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83화 (783/1,000)
  • 783화 팜므파탈(Femme fatale) (2)

    ‘모든 인간은 쾌락의 결과물이다.’

    -볼테르-

    *       *       *

    아스모데우스.

    고정 S+급 몬스터, 모든 몽마들의 왕, 용자의 무덤 108층의 주인.

    참고로 말하자면 먼 과거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과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한꺼번에 상대해 두 놈 전부를 무릎 꿇린 장본인이 바로 아스모데우스이다.

    패배의 대가로 레비아탄은 거대한 머리통 전체가, 무투룡은 전신의 비늘 색이 완전히 흰색으로 물이 빠져 버렸다는 설정.

    ‘……진짜 저세상 난이도겠네.’

    나는 눈앞에 있는 9등신 미녀를 바라보았다.

    아스모데우스의 강력함은 비단 전투력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이상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과 친숙함.

    그리고 마치 사랑하는 여자, 남자의 여심과 남심처럼 변덕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돌발변수들이 수없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어머? 호호호, 둘이 온 것이냐?]

    초장부터 그 돌발변수라는 게 나오기 시작했다.

    나와 홍영화의 얼굴을 번갈아 본 아스모데우스가 눈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왜 이제야 온 것이냐! 떽!]

    마치 사주, 점, 궁합 보러 온 커플을 대하는 무당과 같은 태도.

    야시꾸리 한 미소를 띤 아스모데우스는 이내 손에 쥔 희고 검은 쌀알들을 바닥에 팩 뿌리더니 나와 홍영화를 향해 대뜸 말했다.

    [남자 2% 여자 84%.]

    ……이게 뭔 말이래?

    “내가 2%라고?”

    [저는 84%라네요? 이게 무슨 수치지?]

    나와 홍영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이내 아스모데우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긴 뭐겠느냐. 너희 둘이 서로를 향해 품고 있는 색욕을 수치화한 것이다.]

    아, 뭔지 알 것 같다.

    아스모데우스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인 ‘■궁합’ 특성.

    시선의 방향, 심장 박동 수, 표정, 서로 간의 거리 등을 계산해서 남자와 여자 간의 애정도나 친밀도, 성욕 등을 계산해 내는 스킬.

    남녀가 같이 있으면 깊은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을 점쳐 주는 기술이다.

    [호호호, 남자보다 여자가 더 높은 수치라니. 이건 또 신기한 일이로구나. 으레 남자 놈들이 더 수치가 높기 마련이거늘. 오늘 밤에는 여자 쪽에서 먼저 다가가려나?]

    아스모데우스가 하는 말을 들은 홍영화가 갑자기 빽 소리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뻥쟁이 악마야! 꺄아아악! 고인물 씨! 저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저거 지금 제가 도깨비불 모드라서 오류 뜬 걸 거예요! 아니면 저 여자가 지금 되는 대로 지껄이는 것이거나! 오류라구요 오류! 나는 무성욕자란 말야! 기가 막혀서 증말!]

    “……진정해요. 저게 다 파티를 내부분열 시키려는 고도의 술책이니까.”

    회귀 전, 아스모데우스를 만난 공격대가 속수무책으로 와해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당시 아스모데우스를 잡으러 간 레이드에는 필연적으로 남자와 여자들이 섞여 있었는데 아스모데우스는 그 공격대원들 사이에 있던 미묘한 기류들을 남김없이 까발려 버렸던 것이다.

    외설적(猥褻的)인 색(色)슈얼 토크.

    [어머? 둘이 벌써 했구나?]

    [그런데 남자 쪽이랑 여자 쪽이랑 만족도가 많이 차이나네?]

    [너네는 왜 서로 간 보니? 사내연애라서 비밀로 하는 거야?]

    [아서~ 너는 마음 접는 게 나아. 저쪽은 너를 눈꼽만치도 이성으로 안 보는걸?]

    [너는 대체 한 번에 몇 명을 가지고 노는 거니? 쓰레기네~]

    [이야, 너는 배신감 좀 느끼겠는데? 사랑과 우정 모두 잃겠어~]

    누가 누구에게 색욕을 품고 있는지, 누가 누구에게 색욕을 안 품고 있는지.

    이게 까발려진 것만으로도 수많은 공격대가 자멸했다.

    방금 전까지 믿고 등을 맡겼던 남자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여자.

    방금 전까지 돌처럼 보던 여자에게 가슴이 뛰는 남자.

    방금 전까지 사랑하던 그녀가 방금 전까지 신뢰하고 따르던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방금 전까지 사랑하던 그가 사실 내가 싫어하던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수면 밑에서 뭉뚱그려져 있던 복잡한 삼각관계, 사각관계들이 뚜렷하게 가시화되는 순간.

    수많은 사랑과 우정 사이의 무언가들이 박살났고 당연히 팀워크라는 것도 공중분해되었던 것이다.

    ‘……역시 어떠한 단체를 망하게 하는 것은 남녀 간의 정분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교 동아리나 사회의 친목단체가 망하는 것도 다 구성원 남녀가 썸 타고, 삼각관계 만들고, 사귀고, 헤어지기 때문 아니겠는가.

    아스모데우스는 자신의 적들을 와해시키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당하면 무조건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저 섹슈얼 토크니까.

    나는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저급해.”

    그러자 아스모데우스는 최고의 칭찬을 들은 양 깔깔 웃어댄다.

    [호호호- 짐짓 고결한 척 위선 떠는 무장공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경멸이야말로 내게는 최고의 칭찬이지.]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씀이다.

    나는 아스모데우스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저 급하다고요.”

    니가 천박한지 고결한지는 내 알 바 아니고, 갈 길 바쁘니 빨리빨리 뜨자는 거다.

    콰쾅!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힌 뒤 두 개의 깎단을 쑤셔 박았다.

    [……오호? 굵고 긴 것이 두 개나?]

    아스모데우스는 목과 다리를 향해 찔러 들어오는 내 쌍수단도를 피해 허리를 틀었다.

    동시에.

    쿠르르르륵!

    아스모데우스의 왼손과 오른손에서 기류가 끓기 시작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침어낙안 특성인가.”

    ‘침어낙안(侵漁落雁)’ 이라 하면 서큐버스 퀸과 인큐버스 킹도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상대방의 색을 빼앗거나 덧입히는 특성, 즉 상대방의 색을 빼앗아 희게 만들 수도 있고 색을 주입하여 검게 만들 수도 있는 스킬로.

    “나 같은 룩덕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스킬이란 말이지.”

    [……룩덕이셨어요?]

    “그럼요. 제가 얼마나 패션에 신경을 쓰는데요.”

    [……아무것도 안 입고 다니잖아요?]

    “놈코어 미니멀리즘 에코 프랜들리 패션이에요.”

    나는 홍영화의 질문에 대답해 주는 동시에 아스모데우스의 손바닥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쩍!

    아스모데우스의 손에 닿은 바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원래 희던 바닥이 더욱 희게 변했다. 아스모데우스가 색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아스모데우스에게 색을 빼앗기게 되면 상태이상 ‘알비노’에 걸리게 된다.

    디버프의 내용은 몸의 색깔이 빠지고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들게 되며 모든 스탯이 일정량 감소하는 것.

    반대로 색을 주입당하게 되면 상태이상 ‘멜라니틱’에 걸리게 되고 같은 디버프 효과가 일어난다.

    (이 경우 시야가 붉게 물들지는 않는다)

    ‘……알비노의 상태이상은 몸이 가벼워지는 것, 멜라니틱의 상태이상은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던가.’

    천근추나 만근추 같은 특성과도 비슷한 효과를 상태이상으로 받게 되는 상황, 문제는 그 타이밍을 내가 조절할 수 없다는 것 정도랄까.

    그때.

    …스팟!

    나는 아스모데우스의 손길이 내 두 다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옳지. 걸렸구나.]

    아스모데우스는 나를 보며 매력적인 미소로 싱긋 웃는다.

    츠츠츠츠츠……

    내 왼쪽 다리에서 색이 빠져나간다.

    상태이상 ‘알비노’ 효과로 인해 내 왼쪽 다리는 무척이나 가볍게 되었다.

    ……문제는 오른쪽 다리는 ‘멜라니틱’의 효과로 인해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 균형을 잃고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왜 침어낙안(侵漁落雁) 특성이 무서운지 알겠다.

    아스모데우스에게 한번 당하면 몸의 중심도, 균형도 잡을 수가 없다.

    그저 비틀거리다가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색욕이라는 게 참 무섭지 않느냐? 몸과 마음이 완전히 따로 놀게 되니 말이다.]

    나를 오연하게 내려다보는 아스모데우스의 눈길.

    그 무섭던 레비아탄과 무투룡이 어째서 이 여자에게 패했는지 알 것 같다.

    몸뚱이 구석구석이 갑자기 제각각 무게가 달라져 따로 놀게 되니 물고기는 가라앉고(侵漁) 기러기는 떨어질(落雁) 수밖에.

    그 결과 레비아탄은 깊숙한 하해로 가라앉았고 무투룡은 싸움 나락의 무저갱에 떨어졌던 것이다.

    더군다나 아스모데우스는 피학성애와 가학성애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한 번이라도 공격을 당하거나 공격을 성공시키면 공격력이 크게 오른다.

    꾸드득- 우드드득!

    아스모데우스의 손에 들려 있는 창 아스마다이가 더욱 더 크게 팽창했다.

    독 기운이 한층 더 짙어진 모양.

    ‘쳇. 오즈만 있었어도 독 방패로 써먹었을 텐데.’

    내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 마침 홍영화가 시기적절하게 물어온다.

    [그러고 보니까 늘 데리고 다니시던 나방이랑 도마뱀이 안 보이네요? 왜 없죠?]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

    녀석들은 지금 중요한 임무를 따로 수행 중이니만큼 어쩔 수 없다.

    “펫 없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나는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아스모데우스는 그런 나를 비웃는다.

    [호호호, 건방진 수컷이로구나. 네깟 놈 주제에 감히 어찌 내 위에 올라타려 드느냐!]

    이윽고, 아스모데우스는 나의 확신을 꺾어 주겠다는 듯 필살기를 캐스팅했다.

    ‘애간장 태우기’, 무려 9서클 마스터 티어에 속하는 염계마법.

    이것에 제대로 피격당하면 제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죽음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리라.

    화르르르륵!

    마치 마법소녀가 변신하는 것처럼, 아스모데우스의 전신이 환한 빛무리에 휘감기더니 이내 전라로 변했다.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격정적이면서도 뜨거운, 모든 것을 녹여 버릴 듯한 색정이 토해져 나왔다.

    주문! 마법 주문!

    아스모데우스가 이 외설스럽고도 파괴적인 주문을 입에 담기만 하면 이내 무시무시한 고온의 불덩이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것은 내 전신을 남김없이 끓이고 녹이고 불태우리라!

    홍영화가 다급하게 외쳤다.

    [주, 주문을 외우기 전에 공격해야 해요!]

    그러나 주변에 몰아치고 있는 열기류 때문에 접근조차 힘든 마당이다.

    가서 아스모데우스의 입이라도 틀어막지 않는 한 주문 영창을 방해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으아아! 우리도 죽고 방송도 죽는다아!]

    홍영화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스모데우스가 저 외설스러운 주문을 입에 담는 순간 이곳은 쑥대밭이 될 것이고 그 음담패설을 방송에 생중계한 LGB 역시도 방송금지 처분을 받겠지.

    ……하지만.

    불덩이는 결국 소환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스모데우스가 주문을 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를 ■■해서 ■■■■하는 ■■여, 나와 ■■해서 ■■하고 너와의 ■■을 ■■■■■■하고 싶은 ■■, ■■하지 않겠는가? ……에?]

    그녀가 말하는 대사의 대부분이 삐- 소리와 함께 검열 당한 것이다. 물론 9서클 염계마법의 주문마저도.

    동시에.

    -띠링!

    내 눈앞, 그리고 홍영화가 비추는 스크린 앞에 요란한 글귀가 떠올랐다.

    <تحذير!>

    <تحذير!>

    <تحذير!>

    <تحذير!>

    <فاسق جدا>

    나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그렇다.

    전에 솔거를 찾아갔을 때도 말했지만… 내가 현재 플레이하고 있는 캡슐은 아랍에서 직구해 온 것.

    그곳은 아직 뎀 윤리위원회의 19금 필터 규제 완화 법안이 통과되기 전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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