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79화 (779/1,000)
  • 779화 용자의 무덤 (6)

    [그르르르……]

    히드라는 나를 내려다보며 독성 가득한 침을 흘린다.

    부글부글 끓는 침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돌바닥에 구멍이 푹푹 뚫렸고 자욱한 독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침음성을 삼켰다.

    “확실히, 유생체 때와는 눈빛부터가 다르네.”

    히드라는 유생체일 때는 지능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지만 성체로 커 갈수록 점점 더 지능이 퇴화하는 몬스터다.

    즉,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내가 알던 친근한 히드라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몬스터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사감 없이 잡아 주마.”

    나는 히드라를 107층의 중앙부로 끌어내기 위해 잽싸게 뒷걸음질 쳤다.

    전투본능만이 남은 히드라는 살인기계답게 바로 나의 줄행랑에 반응한다.

    [그아아아아악!]

    여덟 개나 되는 머리들이 필드 전체를 조여 온다.

    …콰콰쾅!

    머리 하나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찍어 눌렀다.

    내가 옆으로 피하자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의 돌바닥이 마치 뜨거운 스푼에 닿은 아이스크림 표면처럼 녹아내린다.

    후두둑- 뚝-

    녹아내린 돌바닥이 히드라의 이빨 사이사이로 즙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콰쾅! 퍼억! 쩍-

    돌로 된 기둥이나 바닥이 퍽퍽 부서져 나간다.

    아니, 부서진다기보단 녹아내린 상태로 흩뿌려진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었다.

    지형은 히드라의 강력한 턱 힘에 깨물려 부서지기 전에 앞서 놈이 내뿜는 지독한 독기에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래서야 용암지대에서 싸우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네.”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 가장 격한 지형 변화였다.

    새삼 오즈를 두고 온 것이 약간 후회가 된다.

    녀석이 있었더라면 히드라의 독을 막을 수 있는 훌륭한 고기방패로 쓸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허물어지는 바닥과 기둥들 사이로 부지런히 뒤로 빠졌다.

    그리고 이내, 내가 목표로 하던 포인트가 눈에 들어왔다.

    ‘튜더의 보고서에 의하면 층을 지탱하는 두 개의 핵심 기둥만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다고 했었지?’

    용자의 무덤이 아무리 무한한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탑 내부의 공간이다.

    위와 아래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공간, 즉 이곳 용자의 무덤에도 절대 파괴되지 않으며 변하지도 않는 오브젝트라는 것이 존재하긴 한다.

    그것이 바로 내 등 뒤로 보이는 이 커다란 두 개의 기둥이다.

    이 두 기둥만은 다른 기둥들과 약간 다른 외형을 하고 있었다.

    일단 미묘하게 조금 더 굵을 뿐만 아니라 색 역시도 좀 더 어둡다.

    이 어둠 속에서는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차이, 하지만 회귀 전 로열블러드에는 눈썰미 좋은 고인물들이 몇몇 있었고 그들에 의해 이 미세한 차이점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난 이 사소하다면 사소한 히든 피스를 이용해 히드라에게 유효타를 먹일 생각이었다.

    스슥-

    나는 첫 번째 머리를 피해 기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재차 따라오는 두 번째 머리를 피해 다시 한번 반대쪽 기둥을 돈다.

    히드라는 여덟 개의 머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나를 물어뜯으려 했지만 그보다는 내가 항상 반 박자 빨랐다.

    [크아아아악!]

    이윽고, 히드라는 나를 물기 위해 본체를 움직여 다가온다.

    하지만.

    ……꽈악!

    이윽고, 히드라는 나를 코앞에 둔 채로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매듭!

    파괴불가의 두 기둥에 자기의 여덟 개나 되는 긴 목이 꽁꽁 묶였기 때문이다.

    “어때? 나의 십생크 매듭 솜씨가. 이 십생크야!”

    십생크 매듭, 일명 줄임매듭.

    이것은 긴 로프의 길이를 줄일 때 임시방편으로 사용하기 좋은 매듭으로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다.

    나는 히드라의 나머지 머리들을 피해 다시 한번 돌기둥을 뱅글뱅글 돌았다.

    쉬이이이익!

    지독한 독기를 뿜어내던 입이 어느덧 뚝 멎는다.

    매듭이 지나치게 꽉 조여졌기 때문에 독기가 올라오다가 목젖 부근에서 걸린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히드라의 머리를 유린했다.

    “핫하! 이것은 스퀘어 노트 매듭! 이것은 오버핸드 노트 매듭! 이것은 보라인 매듭! 이것은 러닝 보라인 노트 매듭! 이것은 시트 밴드 매듭! 이것은 더블 시트 밴드 매듭! 이것은 그래니 매듭! 이것은 카우 히치 매듭! 이것은 클로브 히치 매듭! 이것은 피셔맨 노트 매듭! 이것은 라인 노트 매듭! 이것은 8자 매듭! 이것은 걸상 매듭! 이것은……!”

    다양한 매듭법이 나올수록 히드라의 목 길이는 점점 짧아진다.

    이윽고 히드라는 두 개의 돌기둥 사이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쉬익- 쉭- 쿨럭!

    입에서 계속 뿜어져 나오던 독기도 멎어 버렸다.

    주변의 지형은 완전히 초토화 되어 있었지만 오로지 두 개의 기둥과 거기에 복잡하게 묶인 히드라의 여덟 목만은 덩그러니 놓였다.

    “자, 그럼 이제부터 개별 참교육 들어갑니다.”

    나는 마몬의 힘을 끌어올려 히드라의 첫 번째 머리를 후려갈겼다.

    콰쾅!

    폭음과 함께, 비늘이 깨지고 살가죽이 찢겨나간다.

    제아무리 히드라가 강하다고 해도 마몬의 힘을 버텨낼 수는 없는 노릇, 나는 결국 히드라의 머리 하나를 완파시켜 놓았다.

    (깎단 도트뎀을 걸어 놓았음은 물론이다)

    두개골이 깨지고 그 안의 독성 물질들이 사방팔방으로 흩뿌려졌다.

    나는 벨제붑도 잡은 몸이기에 히드라의 독에 그리 큰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다만.

    “역시나, 튜더의 보고서에 있던 내용 그대로군.”

    히드라는 순순히 내게 당하지 않았다.

    츠츠츠츠츠츠……

    박살나 버린 첫 번째 머리의 뼛조각들과 살점 조각들을 걷어내고 튀어나오는 두 개의 혹이 있었다.

    첫 번째 머리 속에서 자라난 두 개의 혹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두 개의 머리로 변해 간다.

    “머리 하나를 잘라 내거나 부수면 그 자리에서 두 개가 돋아나는 ‘구두룡’ 특성, 아주 골치 아프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며 넷은 여덟이 되는 것이 히드라의 머리.

    때문에 무턱대고 히드라의 머리를 파괴했다가는 오히려 더욱 많은 머리들에 둘러싸이기 마련이다.

    애초에 머리 하나를 파괴하는 것도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인데 기껏 파괴했더니만 머리가 둘로 늘어나게 되면 얼마나 막막할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온 나에게는 다 대비책이 있다.

    착!

    나는 품에서 슬라임 젤리를 꺼내들었다.

    지옥불 코어와 함께 숙성되는 동안 지옥의 불길이 가진 뜨거움을 그대로 머금게 된 아이템.

    나는 이것을 막 재생되기 시작한 히드라의 첫 번째 머리의 절단면에 발라 버렸다.

    치이이이익……

    이윽고, 살이 지글지글 타는 소리가 들린다.

    [그아아아아악!?]

    혈액이 끓고 살점이 오므라든다.

    히드라는 괴성을 질러냈다.

    출혈은 멎었지만 재생도 멎었다.

    자라나던 두 개의 머리는 살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화상자국에 파묻혔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도 히드라를 이렇게 잡았다죠 아마?”

    나는 계속해서 히드라의 머리를 깨부수고 절단면에 슬라임 젤리를 발라놓았다.

    매듭에 묶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히드라, 심지어 재생까지도 막혔다.

    내가 8개의 머리를 모두 부숴 놓았을 때.

    …콰쾅!

    히드라가 움직였다.

    놈은 여덟 개의 목을 스스로 자른 뒤 매듭에서 풀려났다.

    이윽고, 꼬리 부분에 감추어져 있던 거대한 머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빅 헤드(BIG HEAD)’, 아홉 번째 머리.

    모든 머리들 중 가장 강한 이 녀석이 내 앞으로 흉측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부터는 튜더의 보고서에도 없던 내용.’

    즉 지금부터가 진짜라는 소리다.

    나는 세계인들 중 그 누구도 잡지 못했던 존재에 맞선다.

    퍼퍼퍼퍼펑!

    이윽고, 지금까지의 독 기운을 모두 합친 것만큼이나 강력한 오염 폭풍이 내 몸을 덮쳤다.

    어지간한 고렙 플레이어들이라고 해도 이 입김에 닿으면 몇 초 버티지 못하고 한 줌 육수로 변해 버리겠지.

    심지어 벨제붑의 극독조차도 이에 반응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나는 깎단을 들어 히드라의 독 폭풍을 버텨냈다.

    ……하지만.

    기우뚱-

    놀랍게도, 파괴불가로 알려져 있던 두 개의 돌기둥조차 본체 빅헤드의 독기를 버텨내지 못했다.

    천천히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돌기둥. 나는 그것을 보며 경악해야 했다.

    ‘미친! 여기 있는 두 개의 돌기둥은 분명 파괴불가일 텐데?’

    튜더의 보고서가 틀렸다.

    용자의 무덤 107층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돌기둥은 유난히 튼튼했을 뿐이지 파괴불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오-오오오오오!]

    히드라 빅헤드의 힘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놈은 잘려나간 여덟 개의 목을 꿈틀거리며 나를 향해 내장 속 깊숙한 곳에 고여 있던 응독(凝毒)까지 싹싹 긁어내 토해 내고 있었다.

    (이 독이 어느 정도로 지독하냐면 깎단 도트뎀 스택이 쌓이는 시간을 얌전히 기다릴 수 없을 정도랄까!)

    ‘어쩌지? 버티기만 해서는 승산이…….’

    일단 이 독 기류에서 빠져나가야 ‘불완전변태’ 등의 온갖 버프를 두르고 다시 한번 역전의 찬스를 노릴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108층에 도전할 여력이 없게 되잖아.’

    105층의 주인 데스나이트 사묘아리와 106층의 주인 아몬 후작을 연달아 잡을 때조차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꽤 치열하기는 했어도 108층에 도전할 정도의 포션은 남길 수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히드라를 너무 과소평가 했던 건가?’

    선택을 해야 했다.

    지금이라도 히드라를 쓰러트린 뒤 108층으로의 도전을 포기하고 여벌의 심장에 포션을 재충전해올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최소의 코스트로 히드라 사냥을 노려 볼 것인가.

    전자의 경우에는 어찌되었건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것이 되니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다만 다시 한번 이곳에 도전하기에는 많은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리라.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강행돌파를 하자니…… 자칫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될 수도?

    ‘모든 힘을 다 짜내서 히드라를 잡고 108층은 포기한다’

    VS

    ‘힘을 아껴 가면서 어떻게든 히드라를 잡고 108층에도 도전해 본다’

    참 택하기 어려운 선택지들이다.

    ‘……어쨌든 눈앞의 이놈을 잡긴 잡아야 하는데.’

    내가 이를 악물고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쿠르릉!

    나는 발밑을 타올라오는 진동을 느꼈다.

    그간 수많은 대형 몬스터들이 만들어 냈던 지진과는 뭔가 다르다.

    이것은…….

    ‘탑 밖!?’

    그렇다.

    용자의 무덤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 약해지면서 탑 전체 구조에 문제가 생긴 모양.

    히드라의 규격 외적인 힘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이윽고.

    퍼펑! 쩌저저적!

    마치 누수라도 생긴 것처럼 탑 곳곳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륵……

    녹아내리는 회반죽처럼, 벽의 일부가 녹으며 바깥의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휘이이잉!

    동시에 바깥의 바람이 내부로 들어온다.

    나는 달리 판단할 여지가 없었기에 재빨리 독기가 없는 쪽으로 달렸다.

    [오-오오오오오오!]

    히드라 빅헤드는 그런 나를 따라 탑 외부로 통하는 균열 쪽으로 기어온다.

    바로 그때.

    -띠링!

    <용자궪 무궪 1궪7층 외벽 궩궪뷁궭훑>

    <시스템 이상이 감지되었습니다>

    <오류코드 #127306219065899902……‘용자의 무덤’>

    <긴급 디버깅(debugging) 시스템 가동>

    <룰북(rule book)에 의거해 ‘용자의 무덤’의 히든 룰을 발굴합니다>

    <적절한 규칙 채굴 중……#107층 #외벽 #손상>

    <패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상한 알림음들이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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