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9화 화룡점정(畵龍點睛) (4)
-용자의 무덤이 함락되기 하루 전-
-뿌슝빠슝삐슝♩♪♬ [사상 최초!] 고정 S+급 몬스터 레이드 생중계를 하는 방송국이 있다!?
전 세계인들을 집중시킬 공지가 떴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지금 저는 전 세계 최초로 ‘용자의 무덤 올클리어’에 도전하는 한 용자를 밀착 취재하고 있습니다!]
세계리그에서 한국 팀 중계를 맡아 인지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여자 캐스터 홍영화가 오늘의 단독 중계를 맡았다.
용자의 무덤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인스턴트 던전으로 무려 108층이라는 어마어마한 층수를 보유하고 있다.
최저 C등급에서 최고 S+등급까지 다양한 몬스터들이 존재하는 던전.
러시아의 트로츠키가 세운 솔로 기록 89층, 영국의 튜더가 세운 파티 기록 99층.
지금까지 이 기록을 돌파할 수 있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지라 초기 시청률은 꽤 낮았고 그나마도 비웃는 댓글들이 많았다.
-ㅋㅋㅋㅋ장난하나...지금 뭘 공략하신다고?
-다른 던전도 아니고 용자의 무덤을 클리어한다네 ㅂㅅ들인가??
-막나가는구만
-시청률 뽑아먹을라고 아무 콘텐츠나 막 비비네;;;
-될 리가 있냐ㅋㅋㅋㅋ
-사기방송이구만 이거?
-아니 근데 LGB면 꽤 신뢰가 있는 방송 만들던 곳인데...실망이네 참
-용자의 무덤이 어딘줄이나 알고 하는 방송???
-튜더랑 로열블러드도 못 클리어한 데를 어케 클리어함;;;
-그것도 솔로 플레이란다ㅋㅋㅋ ㅂㅅ들~
.
.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는 모양새.
드레이크와 윤솔이 마주앉은 이 이스포츠펍(E-sport pub) ‘드렁큰 펜타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둘은 마스크와 짙게 선팅된 선글라스를 끼고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방송을 보고 있었다.
“솔, 덥다.”
“여기까지 와서 왜 그래요.”
“꼭 여기서 봐야 하나? 솔직히 집에서 맥주 캔 하나 들고 에어컨 쐬면서 보는 게…….”
“어허, 맘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어진이가 꼭 부탁했다구요. 드레이크 씨 데리고 바람 좀 쐬라고. 팀 닥터가 만성 철분 부족이라 했다고.”
“끄응. 그나저나…….”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드레이크는 고개를 낮추고 그녀에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술집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들 왜 이러는 거지?”
“용자의 무덤을 올클리어 한다니까 저래요.”
“놀랄 일이지 저렇게 비웃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펍까지 와서 볼 정도면 십중팔구 극성팬이거나 열혈팬들이니까요.”
그렇다.
여기 있는 모두는 이스포츠의 팬인 동시에 하드코어 게이머.
일반 유저들보다 용자의 무덤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올클리어’라는 도발적 문구에 격한 반발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 뭐야! 이럴 거면 리플레이 봐!”
“그래그래! 뭔데 모든 스크린을 이 방송에 맞춰 놨어!”
“나 지난번 그거 못 봤어! 애가 주말에 아팠단 말이야!”
“채널 돌려! 더 볼 것도 없어!”
점점 반발이 드세진다.
스포츠펍 사장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빠르게 리모콘에 손을 가져갔다.
항상 반응이 좋았던 프로그램이라 틀어 놓았는데 예상치 못한 분위기로 흘러간 것이다.
하지만, 이윽고 이어진 홍영화의 도전자 소개에 여론이 대차게 한번 뒤집힌다.
[그렇다면 오늘 용자의 무덤 ‘올클리어’에 도전하는 용자의 정체는 누구냐? ……바로바로 고인물 씨입니다!]
그러자.
“자자자자잠깐! 채널 고정!”
“어허이! 리모콘에서 손 떼, 이 양반아!”
“스타아아아압!”
“……아빠 안 잔다.”
“삼촌도 안 잔다 임마!”
얼굴이 붉어진 아저씨들이 불이라도 난 것마냥 주인장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고인물.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아마추어 랭킹 1위.
공식 세계 랭킹 1위인 에드워드 튜더조차 존경을 표했다던 바로 그 인물!
이번에 2차 대격변을 거치며 말이 필요없는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른 월드클래스의 랭커이다.
고인물이 등판하자 당연히 시청률은 수직 상승, 시청자들의 반응도 반신반의 하는 기색이다.
-으음;; 고인물이 그 상대라고?
-비웃기에는 도전자가 좀 쎄군...
-그러고 보니 고인물이 예전에도 한번 LGB에서 용자의 무덤 방송한적 있는거같다ㅋㅋㅋ
-그때 프로그램 특집이 ‘켠왕’이었잖어~
-와...용자의 무덤 올클리어! 고인물이라면 말이 된다!
-용자의 무덤을 올클리어하겠다는 건 108층에 있는 고정 S+급 몬스터도 잡겠다는 거 아님???
-돌았다 오늘 컨텐츠 대박이다 대박
-이건 진짜 월드클라스..ㄷㄷㄷ
-에이ㅋㅋㅋ아무리 고인물이라도 이건 좀;;;
-지금 공중파에서도 긴급보도 나오네...고인물 클라스 ㄷㄷ해~
-솔직히 올클리어는 좀 에바고,,, 트로츠키가 세웠던 89층 세계신기록은 오늘 깨질 듯ㄷㄷㄷ
-뭐야. 또 이 여자가 사회 보나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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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도전한다는 것은 전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즉, 이번 방송은 고인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시청률은 거의 90도에 가깝게 솟구치기 시작했다.
고인물이 과연 용자의 무덤을 올클리어할 수 있을지 없을지, 전 세계의 대부호들이 모여 초거대 규모의 내기장을 열었을 정도였다.
베팅!
고인물이 몇 층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에 전 세계인들이 돈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야말로 놀라운 것!
3억 8천 2백만 달러. 한화로 약 4,626억 200만 원
미국의 메가파워볼에 필적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금이 모였다.
이 당첨금은 고인물이 용자의 무덤을 몇 층까지 올라가느냐에 따라 배분된다.
수많은 이들이 돈을 들고 용자의 무덤에 베팅한다.
러시아 넘버원 트로츠키가 세운 89층, 그리고 그보다 한 층 위인 90층에 가장 많은 베팅금이 몰렸고 에드워드 튜더가 파티원들을 이끌고 세운 99층, 일명 ‘더블 넘버링’ 층을 지나고부터는 베팅 배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89층 90층 91층에 배당 몰린 것 보소ㄷㄷㄷ
-와;; 사람들 기대가 크긴 크구나
-고인물이 진짜 신기록 세울 거라고 생각하나봐ㅋㅋㅋ
-에이, 그래도 프로 랭커들이 세운 기록을 원트라이로 돌파하는게 말이되나~
-가능하지;; 고인물은 2차대격변도 막아냈는데;;
-2차 대격변 막는거랑 용자의 무덤 솔로 도전이랑 같냐 ㅂㅅ들아ㅡㅡ
-내가보기엔 트로츠키 기록은 깰 것 같고, 튜더 기록은 못 깰 것 같다ㅇㅇ
-89~91층이 가장 현실적인 구간이긴 하지.
-ㅇㅇ나도 안전빵 구간에 걸었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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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고인물이 트로츠키보다는 선방할 것이라 여겼고 그 선방의 정도는 기껏해야 한두 층 정도를 더 가는 것에 그칠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용자의 무덤 ‘제 1층’>
<출현 몬스터: 슬라임 퀸>
1층에서부터 슬라임 퀸에게 거의 리타이어 당할 뻔 한 고인물.
[으아아아아! 카메라 꺼! 이 자식, 승부를 내자!]
심지어 치열한 사투 끝에 슬라임 퀸을 쓰러트리는 데에는 거의 3시간 정도가 걸렸다.
당연히 댓글은 엉망진창이다.
-안본 눈 삽니다ㅅㅂ
-아 뭐임ㅡㅡ
-ㅁㅊ뭔 1층부터 요지랄이야;;;
-클낫네...나 89층에 전재산 걸었는데...ㅠㅠㅠ
-90층 없나요?
-91층 존버갑니다...
-92층입니다 우리 모두 힘내보죠. 영!
-차!
-영!
-영차로 지랄이고 우리 모두 ㅈ댄거같습니다만..
-저새끼 저거 1층에서 리타이어될거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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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1층부터 고전하는 것을 보고 시청자들이 탈주한다.
돈을 물린 이들은 존버라는 말조차 안 나오는 상황에 복장만 터져 할 뿐이다.
하지만.
이윽고 고인물이 본격적인 탑 등반을 시작하면서부터 비웃음과 조롱은 싹 걷힌다.
눈 깜짝할 사이에 C, C+, B, B+ 구간을 돌파하는 고인물.
심지어 위험등급 B+랭크의 에이스 카이도마루를 혓바늘로만 찔러 죽이는 기염을 토하면서,
그 외에 ‘이히히히’, ‘얼음상어 서리이빨’, ‘트윈헤드 오우거’, ‘거미 대모’, ‘리자드맨 만인장’, ‘데스 나이트(하급)’, ‘대머리황제수리’, ‘메두사’, ‘황금광 청개구리’, ‘냉동 흡혈귀’ 등등의 A급 몬스터들이 줄줄이 박살난다.
러시아의 트로츠키가 혼자서 몇 번을 죽어가며 도전한 피의 길을 고인물은 무슨 꿀의 길 걷듯 걷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하는 A+급 몬스터들 역시 꿀 발라놓은 빙탕후루 빼먹듯 쇽쇽 잘도 해치워 나가고 있었다.
‘아귀 메기’, ‘대망자’, ‘미노타우로스’, ‘샌드웜’, ‘다리 많은 여제’, ‘데스나이트(상급)’, ‘고대 거인 요튠’, ‘기저의 뱀 파이썬’, ‘사이클롭스’, ‘어둠 대왕’, ‘씨어데블’…… 하나하나가 한 던전이나 필드를 지배하는 쟁쟁한 보스 몬스터들.
평균 레벨, 평균 장비를 가진 이들은 수백 명이 몰려들어도 잡을 수 없는 초엘리트급 보스 몬스터들 역시 고인물에게 연달아 격파당했다.
노 히트 런(No hit no run game).
꿈과 인성으로 가득 찬 용자님!
[방심할 수 없는 존재들을 처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방심하지 않는 것이지.]
여기서 한번 주옥같은 멘트가 터져 나오자.
-사랑합니다 고인물 형님 충성충성충성^^7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구 젠장!!!!
-미쳤다 90층 돌파ㅎㄷㄷㄷ 세계 최단시간 수준이 아닌데 이건?
-초인의 경지다...
-방심할...수...없는...존재들을...처치...인생 명언 적어둡니다...
-고인물횽! 이미 세계신기록 깼는데 여기서 멈춰주시죠!!!!
-으아아 안돼!! 난 91층에 걸었다고!!! 거기까진 가줘야지!!!
-난 92층ㅠㅠㅠㅠ고인물니뮤ㅠㅠ제바류ㅠㅠㅠㅠ...
-존버는 승리한다!!!
-가즈아아아아!!
-유행지난 그놈의 가즈아;;;쌉노잼
-고인물 93층까지만 딱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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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뒤따른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드레이크가 저도 모르게 한 마디 했다.
“방심할 수 없는 존재들을 처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방심하지 않는 것이지.”
“앗.”
윤솔이 깜짝 놀라 드레이크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는 화면에서 고인물이 한 말을 0.1초 정도 먼저 뱉었던 것이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자 드레이크는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최근에 나 정도면 이제 꽤 강해지지 않았나 싶어서 PVP를 신청했는데 그러더군.”
“아하.”
드레이크는 맥주 500cc를 단숨에 들이키며 도리질을 했다.
“아직 멀었어.”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방송에 주목했다.
[마침내 90층 돌파입니다!]
그리고 이제 대망의 91층. 위험등급 S랭크의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구간.
진정한 의미의 ‘용자의 무덤’, 대부분의 월드클래스급 유저들이 좌절하는 마의 경계이기도 한 이곳부터 고인물의 도전은 다시 한번 눈부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91층의 보스 용암장갑암룡.
[아, 용암장갑암룡! 일반 장갑암룡이 무수한 전투 경험을 쌓아 한 단계 진화한 상위종 몬스터죠. 저는 처음 봅니다만… 쟤도 저 같은 놈은 처음 볼 겁니다.]
고인물은 이 S급 몬스터를 마치 뒷산 토끼 대하듯 말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무려 22분 42만에 레이드를 클리어하는 기염을 토해내었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놀라 뒤집어진다.
-뭔 참치 해체쇼같다;;;;
-주머니마다...아니 비늘마다 현금빵...아니 칼빵...
-저렇게 혈마다 침을 놔주면 금세 노곤노곤해지겠는걸
-칼집 구석구석...잘 익겠당^ㅠ^
-ㅁㅊㄷㅁㅊㅇ
-않이;;; 지금까지 총 9시간 6분 9초...
-근데 그와중에 1층 슬라임 퀸한테 쓴게 3시간임 씨Xㅋㅋㅋㅋ
-사람인가...진짜...
-안 돼!!그만 올라가!!!거기서 멈추란 말야 제발!!!
-더 쭉쭉! 더 올라가라! 떡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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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고인물은 100층의 문을 두드린다.
전 세계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위업 ‘트리플 넘버링’, 여기서부터는 뭘 해도 세계 신기록이다.
코를 파고, 이를 쑤셔도, 하품을 하고 방귀를 뀌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는 뜻깊은 행동들이 된다.
이윽고, 고인물은 100층의 수문장인 ‘용옥의 고문기술자’를 필두로 101층의 수문장 ‘쟈쿰’, 102층의 수문장 ‘작아지는 엘리스’, 103층의 수문장 ‘뇌를 빠는 스펙터’, 104층의 수문장 ‘데모고르곤’을 차례차례 연파했다.
시청자들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게 현실인가 싶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횽...
-인간으로 남아주세요 제발!
-탈의. 탈인간. 그저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그는 신이야!
-아니 내 돈... 난 최대가 92층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돈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진짜 제 돈이 아니라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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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청자 수가 억을 돌파하고 있는 상황.
그 수많은 시선들 속에서, 고인물은 105층의 문을 두드렸다.
…콰쾅!
불가능이.
실시간으로.
부서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