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88화 (788/1,000)
  • 788화 화룡점정(畵龍點睛) (3)

    ‘인류가 존속하는 한 에로티시즘은 예술의 원천이 된다.’

    -장 콕토(Jean Cocteau)-

    *       *       *

    -띠링!

    <세계 최초로 ‘아스모데우스’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물>

    <보상이 지급됩니다!>

    <세계 최초로 ‘용자의 무덤’ 올클리어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물>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 세상 모든 몽마들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에 한탄합니다>

    <용자의 무덤은 24시간 뒤 원상복구됩니다>

    <108층에는 몬스터가 리젠되지 않고 최초 정복자의 동상이 세워집니다>

    <세상을 이루는 일부 색들이 한 톤 밝아집니다>

    <세상을 이루는 일부 색들이 한 톤 어두워집니다>

    <이혼률이 소폭 증가합니다>

    <출산률이 소폭 하락합니다>

    .

    .

    용자의 무덤 1층에 우뚝 서 있는 나.

    나는 아스모데우스를 잡고 얻은 결과를 면밀히 검토했다.

    <이어진>

    LV: 97

    HP: 970/970

    호칭: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툴루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 식인황제 시해자(특전: 1차 대격변) /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특전: 절약) / 불사(不死)의 좌군단장(특전: 여벌의 심장) / 불사조의 대리인(특전: 선택) / 검은 용군주 오즈의 위상(특전: 혈족전생) / 시작의 마을 유토러스의 명예 후작(특전: 대귀족) /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의 위상(특전: 수전노) / 발록의 뿔을 꺾은 자(특전: 야수) / 그 무서운 데모고르곤(특전: 싸움광) / 살인자들의 탑 5층의 주인(특전: 맵 디자인) / 벨제붑의 아들을 죽인 자(특전: 맹독)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위상(특전: 폭식 창자) / 데스나이트 ‘킹 아서(King Arthur)’의 후예(특전: 백전노장) / 저주받은 고목 쟈쿰 벌목자(특전: 고대 신앙) / 심해 스토커(특전: 마찰계수) / 푸른 용군주 버뮤다의 위상(특전: 잠수) / 레흐락과 게슈탈트의 친구(기다림) / 아틀란둠의 왕자(특전: 대심해) /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의 위상(특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 싸움 나락의 생존자(특전: 스탯의 정수) / 흰 용군주 카프카타렉트의 위상(특전: SM플레이어) / 두 전쟁대군주의 계약자(특전: 2차 대격변) / 용자의 무덤 107층, 히드라 참살자(특전: 구두룡(九頭龍) / 색욕의 악마성좌 아스모데우스의 위상(특전: 팜므파탈) /

    간만에 까 보는 상태창이다.

    레벨이 겨우겨우 1 올랐고 호칭 특전 ‘팜므파탈’이 생겼다.

    ‘팜므파탈’

    ↳남성에게 무조건적인 호감의 대상이 됩니다.

    ※이 능력은 몬스터와 NPC를 불문하고 적용됩니다.

    “장난하냐? 남정네들한테 인기 끌어서 뭐에 쓰라고.”

    가뜩이나 성비가 편향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마당에 이제 게임 속에서도…….

    그나마 크툴루 크라켄의 ‘고생물’ 특전과 중첩이 되는, 정신계 저항력을 대폭 올려 주는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다.

    …딸그랑! 땅!

    아이템은 두 개가 떨어졌다.

    하나는 아스모데우스가 떨군 전리품,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용자의 무덤을 전부 클리어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우선 아스모데우스의 전리품을 볼까? 오, 반지네!”

    -<애간장을 녹이는 링> / 반지 / S+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이 착용했던 반지.

    남자든 여자든 간에 이 반지에 닿은 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방어력 +100

    -특성 ‘변태패티쉬’ 사용 가능 (특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방어력.

    하지만 이 반지의 진가는 특수 옵션에서 나온다.

    ‘변태패티쉬’란 HP가 1% 떨어질 때마다 물리공격력이 1% 상승하는 등가교환 식 특성.

    만약 HP의 99%가 닳아 있는 상태라면 공격력은 99%까지 증가할 것이다.

    HP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 나에게는 아주 요긴한 아이템이었다.

    “그럼, 다음. 용자의 무덤 전리품은?”

    나는 108층을 클리어하고 얻은 기념품을 챙겼다.

    그것은 투박하게 생긴 한 벨트였다.

    -<무저갱 허리띠> / 허리띠 / S

    너무나도 무거워서 평평한 땅 위에 올려두면 그 부분을 움푹 꺼지게 만들어 무저갱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허리띠.

    신기하게도 자기가 인정한 주인에게는 아무런 무게감도 전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리 방어력 +100

    -특성 ‘만근추’ 사용 가능

    만근추, 이 역시도 꽤나 쓸 만한 특성이다.

    자기 자신의 몸무게를 거의 1만 킬로그램에 가깝게 늘릴 수 있는 특성, 물론 자기 자신에게는 어떠한 부담도 느껴지지 않는다.

    폭풍 같은 자연재해를 맨몸뚱이로만 버틸 때, 혹은 상대방을 몸무게로 짓누를 때, 그 외 각종 힘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아주 요긴한 보조 특성.

    “……대박이네.”

    긴 레이드 끝에 확실한 보상을 받았다. 이로서 나는 더 강해졌고 더 상위의 사냥터로 갈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때.

    …쿠르릉!

    탑의 일부가 무너져 내려 지상에 쌓인 돌더미에서 변화가 있었다.

    무너진 바위들을 헤치고 나오는 손 하나.

    아스모데우스.

    그녀가 잔해더미 사이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용자의 탑이 함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스모데우스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그 점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엇이냐. 왜 나에게 이걸……?]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검은 펜던트. 솔거에게 받아온 아이템이다.

    ‘앙버팀’ 특성이 있는 펜던트. 내가 이것을 급히 아스모데우스의 손에 쥐여 준 덕에 그녀는 사망을 면했다.

    히드라도 바로 죽지 않았던 만큼 아스모데우스 역시 바로 죽지 않을 것이라 판단, 재빨리 조치를 취했던 것이 다행이다.

    “다행이네 그래도 레이드 성공으로 처리되어서.”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마몬을 죽이지 않았는데도 레이드 성공 알림음이 떴던 것이 바로 그것.

    그때의 마몬은 분명 살아 있었지만 악마로서는 끝장난 상태였다.

    악(惡)의 마음이 꺾였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의 아스모데우스 역시 비슷한 처지이리라.

    힘없이 고개를 들어 용자의 무덤 탑 외벽, 저 높은 곳에 있는 벽화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스모데우스.

    거의 대부분의 힘을 잃어버린 그녀를 향해 나는 말했다.

    “평범한 색녀가 된 기분이 어때?”

    [……평범한 색녀라는 게 무어냐. 색녀 자체가 이상한 존재이거늘.]

    “색을 좋아하는 여자면 색녀지 뭐.”

    내 말을 들은 아스모데우스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채 만신창이가 된 몸을 잔해 위에 뉘였다.

    [색 같은 건 이제 쳐다보기도 싫다. 자, 끝내라. 네 마음대로 해.]

    모든 것을 체념한 눈빛. 그녀는 벽화를 바라보는 자세 그대로 누워 죽음을 맞이할 생각인 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다.

    “색을 쳐다보기도 싫다고? 그렇게 말하면 서운해 할 사람이 있는데.”

    [……?]

    내 말을 들은 아스모데우스는 감았던 한쪽 눈을 슬며시 뜬다.

    그러자. 이내 내 뒤로 옅은 붉은빛이 비친다.

    나는 씩 웃으며 옆으로 한 발을 비켜섰다.

    그리고 석양이 지는 지평선 저 너머를 향해 손짓했다.

    “당신을 찾아 여기까지 온 색정광(色情狂)이 있어.”

    이윽고, 석양을 등지고 다가오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가까워지는 존재.

    그는 바로 드레이크였다.

    “어진. 부탁한 NPC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의 등에 업혀 있는 NPC가 한 명.

    흰 피부와 흰 머리칼, 흰 눈동자.

    많이 늙기는 했지만 어찌 이 얼굴을, 어찌 이 색을 잊어버리랴?

    그는 바로 솔거였다!

    [……!]

    아스모데우스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HP도 없을 텐데 무리하기는.

    이윽고.

    드레이크는 용자의 무덤 앞으로 걸어와 등에 업은 솔거를 내려놓았다.

    화이트워싱 마을에서 이곳까지 한 달음에 달려온 솔거.

    그는 눈앞에 선 여인을 가만히 바라본다.

    여인 역시 눈앞에 선 사내를 가만히 마주본다.

    […….]

    […….]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그 둘은 막상 마주선 채 말이 없다.

    나와 홍영화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 둘의 재회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솔거가 먼저 다가갔다.

    그는 떨리는 손을 들어 마찬가지로 떨리고 있는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을 감싸 쥔다.

    그 뒤 천천히 얼굴을 기울여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을 향해 다가간다.

    이내, 솔거의 손길은 아스모데우스의 촉촉한 입술 위를 쓸며 움직였고 동시에 그의 입술 역시도 달싹였다.

    [이 입술 색은……##1991번 분홍색, 쇼킹 핑크! 역시 E 205, S 172, L 180, R 237, G 146, U 255. 그때 그대로야.]

    그러자 아스모데우스가 웃는다. 눈물 그렁그렁하게 왈칵.

    실로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이 모양이라니.

    그녀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대단한 색욕은 처음이로구나.]

    […….]

    [이미 오래 기다렸다. 너, 더 이상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아스모데우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서웠다.

    솔거의 입술이 아스모데우스의 입술을 덮었다.

    동시에.

    츠츠츠츠츠츠……

    솔거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흰 몸에 아스모데우스의 몸에서 빠져나온 색들이 깃들어 물든다.

    동시에 솔거의 몸은 점점 더 생기를 띄기 시작한다.

    주름이 펴지고 흰버섯들이 희미해졌으며 눈동자와 머리칼에는 색이 깃들었다.

    회춘(回春). 솔거는 아스모데우스를 처음 만났던 때의 그 소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윽고, 솔거는 한참 동안의 입맞춤을 끝내고 아스모데우스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짓궂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이렇게 대단한 색욕은 처음이군요!]

    [너만 하겠느냐 이 색정광!]

    눈물을 머금은 채 웃는 그 둘의 얼굴로 짙은 석양이 내리쬐인다.

    아름답게 타오르는 저녁놀.

    아스모데우스가 노을빛으로 물든 솔거의 얼굴을 쓸며 말했다.

    [여전히 예쁜 색이로다.]

    [예쁜 새끼라구요?]

    [아니, 어여쁜 색깔이라고 한 것이다.]

    [마치 당신의 눈동자 색처럼요.]

    [작업 멘트 치고는 진부하구나.]

    [그럼 뭐라고 할까요? 당신을 처음 만나던 순간의 그 눈빛? E 231, S 208, L 120, R 238, G 17, U 67의 선셋 더 풀 레드 색감?]

    솔거의 말에 아스모데우스는 또다시 웃었다.

    [그냥 예쁘다고 해라.]

    [예쁩니다.]

    [그래. 그거면 됐……]

    [사랑합니다.]

    뒤이어진 솔거의 말에 아스모데우스는 순간 말문이 막힌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솔거가 다시 말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도,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아도 당신의 색을 띠고 싶습니다.]

    […….]

    [70년 전 그날 하지 못했던 말을 줄곧 되뇌고 또 되뇌었습니다.]

    […….]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스모데우스는 솔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번에는 그녀 쪽에서 먼저 솔거의 목을 끌어안았을 뿐이다.

    짙고 깊은 키스와 함께.

    이윽고, 둘의 길고 긴 입맞춤이 끝났을 때.

    “잠깐만요.”

    나의 소소한 참견이 있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는다고 하셨나요?”

    내가 묻자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둘. 뭘 당연한 걸 묻고 있느냐는 시선이다.

    확실히, 솔거와 아스모데우스를 축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화이트워싱 마을의 모든 이들이 이 커플을 향해 저주와 근심, 우려, 경멸의 시선을 보내겠지.

    ……하지만.

    “분명 모든 이들이 당신들을 응원할 겁니다.”

    나는 씩 웃으며 솔거와 아스모데우스를 축복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그들.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꺄아아악! 키스해! 키스!]

    [결혼해 짝- 결혼해 짝-]

    [둘이 잘 살아요! 영원히!]

    [응원합니다아아아-!]

    […진짜 너무 감동적이다.]

    [너 이 자식들! 우리가 응원한다아아!]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굿!]

    .

    .

    지금까지 생중계되고 있던 내 방송.

    그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던 수억 축하객들의 응원과 환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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