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81화 (781/1,000)
  • 781화 용자의 무덤 (8)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카페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한 남자가 눈을 질끈 감고 외친다.

    “비록 당신은 과거 있고 가정형편 불우하고 성격도 털털하다 못해 아재 같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어두운 면모도 전부 다 감당할 자신 있구요!”

    깔끔한 정장에 멀끔한 외모, 한눈에 보기에도 꽤나 부티가 나는 귀공자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앉아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는 바로 유다희였다.

    “……네?”

    차규엽 게이트 당시 자신을 많이 도와줬던 비서실장 때문에 반강제로 나온 소개팅.

    하지만 설마 첫 만남에서 고백을 받을 줄은 몰랐다.

    유다희는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삼촌처럼 자신을 챙겨 줬던 비서실장님이 자기 조카가 참하다며 만나 보라고 해서 반강제에 가깝게 끌려나왔더니만 이런 귀찮은 일이 생길 줄이야.

    그런 유다희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계속해서 대사를 늘어놓고 있었다.

    “저는 꽤 반듯한 집안에서 반듯하게 자랐습니다! 학벌도 직업도 외모도 이만하면 괜찮다고 자부합니다! 저 정도라면 다희씨의 부족하거나 어두운 면도 잘 커버할 수…….”

    “저기요.”

    유다희는 손을 들어 남자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짜증스럽게 물었다.

    “저 아세요?”

    “……예?”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초면에 그딴 말을 지껄이시는지?”

    유다희가 대놓고 묻자 남자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쾅!

    유다희는 테이블 위에 지폐 한 장을 내려놓았다.

    “주선자님 얼굴을 봐서 커피는 내가 살 테니까 맛있게 먹고 가요.”

    “……저기, 아직 커피 안 나왔는데.”

    “두 잔 먹고 가든가.”

    유다희가 자리에서 확 일어나자 남자도 엉겁결에 따라 일어난다.

    이윽고, 카페의 출구로 향하는 유다희의 손목을 남자가 갑작스럽게 잡아챘다.

    “다희 씨! 잠깐만 얘기 좀 해요!”

    그러나.

    “나에 대해 잘 아는 듯하더니, 제일 기본적인 걸 모르시네.”

    “네?”

    남자가 되묻자 유다희는 씩 웃었다.

    “내가 보기보다 힘이 좀 좋거든.”

    동시에 우득!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끄아아악!”

    남자가 손목을 붙잡고 카페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유다희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목 살짝 꺾었는데 뭔 오바를 저렇게…… 아, 반듯하게 살아왔댔지 참.”

    살짝 꺾인 걸로도 저리 비명을 지르는 걸 보니 진짜 엄청 반듯하게 살아왔나 보다.

    유다희는 문득 머릿속에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반듯은커녕 구불구불 덜렁덜렁 그 자체인 남자.

    하지만 아주 멀리, 큰 틀에서 놓고 보면 그 구불구불한 선들이 모여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직선을 이루는 남자.

    은근히 올곧은 새끼. 의외로 바른 놈. 보기보다는 성실한 자식. 묘하게 미워할 수 없는 녀석.

    ‘……비교되네.’

    유다희는 콧방귀를 뀌며 카페를 나왔다.

    그러자 이내 도로변에서 클락션 소리가 한번 빵 울린다.

    유창이 조수석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한 손에 팝콘을 든 채로.

    “아 팝콘 이제 막 나왔는데. 어떻게 5분을 못 넘기고 사고를 치냐.”

    “억지 소개팅이었잖아.”

    “그러게 누가 나오래?”

    “비서실장님이 몇 번이나 권하셔서 나간 거지. 이젠 안 나가!”

    유다희는 사이다 캔을 땄다.

    푸슉-

    빠져나오는 탄산. 유다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이런 새끼들이 부쩍 많아졌단 말야.”

    “누구?”

    “초면인데 갑자기 나를 잘 안다는 듯 다가오는 놈들.”

    “아아, 또 그런 부류였어?”

    “어어.”

    유다희는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레비아탄 레이드 이후 유다희는 불특정다수에게 개인정보를 털렸다.

    신상, 과거, 평소 버릇, 때로는 가식 속에 숨기고 살았던 본심들.

    그것들을 알게 된 사람들 중 일부 남자들은 유다희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혼자만의 썸을 타고 때로는 친밀감이나 애정을 강요하기도 했다.

    ‘나는 너를 안다’, ‘나는 너를 이해하고 있다’, ‘나는 너에게 공감한다’, ‘나는 네가 익숙하다’.

    혼자서 일방적으로 유다희에 대해 공감하고 몰입하고 애정을 갖게 된 남자들은 정작 유다희의 입장에서는 그냥 뜬금없이 삶에 개입해 들어오는 남일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소름끼치기까지 한 타인.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좋지만……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좋아. 오직 나만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뭔 개소리야 그게?”

    “짜식. 그런 게 있다. 너도 누나 나이 되면 다 알게 될 거여~”

    유다희는 유창의 머리를 한번 거칠게 쓰다듬고는 엑셀을 밟았다.

    차가 급하게 달려 나가자 유창이 황급히 외쳤다.

    “도랏냐!? 천천히 밟아!”

    “안 돼. 빨리 집에 가서 생방 봐야 돼. 그리고 규정 속도 안 넘었어.”

    “……뭐?”

    유창이 의아한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유다희는 급한 기색이다.

    이윽고, 집에 도착한 유다희는 재빨리 컴퓨터로 방송을 켰다.

    나오는 것은 ‘켠왕’! 깜짝 게스트는 고인물! 실로 간만에 하는 방송이었다.

    유다희는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내부자 정보를 입수했지. 오늘 용자의 무덤에 도전한다는 것을.”

    “뭐? 누가?”

    “그야 이어진이지 누구긴 누구야.”

    “……형님이?”

    “어.”

    “형님이 누나한테 다음 레이드 정보를 말했다고?”

    “아니. 걔가 말해 주겠냐? 내가 알아냈지.”

    “어떻게 알았는데?”

    “감이랄까?”

    “감?”

    “엉. 지금쯤이면 용자의 무덤에 한번 갈 때 됐는데…… 하고 생각했었지.”

    유창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 것도 모른 채 유다희는 혼자서 흐뭇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나 아니면 누가 이 변태를 이해하겠어. 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니까?”

    이윽고, LGB에서 켠왕이 시작된다.

    -뿌슝빠슝삐슝♩♪♬ [사상 최초!] 고정 S+급 몬스터 레이드 생중계를 하는 방송국이 있다!?

    그리고 유다희의 말대로 ‘용자의 무덤’이라는 충격적인 콘텐츠가 제시되었다.

    실시간으로 치솟는 조회수,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유다희 역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때.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지금 저는 전 세계 최초로 ‘용자의 무덤 올클리어’에 도전하는 한 용자를 밀착 취재하고 있습니다!]

    내심 기대했던 얼굴 대신 웬 여자가 등장해서 모니터 화면을 꽉 채운다.

    유다희는 맥 빠진 표정으로 잠시 모니터에서 얼굴을 뗐다.

    “뭐야. 또 이 여자가 사회 보나.”

    현재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고 있는 LGB게임전문방송국의 앵커이자 라디오 진행자이자 공식 뎀 홍보대사인 홍영화.

    그녀는 마치 이어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멘트를 친다.

    [그렇다면 오늘 용자의 무덤 ‘올클리어’에 도전하는 용자의 정체는 누구냐? ……바로바로 고인물 씨입니다! 고인물 씨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 없제~? 한국 아마추어 랭킹 1위! 공식 랭킹 불명! 프로리그 전적 없음! 그러나 세계 통합 랭킹 1위인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가 사용하는 ‘엑스칼리버’의 원주인이자 튜더의 존경을 받는 게이머! 그리고 모두가 아는, 2차 대격변을 막아 낸 전쟁영웅!]

    홍영화는 다시 한번 말했다.

    [대단한 게이머가 대단한 도전을 선언했습니다. 2차 대격변의 전쟁영웅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게이머가 무려 고정 S+등급의 몬스터가 군림하고 있는 108층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모니터로 중계를 듣고 있는 유다희는 투덜거린다.

    “뭐야. 자기가 이어진에 대해 뭘 안다고.”

    홍영화가 이어진의 옆에 딱 붙어있는 광경을 보니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청률은 계속해서 치솟고 있었다.

    -와...용자의 무덤 올클리어? 이게 말이 되나?

    -고인물이라면 말이 된다!!!

    -용자의 무덤을 올클리어하겠다는 건 108층에 있는 고정 S+급 몬스터도 잡겠다는 거 아님???

    -돌았다 오늘 컨텐츠 머박이다 머박

    -이건 진짜 월드클라스..ㄷㄷㄷ

    -에이ㅋㅋㅋ아무리 고인물이라도 이건 좀;;;

    -현재 용자의 탑 최고 기록이 99층이던가? 튜더가 세웠던...

    -ㅇㅇ그것도 로열블러드 다 데리고 온갖 협찬이랑 투자 다 받아가면서 올라갔는데 그 정도였음;;;;

    -와~~ 고인물이 2차 대격변으로 월드스타 되고 마동왕이 세계리그 MVP 우승으로 월드스타 되고 다시 고인물이 용자의 무덤 올클리어에 도전하네...엎치락 뒤치락 오졌다...

    -고치락마치락ㄷㄷㄷ

    -지금 공중파에서도 긴급보도 나오네...고인물 클라스 ㄷㄷ해~

    .

    .

    수없이 갱신되는 시청자 의견들.

    그중 유다희의 시선을 잡아끄는 몇몇 댓글들이 있었다.

    -와 근데 오늘도 홍영화 님 미모 미쳤다...

    -역시 뎀 여신 갓영화 찬양해~

    -고인물 님이랑 잘 어울려요!

    -훈남훈녀다ㅋㅋㅋㅋ사겨라~~짝~~사겨라~~짝~~

    -둘이 뭐야뭐야 나 촉 되게좋아!! 거의 유비급임ㅋㅋㅋ

    -약간 둘이 썸 타는 거 같은데?

    -고인물도 은근 외모 되네...홍영화 옆에서 그리 안꿇림ㄷㄷㄷ

    -ㄴ본인등판

    -ㄴ꼬하~

    -ㄴ원래 고인물이 벗고 다녀서 그렇지 옷만 입히면 훈훈함;;

    -ㄴ네 다음 본인

    -ㄴ응아니야~

    .

    .

    이상하게도 홍영화랑 이어진을 엮는 댓글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이 왠지 유다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원래 레비아탄 사태 이후 댓글을 잘 안 달게 된 유다희이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예외였다.

    유다희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는 키보드를 연타했다.

    -웩~ 어울리긴 뭐가 어울림;;; 홍영화가 훨 아깝지~ 저 변태랑 엮지 마라!!

    -자꾸 둘이 엮지 마라~~ 딱 봐도 고인물은 관심 없구만ㅋㅋ

    -진짜 둘이 한 개도 안 어울림;; 진짜루;;;

    -나 홍영화님 팬인데~ 저 변태랑 엮지 말라구 진짜!!!

    .

    .

    그걸 한심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유창이 옆에서 빈정거린다.

    “아~ 우리 누나, 홍영화 씨 팬이었구나. 크 내가 고걸 미처 몰랐네.”

    “뒤질래? 꺼져라.”

    “질투는 추해.”

    “누, 누가 질투를 해 요 새꺄!”

    “질투 맞구만. 지금 레비아탄 그 자체인데 뭐.”

    “걍 뒤져! 야! 일로 와! 아, 꺼져 그냥!”

    “뒤지랬다가 일로 오랬다가 꺼지랬다가. 뭐 어쩌라는 거야.”

    유다희는 잠시 씩씩거리다가 유창에게서 시선을 뗐다.

    유창도 방송이 보고 싶은지 슬그머니 유다희의 옆으로 와 소파에 앉는다.

    그때. 유다희가 문득 물었다.

    “야.”

    “왜.”

    “……홍영화 씨 말이야. 예쁘냐?”

    “뭘 당연한 걸 물어. 예쁘지. 개이쁘지.”

    “나보다?”

    “돌았나? 왜 애초에 지가 이쁠 거라고 전제를 깔지?”

    결국 유다희가 주먹을 날리고 말았다.

    눈두덩이에 시퍼런 멍이 든 유창은 그저 입술만 삐죽거릴 뿐.

    그런 유창에게 유다희가 카드를 홱 던졌다.

    “야. 나가서 먹을거리나 좀 사 와. 배달 주문하든가.”

    “뭐? 과자 같은 거?”

    “그런 거 말고. 밥 되는 거.”

    “밥은 왜?”

    “용자의 무덤 공략하는 거 봐야지.”

    “……그거랑 밥이랑 무슨 상관이야. 지금이 밥 때도 아닌데.”

    그러자 유다희가 뭘 당연한 걸 자꾸 묻느냐는 듯 소리를 빽 질렀다.

    “아 중간에 배고파질 수도 있잖아!”

    고정 S+급 몬스터에게로 가는 길이 짧고 쉬울 리 없다. 그러니 점심이든 저녁이든 미리 다 근처에 구비해 놓겠다는 것이다.

    “진짜 또라이네 이……”

    하지만 유창은 유다희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유다희가 모니터 앞으로 부스럭 부스럭 꺼내든 것은 바로 대용량 기저귀였기 때문이다.

    “……누나. 밥 사 올 테니까, 인간적으로 화장실은 좀 가면서 보자.”

    “쉿! 지금 시작한다! 1층 진입!”

    유창과 유다희 남매가 지켜보는 가운데.

    [-띠링!]

    [용자의 무덤 ‘제 1번뇌층’에 입장 하셨습니다]

    대망의 용자의 무덤 레이드가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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