부문의 월드스타들이 나의 동영상을 공유하고 2차 선전을 해 준다.

    공중파에서도 연일 빵빵 때려대고 있으니 말 다한 셈.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도 찬양 일색이다.

    -고인물은 겜계의 신이다...반박시 신알못

    -갓인물과 갓동왕을 동시에 품고 있는 한국...

    -한국인들은 좋겠다...당신들이 부러워...

    -한국인입니다. 한국 내에서 그들은 신입니다

    -아시아인입니다. 아시아 내에서 그들은 신입니다

    -지구인입니다. 지구 내에서 그들은 신입니다

    -외계인입니다. 빵상께랑까랑

    -진짜 용자의 무덤 1층부터 108층까지 눈도 안 깜빡이고 봤습니다...비록 실명하긴 했지만 그 경기를 단 0.1초도 놓치지 않은지라 남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나 같은 사람 또있네ㅋㅋ

    -↳와! 저두 실명! 반갑ㅎㅎㅎ

    -↳실명팸 만들까요? ㅎㅎㅎ

    -↳고인물 플레이 안본 눈 삽니다~

    -↳인터넷 실명제의 폐해ㄷㄷㄷㄷㄷ

    -‘그 고인물’을 몰아붙인 슬라임 퀸 좌...그녀는 대체...

    -저도 용자의 무덤 도전해봅니다!!!

    -아마추어들에게 용기를 준 고인물 님....

    -당신은 아마리그의 빛과 소금 그 자체ㅠㅠㅠㅠ

    .

    .

    내가 올린 동영상, 사진들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달리는 댓글들.

    오죽하면 한국 대통령, 아니 다른 나라 각국의 대통령이나 국왕들을 비롯해 고위 정치인들마저 나를 보고 싶어 할까.

    하지만 나는 정권의 선전도구가 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 모든 일정들을 정중히 고사하고 있었다.

    “이런 점들은 에티오피아 친구들에게 본받아야지.”

    나는 정치권과는 가능한 얽히기 싫었기에 오늘도 혼자 조용히 게임 관련 소식이나 정보들만을 찾아보며 휴식 시간을 보낸다.

    내 SNS의 계정 관리 목록에 들어가자 실시간으로 변동되는 팔로워 수가 보인다.

    거의 수직에 가깝게 상승하는 그래프.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쭉쭉 증가하는 팔로워들.

    나는 감사 인사를 적었다.

    “1억 팔로워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제 SNS 페이지가 이렇게 1억 2천만 팔로워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저를 사랑해 주시는 1억 4천만 팔로워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제 부족한 플레이를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1억 6천만 팔로워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이 감사문을 읽어 주시는 1억 8천만 팔로워님들, 모두 좋은 저녁 되셔요! 2억 팔로워님들 모두 한 분 한 분 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팔로워의 수가 실시간으로 증가하고 있었기에 언급되는 숫자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하트와 좋아요의 수가 엄청나게 올라갈 때마다 메시지들도 수북하게 쌓여만 간다.

    이제 동창회 나오라고 하는 사이 안 좋은 동창들의 연락 따위는 메시지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것을 일일이 신경 쓰기에는 메시지가 너무 많이 와 버렸다.

    온갖 광고에 협찬 등등…… 그야말로 메시지들의 산.

    게시물을 하나 올려줄 때마다 한화로 약 20억 가량의 광고료를 주겠다는 이들이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린다.

    가전제품, 화장품, 식료품, 자동차, 속옷 등등의 다양한 아이템 품목들. 비앙카의 군수 업체, 아키사다의 부모님이 경영하는 회사 등등의 낯익은 상표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드레이크나 윤솔 역시도 잘 나가고 있다.

    “아니, 근데 나는 드레이크랑 광고 들어오는 게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드레이크에게 면도기 광고가 들어온다면 나에게는 왠지(?) 면도 크림 광고가 들어온다.

    드레이크에게 상큼한 이들만 제안 받는다는 치약 광고가 들어오면 나에게는 왠지(?) 비누 광고.

    드레이크에게 헤어 스프레이 광고가 들어오면 나에게는 왠지(?) 젤 광고.

    드레이크에게 남성용 속옷 광고가 들어오면 나에게는 진짜 왠지(?) 여성 속옷 광고.

    “아니 이거 뭐, 멕이는 거야 뭐야. 저번에 솔이랑 했던 가슴골 쉐딩 화장법 특집 방송 때문인가? 아니면 게임에서 아스모데우스를 잡고 팜므파탈 특성을 얻은 게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거나…… 어우, 그럴 리가 없지.”

    나는 또다시 들어온 브래지어 광고를 거절하며 투덜거린다.

    “그래 게이머의 SNS에는 게임 내용이 있어야지. 광고가 다 뭐냐.”

    나는 내 SNS 게시글의 광고 비중이 5%를 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내가 이미지에 도움이 되면서도 수입이 괜찮은 광고들을 엄선해서 고르고 있을 때.

    위이잉-

    핸드폰이 떨린다. 낯익은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유다희. 간만에 걸려온 전화였기에 나는 전화를 연결했다.

    “어어, 유다희 씨. 오랜만이군요. 어쩐 일이십니까?”

    [……안녕? 잘 지내? 나는 잘 지내.]

    “뭐야, 영어교과서에 나오는 인사 같네.”

    [으,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좀 어색하당.]

    2차 대격변 이후 악플 읽어 주기 개인 방송을 지나 세계리그까지. 그러고 보니 그 이후로 직접 본 적은 딱히 없다.

    애초에 우리는 딱히 용건 있을 때 외에는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언제 봐도 그냥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는데, 오늘따라 유다희의 태도가 어딘가 조금 어색했다.

    ‘그러고 보니 무슨 일이래?’

    내가 속으로 의아해하고 있을 때.

    [……야,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

    유다희가 뜬금없이 불쑥 만나자는 얘기를 꺼냈다.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라. 이 말 하려고 전화했어.]

    “뭐 얼굴이야 보려면 볼 수 있지. 근데 뭘 그렇게 비장하게 말해?”

    [어? 아니, 내가 언제 비장했다고! 그냥 배고파서 밥이나 한 끼 먹자고 한 건데!]

    “아닌데. 지금 거의 분위기가 결투신청인데? 예전에도 말했지만 난 현피는 안 떠. PVP는 게임에서만…….”

    [아 뭐래! 싫으면 말고! 지 때문에 돈 따서 고맙다고 한턱 쏠라 했구만.]

    엥? 나 때문에 돈을 땄다고? 뭘 어떻게 땄다는 거지?

    “갑자기 무슨 돈?”

    [그냥 뭐…… 애국 베팅 좀 했지. 대용량 기저귀의 승리랄까?]

    내가 무슨 말인지 묻자 유다희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어물쩡 얼버무렸다.

    대용량 기저귀라니, 무슨 말이야 이게.

    “너 나라도 생각하냐?”

    [뭐!? 내가 널 왜 생각해!? 아니거든 그런거! 너 그거 자의식과잉이야! 참나 하!]

    “아니. 나 말고 나라. ‘나라’도. 국가. 네이션. 애국 베팅이라며.”

    […….]

    진짜 이게 무슨 대화인가 싶다.

    유다희는 핸드폰 너머로 잠시 말이 없다.

    이윽고, 그녀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아, 암튼. 네 덕 본 게 쬐끔은 있으니까 이번에. 고기 사 줄게 나와.]

    고기 사 준다는 말은 언제 어느 장소에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기는 안 돼.”

    [뭐? 왜? 너 건강 관리하냐? 혈관 문제 있어?]

    “그건 아니고. 레이드 때문에.”

    [뭐어? 뭐야 그게. 고기 먹고 뛰면 안 되는 레이드도 있냐?]

    유다희가 농담조로 말하며 웃는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

    “채식주의자만 뛸 수 있는 레이드.”

    동시에, 나는 주방에서 가져온 믹서기에 콩, 현미, 브로콜리, 아로니아, 당근, 케일, 칡즙, 꿀, 아스파라거스, 연근, 양파, 마늘, 비트, 호두, 땅콩, 고수, 민트, 부레옥잠, 파리지옥 등등을 넣고 시원하게 갈아 마셨다.

    끄윽-

    내가 이 식물 음료를 먹고 난 뒤 트림을 한번 하자 모니터 옆에 있던 산세베리아가 바들바들 떨었다.

    “요 몇 주일 동안 이런 걸로만 끼니 때우고 있거든.”

    [몇 주라고? 아니, 그보다 믹서기 안에 뭐 이상한 게 들어간 것 같은데…….]

    “민트가 어디가 어때서. 아무튼, 볼 거면 이따 저녁에 보자. 메뉴는 가능한 채소나 과일이었으면 좋겠어.”

    [……채소랑 과일만 파는 식당이 어딨어. 고깃집 가서 상추랑 깻잎만 먹든가 그럼.]

    “왜 없어. 얼마나 많은데. 검색만 해 봐도 산채정식, 야채죽, 산나물 비빔밥, 두부탕, 버섯전골, 채소 햄버거, 야채 케이크, 과일찌개 맛집들 쫙 뜨네 여기.”

    [마지막에 또 이상한 게 끼어 있는 것 같은데…… 하, 뭐 알겠어. 굳이 먹고 싶다는데 찾아 줘야지 또, 신세진 년 입장에서. 쳇. 기껏 비싼 거 사 주려고 했더니만.]

    그녀는 고기를 못 먹는다니 약간 시무룩해진 눈치다.

    유다희가 드물게도 저렇게 공손하게 나오는데 그럼 어디 마음 편하게 얻어먹어 볼까?

    ‘근데 그 신세라는 게 대체 뭐야?’

    신세를 졌다는 게 뭘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뭐 아무튼.

    나는 이토록 엄격한 식단 관리를 하며 다음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레이드만 끝나면 진짜 고기 파티 한번 해야지.”

    치킨, 족발, 보쌈, 삼겹살, 꽃등심, 양꼬치, 회, 삼계탕, 설렁탕, 육개장, 불고기, 업진살…… 다 먹어 줄 테다.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다음 고정 S+급 몬스터.

    녹색 용.

    ‘심록(深綠)의 브라키오’를 쓰러트리고 난 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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