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90화 (790/1,000)

790화 화룡점정(畵龍點睛) (5)

그 수많은 시선들 속에서, 고인물은 105층의 문을 두드렸다.

<용자의 무덤 ‘제 105층’>

<출현 몬스터: 데스나이트 칠귀타 ‘사묘아리’>

이윽고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 ‘데스나이트 사묘아리’.

칠흑의 갑주에 긴 땋음 머리를 늘어트린 단신의 무사.

이 무시무시한 강적을 상대로 고인물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싸웠다.

여덟 개나 되는 칼을 휘두르며 찌르고 베고 막기를 완벽하게 해내는 데스나이트 사묘아리, 그 모습은 흡사 공방일체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은 위용.

시청자들은 잠시 댓글 쓰기를 멈췄다.

…….

그 많은 사람들 중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이가 하나도 없다.

화면 너머로 봐도 느껴진다. 거대한 성채 전체를 상대로 싸우는 듯한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보통 사람이라면 서 있지도 못하고 짓눌려 죽었을 그런 강대한 적을 향해 고인물은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여덟 개나 되던 칼이 모두 부러지고 이가 빠지자, 데스나이트 사묘아리는 여덟 개의 방패를 추가로 꺼내들어 수성을 시작했다.

절대방어(絕對防禦).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철벽.

하지만 고인물은 그 실낱같은 틈을 파고들어 기어코 유효타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상대를 잡아내는 것까지 성공했다.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데스나이트 사묘아리가 결국 무릎을 꿇고 검은 가루로 변해 흩날릴 때, 사람들은 잃은 돈도 잊어버린 채 하나가 되어 환호했다.

-소!리!벗!고!팬!티!질!러!

-진짜 사람의 게임이 아니다ㄷㄷㄷ

-人外魔經....

-그래 이건 진짜 인외마경이지...;;;

-진짜 105층의 벽을 넘네....

-고또선...고인물이 또 선을 넘....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상상해본 사람 있음?

-와 지금 배당 어케 되냐???

-105층에 건 사람들 진짜 잭팟터졌네...부럽다...

-배당이 몇 배여 미친...

-거의 800억은 땄겠는데???

-도랏다 진짜...어차피 이 체력으로 106층은 못 갈테니...

-105층에 건 사람들이 위너였네 결국;;;

.

.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 할 만큼 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판단은 오판이었다.

[자, 바로 갑니다 106층. 예? 뭐요? 화장실 가고 싶다고요? 참으세요 똥싸개들아. 아니면 진작 기저귀를 사 놨어야지~]

고인물은 피식 웃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106층의 문을 연다.

<용자의 무덤 ‘제 106층’>

<출현 몬스터: 아몬 후작>

이윽고, ‘아몬 후작’이라는 이름의 무시무시한 악마가 지옥 구덩이 속 심연에서 몸을 일으켰다.

매끈하게 생긴 미남자.

하지만 올라타 있는 마차와 그 주위를 휘감고 있는 지옥불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광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마차를 끄는 소환수 역시도 아몬 후작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놈은 타고 다니는 소환수를 이용해 2:1 싸움을 걸어 왔고 고인물은 분명 몇 번인가의 사선을 넘었다.

그리고 고인물이 밀릴 때마다 시청자들은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

-배팅 취소되나요?

-환불되나요 이거? 되죠? 된다고 해 주세요

-그냥 절반만 돌려주시면 안 되나요?

-아 진짜 이럴 줄 알았는데 고인물;;;;

-우리...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환불 청원 올립시다!!

-죽어랏 고인물!!!

-형님! 제발 나가뒤지십쇼!!!

.

.

그러나.

……쿵!

아몬 후작의 왼쪽 무릎이 지면에 닿자 의견은 또다시 180도 반전되었다.

-배팅 취소한다는 거 취소되나요?

-취소의 취소인거임ㄷㄷㄷㄷ

-환불해 달라는 채팅 삭제되나요? 제 썸녀가 본 것 같아서....

-아 나 이럴 줄 알았지. 그럼 고인물인데~~

-방금 고인물 욕한 사람 아이디 다 봐 뒀다. 박쥐같은 쉑들,,,,

-위에 님 본인 이름부터 적으세요....

.

.

아몬 후작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 손을 대자.

…츠츠츠츠츠츠!

이내 거대한 마법진이 주변을 휩쓸었다.

-아 취소취소의 취소! 배팅 취소해 줘어어어어!

-안 돼 제발!!!! 환불 안 해 주면 고소할 거야아아아!

-죽는다! 죽는다고오-! 나도 죽어버릴거야아-

.

.

하지만 고인물이 바닥 어귀를 깎단으로 부수자 마법진은 그대로 기화하여 허공에 흩어졌다.

-무효오오옷! 판돈 겟또다제wwwwww!!!

-믿었어!!! 아이 빌리브! 그댄 곁에 없찌마안!

-그래그래그래그래그래그래그래! 믿고 있었다고 젠장!

-오이오이 고인물쟝이 이런 곳에서 쓰러질 리 업자나!!!

-아빠가 오늘 치킨 사갈게!!!

.

.

하지만 아몬 후작이 다시 왼쪽 무릎을 일으키자,

-환불해 줘!

-고인물 죽엇!

-우리 딸 오늘은 치킨너겟으로 참아!

.

.

일어나다가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질 듯하자,

-고인물을 물로 보는 놈들 자숙해라!

-고로췌! 이대로만 가즈아아앗!

-베팅도 실력이야 실력!

-도박사도 사람이야아아아아!

.

.

아몬 후작의 포효에 고인물이 피어에 걸려 잠시 경직되자,

-고객센터 전화 번호 아시는 분! 배팅 취소해야 돼요 저!

-환부우우우우우울-!!

-이번만큼은 널 믿었단 말이야아아아아!

.

.

고인물이 오히려 잠깐 둔해진 몸을 이용해 스탑무빙을 쳐 공격을 전부 피해 내자,

-오오오오옷! 고인물 환불해…아니 사랑해!

아몬 후작의 양 어깨가 거대한 마나를 발산하며 팽창하자,

-야야야 임마! 고인물! 저런 거 하나 파악 못하고 아오 임마! 내 돈 돌려내! 걍 뒤져!

아몬 후작의 승모근에 그대로 고인물의 양 깎단이 직격하자,

-사랑해, 고인무우우우울! 네 덕분에 집 장만한다!!

아몬 후작이…….

-야 이 미친!!!!!!!!

고인물이…….

-미친 플레이!!!! 그야말로 미쳤다 미쳤어!!! 마치 기적과도 같은…

아몬 후작이…….

-만용이다! 기적과도 같은 만용! 아주 그냥…

고인물이…….

-죽여줘요!!! 어흐어흐어흐! 곤드레에만드레에- 나는 취해 버렸어!

아몬 후작이…….

-고인물 저 쉑 때문에 술만 처먹어서 오늘 취하것다 아주! 알콜중독으로 뒤져버려야지 내가 그냥 칵!

.

.

청기올려. 백기내려. 청기들었다내려. 백기들지말고청기들었다내리고백기들지마.

……콰쾅!

그리고 긴 싸움은 점점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거대한 소환수가 그 증거.

-환불…아니 올인…아니 묻고 더블로……아니 고인물 사랑…사랑하나? 몰라…이제…

-고인물아 나도 순정이 있다……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땡벌

-때려쳐…그냥 올라가라, 고인물

-이 새끼 일부러 그러는 거지 지금.....?

.

.

고인물은 아몬 후작이 부리는 시커먼 소환수를 겨우겨우 해치운 뒤 인상을 찌푸렸다.

[……배드엔딩을 타고 다닐 줄은 저도 몰랐네요. 그것도 ‘나이트메어 폼’이라니.]

마치 씁쓸한 추억이라도 떠올린 듯한 표정.

하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간 고인물은 착실하게 데미지 딜링을 시작했고 이윽고 아몬 후작 역시 무릎을 꿇었다.

혈액포식이라는 사기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그였지만 아무래도 놈이 흡수한 고인물의 피에는 특수한 독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마침내 106층 역시 클리어한 고인물.

그리고 이제 대망의 107층의 문이 열렸다.

<용자의 무덤 ‘제 107층’>

<출현 몬스터: 히드라>

107층의 보스 히드라 성체. 그리고 숨겨져 있던 아홉 번째 머리 ‘빅헤드’.

그것의 등장에 전 세계가 전율했다.

아마 히드라 한 마리만 이 세상에 나온다고 해도 수억 명에 이르던 동시 접속자 수는 0명이 될 것이다.

플레이어란 플레이어들은 모조리 죽을 테니까.

존재 자체가 인류 멸망급 재앙.

그리고 고인물은 그런 재앙급 몬스터를 단신으로 처치했다.

물론 중간에 방송이 잠시 끊기는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방송이 다시 켜졌을 때는 이미 히드라의 아홉 번째 머리까지 잡힌 뒤였다.

억이 넘는 인파가 각지 각국에서 기립 박수를 보낸다.

-이쯤 되면 배당이 문제가 아니다ㅋㅋㅋㅋ

-105층 때부터 울면서 보고 있습니다...

-90층이 한계라고 한 새끼 나와라ㅡㅡ^^ㅣ발

-107층까지 깨버렸네 결국...

-108층 딱 대ㅋㅋㅋㅋㅋ캬

-근데 108층에는 고정 S+급 몬스터 있어서 안 될걸?

-ㅇㅇ1:1로 S+급은 무리지 진짜

-아무리 그래도 진짜 이건 아님ㅋㅋ

-108층은 배당이 어떻게 되나?

-거기에 건 사람 아무도 없을걸?

.

.

그렇다.

그 누가 고인물이 108층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예상했던가.

108층은 고사하고 99층, 아니 90층까지만 가도 굉장한 것이라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고인물은 거침없이 108층의 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모두가 생각했던 바로 그 불가능이 현실이 되는 순간.

온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용자의 무덤 ‘제 108층’>

<출현 몬스터: 아스모데우스>

고정 S+급 몬스터 두 마리를 홀로 상대했을 정도로 강력한 아스모데우스의 힘!

그리고 그것에 팽팽하게 맞서 싸우는 고인물!

전 세계인이 집중하는 가운데, 용자의 탑이 일부 붕괴되었고 전투는 점점 더 반경을 넓혀 간다.

그리고 이내 밝혀지는 아스모데우스와 솔거의 히든 퀘스트.

석양이 지는 가운데 아스모데우스와 솔거는 서로 끌어안고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장장 24시간, 정확하게는 23시간 59분 59초에 이르는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용자는 무덤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한 번도 죽지 않았으니까!

‘용자의 무덤 1~108층 올클리어’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영역에 발을 들여 놓은 것도 모자라 그곳을 정복해 버린 영웅.

그것이 바로 고인물이다.

-꺄아아악! 키스해! 키스!

-결혼해 짝- 결혼해 짝-

-둘이 잘 살아요! 영원히!

-응원합니다아아아-!

-...진짜 너무 감동적이다ㅠㅠ

-너 이 자식들! 우리가 응원한다아아!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굿!

-고인물님 멋져요오오오오!

-진짜 용자의무덤을 클리어함ㅋㅋㅋㅋ

-용자왕 이어진!!!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오늘 이 방송을 봐서...

.

.

시청자들은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나의 업적, 그리고 아스모데우스와 솔거의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노을지는 석양 너머로 짙은 감동이 번지고 있었다.

…….

……바로 그때.

시청자 게시판과 스트리밍 채널의 채팅창에 누군가가 아주 사소한 의문 하나를 제기했다.

-...근데...용자의 무덤 베팅 있잖냐...혹시 누구 돈 딴 사람 있어?

처음에는 사소했던 그 의문은 이내 채팅창 전역에 번져나갔다.

-108층에 돈 건 사람이 있다고??

-에이ㅎㅎㅎ뭔 소리임 그게

-누가 거기에 돈을 걸어;;

-돈 그냥 갖다 버리는 셈이지...

-아이구...그냥 속는 셈 치고 걸어볼걸...ㅠㅠㅠㅠ

-107층까지는 그래도 눈 먼 흑우들이 돈 좀 걸었던 것 같은데 108층은 아무도 안 걸었을 듯?ㅋㅋㅋ

-지금이야 그저 감탄할 뿐이지만...그때는 누가 108층에 걸었겠어

-다들 비웃기 바빴지 뭐ㅋㅋㅋㅋ

-108층까지 갈 줄 신도 몰랐을거다...ㄷㄷㄷ

-어?

-어어??

-????

-??????????????

-있다!

-헐?! 있다있다있다!!!

-ㅋㅋㅋㅋ와 대박

-있음 ㄹㅇ 있음!!!

-딱 한 명 있네?!?!?!

.

.

이윽고, 시청자들은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1명.

단 한 명.

80억 인구 중 오직 단 한 명만이 108층에 돈을 걸었다.

1/8,000,000,000

그 누구도, 장난으로라도 고인물의 올클리어를 생각지 못했던 때.

오직 한 명의 사람이 ‘고인물이 108층을 클리어한다’에 돈을 걸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는 3억 8천 2백만 달러, 한화로 약 4,626억 200만 원이라는 당첨금을 수령하게 되었다.

-대체 누구임???

-와;;이건 부모님이 도전한대도 못 믿고 돈 안 걸었을 것 같은데...

-진짜 이건 누구냐??

-장난으로 108층에 건 건가?

-아니 돈 날릴게 뻔한데 거기에 왜 걸었겠음;;;

-이거는 한 사람당 한 층 밖에 돈 못 거는데?????

-그럼 진짜 고인물이 108층 갈 줄 알고 돈 건거 아니냐??

-고인물 본인 아님?

-아니지 고인물이 탑에 들어가고 나서 열린 베팅인데...

-그럼 누구여???

.

.

솔직히 107층 까지는 장난으로, 혹은 설마설마 하는 심경으로, 초보자의 아무 생각 없는 베팅으로 돈을 건 이들이 간간히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정말로 108층에 돈을 건 사람은 없었다. ‘이 사람’ 하나를 제외하면 말이다.

수억 시청자들은 108층에 돈을 건 단 한 명의 승부사를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그리고 또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그는 대체 누구길래 고인물의 올클리어에 베팅했을까?

클릭 미스? 아니면 진짜 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그것도 아니면 미래를 볼 줄 아는 신적인 존재?

모든 시청자들이 이 행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 정체에 관해 궁금해 할 때.

그가 채팅창에 등장했다.

단 한 글자만을 채팅창에 남겨 놓으며.

-언니대용량기저귀찼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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