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84화 (784/1,000)

784화 팜므파탈(Femme fatale) (3)

호환성 OFF. 한국어/아랍어. 더 이상 한국어 번역 및 필터 지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띠링!

<تحذير!>

<تحذير!>

<تحذير!>

<تحذير!>

<فاسق جدا>

내가 설정을 변경하는 즉시 눈앞에 떠오르는 아랍어 경고문.

이것을 번역하자면…… ‘경고!’ ‘너무 선정적!’ 정도가 되려나?

“본인. 방금 아랍에서도 여자가 외설적인 말 입에 담을 수 있는 상상함.”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다.

전에 솔거를 찾아갔을 때도 말했지만… 내가 현재 플레이하고 있는 캡슐은 아랍에서 직구해 온 것.

그곳은 아직 뎀 윤리위원회의 19금 필터 규제 완화 법안이 통과되기 전이다!

아랍의 성차별은 2026년인 지금도 여전하다.

여자는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을 수 없으며 당연히 성적인 언어를 입에 담을 수도 없다.

하다못해 SNS는 물론이요 가상현실 속에서까지 그 규제는 이어지고 있는 실정.

때문에 아랍의 캡슐사는 모든 게임 속 여성체의 데이터에 나름대로의 데이터 브레이크를 걸어두었고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내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게임 플레이에 이 정도까지 지장을 줄 줄은 몰랐겠지.”

아마 나 이후로 패치가 될 듯하지만…… 일단 지금 이 상황에서는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버그이리라.

[■■를 ■■해서 ■■■■하는 ■■여, 나와 ■■해서 ■■하고 너와의 ■■을 ■■■■■■하고 싶은 ■■, ■■하지 않겠는가? ……으으음, 왜지? 왜인 게냐. 오늘따라 주문이 잘 안 외워지는데.]

아스모데우스는 나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는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제아무리 뛰어난 고정 S+급 몬스터라고 해도 게임 밖의 세계를 아는 것은 무리다.

당연히 내가 쓰고 있는 아랍제 캡슐에 인한 문화적 제약에 대해 알 리도 만무한 것이다.

‘게임 밖의 세계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지능 스탯이 뛰어난 존재는 아마 이 세계관을 통틀어 불사조 하나뿐이었겠지.’

그렇기 때문에 17마리의 고정 S+급 몬스터들 중에서도 불사조의 존재는 유별난 것이었다.

어서 빨리 녀석을 만나야 모든 비밀을 풀 수 있으려만.

‘……하지만 지금은 지금에 집중하자.’

나는 날아드는 아스마다이의 창극을 피해 계속해서 뒤로 물러섰다.

핏!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냉병기의 차가움, 그리고 그 끝에는 화끈한 독 기운이 감돌고 있다.

부글부글부글부글……

몸속에서 벨제붑의 독 혈액이 끓고 있었다.

벨제붑의 독이 경고 신호를 보내올 정도라면 아스모데우스의 독 역시도 상당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리라.

[변태 미꾸라지 같은 놈. 몸에 젤이라도 발라놨느냐?]

계속 미끄러지듯 회피하는 나를 향해 아스모데우스가 힐난의 눈초리를 보내온다.

뭐, ‘심해 스토커 씨아블로’의 점액으로 어지간한 물리력은 흘려보내고 있으니 젤을 발라 놓은 것과도 비슷하겠지.

나는 아스모데우스의 비난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뒤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파앗!

이윽고, 염계마법이 아닌 다른 마법이 펼쳐졌다.

그것은 9서클의 강력한 환각 마법, 엄청나게 야하고 선정적인 이미지들을 펼쳐 상대방의 주의력을 떨어트리고 나아가 현혹되게끔 유도하는 스킬이었다.

수없이 많은 서큐버스, 인큐버스들이 등장해 군무를 추며 나의 시선을 교란한다.

[호호호- 오빠~ 같이 놀아요!]

[형! 잠깐 쉬다가요 우리.]

매혹적인 시선과 몸짓으로 나를 유혹하는 몽마들.

하지만!

“하하, 어딜 남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여자들도 가차 없다구!”

내 눈에는 서큐버스들과 인큐버스들이 시커먼 천으로 눈을 제외한 모든 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직 내 시야에서만큼은 그렇다는 얘기다.

전에도 말했지만 뎀은 여러 가지 장르의 게임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만 아직 유일하게 에로계 장르만큼은 섭렵하지 못했다.

CERO 심사나 소프륜 심사. 게임, 오락 소프트웨어 등급 위원회, 관련 기구나 당국의 심사를 거치지 않았기에 선정적 요소들이 제대로 검토되지 못했고 이것이 완전히 유저들의 편의에 맞게 자리 잡기까지는 아직 몇 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이윽고, 아스모데우스가 만들어 낸 몽마의 하렘이 전부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콘텐츠로 확인되어 5분간 영상 송출이 제한됩니다>

꽤 오래 전, 윤솔의 방송에서도 한번 뜬 적이 있는 이 메시지를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심지어 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시스템 제한은 몬스터의 공격 패턴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오류였기에 이런 기묘한 현상은 나에게만 일어나고 있었다.

“안 보인다 안 보여! 아무것도 안 보여!”

나는 거침없이 몽마들의 하렘을 가로질렀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난리가 났다.

홍영화가 시청자들이 남기는 댓글들을 빠른 속도로 읽어 준다.

[고인물 씨! 시청자들이 엄청난 찬사를 보내고 있어요! ‘와! 저렇게 유혹이 쩌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간다고?’, ‘의지가 대단한 듯’, ‘진짜 초인급 자제력이다’, ‘저저저저저 몸매를 보고 눈이 안 돌아간다고?’, ‘그저 감탄만’, ‘시선이 안 갈래야 안 갈수가 없는데’, ‘나 같으면 1초 만에 시선 팔려서 죽었을 듯’. ‘진짜 엄청난 의지다. 존경스러워.’, ‘근데 왜 울고 있는 것 같지?’ 등의 반응들이 주류를 이루고……!]

……으음.

시청자들이 지금 뭘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안 보인다.

그저 검은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맨,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도 없는 것들이 흐느적 흐느적 덩실덩실 거리고 있는 것 밖에는 안 보이니 딱히 시선이 교란될 것도 없다.

보통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는데, 나는 보고 싶은 것을 안 봐 버리니 유혹에 흔들릴 여지 자체가 없는 셈.

‘미개한 율법들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구만.’

사실 아스모데우스는 게이머의 국적에 따라 체감 난이도가 꽤나 갈리는 편이다.

성적으로 꽤나 개방되어 있는 일본이나 독일, 브라질에서는 강세를 보이지만 성적으로 무척이나 폐쇄적인 인도, 아랍 등에서는 약세를 보인다.

[■■해서 ■■한 다음에 ■■■■를 돌려서 ■■를 ■고 ■■■■를 발라서 ■■■를 뒤집어 ■■하고 ■고 ■어서 ■■■■를 ■■어서…… 에이잇! 오늘 마법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로구나!]

아스모데우스는 짜증스러운 일갈과 함께 준비하던 다른 마법 공격들까지 죄다 캔슬해 버렸다.

하지만 마법 패턴을 봉인했다고 해도 그녀의 물리공격력과 특수공격력은 여전히 넘사벽으로 강력하다.

맹독을 머금은 창 아스마다이는 독 공격력과 물리 공격력을 합치면 거의 마몬의 망치에 필적할 정도로 강한 아이템, 마동왕 모드를 가동할 수 없는 지금 정면대결은 거의 불가능하다.

“히트 앤 런이지 뭐.”

나는 두 자루의 깎단을 놀리며 아스모데우스를 상대했다.

빈틈만 보이면 바로 능지처참 데미지에 벨제붑의 극독을 침투시킬 생각이었다.

그때.

…번쩍!

아스모데우스가 나를 향해 두 눈을 빛냈다.

특성 ‘관음’이 발동되었다.

딥러닝으로 나의 움직임을 똑같이 카피하는 능력.

……하지만!

“미안한데, 나는 애초에 홀딱 벗고 있어서 관음할 게 없다!”

나는 알몸인지라 애초부터 관음 특성이 면역이다.

“시청자들 앞에 투명하자는 것이 내 신조라서 말이지.”

내가 윙크를 날려 보내자 처음에는 호기심과 여유가 깃들어 있었던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이 점차 구겨져 가기 시작했다.

[아아, 나는 훈남이랑 싸워 보고 싶었는데…… 이런 기분 나쁜 변태가 상대라니.]

“줄 서 봅니다.”

[못 들었나? 나는 훈남과 싸우고 싶다고 했다.]

“들었는데요?”

[흥! 너는 평생 줄만 서겠구나.]

“그럼 줄 맨 앞에서 님이 훈남이랑 싸우는 거 구경하죠 뭐. 막타나 먹게.”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실로 천박한 색(色)을 띄고 있지 아니한가!]

“역시자지로 생각해 보세요. 내가 지금 말을 곱게 할 처지인가.”

[역시자지가 아니라 역지사지다 이 천박한 색기(色氣)야!]

나와 아스모데우스는 수십 합을 주고받았다.

…따앙! …깡! …퍼억! 우지지직-

아스마다이에 한번 부딪칠 때마다 체력이 미친 듯이 빠진다.

직접 맞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반동 데미지나 광역 충격파 때문에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앙버팀과 여벌의 심장으로 회복하고는 있으나 포션이 썰물처럼 빠지고 있어서 오래 가진 못할 듯싶다.

하지만, 분명 틈은 있는 법.

나는 크라켄의 틈 특성을 가동한 뒤 살벌한 창날의 벽을 비집고 들어갔다.

까가가가각!

깎단과 아스마다이가 맞닿으며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 냉병기들이 얽히며 만들어지는 살벌한 신경망 그 사이의 틈으로 나는 독 오른 쌍살벌의 침을 찔러 넣는다.

핏-

이내 아스모데우스의 눈꺼풀 부근에 깎단이 스쳤다.

핏방울조차 배어나지 않을 정도로 경미한 상처였지만 분명 상처는 상처.

약간이라도 데미지가 들어가면 그때부터 도트뎀의 저주는 시작된다.

[……네놈.]

내가 뒤로 두 바퀴 공중제비를 돌며 물러서자 아스모데우스는 두 눈을 손으로 누른 채 으르렁거린다.

나는 얄밉게 깐족거려 주었다.

“쌍수 잘 됐어요?”

[죽, 죽여 버리겠다! 감히 내 얼굴에 스크래치를……!]

남녀불문, 다른 어떤 부위보다 얼굴을 다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것이 몽마들의 특징이다.

…우드득! …우드드득!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이 이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관자놀이에 난 뿔이 두 배는 거대해졌다.

얼굴과 가슴, 다리를 가리고 있던 여섯 장의 날개들도 쫙 펼쳐져 마치 여섯 개의 손아귀가 추가로 생겨난 모양새.

이윽고.

아스모데우스는 자기가 펼칠 수 있는 최강 최악의 ‘모드(mode)’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별다른 외설스러운 주문 없이도 상대방을 압박해 조일 수 있는 마법체(魔法體)로의 변신 상태.

이윽고, 아스모데우스의 입에서 살기가 뚝뚝 묻어 떨어지는 질문이 새어나온다.

[……오빠는 지금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사랑하기에 더욱 빠져나올 수 없는 주문들.

'사랑의 블랙홀(Blackhole of Love)이라는 이름의 2페이즈.

일명 ‘미연시 모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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